1. 건축가 헬무트 얀
2021년 5월 8일, 독일계 미국인 건축가 헬무트 얀 (Helumut Jahn, 1940 ~ 2021) 별세
헬무트 얀 (Helumut Jahn, 1940년 1월 4일 ~ 2021년 5월 8일)은 독일계 미국인 건축가이다.
– 헬무트 얀 (Helumut Jahn)
.출생: 1940년 1월 4일, 독일 Zirndorf
.사망: 2021년 5월 8일, 미국 일리노이 캠턴 힐스
.배우자: 데보라 앤 람페 (1970 ~ )
.대표 작품: 소니 센터, 수완나품 공항, 오헤어 국제공항, Veer towers, 멕콜믹 컨벤션 센터, 포스트 타워,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기숙사, 일본 중앙 우체국 등
미국 시카고를 기반으로 시작하여 유럽, 남아프리카를 거쳐 아시아 각국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소니 센터, 수완나품 공항, 오헤어 국제공항, Veer towers, 멕콜믹 컨벤션 센터, 포스트 타워,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기숙사, 일본 중앙 우체국 등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헬무트 얀 (Helumut Jahn, 1940 ~ 2021)은 1940년 1월 4일 독일 치른도르프에서 태어나 뮌헨공대를 졸업하고 1966년 미국 시카고로 건너갔다.
일리노이공대에서 전설적인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이듬해 건축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큰 컨벤션 센터인 ‘매코믹 플레이스’, 오헤어국제공항, 워싱턴DC에 있는 연방수사국 (FBI) 본부 ‘존 에드거 후버 빌딩’ 등을 설계했다.
특히 1985년 지은 17층짜리 통유리 건물 ‘톰슨센터’가 유명하다. 독일 베를린의 랜드마크 소니센터, 태국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 등 세계 무대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로 꼽히는 헬무트 얀은 2021년 5월 8일 미국 일리노이주 캠프턴힐스에서 자전거를 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 약력
1965년 뮌헨 공과대학교 (Technishe Hochschule)를 졸업하고 P.C. von Seidlein에서 일을 하였다.
이후 1966-1967년 시카고에 위치한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대학원을 수학하였다.
1967년 C.F. Murphy Associates에 입사하여 1973년 부사장으로 역임하게 되었고, 1975년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1983년 대표 (president)가 되면서 C.F. Murphy Associate에서 Murphy/Jahn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다.
2012년 10월 26일자로 얀은 프란시스코 곤잘레즈 퓰리도 (영문: Francisco Gonzalez Pulido)를 공동 디자인 대표로 선임하고 회사명을 JAHN으로 개명하였다.
2021년 5월 8일 오후 3시 30분 (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캠프턴힐스에서 자전거를 타다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 작품성향
얀의 건축은 독일계 미국인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건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성향을 주로 띄고 있으며, 이후 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모던건축으로 변화되었다.
무엇보다 헬무트 얀이라는 건축가가 매력적인 것은 그의 스케치 때문이다.
그는 프로젝트마다 도시에서 대지가 가지는 입지적인 특징에서부터, 건축물의 배치와 외관의 형태, 내부공간의 구성과 구조 및 설비, 그리고 마감재의 디테일까지 수많은 스케치를 통해 표현한다.
그의 스케치를 살펴보면 다양한 색상의 펜이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여 개념을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컴퓨터를 이용한 드로잉 못지않게 세밀하고 정확한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건축적 언어로서의 스케치들이 클라이언트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들과 원활한 소통을 이루어 내서 훌륭한 건축물이 완성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얀은 미국에서 가장 큰 컨벤션센터인 매코믹플레이스, 오헤어국제공항, 워싱턴DC에 있는 연방수사국(FBI) 본부 ‘존에드거후버빌딩’ 등을 설계했다.
1985년엔 17층짜리 통유리 건물 톰슨센터를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밖에 베를린의 랜드마크 소니센터, 태국 방콕의 수완나폼공항 등을 설계했다.
