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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2022 - 매화향기, 이태원의 구천으로 스미기를......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김의곤 시인​

 

 

이태원 173- 7

그 좁은 골목길에

꽃조차도 놓지 마라

꽃들 포개지도 마라

 

겹겹이 눌러오는 공포 속에서

뒤로... 뒤로... 뒤로...

꺼져가는 의식으로 붙들고 있었을

너의 마지막 절규에

꽃잎 한 장도 무거울 것 같아

차마 꽃조차도 미안하구나​​

 

​그 골목에 아무것도 놓지 마라

허울 좋은 애도의 꽃도 놓지 마라!

 

​안전도 생명도 탐욕이 덮어버린 이 나라에

반성 없는 어른들 끝없이 원망케하라!​

 

그리하여 아이들아 용서하지 마라!

참담한 부끄러움에 울고 있는 우리를...

 

얼마나 무서웠겠니 그 밤,

얼마나 원통했겠니 그 순간,​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을 두고

마지막까지 안간힘으로 버티며

살갗을 파고들었을 때 네 손톱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구나​​

 

​304명 생때같은 아이들

하늘의 별로 떠나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너희들을 허망한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의 안일함과 무책임이 부끄러워

이젠 슬픔조차도 변명마저도 차마

드러내 보일 수가 없구나

 

 

 

 

 

 

2022년 가을,

서울의 한복판에서 158명의 목숨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한 달이 흘렀다.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조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 관련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압수 수색과

사건 관련자 소환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인정하고 진솔하게 사과하는

정부의 고위 공직자는 없다.

 

그나마 여야가 며칠 전에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무책임하고 한심한 소식들만 들려온다

그동안 오로지 당리당략에만 이전투구하던 구태 정치인들의 작태를 익히 봐 왔기에,

저들에게 기대를 가지는 국민들은 드물겠지만

이번 한 번이라도 사랑과 양심에 따라 유족과 국민을 위한

성실한 조사와 합의를 해 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지난 10월 하순에 ‘2022 임인년 매화기행’을 정리하는 도중에

‘이태원 참사’의 비보를 접하고 펜을 놓고 말았다

‘K-문화’로 세계를 리드하던 대한민국의 중심, 수도에서

너무나도 황망한 참사가 일어났다

졸지에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그 슬픔과 아픔은 우리가 헤아릴 수조차도 없을 것이다

 

온 국민과 함께 그날의 참사를 애도하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2022년의 매화기행문을 한 달만에 정리한다

아울러, 고아하고 순결한 매화향이 이태원의 구천에 스며서

외로운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항상 지켜줄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이제 겨울은 바로 문밖까지 와 있다.

어둡고 긴 시련의 겨울은

매화뿐만 아니라 슬픔에 싸인 우리에게도 닥치겠지만

엄동설한의 인고의 시간 속에서도 희망과 새싹을 키워서

누구보다도 먼저 꽃을 피워서 새봄을 여는 매화의 숙명처럼

우리 한반도에 새봄은 기필코 올 것이고,

그 고난의 시간이 어둡고 길수록

그 봄은 더 찬란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2. 11. 29.

 

 

 

 

 

 

 


 

 

 

 

 

 

 

 

 

 

 

001. 양산 통도사 홍매화 <자장매> (2022.02.06.)

 

 

임인년 통도사 <자장매>의 첫 개화소식은

1월 27일쯤에 있었다

설날 연휴였던 2월 1일에는

연분홍의 꽃망울 4송이가 드디어 꽃잎을 펼치기 시작했다는

고대하던 소식도 들렸다

 

일반적으로 통도사 <자장매>의 개화시기는

소한, 대한을 거친 뒤에, 입춘을 전후하여

그 해의 날씨와 기온에 따라서 2~3주 내외의 시간 차이를 보이면서

꽃이 터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런데 올겨울은 임인년 연초에

40년만의 강추위가 한반도를 강타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습 한파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현재, <자장매>의 개화시기가

지난해보다 약 보름정도 늦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2월 첫째 주 일요일(2월 6일)에는

제대로 된 개화를 도무지 기대하기가 힘들었었지만

오로지 그리움 하나로 무작정 통도사로 달려갔다

 

 

아직 너무 이르다는

주위의 우려와 만류를 무시하고

기다림에 지쳐서(?) 새벽부터 찾아갔지만

<자장매>의 개화는 1월말에 첫 꽃망울을 터뜨린 이후로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꽃망울은 달았지만

꽁꽁 언 통도천 계곡의 시리고 매서운 칼바람이

결코 호락호락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2022년 <자장매>의 개화는

2월 둘째 주 주말 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기존 세계를 부숴야 하는 용기뿐만아니라 

역경을 헤쳐나가는 인고의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다

세상만물이 얼어붙은 어둡고 긴 겨울의 터널 속에서도

소중히 키워 낸 불씨와 온기로 이 겨울을 녹여내고 

 온누리에 꽃불을 지피기 시작하는 '한반도  전도사'로서의 역할은

<자장매>의 타고난 운명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고비과 시련을 감내하고

반드시 찬란한 새봄을 열어야 하는 <자장매>의 용기와 희생 또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통도사 <자장매>는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대표적인 매화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UN기념공원의 홍매화가 피고나면

1~2주 후에는 <자장매>도 뒤따라 피어서

'한반도의 공식적인 봄'을 알린다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의 개화는

절기상 '대한' 이틀 전인, 1월 18일쯤부터 불붙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이미 만개한 상태이다

매화는 다른 꽃나무에 비해 개화시기가 상당히 빠르다

그래서 매화를 ‘꽃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화괴花魁’라고도 부르고

엄동설한 속의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동매冬梅 · 설중매雪中梅 · 납월매臘月梅 등으로도 불린다

 

매화가 북풍의 칼바람 속에서도

고드름처럼 얼어붙은 가지목을 지키며

불빛 하나 없는 눈 덮인 산과 들에서 온기 없는 별빛을 받으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은

꽁꽁 언 대지를 녹이고 혹독한 추위를 걷어내고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세상을 열어야 하는 '선구자적 역할' 때문이다

그런 뒤에 초연히 시든 꽃잎을 떨구어야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그 옛날 선비들이

매화를 존중하고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매화의 여러 덕목 중에서도 이 ‘선구자적 역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선구자적 역할’의 대표적인 매화로는

순천 금둔사의 <납월매>, 거제 구조라의 <춘당매>,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 등이 있다

 

‘통도사의 <자장매>가 꽃을 피워야

한반도에 봄이 온 것을 공식적으로 인증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반도의 봄 전령사'로서의 <자장매>의 개화는 의미가 특별하고

그 역할을 가리켜서 어느 시인은

‘대자연이 쓰는 시詩의 첫 문장’이라고 노래했다

온갖 역경과 시련을 감내하고 이겨내어

한반도에 새 희망을 전달하는 <자장매>의 그 선구자적 역할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고 할 것이다

 

 

 

 

 

 

 

 

 

 

 

 

 

 

 

 

002. 양산 통도사 <자장매> - 2 (2022.02.12.)

 

 

2022년 임인년의

통도사 <자장매>의 개화진행 속도가 

예상보다 많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2월 05일)에 통도사를 방문하였을 때의 판단으로는

<자장매>가 2월 둘째 주말쯤에는

어느 정도 꽃불이 붙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했었었는데

그 사이에 별로 진척이 없었다

올해는 <자장매>가 처음 개화를 시작한 후로

입춘(2월 04일)을 전후하여 이렇다 할 큰 추위가 없었는데도

개화는 더디기만해서 탐매객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새벽부터 <자장매>를 렌즈에 담기 위해서

먼 길을 달려 온 진사님들이 안타까운 한숨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스님이 한말씀 하신다

"지난 주말에는 꽃잎이 4장 밖에 안 피었었는데

이번 주말에는 23장이나 피었으니

그래도 일주일 사이에 많이 피었구먼......"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자연의 섭리는 너무 오묘하고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

아쉽지만, 또 다시 다음 주말을 기대해 보며

축서암으로 발길을 옮긴다

 

 

 

 

 

 

 

 

 

 

 

영남알프스의 한 축인

영축산 아래에 자리 잡은 불보사찰 통도사에

수령 370년이 넘는 홍매화가 1그루 있다.

스님들의 영정을 보관하는 영각 앞에 자리 잡은 이 홍매화는

우리나라 홍매의 표준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고운 색과 자태가 빼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매화 중의 하나이다

 

아이돌급의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 홍매화는

신라시대 때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이름을 따

<자장매慈臧梅>라고 불리는데

매화나무 아래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다

 

임진왜란 후 통도사 중창을 발원한 우운대사는

먼저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축조하고 인조23(1643) 이후

참회하는 마음으로 역대 조사의 진영을 모실 영각(影閣)을 건립했다.

상량보를 올리고 낙성을 마치니 홀연히 매화 싹이 자라나서

해마다 섣달 납월에 연분홍 꽃이 피어 사람들은 이를

자장스님의 이심전심이라 믿었다.

 

매화는 매서운 추위가

뼛속까지 사무칠 때 향이 더욱 짙어진다.

그 특성이 수행자의 구도행과 닮았고

자장스님의 지계 정신을 표현한다 해서

이를 자장매화(慈藏梅花)라 하였다.”

 

 

 

 

 

 

 

 

 

 

 

 

 

 

 

 

 

003. 통도사 축서암 매화들 (2022.02.12.)

