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가 윌리엄 모리스
모리스(1834~1896)는 영국 에식스 주의 월덤스토우에서 태어난 영국 출신 라파엘전파의 화가이자 공예가, 건축가, 시인, 정치가, 사회운동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였던 생활미술 디자인의 창시자이다.
그는 증권 중계업의 재력가 아버지 덕분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목회자가 되기 위해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엑세터 칼리지 교육에 실망으로 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고딕건축물에 감동을 받고 프랑스로 여행을 하며 고대 건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건축공부를 하던 중 만난 친구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를 만나 화가이면서 건축공부를 병행 했다고 한다. 그는 19세기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디자인의 품질저하와 질 나쁜 제품들을 배척 또는 개혁하여 고딕의 미를 찬양하는 중세의 원시적인 수공예로 되돌아가자는 예술공예운동으로 이상사회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민중을 위한 예술은 특정된 부유층을 위한 예술로 전략 했다. 모리스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누구나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을 원했다.
2.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 (미술공예운동)
위키백과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은 영국의 시인, 사상가, 디자이너인 윌리엄 모리스(1834년 - 1896년)가 주도한 디자인 운동이다. 미술공예운동 또는 예술 수공예 운동이라고도 한다. 1880년대부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 산업혁명의 결과로 대량생산에 따른 값은 싸지만 품질이 조악한 상품이 대거 유통되기 시작되었다. 모리스는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며 중세의 수작업으로 돌아가 생활과 예술을 통일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해 모리스 상회를 설립하여 장식을 한 서적(켈름스코트 프레스)이나 인테리어 제품(벽지나 가구,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제작했다.
모리스 상회의 제품은 그러나 값이 비쌌던지라 결국 유복한 계층밖에는 이용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럼에도 생활과 예술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모리스의 사상은 각국에 큰 자극을 주어 아르 누보, 빈 분리파, 유겐트슈틸 등 각국 미술운동에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불리는, 모리스의 붉은 벽돌집 (레드 하우스)
모리스를 위해 지은 필립 웨브의 레드하우스Ⅰ위키미디어커먼스.
“진짜 예술을 알아볼 줄 모르더라도,
최소한 졸작을 알아보는 안목은 키워야 한다.”
- 윌리엄 모리스
그야말로 르네상스인이었다. 박학다식한 교양인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윌리엄 모리스(1834~1896 William Morris)로부터 모든 근대 건축과 근대 디자인이 태동했으며 최초로 ‘장식예술’에 대한 강연을 했다. 생전에는 시인으로도 유명했던 모리스는 화가이자 공예가, 건축가였으며 정치가, 사회변혁가로서도 한몫을 했다.
1834년, 모리스는 영국 월덤스토우의 숲속에 자리한 대저택에서 태어났으며 매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모리스는 고딕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빠져 건축가가 되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대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건축 공부를 했다. 화가의 길을 걷던 친구 에드워드 번존스와 함께 라파엘전파였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를 만나 그림 공부에 힘을 쏟았다.
로세티의 조언으로 건축을 포기하고 회화를 시작했지만, 중세 건축물을 보호하고 형식적 복구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 고대건축보존협회를 설립하는 등 건축사에 큰 영향을 남겼다. 화가의 길을 걸으며 1850년대 말에는 생활미술로 관심을 확대,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그가 디자인한 가구 역시 그가 중세 건축을 사랑했듯, 중세적인 간결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54세의 모리스와 모리스가 그린 제인 버든Ⅰ위키피디아.
1859년 스물다섯의 모리스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모델이었던 제인 버든과 결혼한다. 그리고 런던 교외 벡슬리히스에 자신의 건축적인 이상을 담은 레드하우스(Red House)를 짓는다. 절친이었던 건축가 필립 웨브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번존스와 로세티는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 가구를 맡았으며 자신은 벽지를 제작했다. 주위의 경치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이듬해 완성된 집은 중세적인 분위기로 가득했다. 붉은 벽돌 외관에 간결한 구조를 지닌 레드하우스는 당시 파격적인 건물이었으나 현대 건축디자인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로세티와 제인 버든을 모델로한 그의 작품들. (왼쪽) <푸른색 실크 드레스의 제인 모리스> 1868Ⅰ런던 골동품학회소장 (오른쪽) 1868?1880Ⅰ스펜스미술관 소장Ⅰ위키피디아.