○ 작품
1999년 – 공항센터 (Munich Airport Center), 독일
2000년 – 소니 센터 (Sony Center), 독일
2000년 – 쾰른/본 공항 (Koln/Bonn Airport), 독일
2000년 – 임페리얼은행 타워 재개발 (Imperial Bank Tower Renovation), 미국 캘리포니아 주
2001년 – HALO 본사 (HALO HeadQuaters), 미국 일리노이 주
2002년 – 독일 우체국 (DHL,Zentrale Deutsche Post) 본사, 독일
2002년 – 바이어 본사 (Bayer AG Konzernzentrale), 독일
2002년 – 겔러리아 Kaufhof 백화점 (Galleria Kaufhof), 독일
2004년 – 멘헤이머 본사 (Mannheimer 2), 독일
2004년 –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기숙사 (State Street Village at Illinois Institute Technology), 미국 시카고
2005년 – 수완나품 국제공항 (Suvarnabhumi Airport- New Bangkok International Airport), 태국 방콕
2006년 – 세로노 본사 (Serono Headquarters), 스위스 제네바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2. 구글, 美 시카고 도심 일리노이 주정부 제2청사 매입
입력 2022-07-28 05:53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미국의 IT 공룡 기업 구글이 신흥 'IT 허브'인 시카고 중심부의 유명 빌딩 '제임스 R.톰슨 센터'를 매입했다.
J.B.프리츠커 일리노이주지사는 27일(현지시간), 현재 일리노이 주정부 제2청사인 톰슨센터를 구글이 매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매매가는 1억500만 달러(약 1천400억 원)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일리노이 주 정부가 톰슨센터 인근의 7천500만 달러짜리 빌딩과 현금 3천만 달러를 손에 넣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이번 거래에 대해 "시카고가 IT업계에 매력적인 도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할 뿐 아니라 납세자들의 혈세를 아끼고 도심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글 시카고 운영 책임자 캐런 소더는 "톰슨센터는 단순한 빌딩 그 이상이다. 글로벌 '테크 허브'로 도약한 시카고 중심부에 구글의 존재감을 확립하고 이 도시의 심장부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활력소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구글은 총 17층·연면적 11만㎡ 규모의 이 빌딩을 개보수해 시카고 사무소 겸 중서부 본사로 전환할 계획이다.
구글은 설립 2년 만인 지난 2000년 직원 2명을 둔 시카고 사무소를 처음 열었으며 현재는 신흥 상권 풀튼마켓 구역의 '1K 풀튼' 빌딩 등에 2천여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일리노이 주정부는 시카고 경제중심지 라살가(街)에 있는 37층짜리 전(前) BMO 해리스 은행 건물(추정 가치 7천500만 달러)에 새로운 제2청사를 꾸밀 계획이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일리노이 주정부는 절반의 비용으로 1.5배 더 넓어진 공간을 사용하게 됐다"며 향후 30년간 10억 달러(약 1조3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 절감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톰슨센터와 인근 빌딩에서 근무하는 일리노이 주정부 공무원들은 새로 매입한 빌딩으로 통합 이전하고, 구글 직원 2천여 명이 2026년부터 톰슨센터에 입주하게 된다.
톰슨센터는 독일 출신의 유명 현대 건축가 헬무트 얀(1940~2021)이 설계했으며 일리노이 주정부가 총 1억7천200만 달러(약 2천250억 원)를 투입해 1985년 완공했다.