 

 

통도사에 <자장매>를 보러 갔다가

아직 꽃이 덜 피어서 실망을 하고 통도사 부속암자인 축서암을 찾았는데

뜻밖에도 그기서 매화를 발견했다

 

본당 뒷쪽 석축 앞에 붉은빛이 현란한 홍매가 1그루 있고

암자 입구 주차장 앞, 소나무숲에서도 청매, 백매, 홍매 대여섯 그루를 발견했다

본당 뒷쪽의 홍매 1그루는 벌써 개화가 상당히 진행되었고

암자 밖, 소나무숲의 청매와 백매는 지금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모두 다 10년 안쪽의 어린 나무들이라

매화나무의 매력과 기품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어느 곳보다도 일찍 꽃을 피워냈으니 대견스럽고 이쁘기만 하다

오늘 우연히 축서암에 들렀다가

비록 어리지만, <자장매>와 비슷한 시기에 빨리 개화를 하는 

축서암 매화들을 새로 발견한 것은 뜻밖의 행운이 아닐 수 없고

오늘처럼 새로운 매화의 발견은

탐매의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내려오는 길에 통도사 입구, 성보박물관에도 들러서 

김양수 개인전 아 매화불(梅花佛이다

매화 그림전시회도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김양수 개인전 아 매화불(梅花佛이다

통도사성보박물관 2 1~24

 

 

봄이 저만큼 찬찬히 오겠다

영축산 품 안 봄기운 곧 닿겠다

통도사 뜨락엔 홍매화 피겠다

일휴의 매화도 덩달아 피겠다

인연 있는 이들은 부처를 보겠다

 

 

한국화가 일휴 김양수가 2 1일부터 24일까지

통도사성보박물관 2층 기획실에서 개인전 아 매화불(梅花佛)이다를 개최한다.

자연의 풍경들을 선적인 화폭으로 옮겨온 김 화백이

이번에는 통도사 홍매화를 화폭에 옮겨 통도사에서 전시를 연다.

늘 한 발 앞서 봄소식을 전하는 통도사 홍매화를

올해는 더 빨리 만난다.

 

김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통도사 홍매화를 비롯해

고향 진도에 귀향하여 그린 400호 대작부터 10호 소품에 이르는 매화 그림

30여 점을 함께 선보인다.

 

김 화백의 이번 작품들은

매화의 상징적인 감성이나 형태의 심미를 초월해

깊은 울림을 추구한 그림으로,

그동안 김 화백이 보여 왔던 미학 위에 더해진 또 한 겹의 미학을 보여준다.

김 화백은 2008년 첫 시집 내 속 뜰에도 상사화가 피고 진다를 비롯해

2001 고요를 본다, 2015 함께 걸어요 그 꽃길

2017 새벽별에게 꽃을 전하는 마음 등의 시화집을 낸 시인이다.

김 화백의 작품은 단순하게 보는 시각적 표현의 그림이 아닌,

소리가 들려오고 향기가 느껴지며 자연의 숨결이 만져지는

겹겹의 승화된 의식이 담겨있다.

 

황청원 시인은 전시회에 보내는 마음 글에서

뭇 인연들의 마음 귀의처인 통도사에서 매화그림전 연다는

일휴를 생각한다.

일휴는 화인인가 선인인가.

내가 본 일휴는 화인이며 선인이다.

일휴의 일상에 그림과 선이 공존한다.

그런 까닭에서일까. 일휴의 그림 속엔 선리(禪理)가 있다.

그 선리는 붓을 잡은 손에도 보인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도 보인다.

종이에 남겨진 먹빛에도 보인다고 적고 있다.

 

김 화백은 신성한 자연과 생명에 녹아내린 정신성을

한 줄의 맑은 시처럼 화폭에 그려내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김 화백의 작품은 자연의 신성한 숨결을 시가 지닌 은유로 표현한다.

이는 감성의 교감을 통한 사유의 소통을 추구하려는

김 화백의 의식에서 완성된 미학이다.

절제된 수묵과 문장으로 선서화의 세계를 추구해온

김 화백의 붓을 또 한 번 볼 수 있다.

(글출처 : 현대불교신문)

 

 

 

 

 

 

 

 

 

 

 

 

 

 

004.  김해건설공고 <와룡매> (2022.02.19.)

 

 

우리나라의 토종 매화로서

매화의 연륜과 품격을 갖춘 고매화는 현재,  200여 그루 정도가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에서 약 70%가 전남과 광주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특별히 호남지역의 토종 매화 다섯을 엄선하여

호남 5라고 부른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溪堂梅>, 전남대의 <대명매大明梅>,

고흥 소록도의 <수양매垂楊梅>가 여기에 해당된다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매화로는 '산청 3' '안동 2가 유명한데,

남사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의 <정당매政堂梅>,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 산청 3'이고

안동 도산서원의 <도산매陶山梅>와 하회마을의 <서애매西厓梅>

'안동 2에 속한다

 

그리고 2007년 문화재청은 오랜 세월 우리 생활·문화와 함께해온

매화 4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바 있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484)>,

구례 화엄사 <길상전 앞 백매(485)>, 순천 선암사 <선암매(488)>등이

국가문화재로서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 밖에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화엄사의 <흑매>, 전주 경기전의 <녹약매> 등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매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고매들 중에서

도산서원의 <도산매>와 산청의 <정당매> 그리고 소록도의 <수양매>

애석하게도 근래에 완전히 고사하고 말았다

나머지 고매들도 수령 350살에서 700살까지 워낙 나이가 많은 고목들이라서

항상 동해凍害나 태풍의 위협과 피해 앞에 놓여있고

해마다 힘겹게 꽃을 피우고 있다.

 

경남지역에 '산청 3',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외에

아직 연륜은 낮지만 김해건설공고에 <와룡매> 군락지가 있다

대부분의 매화들이 전통 깊은 사찰이나 산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김해건설공고의 <와룡매>는 김해 구산동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이 아주 뛰어난 것이 큰 장점이다

인근에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국립김해박물관, 구지봉, 대성동고분, 봉황대공원 등

가야의 천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 두루 산재해 있고

부산김해 경전철의 박물관역에서 불과 100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교통뿐만 아니라 가야역사문화의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김해건설공고 교정 내에 <와룡매> 군락지가 있다

경남 유일의 도심 매화 군락지라고 할 수 있다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 교정에는

수령 100년 정도의 오래된 고매(古梅)들이

교문에서부터 본관까지 이어진 약 200m '매화로' 양 옆으로

80여 그루나 도열해 있다.

이 오래된 매화나무들이 줄기가 휘고 구부러져 있어서

마치, 용이 푸른 하늘로 날아가는 듯, 땅을 기어가는 듯한 형상으로

무리를 지어 용트림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서

 <와룡매>라고 불린다

 

80여 그루의 매화나무 중에서

백매가 60여 그루, 홍매가 20여 그루라고 하는데

대부분이 90년 이상 된 나무들이고

특히 구지호 연못 주변의 10여 그루가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10년생 내외의 어린 후계목들도

함께 자라고 있다

2022년 2월 19일 현재, <와룡매>의 개화상태는

어린 후계목들은 만개한 상태이지만

90년 이상 된 고목들은 일부만 개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홍매와 청매는 대부분 꽃망울이 아직 열리지 못하고 있고

백매들만 5% 정도의 개화율을 보이고 있다

 

김해건설공고의 <와룡매>들은 

1927년에 김해농고가 이 자리에서 개교할 때

당시 한 일본인 교사가 실습용으로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었다고 한다

그 후, 해방 뒤에 일본으로 돌아갔던 그 교사는

몇 년 전에, 이제는 백발이 된 모습으로 학교를 다시 찾아왔었는데

아직도 그 <와룡매>들이 잘 보호되고 있음에

눈물을 지으며  감사해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김해농고의 일본인 교사가 심었던 <와룡매>는

40여 년 전쯤인 1978년에 김해농고가 시 외곽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김해건설공고가 들어서면서 그 이후부터는 김해건설공고에서

<와룡매>들을 관리해오고 있는데 현재 김해시 관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전교생이 800여 명이 넘는 김해건설공고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글로벌 전문 기술인을 육성하는 건설 및 하이텍 특성화 고등학교로서

취업 걱정 없는 명품 학교로 거듭나고 있는 남녀 공학의

김해지역 공립 고등학교이다

 

지금은 코로나 19사태로 인하여

잠시 중단되고 있지만, 김해건설공고에서는 36년 동안

해마다 '매화축전'을 개최해 왔다

김해건설공고의 '매화축전'은

신입생과 재학생들이 모교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애교심을 키우고, 

교우들과 함께 교정을 거닐며 학년 초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행사로서

오랜 기간 동안 교직원과 학생들의 호응도가 높았기에

학교 측에서는 매화 축전의 주요 행사는

학생들이 교정에 핀 다양한 매화를 주제로 사진을 촬영하고

글짓기 활동을 하도록 구성돼 있는데

특성화 고등학교이지만 학생들에게 모교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고,

예술 활동을 통해 심미성을 고양시키는 교육적 효과가 커

매년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행사이다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다

 

아울러, '매화축전'은 학교 교내축제이지만

행사기간동안 지역사회에 교문을 완전히 개방하여

 주민 참여형 봄맞이 매화축제로 승화시켜 운영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와룡매>가 만개하는 2월 말쯤 주말이면

 '매화로' 주위는 매화 반, 사람 반!’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인근 대도시에서 상춘객들이 몰려와서 

이른 봄을 즐기는 명소가 되었다

지역사회에 대한 작은 배려이지만,

이 '매화축전'이 그동안 영남 지역사회의 문화창달과 지역화합에 기여한 바가 

결코 적지 않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005. 양산 통도사 홍매화 - 3 (2022.03.01.)

 

 

영축산 줄기 통도천 계곡에

봄비가 내린다

삼일절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는

요즘 봄 가뭄으로 메말랐던 산과 들을 촉촉이 적시고

영축산 아래 천년고찰 통도사에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슬비를 뿌리고 있다

 

이른 아침, 무풍한송로의

파릇파릇한 솔향기와 싱그러운 흙냄새를 맡으며

아득히 미로와 같은 소나무 숲을 지나

<자장매>를 찾아 간다

 

처연하게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자장매>는

2022년 3월 1일 현재, 약 15% 정도의 개화율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삼일절 무렵이면

<자장매>가 이미 만개한 후에 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올해는 2월달의 늦추위 때문에 개화가 3~4주 정도

늦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미 꽃망울을 터뜨린 분홍빛 작은 꽃잎들도 냉해를 입어서

찢어지고 시든 숱한 상처를 훈장처럼

가지마다 달고 있다

 

통도사의 <홍매 삼총사>!

절 입구의 <통도매>와 <영취매>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다!