모리스와 제인 그리고 로세티. (왼쪽) 모리스의 자화상Ⅰ1856Ⅰ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소장 (가운데) 제인 모리스.Ⅰ1865 (오른쪽) 로세티 자화상Ⅰ1847Ⅰ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Ⅰ위키피디아.
“가장 고상한 작품으로 ··· 집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시다. ··· 그렇지만 주거공간으로도 훌륭하다.”라고 하며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레드하우스를 극찬했다.
레드하우스 입구와 레드하우스Ⅰ위키미디어커먼스.
(왼쪽) 레드 하우스의 복도와 네오 고딕 양식의 계단 Ⅰ위키피디아. (가운데와 오른쪽) 현관홀에 있는 수납장 문에는 ‘니벨룽겐의 노래’를 주제로 한 미완성 작품이 남아 있다. Ⅰ사진제공 페이퍼스토리.
레드하우스는 계단, 창틀에서 벽지에 이르기까지 섬세하면서 아름다운 집이었지만 모리스는 사랑하는 아내와 그 집에서 행복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아내는 모리스와 결혼 후 로세티의 많은 작품에 모델로 등장하며 둘은 밀회를 즐겼다. 하지만 이들의 공공연한 불륜에도 모리스는 모른 체하며 평생을 제인과 함께 했다.
(왼쪽) 아름다운 건물이나 실내 장식, 가구 하나하나가 미술 공예 운동의 상징적 존재. (가운데) 설계자 필립웨브와 모리스가 디자인한 벤치. 사다리를 올라가면 갤러리(아래층에서 천정까지 막힘없이 뚫린 구조)가 있다. (오른쪽) 오래된 나무계단과 아름다운 수공예 램프 등, 섬세한 취향이 눈길을 끈다.Ⅰ사진제공 페이퍼스토리.
(왼쪽)“사랑”을 주제로 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과 레드하우스의 아름다운 유리창 디테일 Ⅰ위키피디아 (오른쪽) 레드하우스에서도 특징적인 원형 창. 라파엘전파로 친한 친구였던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에 의해 그림이 그려진 창도 있다 . 번존스는 창뿐 아니라 이 집의 가구에도 많은 그림을 남겼다.Ⅰ사진제공 페이퍼스토리
레드하우스의 이층복도와 번존스의 벽화가 있는 거실Ⅰ위키피디아.
스물일곱(1861), 모리스는 포크너와 피터 폴 마셜과 함께 실내 장식품 회사를 설립, ‘미술 공예 운 동’ 을 주도하였다. 이 운동은 근대 디자인 운동의 발단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벽지, 창틀, 벽면 장식은 물론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모든 실내장식을 다루었던 이 회사는 현대 디자인 회사의 효시가 되었다. 모리스는 회사가 번성하자 런던 시내로 회사를 옮기고 회사 위층으로 이사를 했다. 이로써 모리스는 디자이너로써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며 5년간을 살았던 레드하우스를 떠난다.
현재 레드하우스는 영국 내셔널트러스트(국민신탁)가 윌리엄 모리스의 업적과 집의 디자인적, 사회적 가치를 보전하고자 2003년에 매입,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영국의 위대한 건축물들을 보호하자’는 윌리엄 모리스의 캠페인은 1895년 영국 내셔널트러스트가 탄생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고, 지금까지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모리스는 내셔널트러스트 설립자 중 한 명인 옥타비아 힐의 친구이자 서포터였으며, 1877년 고대 건축물 보호 단체 설립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러번 집주인이 바뀌면서 실내 인테리어가 바뀌었고 내셔널트러스트 매입 직전엔 집 주인이 벽면을 흰색으로 칠해 놓았지만 그 아래에 꽃무늬 복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 실내 디자인들도 초기 모리스가 살던 때로 복원되고 있다. 2013년엔 복원 중 숨겨져 있던 라파엘전파의 벽화와 잘 알려지지 않은 모리스의 초기 디자인인 꽃 패턴 무늬를 찾아내기도 했다. 중세 건축을 사랑한 예술가가 고딕 양식의 절정인 뾰족지붕으로 만들어낸 신혼집은 창문 모양, 스테인드글라스, 아치형 출입문, 벽화, 수제 가구 등 실내 뿐 아니라 멋스러운 정원 그리고 우물까지 현대 실내장식 및 정원 디자인의 보고로 남아 있다.