전면이 유리로 덮였고 꼭대기 층까지 트인 둥근 중앙홀(아트리움)에서 각 층이 올려다보이도록 설계된 독특한 구조에다 얀의 명성과 합해져 수많은 관광객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명성만큼이나 외관에 대한 혹평이 끊이지 않았고 에너지 효율성이 낮아 유지·관리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지은 지 오래돼 손댈 곳이 많지만 예산 부족으로 필수적인 보수공사마저 이뤄지지 못해 시카고 도심의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시카고 WGN방송에 따르면 구글은 금년 중 톰슨센터 개보수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며 완공까지는 최소 2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chicagor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포츠담광장의 소니센타(Sony Center am Potsdam)>
▶소니의 전략
포츠담광장의 이 부지를 차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각축전에서
최종 승자가 된 일본회사, 소니.「왜 하필 일본회사인가」
또는 「일본. 유럽의 심장부로 진격」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언론은
한동안 질투 어린 특집기사를 다뤘었다.
여기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선일보('98.7.15일자 국제면)의
관련기사를 일부 옮겨본다.
『통일 전부터 일본 소니社는 포츠담광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소니는 동서이데올로기 대립이 느슨해질 경우 베를린 위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진작부터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니는 포츠담광장이 유럽 시장공략 전초 기지로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에 이어 유럽대륙을 장악하려면
(소니社가 유럽 대륙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이미 총수익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그야말로 명당이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장벽이 무너지고 2년이 지나도록 결정을 내리지 않고
투자희망가들 사이에 경쟁만 부추기고 있었다.
오가 노리오 소니 사장(현 회장)은 아직 전쟁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던
50년대 베를린에서 음악을 공부한 독일 유학파.
그는 독일정부에 보내는 계획안에 베테랑 전문 경영인답지 않은
감상적 구절을 일부러 흘려 넣었다.
"제가 베를린에 머물던 당시는 2차대전이 끝난 지
이미 10여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도처에서 전쟁이 남긴 상처를 볼 수 있었지요.
폭격에 무사했던 건물들도 벽에는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어
전쟁이 바로 어제야 끝난 듯했습니다.
저는 이런 건물들을 바라보며, 2차대전이 그토록 위풍당당했던
베를린의 이빨을 마구 뽑아 놓았다고 가슴아파했습니다."
5백억 마르크(약25조원)가 왔다갔다하는 포츠담 광장터를 두고
독일 정부가 감상주의에 빠져 결정을 내렸을리는 만무하지만,
아무튼 제3의 투자가로 일본 소니社가 결정되었다.
자사 전제품 절반 이상을 외국에서 생산하며 국제적 멀티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한 소니의 이미지가 서유럽의 좁은 무대를 벗어나
세계 초강대국 도약이라는 통일 독일의 숨겨진 꿈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이 기업이 미래산업인 커뮤니케이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도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경제, 문화, 오락의 복합건물
포츠담광장의 소니센타는 베를린의 심장부에서 펼쳐지는
가장 큰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이다.
건축가 '헬무트 얀'은 포츠담광장의 소니센타에서 아주 자극적인
조화를 창조하기 위해 8개 건물을 시각적으로 집합시켜 놓았다.
이 센타에는 업무용건물, 판매유통시설, 식당, 주거용 건물,
문화단체, 시민문화공간, 차원 높은 위락시설들이 들어서는데
그 내용은 다음 도표와 같다.
<공사개요>
- 대지면적 : 26,444㎡
- 건축연면적 : approx. 132,500㎡
- 준공연도 : 1999/2000
- 투자총액 : approx. DM 1.5 billion (1.2조원)
- 건축주 : Sony with its partners Tishman Speyer and Kajima
- 사업시행자 : Tishman Speyer Deutschand GmbH
- 설계자 : Murphy/Jahn, Chicago
▶건축설계 경기
1991년, 베를린의회의 시개발 환경분과위원회는 전체 포츠담광장의
개발을 위한 도시설계추진방식을 마련키 위해 공모를 하였다.
여기서 채택된 힐머/새틀러안(Hilmer & Sattler)은 베를린의회,
티어가르텐 주당국과 함께 투자자가 동시에 합의할 수 있는 설계를
선택하기로 하였다.