 

 

 

 

 

 

 

 

 

 

 

 

 

통도사에는 영각 앞의 <자장매> 외에도

절 입구 종무소 앞에 홍매화가 2그루 더 있다

그래서 <세가지 색의 분홍> 매화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탐매의 장소가

통도사이기도 하다

 

천왕문을 들어서서 바로 우측으로 꺽으면

종무소 앞에 홍매화 2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데

먼저 보이는 짙은 분홍색의 우측 매화가 <영취매>이고,

옅은 분홍색의 좌측이 <통도매>이다

 

수령 70년 정도 된 <통도매>

일명 '자장분홍색매'로 불리는데 야매계의 홑꽃으로

꽃잎이 다소 크고 오목하며 꽃받침은 적자색이다

꽃은 아주 연한 분홍색을 띄고 있어서

담백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통도매> 우측의 <영취매>

수령 150년 정도 되었고 겹꽃의 짙은 분홍색 꽃을 피운다

다소 화려한 분홍빛으로

무채색의 절집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영취매>

 

 

 

<통도매>

 

 

 

 

 

 

 

 

 

 

 

 

 

006.  산청3매 (2022.03.05.)

 

 

예전에 우리의 선비들은 한겨울에 내린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깊은 산골 어디에선가 은은히 한 가닥 흘러나오는 매향을 따라서

눈 속에 핀 설중매雪中梅를 찾아가는 탐매探梅여행을

격조 높은 봄맞이의 멋으로 삼았었다

 

매화가 떼거리로 피어나는 이름 난 매화축제의 매화는

대부분 매실을 대량생산하기 위해서 개량한, 일본에서 들여온 왜매倭梅가 퍼진 것으로

고아한 자태와 향기를 자랑하는

사군자 속의 고졸한 매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선조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우리 토종 매화의 단아한 자태와 향기와 조우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토종 매화로서

매화의 연륜과 품격을 갖춘 고매화는 약 200여 그루 정도가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에서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매화로는 '산청3' '안동2가 유명하다

남사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의 <정당매政堂梅>,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 산청3'이고

안동 도산서원의 <도산매陶山梅>와 하회마을의 <서애매西厓梅>

'안동2에 속한다

그러나 도산서원의 <도산매>와 산청의 <정당매> 그리고 <원정매>

애석하게도 근래에 완전히 고사하고 말았다

 

옛날에는 '산청3'의 명성이 자자했었다지만,

현재, '산청3' 중에서 <원정매> <정당매>

근래에 원목이 고사하여 그 후계목이 대를 잇고 있는 상태이며,

온전히 제 몸으로 꽃을 피우고 있는 매화는 <남명매>가 유일한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이고 고무적인 사실은

<원정매> <정당매>의 어린 후계목들이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이제는 제법 수형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명품 어미목의 명성과 자질을 이을 가능성과 희망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고사한 원목들을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편하질 않았었는데, 이제는 그 애석함이 

나날이 성장하는 휴게목들을 함께 지켜보는 새로운 희망으로 바뀌게 된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럽고 즐거운 일이다

아울러, 후계목 복원에 관계했던 여러분들의 정성과 노력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2022 3 5일 현재, '산청3'의 개화 상태는

2월 달의 늦추위 때문에 아직도 꽃망울을 차마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예년보다 2~3주 늦어진, 3 3째 주말쯤에야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사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의 <정당매政堂梅>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

 

 

 

 

 

 

 

 

 

 

 

 

 

 

007.  산청 <단속사지 홍매> (2022.03.05.)

 

 

산청 단속사지의 2기의 탑 앞쪽에 있는 홍매화로서 

2022년 3월 5일 현재, 벌써 만개한 상태이다

수령 150년 내외로 추정되는 키가 늘씬한 만첩 홍매로서 

4개의 큰 줄기 중에서 하나는 부러져 사라졌고

수세는 산만하게 사방으로 흩어졌어도

주위의 보살핌도 없는 열악한 주변환경 속에서 오늘도 묵묵히 

옅은 분홍색의 꽃을 피우고 있다

 

<단속사지 홍매>가 자리잡은 위치는

2기의 탑 앞으로 난, 마을 진입도로의 반대편 가장자리로서 

지리산둘레길 이정표와 전봇대가 있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방치된 구석진 풀숲에 해당하는 곳이다

나는 <정당매>를 보기 위해서 10년이 넘게 단속사지를 방문했었지만

<단속사지 홍매>를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다

지저분한 주변환경 속에서 항상 만개한 뒤에 지고 있었던

끝물의 <단속사지 홍매>의 모습만 봐 왔던 탓이 컸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단속사지 홍매>의 진면목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정당매>가 겨우 꽃잎 서너장을 피워냈는데 <단속사지 홍매>는

벌써 만개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봄을 깨운다'는 통도사 <자장매>보다

개화시기가 더 빠르다는 사실이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설중매雪中梅의 DNA를 타고났음이다

 

그 옛날 선비들이

매화를 존중하고 사랑했던 여러 덕목 중에서도

엄동설한에 꽃을 피워서 희망을 전하고 스러지는 ‘선구자적 역할’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다

그 ‘선구자적 역할’의 대표적인 매화로는

순천 금둔사의 <납월매>, 거제 구조라의 <춘당매>,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 그리고  통도사의 <자장매>등이 있는데

산청의 <단속사지 홍매>도 

한반도에서 일찍 피는 매화로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다고 말 할 수 있다

 

현재, 옛 단속사 터에서는

문화재 사적 발굴 조사와 주변환경 정비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단속사지 홍매> 주변도 정비되어서

<정당매>와 더불어 <단속사지 홍매>도 산청을 대표하는 매화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산청 단속사지

 

 

단속사지는 지리산 서쪽자락인

웅석봉 남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사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탑동마을 일원으로

북쪽의 웅석봉, 서쪽의 마근담봉, 남동쪽의 석대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며

웅석봉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는 계곡의 하류에 해당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자료인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서 석탑과 당간지주가 있으며 와편이 산재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1977, 2006년에 단속사지에 대한 간략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한편 1999년에는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석탑 북방 1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건물지 등

일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05년에는 정비방안 마련을 위한 기본 조사의 목적으로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원에 의하여 정밀지표조사가 실시되었다.

2011년 자료에는 석탑을 중심으로 한 보고가 이루어졌다.

 

단속사지의 사역은 탑동마을 전체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마을과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마을은 동서에 계곡을 끼고 형성된 완만한 경사지에 입지하고 있으며,

지형상 남향이다.

마을 입구의 당간지주를 시작으로 중심에 석탑이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안에는 정당 강회백이 심었다고 전하는

매화나무와 정당매비각이 있다.

(글출처 : 문화재청)

 

 

 

 

 

 

 

 

 

 

 

 

 

 

 

 

 

 

008. 김해 용산마을 매화공원 (2022.03.05.)

 

 

경남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용당나루터가 있었던 옛 용산마을 지역에 매화공원이

새로 조성되고 있다

900 여평의 강변 부지에 산책로와 부대시설을 정비하고

옛 마을 터에 매화단지를 새로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활동을 위한

수변공원으로 꾸며지고 있다

 

옛 용산마을은 4대강 사업으로 철거가 시작되면서

2016년 주민들이 인근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었던

아픈 역사를 가진 전통마을이다

이주 과정에서 당시 마을의 자랑이었던 매화나무 군락지도 함께 사라졌고

철거 과정에서 살아남은 매화나무 중 상태가 양호한 나무는

인근 지역에 옮겨 심어 두었었는데,

김해시는 이 관리가 부실했던 매화나무들을 다시 용산마을 옛터에 옮겨 심어

매화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무리하고 일방적인 국가정책 때문에 이미 사라진 마을과 역사를

다시 되살리기는 어렵게 되었지만, 용당나루터를 복원하고

매화마을 군락지를 다시 회복시키게 된 것은

그래도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올해 초에 이식한 206그루의 매화나무는

대부분 수령 40~50년의 기품있는 토종 매화로서 백매와 홍매가

주를 이루고 있다

옮겨 심는 과정에서 심한 가지치기로 매화의 자태가 많이 훼손되었고

매화나무의 배치가 너무 단순하고 획일적이지만

앞으로 시간이 흘러서 자리를  잡으면

낙동강변의 봄맞이 명소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009.  김해공고 <와룡매>-2 (2022.03.06.)

 

 

3 5일(토)에 산청을 방문하여

남사예담촌의 <원정매>, 단속사지의 <정당매>, 산천재의 <남명매>

 산청3'를 둘러보았는데 아직 꽃망울만 달고있는 상태였고

3 6일(일) 오늘 아침에는

밀양 금시당 백곡재의 <금시매>의 개화상태를 확인하러 갔었는데

마찬가지로 아직 꽃망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올해 경남지역 매화들의 전반적인 개화상황은

2월 달의 늦추위와 강풍의 영향으로 개화가 예년보다  2주정도

늦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김해공고의 <와룡매>도 비슷한 추세로서

백매와 청매들은 대부분 개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지만

홍매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20022년 김해공고 <와룡매>의 감상시기 적기는

홍매의 개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는 3월 둘째 주말쯤으로서

만개 직전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와룡매>의 향기와 매력에 풍덩 빠질 수 있는

황홀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김해건설공고 <와룡매> 군락지의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는 일이 2020년에 있었다

김해건설공고는 지난 2004년 가야역사문화 정비사업 지구에 포함됐지만,

그동안 사업의 장기간 표류로 교육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2020년에 '김해건설공고 이전' 건이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했다

 

'가야 역사문화 환경정비사업'에 포함된 김해지역 교육시설은

김해교육지원청·김해서중·김해건설공고·구봉초교 등 4곳인데

이미 김해교육지원청과 김해서중·김해건설공고 이전이 확정됐고,

마지막으로 구봉초교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2020년 설계, 2022년 공사를 거쳐 2024 3월에

김해건설공고 이전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김해건설공고 이전 이후의 <와룡매> 군락지 정비계획에 대해서

아직까지 알려진 바는 없다

'가야 역사문화 환경정비사업'이라는

가야 천 년의 영광을 재현하는 역사적이고 훌륭한 문화적 인프라 환경속에서

김해건설공고 <와룡매>도 이번 기회에 체계적인 관리계힉을 수립하여

 김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와룡매> 군락지로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010. 양산 통도사 홍매화 - 4 (2022.03.09.)