집 곳곳에 모리스와 동료들의 텍스타일 공예작품이 남아 있다. 특히 창문이나 스테인드글라스 등 번존스의 작품이 많다.Ⅰ사진제공 페이퍼스토리
모던디자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와 그 동료들이 건축 설계한 붉은 벽돌의 ‘레드 하우스’. 미술 공예 운동의 기수였던 모리스가 가장 정열적으로 활동하던 5년을 이 집에서 보냈다. 외관은 언뜻 보면 보통 주택 같지만 내부는 예술과 삶을 하나로 합친 것 같은 내부 장식과 가구가 있는, 보석상자와도 같은 취향으로 넘쳐난다.Ⅰ사진제공 페이퍼스토리.
…건축가 필립 웨브는 모리스와 수학자 찰스 포크너와 함께 1858년 선박 여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떠올렸던 아이디어를 지도 뒤에 스케치한다. 이것이 훗날 ‘레드 하우스’의 기본 디자인이 되었다. 이곳은 많은 예술가들의 사교장이었다. 그중에는 로세티나 번존스와 같은 라파엘전파 화가들도 있었다. 모리스는 미술 공예 운동의 기수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5년을 이 집에서 보냈다. 외관은 언뜻 보면 보통 주택 같지만 내부는 예술적인 실내장식과 가구가 놓여 있는 거대한 보석상자 같다.
아담한 정원에는 모리스의 디자인 도안이 된 울타리 등 디자인에 영감을 준 많은 모티프가 숨어 있다. 모리스가 매각한 레드 하우스는 개인소유가 되었지만 2003년에 내셔널트러스트가 관할하게 된다. 그 후 침실 옷장 뒤 벽면에서 <원죄 아담과 이브> 등과 같은 벽화가 발견되었다. 양식으로 미루어 이곳에 모였던 라파엘전파 화가들과 모리스가 함께 그린 작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 <예술가가 사랑한 집>中에서.
Red House
개관시간 2 / 29~11 / 4 11 : 00~17 : 00(수~일요일) 11 / 9~12 / 23 11 : 00~16 : 30(금~일요일) 휴관 월·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입장료 어른 : 7.2유로 / 어린이 : 3.6유로 가족 : 18유로 (내셔널트러스트회원은 무료)
홈페이지 http://www.nationaltrust.org.uk / redhouse
주소 Red House Lane, Bexleyheath, London DA6 8JF, UK
문의 +44 20 8304 9878
<출처 - 올댓아트 김영남 allthat_art@naver.com>
4.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 윌리엄 모리스
윌리엄 모리스가 활동하던 당시 그와 그의 친구들은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라 불리는 양식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모임의 이름이기도 한 라파엘 전파에는 가브리엘 단테 로세티, 에드워드 번-존스, 윌리엄 헌트 등이 포함돼 있었으며 당시의 화가, 비평가, 시인 등이 주축을 이루었다. 라파엘 전파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인 라파엘로 이전 양식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복고주의와 과학적 눈으로 현실을 재현하려는 사실주의를 동시에 지향한 그룹이자 사조이다. 이들 대부분은 그림 위주의 활동을 하며 당시에 유행했던 학구적인 예술에 반해 일어난 예술 운동에 매료된 작가들이었다. 하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보다 실용적인 예술로서의 디자인 분야에 더욱 골몰하게 된다. 그가 주도한 미술공예운동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대량생산됨에 따라 생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문제 제기를 통해 과거의 장인정신을 부활시켜 가구, 벽지, 커튼 등 생활 속의 공예품을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 움직임을 일컫는다. 그의 이러한 운동은 훗날 독일로 건너가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벽지들
Acanthus wallpaper(1875)
Golden Lily in wallpaper pattern book © William Morris Gallery
Hyacinth, pattern #480(1917)
Strawberry Thief
정의할 수 없는 사람
시와 문학작품도 썼던 모리스의 판타지 장편소설 <세상 끝에 있는 우물>(1896) 등이 <반지의 제왕> 작가인 J. R. R.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 작가인 C. S. 루이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1998)에서 박홍규 교수가 거명한 그의 직함은 양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란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번역가, 건축사상가, 공예가, 디자이너, 정치가, 사회주의자, 사회개혁가, 낭만주의자, 생태주의자, 환경보호운동가, 문화유산 보존운동가, 아나키스트, 유토피아주의자, 정치평론가, 교육사상가 등.”