소니센타의 설계는 베를린市 중심과 포츠담광장 안에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건물자체 또한 예술적, 독창적 표현을 할 수 있는
건축가여야만 했다.
소니社는 세자르펠리(Cesar Pelli), 월리암 페더센(William Pedersen),
헬무트 얀(Helmut Jahn)(*주1) 등 1992년 8월 15차에 걸친 심사 끝에
헬무트 얀의 다이나믹한 설계작품이 만장일치로 당선되었다.
심사위원으로는 베를린시장, 의회의 문화분과위원, 소니회장,
다임르벤츠회장을 비롯 건설분야의 장관, 저명한 교수들이 포함되어 있다.
▶빛의 광장-포럼(FORUM)
4,000㎡의 지붕을 가진 경기장 형태로 천장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건물 포럼은 업무, 오락, 주거, 문화공간을 다 아우르는 복합용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쇼핑, 레스토랑, 문화행사를 다 할 수 있는 포럼은
시민의 일상생활, 특히 야간에 축제성격의 들뜬 분위기를 제공할 것이다.
건축가 헬무트 얀이 설계한 소니센타의 기본적 특징은,
최적의 비율로 중앙의 포럼을 둥글게 감싸는데 있다.
유럽은 공익적인 시민의 공간을 배려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었는데
2차대전 이후 시대적 요청(?)으로 한동안 공공의 공간을 망각한
단순한 건축양식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헬무트 얀은 이 공공의 포럼주변에 그의 설계의 요소들을 조화롭게
무리지우는 방식을 사용했다. 소니 유럽본부건물, 오피스타워,
건축적 상징물인 에스플라니데. 이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기하도록 하고,
또한 필름하우스와 독일 미디어테크, 다른 복합건물들과 연결되게 하였다.
삼각형의 부지는 북쪽공원과 나란하고, 포츠담광장과 베를린에서
가장 큰 숲인 티어가르텐 사이를 연결짓게 된다.
이 설계의 빼어난 특징은 포츠담광장에 면한 오피스타워와 켐프광장 쪽의
소니 유럽본부빌딩이다.
독창적이고 기술적으로 복잡한 설계의 이 빌딩들은 주변의 문화공간의 건물들,
특히 한스샤로운(Hans Scharoun)이 설계한 필하모닉 홀과 건축적인 연결을 고려한 것이다.
출처 - [공유] 소니 센터(Sony Center ), Potsdamer Platz ,Berlin, G..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helmut jahn
helmut jahn at SOIC
헬무트 얀 은 독일 뉘른베르크 nuremberg 에서 1940년 태어나 뮨헨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미국으로 건너와서 미스mies 가 있는 시카고 일리노이공대 IIT 에서도 공부한다. 학교를 떠나 시카고 CFMurphy 사무실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한다. 얼마 후 회사 이름을 murphy/jahn 으로 바꾼다. 시카고의 일리노이주청사 SOIC 건물로 하이테크형 스틸앤글래스의 포스트모더니스트로 건축계에서 각광을 받는다. 베를린에 있는 포츠다머프라츠의 소니센터로도 유명하다. 아직도 시카고에서 jahn 이란 설계사무소 이름으로 활동중이다.
from britannica.com
미국 내는 물론 유럽과 중국 등 전세계에 헬무트 얀의 무수한 작품들이 있다. 그 중의 일부만 소개한다.
• 시카고 일리노이주청사, 1985
일리노이공대를 떠나 c.f. murphy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1970년대에는 미시안건축을 따르는 모더니스트였다. 70년대 후반 찰스무어와 마이클그레이브스의 포스트모던 열풍이 세게 몰아치자 얀도 거기에 휩쓸린다. 조적과 석재를 이용한 무어나 그레이브스와 달리, 얀은 스틸과 유리의 포스트모던을 구사한다.