 

 

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통도사를 찾았다

미리 사전투표를 해 두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 일찍부터

<자장매>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희망사항이지만, 오늘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이

매화의 '선구자적 역할과 희생정신'을 잘 새기고, 또 본 받아서

양식있는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자랑스런 공복이 될 수 있기를

새삼 기대해 본다

 

<자장매>는 올해만 해도 3번의 사전 답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주가 만개 직전의 풋풋한 자태의 <자장매>를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적기라고 판단하고 네 번째로 방문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2022년의 <자장매>

꽃잎이 예년보다 상당히 적게 달려서

빈약한 수세 때문에 그 화사함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그나마 애써 개화를 한 꽃잎들도

금새 다시 밀어닥친 2월 달의 늦추위와 비바람 때문에 꽃잎이 얼어버려서

꽃이 피자말자 이내 시들고 꽃잎에 상처가 생기고

누렇게 퇴색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유독 심했던 올해의 봄가뭄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홍매화의 표준 색깔이라는 고운 분홍빛은 생기를 잃었고

아직 만개 전인데도 벌써 반 정도가 시들었고,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상처뿐인 영광!’이다

 

한반도의 봄을 열기 위해서

만물이 숨죽인 엄동설한에 꽃을 피워내어서

모진 한파와 비바람 속에서도 상처투성이의 꽃잎을 지켜왔던

400살을 바라보는 <자장매>

장하고도 숭고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장매>

 

 

 

 

<영축매>

 

 

 

 

 

<통도매>

 

 

 

 

 

 

 

 

 

 

 

 

 

 

011.  순천 금둔사 매화 (2022.03.12.)

 

 

순천 낙안읍성 위쪽의 금둔사에는

음력 12(납월臘月)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는

<납월홍매> 6그루가 있다

부산 UN공원의 홍매와 거제도 구조라 초등학교의 <춘당매>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피는 매화로 유명한 <납월홍매>가 있기 때문에

전국의 탐매객 들이 이른 봄이면 항상 남녘의 금둔사를 주시하게 되는

<납월홍매>의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개화시기는 매우 빠르지만 그 날자는 해마다 들쑥날쑥하여

그 적기에 맞추어 찾아가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항상 때를 놓쳐서 실망도 많이 하게 되는 탐매처가

금둔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넉넉하게 3월 초에 방문하면 켤코 <납월홍매>를 못 볼 리야 없지만

전국의 매화들이 피기 시작하는 무렵이면 <납월홍매>는 이미 지고 있기 때문에

3월 달에 금둔사를 방문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새로 알게 된 순천복음교회 매화정원을 처음 방문하게 되면서

<납월홍매> 방문의 시기가 이미 지난 줄은 잘 알지만

순천의 금둔사를 들르게 되었다

 

금둔사는 <납월홍매> 6그루 외에도

100그루 정도의 백매, 청매, 홍매 등이 자라는 매화정원 산지가람이지만

나는 항상, 월등하게 일찍 피는 <납월홍매>를 보러 2월 초쯤에 찾아갔었기 때문에

100그루의 매화가 모두 피는 그 매화정원의 아름다움은 오늘에야 보게 되었다

물론  6그루의 <납월홍매>는 이미 그 사명을 다하고

조용히 지고 있었다

 

 

 

 

 

 

 

 

 

 

 

 

 

금둔사金芚寺 부처가 싹을 틔우는 절이란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는 순천의 작은 사찰이다.

바로 옆 조계산 자락에 워낙 유명한 선암사와 송광사가 턱 버티고 있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은 안다.

특히 사진작가들 사이에선 매화와 차로 유명한 절로서,

해마다 2월이면 <납월매>를 보려고 전국에서

카메라를 메고 몰려든다.

 

해발 679m의 금전산 서쪽에 위치한 금둔사는

신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보물인 금둔사지석불비상과 금둔사지 삼층석탑으로 보아

금둔사의 창건연대를 통일신라 때로 추정해오다가

최근에 순천대학교 박물관측의 발굴유물을 토대로 9세기경 창건된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정유재란(1597) 때 가람이 완전히 불에 타서

금둔사는 오랜 세월 폐사지로 남아 있었는데,

1979년에 이르러 완전 도굴되어 흩어져 있는 삼층석탑을 복원하고

1984년부터 지허 선사가 대웅전과 일주문 선원, 약사전, 요사채,

홍교 등을 복원 중창하였다

 

금둔사를 다시 일으키면서 지허 선사가

산 아랫마을 낙안읍성 근처의 조씨 면장 집에서 600살의 나이로 고사한

<납월매>의 씨앗을 받아와 1985년에 금둔사 경내에 심었는데,

그 씨앗 중에서 6개가 살아남아서 오늘까지 <납월매>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금둔사의 홍매화가 <납월홍매>로 불리는 까닭은

엄동설한인 음력 12월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음력으로 12월을 납월(臘月), 혹은 섣달이라고 하는데,

온 세상 모두가 얼어붙어 있는 엄동설한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매화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막상 꽃을 피워도 이내 꽃잎은

아직도 매서운 추위에 바로 얼어서 시들어 버리고,

꽃으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만다.

꽃으로서의 화사함이나 우아한 자태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메마르고 퇴색된 꽃잎만 남기고

하루살이처럼 장렬히 사라져 간다.

 

유아독존’ - 세상 모두가 숨죽인 눈 속에서 홀로 피어나지만

이내 얼어붙어 시들어 버리는 그 쿨한 모습은 이른바 상처뿐인 영광으로서,

오직 이 혹한에 꽃을 피워냈다는 강인한 정신과 맑은 기품만

오래토록 우리 곁에 향기로 남아 있을 뿐이다.

 

 

 

 

 

 

 

 

 

 

 

 

 

<금둔사 청매>

 

 

금둔사의 대웅전 근처에

제법 오래 된 100년생 내외의 청매화 2그루가 있다

<납월매>가 만개한 뒤, 지기 시작할 무렵에야

꽃망울을 열기 시작하여 금둔사의 봄을 이어가지만

<납월매>의 유명세에 가려

만개한 모습을 보는 기회를 항상 놓치게 되는 매화가

바로 <금둔사 청매>이다

 

금둔사 <납월홍매>

꽃잎의 크기가 상당히 작은 분홍색의 겹꽃으로서

20~30개의 꽃잎들이 겹겹으로

지름 1cm 안팎의 크기로 가지에 달리는데 반하여

<금둔사 청매>는 흰꽃에 푸른 꽃받침을 가진 꽃잎 5장 홑꽃 청매로서

청매 특유의 아주 우아한 자태와 향기를 자랑한다

 

 

 

 

 

 

 

 

 

 

 

 

 

 

 

 

 

012. 순천 선암사 매화 (2022.03.12.)

 

 

우리나라 '매화의 성지' 선암사 경내에는

수령 350~650년에 이르는 오래된 매화나무 50여 그루가

천년 세월의 이끼가 내려앉은 절집 곳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선암사를 대표하는 '무우전 돌담길'

원통전 담장, 응진당 담장. 뒤깐 옆 그리고 대웅전 뒷편과

첨성각 연못 옆에도 고매가 살고 있다

그리고 공양간인 적묵당 담장의 홍매와 백매, 요사채인 무량수전 뜰 앞의 홍매

그리고 해천당 담장과 마당에도 잘 늙은 고매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서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무우전 돌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2007년에 지정되었다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으로 불리는

'무우전 돌담길'에는

350년이 넘는 매화나무 20여 그루가

담장을 따라 도열하고 섰고

수령 550년의 천연기념물 <선암홍매>

큰 줄기 3개중에 2개가 어느 여름 태풍에 부러져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지금또 꿋꿋하게 분홍빛 꽃을 피운다

 

원통전 앞의 <선암백매>는 약 600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아직도 늠름한 기품과 수세를 자랑하고, 지금도 왕성하게 꽃을 피우는

선암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해마다 이른 봄에 치러지는 2달 정도의 탐매여행에서

우리나라 '매화의 성지' 선암사 방문은

탐매여행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여기고 준비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등의 기상이변,  그리고 오묘한 자연의 조화 등,  수 많은 변수 때문에

탐매 시기를 잘 맞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해(2021년)에도 탐매시기를 놓쳐서 

이미 지고 있는 매화를 봄비 속에서 멍한히 바라 본 아픔이 있었다

그래서 선암사 입구 식당에서 눈물 젖은 산채비빔밥을 씹으며

'내년에는 꼭 미리 사전답사를 오리라!'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었다

 

지난 해의 다짐을 잊지 않고 올해는 미리 사전답사를 왔다

예상했었지만, 선암사 매화들은 대부분 꽃망울을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청매화는 만개 직전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선암사의 청매화는 백매화, 홍매화보다 항상 일찍 피고, 일찍 기 때문에

청매화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에야  한창 무렵의 청매화와 대면하는 기회를 얻었다

 원래, 청매화와 백매화 그리고 홍매화의 개화시기는

지역과 위치에 따라서 1~2주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매화의 나이에 따라서도 1~2주 정도 개화시기의 차이를 보인다

선암사의 수령 350~650년의 오래된 매화나무는 백매화와 홍매화가 대부분이고

청매화들은 수령 100년 안쪽의 '젊은 피'에 속한다 

따라서 청매화들이 항상 1~2주 정도 일찍 피고,

고매들이 피기 시작하면 벌써 진다 

 

오늘, 사전답사를 통한 판단 결과,

선암사 매화(고매)의 만개 시기는 앞으로 10일 후쯤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2022년 올해의 선암사 탐매여행의  적당한 시기는,

조금 부족하지만, 만개 전의 싱그러운 매화를 선호하면 3월 3째 주말, 

이미 지기 시작했지만, 만개 후의 화사한 매화를 선호하면 

3월 4째 주말이  좋을 것 같다

나는 바로 다음 주, 3월 3째 주말에 다시 가기로 했다!