그는 노동자의 삶에 깊은 관심과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그들이 노동과 예술을 삶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서 보다 행복한 유토피아적 삶을 살길 바랐던 사회주의자였다.
친구 가브리엘 단테 로세티의 그림모델이기도 한 아름다운 여인 제인 버든과 결혼한 모리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 줄 신혼집을 친구들의 도움으로 완성하게 된다. 이는 나중에 ‘레드 하우스’라고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를 대표하는 집이 된다. 건물은 친구였던 건축가 필립 웹이 지었고 모리스와 예술가 친구들이 협력하여 집 내부와 외부를 장식하였다. 그는 레드 하우스에서 예술 작품을 만들고 그의 사상과 예술 행위를 영위하는 터전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아내 제인 모리스와 행복한 시간을 꿈꾸었다. 그러나 모리스를 신분 상승의 발판으로 삼았다고 전해지는 제인은 비천한 집 출신이지만 영민하여 곧 상류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모든 자질을 열심히 갖추어 나간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도 할 줄 알게 되고 피아노도 연주하며 그 어떤 귀족 부인 못지않은 우아함을 지니게 된다. 그러한 그녀의 우아함에 반한 버넌 리(Vernon Lee, 1856-1935)가 <미스 브라운>이라는 소설을 썼고 <미스 브라운>에 나온 캐릭터에 영감을 받아 버나드 쇼(Bernard Shaw, 1856-1950)가 <피그말리온>을 썼으며 이에 기초해 뮤지컬과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나왔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는 한 시대의 아이콘 같은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인 모리스를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친구이자 모리스 마셜 포크너(Morris Marshall Faulkner & Co)라는 디자인 회사를 같이 창립한 가브리엘 로세티가 아내 제인을 사랑하게 된다. 라파엘 전파의 대표적 인물인 가브리엘 로세티는 윌리엄 모리스의 물심양면 도움 덕분에 라파엘 전파 2기 활동도 할 수 있었던 친구이다. 둘의 사랑은 곧 그 시대 최고의 스캔들이 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세 사람을 다 괴롭혔다. 그러나 아내를 몹시 사랑했던 모리스는 모든 불명예와 야유를 뒤집어쓰면서도 아내를 지키려 애썼다. 그가 로세티에게 어떠한 비난도 퍼부었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면 아내와 친구의 명예 모두 지켜주려 했던 보기 드문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리스는 딸 둘을 낳고 5년간 살았던 레드 하우스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모리스는 죽을 때까지 제인과 이혼하지 않았다.
레드 하우스
아내 제인을 모델로 그렸다
윌리엄 모리스는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사상과 실천은 근대 디자인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던 그가 말년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책이었노라고 고백하고 나이 56세에 켐스콧공방(Kelmscott Press)를 연다. 이 시절 모리스는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활자체라 생각하고 중세의 글꼴을 모범으로 하는 새로운 글꼴을 만들어 책 자체가 예술작품이 되는 책 만들기에 몰입하였다. 이 예술 책들 중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작품집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하고 출판한 제프리 초서의 책(1896)
남편 사후 제인은 윌리엄 모리스 기념관을 짓고 딸 메이가 편집한 윌리엄 모리스 작품집에 많은 도움을 주는 등 남편을 기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헌신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사후에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1996년에는 전 세계 각국에서 모리스 타계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치르기도 하였다.
윌리엄 모리스가 필립 웹의 가구로 장식한 19세기 영국 방의 풍경
켐스콧공방 근처 윌리엄 모리스 자택 내 침실
윌리엄 모리스 회사에서 만든 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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