일리노이주청사 SOIC @시카고
설계당시부터 과도한 유리마감과 색상으로 논쟁거리였던 일리노이주청사 SOIC (aka 톰슨센터)는 준공후 설상가상으로 실제 사용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철거해야한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중 가장 큰 원인은 홑유리장의 커튼월 외피 사용으로 단열이 안되어 여름철 냉방을 해도 사무실온도가 30도까지 올라 업무기능이 마비가 된다. 허지만 노이즈효과 덕분(?)에 얀은 건축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1985년경. 40대 중반이다.
all glass SOIC 모형
얀의 SOIC 컨셉 렌더링
a huge and flasy atriumn at SOIC
어마어마한 규모의 현란한 아트리움로비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환상적인 칼라펜슬드로잉에 필적하는 얀의 드로잉도 매우 유혹적이다.
• 110층 타워 계획안 @ 일리노이주청사, 시카고. 2018
proposal for a super tall tower at SOIC
일리노이주청사의 설계 하자사항들이 해결이 안되고 계속되면서 유지관리가 어려워지고 비용이 폭증하자 흉물로 변한다. 이어서 철거하자는 여론이 커진다. 이에 맞서 얀은 해결책으로 그 옆에 110층 초고층 건물계획안을 최근 제시한다. (archdaily 2018)
new proposal
• 켐퍼 에리나, 캔사스시티, 미주리, 1974
kemper arena
일리노이공대 IIT를 떠나 CFMurphy 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는 1970년대 초에는 미시안 건축의 영향으로 혁신적 구조개념을 이용한 건축에 뛰어났다. 당시 롱스팬 입체트러스를 이용한 켐퍼에리나는 30대 초반의 얀을 미국 건축계에 소개하는 큰 기회가 되었다.
입체트러스로 지붕을 잡고있는 켐퍼에리나의 구조개념은 미스가 설계한 IIT 크라운홀의 구조개념과 유사하다.
kemper arena
•제록스센터 Xerox Center, Chicago, 1980
1978년 준공되기전에 건축상을 받는다. 아직 포모 pomo 에 빠지기 전이다.
•시카고 오헤어 O'hare 국제공항 터미널#1 연결통로, 1987
chicago o'hare airport
이제는 완전히 포모에 올인한다. 스틸앤글래스와 네온사인의 현란한 풍경이 펼쳐진다. yes. polychrome.
no more monochrome.
• one liberty place, philadelpia, 1987
one liberty place
시카고 일리노이주센터의 노이즈효과(?)로 여기저기서 얀을 찾고 있었다. 리버티플레이스도 그 중의 하나다. 박공 형태의 좁아지는 탑으로 낭만주의 포스트모던을 보여준다.
• 메세투름 messeturm, 프랭크푸르트, 독일, 1991
messeturm
얀의 메세투름 디자인 스케치
미국내에서 얀의 명성이 자자해지자 고국 독일에서도 얀을 찾고 있었다.
•소니 센터, 베를린, 독일, 2000
sony center
design study on sony center
sony center
hi-tech postmodern.
• leatop tower, 광저우, 중국, 2012
leatop tower
back to basics?
• hegau tower, singen, 독일, 2008
hegau tower
다시 처음 시작했던 하이테크 모더니즘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 back to modernism?
• highlight towers, munich, germany, 2004
highlight towers
젊어서 대학시절을 보낸 뮨헨으로 금의귀향했다. 다시 처음 시작한 모더니즘으로 돌아오나요?
back to modernism?
• veer towers, paradise, nevada, 2010
veer towers
라스베가스의 사탑? oops. leaning towers?
now going back to where he started, modernism?
이제 80이 다 됐다. 미국내에서의 활동이 미미하지만 그래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유럽과 중국에서 활발하다. 현란한 포모 스타일은 많이 사라졌다.