 

 

 

 

 

 

 

 

 

 

<무우전 돌담길 청매화>

 

 

 

<무우전 매화>

 

 

 

 

 

 

 

호남의 명산 조계산 동쪽에 자리 잡은 선암사는

우리나라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그러나 서쪽의 승보사찰 송광사와 구례의 화엄사의 명성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못했고,

더러는 동백과 상사화로 유명한 전북 고창의 선운사와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선암사는,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의 표현처럼

'미술사적으로 뛰어난 유적도 없고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지만 가고 싶은 절,

가면 마음이 마냥 편해지는 사찰'로서

신도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남도의 천년고찰이다.

 

유홍준 교수가 자기 마음속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한글과 청자와 산사(山寺)를 꼽았고,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절로는 선암사를 뽑았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봉렬 교수도

선암사를 건축적인 면에서 최후의 최고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전남 순천에 위치한 선암사는

백제성왕 5년에 아도화상이 현재의 비로암자에 처음 세웠고,

도선국사가 현재의 선암사 자리에 절을 중창하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다.

그 후, 의천대각국사에 이르러 대중창이 이루어지고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여

호남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전소되다시피한 선암사를

1660년 경준, 경잠, 문정 세 스님이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에 걸쳐 중수를 하였고

호암 스님에 와서 원통전, 불조선, 승선교 등을 지으며

중창 불사가 마무리되었다 한다

 

 

 

 

 

 

 

 

 

 

 

 

 

 

 

 

 

 

 

 

013. 순천복음교회 매화정원 (2022.03.12.)

 

 

바야흐로 매화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매화꽃이 다투어 터지고 있다.

곧 남도 꽃잔치가 펼쳐질 것이다.

광양 다압 청매실농원 주변은 두말할 나위 없는 매화축제 명소다.

보해양조에서 직영하는 대규모 농원(50여만, 해남군 산이면)도 유명하고,

순천 월등 향매실마을 매화꽃 축제도 손꼽을 만하다.

그러나 그곳은 꽃이 아닌 열매를 생산하기 위해 조성한 농원·농장이다.

 

매실이 아닌 오직 꽃을 완상하기 위해 조성한 매화정원이

순천에 선을 보였다.

순천복음교회 매화정원’(이하 매화정원)이 그것이다.

매화정원은 송광사, 선암사, 낙안읍성, 순천만과 함께

순천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것이다.

전국 최초의 본격 매화정원이자 일정한 규모를 갖춘

국내 최고의 매화정원이기 때문이다.

 

매화정원을 일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20~30년 동안 공을 들인

순천복음교회 양민정 목사는

매화나 동백의 북방한계선이 전북 내장산 정도이기 때문에

남도(南道)만의 꽃과 나무로 특색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12백평 남짓의

정원에는 매화, 돈나무, 단풍, 동백, 산다화, 소나무, 대나무 등

7330여 그루가 식재되어 있다.

벚나무도 두 그루 있다.

그중 매화가 177주로 가장 많은데 백매는 45주 홍매가 130여 주에 이른다.

매화는 화륜의 크기, 화형, 화색, 향기의 농담, 홑겹 등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인다.

매화정원에는 홍매, 청매, 백매, 흑매, 비매(緋梅=비단매화), 오색매,

능수홍매, 능수백매, 운용매 등 15종의 다양한 매화가 자리하고 있다.

 

백매는 수령 100년을 지난 고매(古梅)37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확한 수령을 알 수 없지만 국내에서 최고(最古)에 속하는 선암매(600여년)에 비견할 만한

복음매는 단연 발군이다.

구입에서 가식, 정식까지 수천 여 만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1억짜리 매화라고 부른다.

장흥에서 이사 온 홍매(장흥매)는 화엄사 고매(흑매)에 견줄 만한

수령(350)을 자랑한다.

 

 

 

 

 

 

 

 

 

 

 

개울과 연못은 정원의 백미다.

만든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개울은 10, 20년 전부터,

아니 원래 그 자리에서 그렇게 흘렀던 것처럼 천연스러웠다.

계류는 산 속의 계곡 같기도 하고 오래된 도랑 같기도 하다.

강돌이 아닌 월등 계곡의 산돌을 구해 만들었다.

시멘트로 반듯하게 만든 도랑이 아니라 울퉁불퉁 비정형이면서

깊음과 얕음도 똑같지 않다.

예배당 오른쪽 앞에서 시작한 계류는 굽이돌기도 하고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면서

홍교형(虹橋形) 돌다리를 지나 입구 왼쪽의 지당(池塘)으로 흐른다.

교회 입구 큰 길 쪽에서 볼 때, 정원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대각을 이루며 흐르는데,

그 곡선과 배치가 예술이다.

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다. 경탄이 저절로 새어나온다.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에서 모티프를 따왔다고 한다.

 

계류가 마침내 도달한 곳은 지당이다.

산과 들을 지나 강으로 흘러든 물은 드디어 평화의 바다에 이른다.

못에서는 평화롭고 고요한 정밀(靜謐)의 미가 흐른다.

아담한 못에 담긴 맑은 물이 주는 차분함,

못 물 속에 발을 담근 채 서 있는 석재 투각 십자가

(두 개의 돌로 만든 투각 십자가는 도대체 누가 구상한 것인지,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단순하면서 성스러운 작품이다),

십자가를 향해 일제히 머리를 숙인 지당 주변 27그루의 홍매화가(주로 능수매)

어우러져 조용히 뿜어내는 지극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거룩하게 한다.

 

입구에서 예배당에 이르는 진입로도 걸작이다.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길을 내면 100미터쯤 되는 거리다.

그 길을 굽이굽이 돌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도록 하여,

100리 길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곡선과 느림으로 사색을 유도하고 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지당을 옆에 끼고 매화를 감상한 후,

돌다리를 건너 호젓한 오솔길을 걸어올라 소나무 숲을 통과해야 예배당에 이를 수 있다.

고즈넉한 길을 천천히 걷고서야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길에는 벽돌이나 침목, 자연석을 쓰지 않고

석재공장에서 나오는 작은 화강암(쑥돌) 파석을 사용했다.

눈이 지루하지 않게 드문드문 붉은색(대리석)과 검정색(오석) 파석도 섞었다.

오솔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다.

숲 속엔 앉아 쉴 수 있는 돌의자를 듬성듬성 놓았다.

 

 



 

 

 

 

 

 

매화만 심은 정원은 아니다.

정원은 춘하추동 사계절 내내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봄에는 매화다.

교회당 정문 왼쪽에 커다란 수석과 함께 서 있는 운용매가

2월 초순경 가장 먼저 불을 댕긴다.

이어서 홍매, 청매, 백매 등이 연달아 꽃을 피워 3월 중순 경까지

1달 보름 가까이 매화를 감상할 수 있다.

든 매화가 진 다음,

매화로서 맨 마지막 꽃을 피우는 것은 정원 왼쪽 담장 부근에 있는

겹홍매(장흥매).

 

여름에는 돈나무다.

정원에 돈나무가 9그루 있다.

남해안과 섬에 자생하는 돈나무는 흰 꽃을 피운다.

아카시꽃이나 치자꽃 향기보다 자극적이지 않은 향기가 은은하여 기막히다.

여명과 석양에 더욱 아름답다.

한여름에는 목백일홍(배롱나무)이다.

여행객들에게 남도의 여름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하는 붉고 흰 배롱나무 꽃은

가을 추수 때까지 간다.

정원에는 가격이 1천만 원에 이르는 목백일홍 2주를 포함하여

수십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가을은 단풍이다.

단풍 색깔이 곱고 수형이 빼어난 것으로만 골라 55주를 심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흔치 않은 황피단풍도 있다.

 

겨울에는 동백과 산다화다.

남도에서만 자라는 이들 나무는 삭막한 겨울에 붉은 꽃을 피워 올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2주의 동백은 붉은색 하얀색 분홍색 꽃을 피우는 20여 종의 산다화와 함께

정원에 산다.

겨울을 대표하는 나무로 소나무와 대나무도 빠질 수 없다.

수고와 수형이 정정한 문인송 40여 그루는 한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나무다.

그들과 더불어 예배당 앞에 서있는 반송 두 그루는 몸값에 어울리게 특히 준수하다.

대나무는 오죽인데, 예배당 왼쪽 옆에 군락을 이루어 대밭이 되었다.

느티나무도 5그루 살고 있다.

 

수석 애호가가 꾸민 정원답게 총 24점의 수석이

정원 곳곳에 조화롭게 놓여있다.

2~4톤 정도의 수석들인데, 형과 색, 재질 등을 고려하여 적소에 배치했다.

국내산 수석 외에, 브라질 아마존산, 인도네시아산,

필리핀산이 섞여 있다.

(이상 글 출처 : 순천광장신문 문수현 시민기자)

 

 

 

 

 

 

 

 

 

 

 

 

 

 

 

 

 

 

 

014.  순천복음교회 <복음매> (2022.03.12.)

 

 

2012년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한 순천복음교회는

교회를 신축하면서 마당 약 1000평을 확보하여 연못과 개울을 만들고,

전국에 흩어져 있던 오래된 매화나무와 정원석을 수집하여

매화정원을 조성하였다

 

매화정원에는 동백·소나무·산다화 등 300여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절반 이상이 매화나무로서,

홍매·백매·청매·흑매·능수홍매·운용매 등 그 종류만 15종이 넘는다고 한다

보통 수령 100년이 넘는 매화를 고매古梅라고 하는데,

여러 인연 등으로 교회 매화정원에다 가져다 심은 매화나무 177그루 가운데

37그루가 수령 100년이 넘는 고매 들이다

그중에서도 장흥에서 가져온 만첩홍매는 수령이 200300년은 족히 넘었고,

특히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에서 옮겨온 <복음백매 >

수령이 600년 이상이나 된 초고령의 고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새하얀 색의 우아한 홑꽃을 피우는 <복음매 >

나무 중간 부분에서 큰 줄기 2개가 좌우로 갈라지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서 

마치 날개를 펼친 듯이 당당하고 웅장한 수세를 자랑한다

수령 600년이 넘은 고매라서 오랜 풍파로 가지가 많이 상했고,

이식과정에서도 가지가 많이 잘려나가고, 비록  지지 철물에 의지하고 있지만

<복음매 >는 고매로서의 기품과 자태는 여전히 살아있고,

주변의 정성과 보살핌으로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흰 색의 이쁜 꽃을 피우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생화를 좋아했다.

어렸을 땐 꽃과 그림을 좋아했고, 학창시절엔 문학을,

졸업 후엔 분재, 수석, 야생화, 난초와 같은 자연을 좋아했다.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하게 된 계기가 된듯하다.

우리 교회 성도들, 그리고 순천시민과 자연을 사랑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매원을 조성하고 싶었다”,

 

기독교는 서양에서 비롯한 종교여서 예배당을 한옥으로 짓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정원은 한국식으로 꾸며 모든 사람들이 쉽게 들어와 쉴 수 있게 하고 싶다.

성도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남녀노유 모든 시민에게 열린 정원·교회가 되기를 꿈꾸었다.

신자와 비신자, 사회와 교회가 벽을 허물고 소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195751일 창립한 순천복음교회 제2양민정 담임목사의 말이다.

전국 최초·최고의 매화정원은 그의 신학과 철학,

그리고 분재, 수석, 난초, 야생화를 통한 예술적 소양과 미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축 이전한 교회 부지는 16백여 평으로

로마네스크식 예배당의 대지 등을 뺀 정원 면적은 약 1천여 평이다.

교회 건물은 2011 5월에 착공하여 2012 8 25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정원은 이미 준비된 재료들로 2012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8월에 마쳤으니 4개월 정도 걸린 셈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예배당 건축비의 40% 정도가 정원 조성비라고 한다.

전체 공사비의 10%만 조경비로 써도 많이 썼다고 평가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양 목사가 정원 조성에 얼마나 지극한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양 목사는 30여 년 전, 주위 분들로 인해

분재와 수석, 야생화를 접하면서 매화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는 20여 년 전, 성도들과 함께 전원교회를 꿈꾸면서

중앙동사무소 근방에 있던 교회를 시 외곽으로 이전하기로 계획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23:2)”

성경 말씀을 생각하며,

평생 한 교회를 지키며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드리는 게

복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매화정원을 실현에 옮기기 시작한다.

2차에 걸쳐 터를 마련하고, 좋은 매화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닌다.

분재동호회원들에게 전국의 매화를 수소문하였고,

()’자가 들어간 동네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마음에 드는 매화는 두 번 세 번 발품을 팔아 구입했다.

귀한 매화들은 고흥과 진주의 농원에 가식해 놓고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까지 정성들여 관리했다.

 

운용매 2그루는 광주 김태욱 선생(각화동 대림농원)이,

 홍매, 비매 수십 그루(수령 40년 이상)는 순천에서 식물원을 경영하는 서정권 대표가

오랫동안 공들여 기른 나무다.

교회 입구에 세운 교회 표석(화강암) 글씨도 활자체가 아닌

서예가 무창(茂昌) 이해근(李海根) 선생의 작품을 썼다.

정원은 이 모든 것들이 어울려 그윽한 아름다움을 뿜고 있다.

(글 출처 : 순천광장신문 문수현 시민기자)



 

 

 

 

 

 

 

 

 

 

 

 

 

 

 

 

 

 

 

 

015. 김해 봉하마을 <민주매> (2022.03.13.)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을 지냈던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퇴임 후에 낙향하여 고향마을에서 사셨던 분이다

서거하기 전까지 생활했던 그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의 집'

아주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고매가 한 그루 있었지만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노무현재단에서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집"이라고 했었던

고인의 유지에 따라 201851일부터 '대통령의 집'

국민들에게 정식 개방하기 시작함으로써

마침내, 고인의 체취와 흔적이 남아 있는 집안 곳곳과 매화를

전문 학예사의 안내에 따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 처음으로 매화나무의 대면이 가능했을 때에는

꽃이 가장 싱그러운 개화시기를 가늠하기 위해서

그 해만 해도 3번의 사전답사를 거쳐서

3월 중순쯤에 만개하는 개화시기 습성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만들어서 방문 적이 있었다

 

2020년 봄에는 코로나 19사태로

'대통령의 집' 관람이 중단되어서 아예 매화를 볼 수가 없었고

2021년 봄에는 잠시 관람이 다시 재개 되었지만 이내 중단이 되었고

다행히 2022년 올해는, 3월 둘째 주부터 '대통령의 집'

매화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

 

 

3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매화는

안방침실 오른쪽 장독대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밑둥에서 부터 뻗은 여러 가닥의 가지가 위쪽으로 보다는 옆으로 펼쳐져서

전체적으로는 밥사발 모양을 닮은, 소박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5장의 순백색 꽃을 피우는 홑꽃의 백매이다

 

유독 심했던 올해 봄가뭄을 해갈시키는 반가운 봄비가

오늘 '대통령의 집'에 포근히 내리고 있다

봄가뭄 탓인지 올해는 가지에 꽃잎이 아주 성글게 달려서

좀 여의고 수척해 보이긴 하지만

고인을 그리며 '대통령의 집'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오늘도 해사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 2009년 봄에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다

님이 어느날 갑자기 떠난 텅 빈 마당에

언제나 한결같이 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이 고매는

300년이 넘은 우리 토종의 와룡매이다

 

현장의 전문 학예사에 따르면,

2008년에 인근의 농장에서 이 곳 봉하마을로 옮겨 오게 된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평소에 농촌의 친환경 농법에 관심이 많았던 노 대통령께서

진주의 <문산농장>에 단감나무 견학을 갔다가

참하고 매력적인 매화나무를 발견하고 칭찬을 했더니

농장 주인이 즉석에서 방문기념 선물로 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민폐를 우려하여 대통령께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돌아 왔는데

다음날 농장 주인이 트럭에 싣고 와서 무작정 내려놓고

가 버렸다는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매화나무에 큰 상처가 남아 있다

생전에 대통령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매화나무의

밑둥에서 부터 줄기까지 껍질이 아주 흉하게 벗겨진 부분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을 때 그 상처가 생겼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온다

 

그런데 학예사께 물어보았더니

아직 '대통령의 집' 매화나무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매화 이름으로는

유명인사의 이름이나 지역명을 따서 지으면 무난하지만

고인께서 사양하실 것 같아서 포기하고

내가 직접 작명해 보기로 하였다

 

고인께서 평생을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하셨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키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셨으니

고인의 철학과 정신을 살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봉하마을 <민주매民主梅>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붕 낮은 집

 

 

지붕 낮은 집은 설계 당시부터 부르던 대통령의 집

아명兒名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정기용 건축가가 함께 지었는데,

노 대통령은 부끄럼 타는 집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름처럼 평평한 지붕을 가진 대통령의 집 지하 1, 지상 1층의

나지막한 건물입니다.

노 대통령은 혼자만 우뚝 서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선과 조화를 이루는

집을 바랐습니다.

사람들과도 어울림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이 살 집이 새로 들어오면서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보아온 경치를 가리거나 독점하게 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사자바위 아래,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마을 쪽으로 대통령의 집을 바라보면 뒷산 산세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집의 굴곡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더 멀리 화포천 쪽에서 보면 정말 부끄럼을 타는 것처럼

집의 모습이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글 출처 : 설계자 정기용 건축가)



 

 

 

 

 

 

 

 

 

대통령 사저관람을 마치고

봄비 속에 집 앞의 묘역을 찾았다

올해 5월이면 어느듯 서거 13주기로

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강산이 수도 없이 바뀌었지만

우리 사는 세상은 많이 바뀌지 못 한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을 그토록 염원했었던

선구자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제는 눈 앞까지 가까워진 것도 같았지만

바로 봄의 문턱 앞에서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타깝게 정권를 내줌으로써

한동안은 대한민국의 참된 민주주의와 정의가 왜곡되는

시련과 혼란이 이어질 수도 있게 되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선과 악, 그리고 정의와 불의를 구별해 내는 깨어있는 시민의 지혜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임을 절감하며

무겁고 죄송한 마음으로 묘역을 물러 나왔다

 



 

 

 

 

 

 

 

 

 

 

 

 

 

 

 

016. 산청 남사마을 <원정매> (2022.03.18.)

 

 

진양 하씨가 32대째 살아온

남사마을 분양고가의 <원정매>

원정공 하즙 선생이 직접 심은 수령이 680여년이나 된,

<산청3>중의 하나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매로서

분양고가인 고택 이름을 따서 <분양매>라고도 불린다

 

원줄기는 오래전에 동사하였었는데

몇 년 후에 뿌리쪽에서 곁가지 하나가 살아나서

간신히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해마다 쑥쑥 자라서 점점 수세가 풍성해지고 있어서

상당히 반갑고 고무적이다

 

<원정매> 앞에는 원정공이 쓴

영매시(詠梅詩)를 새긴 시비가 서 있다.

 

집 앞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한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원정매>는 꽃잎이 여린 분홍색의 겹꽃 홍매화인데 

남사마을 주차장 뒤쪽의 최씨고가 안에 있는 <최씨매>와 많이 닮았다

2주 전에도 들렀었는데 그 사이에 만개한 후

이제 시들고 있었다

 

집 뒤뜰에는 원정공의 손자로 영의정을 지낸 하연 선생이

7세에 심었다는 630여년 된 감나무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로서

아직도 감이 열리고  있다 한다

 

 

 



 

 

 

 

 

 

 

 

산청의 남사마을(남사예담촌)에는

집집마다 오래 묵은 매화나무 한두 그루씩

없는 집이 없다

그 중에서도 하씨, 정씨, 최씨, 이씨, 박씨 등

마을의 다섯 문중을 대표하는 다섯 그루의 매화나무

오매불망五梅不忘이 유명했었다

 

남사마을에는 골목을 따라 늘어선 고택 담 안쪽에

매화나무를 비롯해 기품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유독 많다.