1980년대 미시안건축에서 떠나 소위 포스트모던에 휩쓸린다. 동부의 포모 건축가에 못지않게 엄청 잘나가는 미드웨스트의 하이테크 포모건축가였다. 다 사라지고 없어졌다. 이제 어디로 가나요? ciao.
ywpark061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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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wikipedia
archdaily
dezeen
britannica
flickr
gettyimages
architectmagazine.com
chicagotrib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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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talk has been produced and written by Young Woo Park, aia, ncarb. The most of writing has been based on the reference materials above, u.n.o. Please email to the writer above (ywpark5293@gmail.com) in case of having questions or disagreements.
*Copy rights reminder: Th is talk can not be used or reproduced in other publications on-line or off-line, entirely or partially, without a written consent of the writer.
*Photo Credits: Photos and images are also from the reference materials above, u.n.o. Please email to the writer in case of having questions or disagreements.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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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노이주센터 state of illinois center, chicago, 1985 오늘은 미국 일리노이의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출처 - 헬무트 얀 helmut jahn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6. 태국 수완나품 공항
수완나품 국제공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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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나품 국제공항의 터미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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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 ||||||
UTC+07:00 | ||||||
24시간 | ||||||
태국 공항 공사 (AOT) | ||||||
방콕 | ||||||
태국 사뭇쁘라깐 주 방플리 군 | ||||||
2 m / 5 ft | ||||||
북위 13° 40′ 51″ 동경 100° 40′ 50″ | ||||||
공식 웹사이트 | ||||||
01R/19L | 4,000 | 60 | YES | 아스팔트 | ||
01L/19R | 3,750 | 60 | YES | 아스팔트 | ||
3rd Runway (Planning) | 3,700 | YES | 아스팔트 | |||
63,378,923명 4.1% | ||||||
51,506,932명 4.0% | ||||||
11,871,991명 4.7% | ||||||
1,494,599t 3.8% |
수완나품 공항(태국어: ท่าอากาศยานสุวรรณภูมิ, 영어: Suvarnabhumi Airport, IATA: BKK, ICAO: VTBS)은 태국 사뭇쁘라깐 주 방플리 군에 위치한 국제 공항이다. 돈므앙 국제공항을 대체하여 새롭게 개항한 방콕의 신 국제공항이다. 여러 차례 개항이 연기된 후 2006년 9월 15일 일부 개항을 거쳐 9월 28일 완전 개항하였다. 타이 항공의 허브 공항이며 방콕에서 동쪽에 있다. 수완나품은 태국어로 황금 들녘이란 뜻이다.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민간 항공의 발전을 통하여, 방콕은 지리적으로 다른 동남 아시아 각국에 노선 연장이 쉽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대규모 내전 등이 없었다. 또한 공항이 싱가포르나 홍콩과 대등하여 동남 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서 발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존 군용 비행장이었던 돈므앙 국제공항이 비좁게 되었기 때문에 신공항의 건설 계획이 입안되었다.
1973년 타놈 정권 하에 용지 매수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그 해에 발생한 10월 14일 정변에 의하여 타놈 수상이 사임하면서 계획은 무효화되었다. 그 후 몇 차례나 이 프로젝트가 제안되고 사라졌지만, 1996년에 다시 부상하여 방콕 신공항 주식회사가 설립되고 계획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1997년 아시아 통화 위기로 인하여 또 다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 후 건설 비용으로 인해 다소 어려움을 겪었지만, 공항 회사 설립으로부터 6년 후인 2003년에야 간신히 건설이 개시되었다.