두 그루 나무가 ×자로 가지를 교차해 자라는

이씨 고가 앞 돌담길 회화나무는 남사마을을 대표하는 명물이고

산청3로서 우리나라 매화 중에서 최고령을 자랑하는

하씨 고가의 <원정매>를 비롯하여

옅은 분홍빛의 가녀린 몸매를 자랑하는

최씨 고가의 <최씨매>가 있다

사효재에는 기이하게 자라고 있는 500년 된 향나무가 있고

선명당에는 우람한 단풍나무 노거수와

남사마을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우는 <정씨매>가 있다

 

남사마을 뒤쪽 사수천 건너편에는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때 묵어갔다는 자리에 세운 사당 니사재가 있는데

니사재 마당에는 가지와 가지가 붙은 연리지인 배롱나무와

<박씨매>가 나란히 있다

그리고 마을 중앙주차장 옆에는

근래 들어 전통염색 체험장으로 쓰이고 있는 남호정사에

마을에서 가장 화려한 매화를 피우는 <이씨매>가 있다

 

 

 

 

 

 

 

 

 

 

 

 

 

 

 

 

 

 

 

 

 

017. 산청 남사마을 <정씨매> (2022.03.18.)

 

 

남사마을의 사양정사 안쪽, 정씨고택에

수령 150년 내외의 <정씨매(선명당 매화)> 한 그루가 

선명당 뜰에서 자라고 있다.

 

남사마을 사양정사泗陽精舍

한말의 유학자 정지용 선생의 장손 정종화 선생이

남사마을로 이전한 후 선친을 추모하기 위하여 마련한 정사精舍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사양정사泗陽精舍

사수泗水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사수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곡부에 있는 강 이름인데,

공자를 흠모하는 뜻으로 남사마을 뒤에 있는 개울을 ‘사수’라 부르고,

정사가 개울의 남쪽에 있어 사양정사라 이름 하였던 것이다.

건립 이후 주로 자손을 교육하고, 문객을 맞아 교유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정씨매>가 있는 선명당은 정씨고택의 별채로서,

사랑채 겸 고택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선명당의 공들여 잘 가꾸어진 정원 화단에는

<정씨매>를 비롯해 단풍나무, 배롱나무 등 진귀한 나무들이 가득하고

선명당 대청에서 바라보는 <정씨매>의 모습은 

한옥 담장과 잘 어울려 무척 매력적이다

 

 

 

 

 

 

 

 

 

 

 

산청 남사마을

 

 

남사마을의 기본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어리석은 사람(愚者)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으로 변한다'고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린다고 알려져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국내 국립공원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1,915.4미터)의 위세에 알맞게

주변에 화엄사 같은 대사찰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해

한국 남부의 문화권을 실질적으로 관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명산인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나온 봉우리

니구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이 과거에 여사촌으로 불린 남사마을이다.

풍수적으로 해석할 때 니구산이 암룡의 머리이고 당산이 숫룡의 머리로

서로 머리와 꼬리를 무는 쌍룡교구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아래를 휘감아 흐르는 사수천이 조화를 이루면서

넓은 들과 울창한 숲이 주위를 둘러친

천혜의 입지에 있다.

 

남사마을의 특이한 점은

마을 생김새가 반달 모양이므로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반월을 메우면 안 된다고 믿어

중심부에 집을 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주차장이 중앙 부분이다

......

(글 출처 : 과학문화유산답사기2 | 저자 이종호)

 

 

 

 

 

 

 

 

 

 

 

 

 

 

 

 

 

018. 산청 남사마을 <이씨매> (2022.03.18.)

 

 

남사마을(남사예담촌)  중앙주차장 옆에

근래 들어 전통염색 체험장과 갤러리 카페로 쓰이고 있는, 남호정사에

마을에서 가장 화려한 매화를 피우는 <이씨매>가 있다

 

이씨문중을 대표하는 <이씨매>

성주 이씨 문중의 서재인 남호정사에 있는 매화로

원래 이씨고택에 있었던 400년 된 고매가 오래 전에 고사하여

지금은 <이씨매>가 이씨 문중을 대표하고 있고

수령은 150년 정도의 키가 늘씬한 백매화이다

 

<이씨매>는 평소에는 항상 대문이 잠겨있어서

흙돌담 너머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근래에 남호정사에 염색공방이 새로 입주하여 문을 열게 되어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차 한잔하면서 염색작품 관람뿐만 아니라

<이씨매> 감상도 할 수 있게 되었

 

1년만에 다시 찾았더니 

그 사이에 '갤러리 카페'가 매화 바로 뒤에 새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원래 <이씨매>는 마을에서 가장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매화인데

올해는 봄가뭄 영향인지 꽃이 많이 달리지 않아서

무척 큰 키에 수척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019.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 (2022.03.18.)

 

 

산청군 단성면 운리의 옛 단속사 터에는

현재 문화재 사적 발굴 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천 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조선후기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진 

단속사는 승려가 100명이나 있었던 큰 사찰이었는데

지금의 옛 터에는 일부 민가가 들어서 있고 마을 앞으로 보물인 동·서 석탑과

당간 지주만 덩그러니 남아 전해지고 있다

 

속세를 떠난 절이라는 단속사斷俗寺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짚신이 다 해질 만큼 규모가 컸다는

통일신라시대 사찰이었는데

삼국사기에는 신라 때의 유명한 화공 솔거가 그린 유마거사상維摩居士象이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후, 단속사는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지만

조선 초 대사헌까지 지낸 강회백 선생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직접 심었다는 매화 <정당매>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훗날 그가 종 2품인 정당문학이란 직위의 벼슬에 오르자

사람들은 이 매화에게 <정당매>란 이름을 붙여주었고, 두 기의 비석과 

매화각이란 누각까지 세워주었다

 

산청3의 하나로 꼽히는 <정당매>

단속사는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어도 한 쌍의 동·서 삼층석탑과 함께

600년 이상 절을 지키고 있다

<정당매>는 높이 8m에 둘레가 1.5m

뿌리에서 4본의 지간이 생겨 위로 혹은 옆으로 뻗어 있으며

꽃의 색깔은 백색이며 홑꽃이다.

산청3 중 유일하게 1982년에 경상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정당매> 640여 년 전에 강희백 선생이

단속사 절에 매화를 처음 심은 뒤, 100년쯤 지난 후에 고사해 버리자

후손들이 다시 후계목을 키워내어 부활시켰다 한다

이후, 숱한 선비와 인물들의 사연과 사랑 속에서

540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정당매>

2014년에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다시 고사하고 말았다

 

 

 

 

 

 

 

 

 

 

지난 2014년 새해에

TV뉴스에서 <정당매> 고사 소식을 처음 접하고

결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지만

끝내 그 해 봄부터 꽃을 다시 피우지 않았다

2010년에 처음 내가 단속사 옛터에서 <정당매>를 대면했을 때도

오래 전에 원줄기는 고사하였고

뿌리 곁의 곁가지 하나만 겨우 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고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가던

'친구와 연인같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는데

600년의 유구한 역사와 인연이 한낱 봄밤의 꿈처럼 스러졌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 사람이나 나무나 자연의 섭리를 피해 갈 수는 없지만

준비 없는 이별은 언제나 아쉽고 허망한 법이다

 

640년의 역사를 이어왔던 <정당매>

2014년에 안타깝게도 고사하고 난 이후 산청군청에서

어린 후계목 3그루를 육성하여 정당매 주위에 심어 놓았는데

지금 그 후계목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 후계목들이 성공적으로 자라서

영남을 대표하는 산청3, <정당매>의 영광을 계속 

이어 주기를 응원해 본다

 

 

 

 

 

 

 

 < 단속사지 홍매2 >

 

 

 

 

 

 

산청 단속사지는 지리산 서쪽자락인

웅석봉 남쪽 골짜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절터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탑동마을 일원으로

북쪽의 웅석봉, 서쪽의 마근담봉, 남동쪽의 석대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며

웅석봉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는 계곡의 하류에 해당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자료인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서 석탑과 당간지주가 있으며 와편이 산재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1977, 2006년에 단속사지에 대한 간략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한편 1999년에는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탑 북방 1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건물지 등

일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05년에는 정비방안 마련을 위한 기본 조사의 목적으로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원에 의하여 정밀지표조사가 실시되었다

 

2011년 자료에는 석탑을 중심으로 한 보고가 이루어졌다

단속사지의 사역은 탑동마을 전체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마을과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마을은 동서에 계곡을 끼고 형성된 완만한 경사지에 입지하고 있으며

지형상 남향이다.

 

마을 입구의 당간지주를 시작으로 중심에 석탑이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안에는 정당 강회백이 심었다고 전하는

매화나무와 정당매 비각이 있다.

(글출처 : 문화재청

 

 

 

 

 

 

 

 

 

 

 

 

 

 

 

 

 

 

020. 산청 산천재 <남명매> (2022.03.18.)