당초 2005년 9월에 개항 예정이었지만, 공항의 계획 변경과 시스템 체크 등으로 인하여 공사 기간이 늘어났다. 2006년 7월 29일에 국내 항공사에 의한 항공기를 이용한 시운전이 실시되었다. 9월 15일부터 일부의 항공사가 취항하였다. 9월 19일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예정대로 9월 28일 오전 3시, 수완나품 국제공항이 정규 개항하였다. 그러나 태국의 반정부 시위로 인하여 2008년에 반정부 시위대가 돈므앙 국제공항과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1] 이때 발이 묶여 있었던 태국 관광객은 태국 공군의 허가를 받아 태국 공군 비행장이나 파타야까지 가서 임시 항공편으로 귀국하기도 하였으며, 반정부 사태로 태국의 주 수입원 중 하나인 관광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역사
토지 매입, 조기 건설
새 공항의 필요성은 1973년에 방콕에서 동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8천 에이커의 땅을 매입하면서 인정되었다. 코브라 스웜프(Cobra Swamp)로 알려진 이 부지는 물이 빠졌고 "금속의 진"이라는 뜻의 수완나품(Suvarnabhumi수바르나부미)이라고 명명되었다. 1973년 10월 14일 학생 주도의 시위가 타놈 끼띠카쫀 총리의 군사정권을 전복시키고 이 사업은 보류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96년 신방콕 국제공항(NBIA)이 탄생했다. 특히 1997년의 아시아 금융 위기로 인해, 정치와 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탁신 친나왓 정부에 의해 6년 후인 2002년 1월에야 건설이 시작되었다.
조기 건설, 공항 테스트 및 공식 개장
공항은 2005년 말에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일련의 예산 초과, 건설 결함, 부패 의혹 등이 이 사업을 괴롭혔다.
공항이 오래된 묘지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더욱 지연되었다. 미신적인 건설 노동자들은 그곳에서 유령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2005년 9월 23일 태국 공항 공사는 99명의 승려들이 정령을 달래기 위해 구호를 외치는 의식을 개최했다.
공항의 완전한 시험은 2006년 7월 3일과 29일에 실시되었다. 타이항공, 녹에어, 타이 에어 아시아, 방콕 항공, PB에어, 원투고 항공 등 6개 항공사가 국내선 20편의 기지로 공항을 이용했다. 첫 번째 국제 시험 비행은 2006년 9월 4일에 실시되었다. 두 대의 타이항공 항공기인 보잉 747-400과 에어버스 A300-600은 9시 19분에 동시로 싱가포르와 홍콩으로 출발했다. 15시 50분에 같은 항공기가 되돌아와 활주로 19L와 19R에서 동시 착륙을 했다. 이러한 시험 비행은 공항이 교통을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6년 9월 15일, 젯스타 아시아 항공이 싱가포르에서 방콕으로 가는 3편의 항공편을 운항하면서 공항은 제한된 일일 운항을 시작했다. 방콕 항공은 9월 21일 공항으로 이동했다. 에어아시아와 타이 에어아시아는 9월 25일에 이어 9월 26일에 수완나품 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이전 시험뿐만 아니라 이 초기 단계 동안 공항은 임시 IATA 코드 NBK를 사용했다.
수완나품 국제공항은 돈므앙 국제공항에서 모든 항공편을 인수하여 2006년 9월 28일 03시에 공식 개항하였다. 처음 도착한 비행기는 03시 05분에 뭄바이발 루프트한자 화물기 LH8442편이었다. 첫 상업 도착은 3시 30분 일본항공이었다. 첫 번째 승객의 도착은 키예프발 에어로스비트 항공 VV171편이었고, 첫 화물 출발은 5시에 리야드행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SV984편이었다. 에어로스비트도 5:30경에 첫 번째 승객 출발(VV172에서 키예프까지)을 했다.
초기 난관
공항 운영 첫 며칠 동안 어려움이 보고되었다. 첫날만 해도 짐 취급이 부진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에로스빗의 첫 번째 승객 도착은 짐이 나오기 시작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고, 어떤 항공편들은 4시간이 지나도 짐이 나오지 않았다. 항공편 지연(타이항공 측은 이날 19편 중 17편이 지연됐다고 주장했고, 탑승 수속 시스템에도 고장이 있었다.) 후속 문제로는 화물 컴퓨터 시스템의 고장, 잘못된 정보를 표시하는 출발 기판이 있어 승객들을 혼란스럽게 했다.(특히 돈므앙 국제공항과 달리 "최종 통화"가 발행되지 않았다.)
개통한 지 몇 달이 지나도 정체, 건설 품질, 간판, 시설 제공, 토사 침하 등의 문제가 계속되어 돈므앙 국제공항을 재개하여 수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전문가 의견은 수완나품 국제공항의 문제의 정도와 그 근본원인에 따라 크게 달랐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공항의 피해가 미미하다고 말했다. 당시 수상이었던 수라윳 쭐라논은 2007년 2월 12일 국내선을 위해 자발적인 방법으로 돈므앙 국제공항을 재개했으며, 처음에는 71개의 주간 항공편이 다시 출발했으나 국제선은 운행하지 않았다.
특징
수완나품 국제공항 배치도수완나품 국제공항의 주요 터미널 지붕은 구조 요소와 베이들이 아래 중앙 홀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캔틸레버 형태의 물결 모양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 전체적인 설계원리는 건설이 시작되기 전에 물을 빼내야 했던 현장의 이전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메인 단자의 캐노피를 지지하는 8개의 복합 2,710톤 트러스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에 작용하는 벤딩 모멘트의 도표로서, 가장 깊이는 중간 스팬과 지지대 위에 있다.
헬무트 얀의 비전의 결과는 성능 재료가 전체 구성과 사용에서 기존의 역할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구조다. 이는 상당한 에너지 수명 주기 비용 절감으로 편안한 일광 사용을 극대화한다. 설치된 냉각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에 비해 최대 50%까지 감소하였다. 내부와 외부 기후를 중재하기 위해 세 층의 반투명 막이 개발되어 소음과 온도 전달을 다루면서도 건물 내부로 자연적인 일광 흐름을 허용하였다.
공항 순위
이 공항은 2019년 세계 100대 공항 중 46위에 올랐다. 2019년 다른 아세안 공항으로는 싱가포르 창이 공항, 1 공항,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54; 자카르타, 40; 하노이, 86 수완나품 공항이 선정되었다. 2018년 태국개발연구원(TDRI)에 따르면 지난 6년간 공항 순위는 개선되지 않았다. 고객 불만 사항으로는 긴 출입국 대기 시간, 환승 주간 객실 문제, 의자와 전화 충전소 부족, 영어 사용 직원 부족, 정보 표시 불량 등이 있다.
출처 - 위키백과
7. 방콕 공항 설계 세계적 건축가 헬무트 얀, 자전거 사고로 타계
독일계 미국 건축가 헬무트 얀 © AFP=뉴스1 |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계 미국 건축가 헬무트 얀이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차에 치어 81세로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얀은 철판과 유리를 이용한 모던한 설계로 유명한데 태국 방콕의 스완나품 국제공항 등이 그의 작품이다.
경찰에 따르면 얀은 지난 8일 오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서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캠튼힐의 한 교차로에서 멈춤 표지를 보지 못해 차량 두 대에 연달아 치었다. 두 차량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던 상태였다. 얀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운전자 중 한 명은 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태국 수완나품 국제공항 © AFP=뉴스1 |
얀은 1965년 독일 뮌헨공대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시카고 일리노이공대(IIT)에서 공부했다. 그는 시카고에 세워진 톰슨센터와 오헤어 국제공항의 유나이티드항공 터미널 등의 건축물로 1970년대와 80년대에 이름을 날렸다. 나중에는 시카고뿐 아니라 워싱턴DC의 미 연방수사국(FBI) 본부 건물 설계에도 관여했고, 독일 뮌헨 공항센터와 베를린의 소니센터를 짓기도 했다.
로리 라이트풋 시카고 시장은 트위터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얀은 가장 창의적인 시카고 건축가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이 도시에 끼친 영향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건축가 헬무트 얀이 설계에 참여한 미국연방수사국(FBI)본부 건물 © AFP=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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