 

 

산천재 앞 뜰의 매화나무, <남명매南冥梅>

'산청3' 중의 하나로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이곳에

선생이 61세이던 명종 16(1561)에 산천재를 지으면서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남명매>는 수령 450여 년의 연륜과 역사를 자랑하는 고매로서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 중심 줄기는 뒤틀리면서 하늘을 향해 뻗어 올랐고

연한 분홍빛이 도는 소담한 반겹꽃을 피운다

 

450년 동안 숱한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온 <남명매>

'산청3' 중에서 유일하게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원목이 노쇠하여

2016년에 대대적인 외과수술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나무의 외과수술은

부패부제거 살균처리 살충처리 방부처리 방수 처리 동공 충전

매트 처리 인공나무 껍질, 지주목 설치 등의 순서로 치료과정의 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보통 노거수나 거목의 외과수술은 동공이 크고 가지나 줄기의 상처에 부패가 심하여

부러지거나 갈라질 위험이 많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쇠조임 와이어작업도 함께 설치하게 된다

복잡한 외과수술로 현재 <남명매>의 몸은 성한 곳이 없지만

비교적 잘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산청3'중에서 <원정매> <정당매>는 원목이 결국 고사하고 말았지만

<남명매>는 치료와 보호의 보살핌을 받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春山底處無芳草

봄 산 어디엔들 아름다운 꽃 없겠는가

只愛天王近帝居

내가 여기에 집을 지은 이유는

다만 천왕봉이 하늘에 가까운 걸 사랑해서 라네

白手歸來何物食

빈손으로 돌아 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銀河十里喫有餘

은하수 십 리 맑은 물 먹고도 남겠네 

 

남명 선생이 말년에 산천재에서 쓴 한시이다

지리산 천왕봉의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려 산천재 앞을 흘러가는

은하수 강의 맑은 물만 마시고 선비의 지조를 지키고 살았던

옛주인 남명 선생은 가고 없지만

그 빈 뜰에서 '남명매' 450년 동안이나 은하수 강을 벗 삼아

오늘도 묵묵히 꽃을 피우고 있다

 

 

 

 

 

 

 

 

 

 

산청 시천면의 산천재山天齊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로서

조정에서 내린 벼슬을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실천유학의 대가 남명 선생이 예순 한 살에 둥지를 튼 산청,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 자리에 선생은 산천재를 짓고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나무 한 그루를 뜰에 심고

항상 벗을 삼았다

 

산천재가 있는 현 위치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중산과 삼장으로 나누어 흐르다가 덕천에서 만나는 곳으로

산천재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으며

물 맑은 덕천강이 산천재 앞으로 흐른다

 

조식 선생의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1561)에 세웠고, 순조 18(1818)에 다시 고쳐 지었고

규모는 앞면 2, 옆면 2칸의 아주 단촐한 규모이다

 

남명 선생은 영남의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룬 호남 학파의 수장이다.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지만

죽어서 대사간에 이어 영의정에 추서된 선비이다

선생은 1501(연산7)에 경상도 삼가현에서 태어나

벼슬길에 나아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주했다가

그 후 의령, 김해, 삼가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선생은 61세가 되던 해에,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산청의 덕산으로 이주해 

그곳에 서실을 짓고 산천재라 이름 하였다

 

 산천山天이라는 당호는

<주역> 대축괘大畜卦 강건하고 독실하게 수양해

안으로 덕을 쌓아 밖으로 빛을 드러내서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

말에서 그 뜻을 취한 것으로

강건한 기상과 독실한 자세로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깊숙이 묻혀

심성을 수련하고 올바른 수양을 하는 것이 학자의 길임을 천명한 것이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평생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은둔의 지사, 참 선비의 표상으로서

오늘날에도 존경을 받고 있는 분이다

 

 

 

 

 

 

 

 

 

 

 

 

 

 

 

 

 

 

021. 순천 선암사 <무우전 매화> (2022.03.19.)

 

 

우리나라 '매화의 보물창고'인 선암사 경내에는

최소 수령 350년이 넘는  50여 그루의 고매들이

 전각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중에서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무우전 돌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2007년에 지정되었다

 

특히 무우전 돌담길의 20여 그루의 고매 군락은

우리나라 토종 매화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어느 이른 봄날 그 매화터널에 들어서면

시린 겨울과 속세에서 벗어나 환상적이고 달콤한 봄을 체험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공간이 '무우전 매화길'이다.

 

봄비가 새벽부터 오전내내 줄기차게 내렸던 선암사의

2022년 3월 19일 현재, 개화상황은

무우전 돌담길의 홍매화와 백매화는 상당히 개화가 진행되었고

원통전 담장 옆의 백매와 대웅전 뒷 편의 홍매, 그리고 요사채인 무량수전 홍매는

지금 거의 만개 수준이다

반면, 첨성각 연못 옆의 백매와 공양간인 적묵당 담장의 홍매와 백매,

해천당 담장과 마당의 고매, 그리고 뒤깐 옆과 뒷 편의 매화는 

봄비 속에서 아직 개화초기의 청초하고 앳띤 모습을 보이고 있어

3월 4째 주말쯤에나 만개할 것으로 예측된다

 

 

무우전無憂殿은 선암사 북쪽으로

대웅전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요사채이다

자형으로 전면이 둘러싸여진 무우전의 뒷마당에는

철불이 봉안되어 있는 각황전이 있다

선암사에서 제일 뒷 쪽의 외진 영역에 위치한 무우전은 선방으로 적격인데

지금은 선방 겸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으며

태고종台古宗 종정의 침실이 있다

 

그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무우전 지역이 2020년 부터 처음으로 개방되었다

<무우전 매화>들의 뒷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새로운 앵글과

미지의 종교영역이 열린 것이다

전인미답의 신천지에 들어서는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그 비밀의 정원 구석구석을 렌즈에 담으면서

문득 고마움이 우러나왔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절에

금단의 지역을 일반인에게 개방해준

선암사의 자비와 배려는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선행이자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라고 할 것이다!

 

 

 

 

 

 

 

 

 

 

 

일 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다는 선암사는

예로부터 100종이 넘는 꽃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어서

한국의 정원수들을 총 망라했다는 찬사를 듣는 꽃절로도 유명하다

 

무량수각 앞의 600살 된 누운 소나무,

지장전 위의 영산홍과 자산홍, 칠전차밭의 700살 넘은 차나무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매화나무라고 할 수 있다

 

천년고찰 선암사에는 그 오랜 시간을 전설처럼 함께 살아 온

매화나무들이 있다.

칠전선원과 원통전 사이 그 통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선암백매仙庵白昧

무우전 돌담길 중간쯤의 선암홍매仙庵紅昧 6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로서

선암사의 역사와 그 향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1,500년이 넘은 완숙한 절집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 그루 말고도 많은 고매화들이 살고 있다.

대웅전 뒷 계단에 자리한 수령 450년의 매화와

첨성각 앞의 홍매화는 수령 4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건강한 매실을 생산해 내고 있고,

그 외에도 수령 300년 내외의 매화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선암사의 고매화들은

요즘 우리 주위에 흔한 매화마을의 일본산 개량종이 아니라

우리의 토종매화이다.

개량종의 수명이 수십 년인 데 비하여 토종 매화는 수명이 수백 년에 이르고,

고목의 구부러진 등걸마다 몇 백 년의 세월을 이고 있다

우리나라 토종매화의 특징은 꽃잎은,

일반 매화에 비해 작고 꽃도 듬성듬성 피지만

그 기품과 향은 감히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죽은 듯이 메마른 등걸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그 고아한 멋과

끝을 알 수 없는 그 깊은 향기는

이 세상 모든 꽃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해마다 겨울이면 선암사 쪽만 바라보고 살지만,

그 찬란한 매화의 계절은 결코 길지가 않다

보통 일주일에서 길어야 이주일 정도로 아주 짧아서 금새 찰나처럼 지나간다

짧은 만남, 긴 아쉬움......’이지만

 <선암사 매화>가 있어서 선암사의 겨울은 깊고도 깊고,

그리고 아름답다!



 

 

 

 

 

 

 

 

 

 

 

 

 

 

 

 

 

022. 선암사 원통전 <선암백매> (2022.03.19.)

 

 

천년고찰 선암사에는

그 오랜 시간을 절의 역사와 함께 전설처럼 함께 살아 온

매화나무들이 경내 곳곳에 자리잡고있다.

그 중에서도 칠전선원과 원통전 사이 통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선암백매仙庵白昧와 무우전 돌담길 중간쯤의 선암홍매仙庵紅昧

6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로서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해져 오는데

선암사의 오랜 역사와 세월의 향기를 우리에게 항상 전해준다

 

수령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원통전 <선암백매>

지상 약 5080높이에서 네 개의 큰 줄기가 갈라지면서

다시 서로 교차하여 얽힌 형태의 웅장한 모습이고

8.2m 높이의 큰 키를 자랑한다

우리나라의 매화나무 중 드물게 큰 키로서 아직도 수세가 양호하고

순백색의 작고 우아한 홑꽃을 피운다

 

하지만 원통전 <선암백매>600살이 넘는 고령이다 보니

그동안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 했었는데

다행히도 2020년과 올해는 여태껏 10년정도 내가 지켜본 세월 중에서

가장 화사하고 아름답게 만개 하였다

 

우리나라 '매화의 보고寶庫' 선암사의

명불허전, 원통전 <선암백매>의 자존심을 근래에 들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든든한 마음이다

한때, 왕성한 수세를 자랑하던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최근에 거의 고사했다는 슬픈 소식이 들리는 와중에

<선암백매>'노장 투혼'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일이다

 

 

 

 

 

 

 

 

 

 

 

 

 

 

 

 

 

 

 

 

023. 순천 선암사 <대웅전 매화> (2022.03.19.)

 

 

선암사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매화가 대웅전 바로 뒷편

계단 축대 위의 <대웅전 매화>이다

<대웅전 매화>의 개화 상태를 보고서 선암사 경내의 나머지

<선암매>들의 개화 상태를 미리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되는 매화로서

선암사에서 비교적 일찍 꽃을 피우는 매화이다

 

대웅전은 선암사의 주불전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좌상이 있고 그 뒤로 영산회상도가 모셔져 있다

선암사에는일반 사찰과는 달리 세가지 없는 것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선암사 대웅전에는 정중앙의 어간문이 없다

다른 사찰에서는 어간문으로 사람들이 드나들 수도 있지만,

선암사에서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이 어간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하여

중앙의 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좌측, 우측의 문으로만 대웅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한

독특한 동선구조를 가지고 있다

 

봄비에 젖은 수령 450년 내외의

수형이 당당하고 그 기운이 왕성한 <대웅전 매화>

세찬 봄비 속에서도 <선암사 매화>를 찾아온 탐매객들을 향해

반갑고 환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뒷깐 매화>

 

 

 

<무량수전 매화>

 

 

 

<첨성각 매화>

 

 

 

 

 

 

 

 

 

 

 

 

 

 

024. 화엄사 <홍매화(흑매)> (2022.03.19.)

 

 

조선 숙종 때 화엄사의 장육전이 불탄 자리에

각황전을 다시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선사桂波仙師

이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수령 300년이 훨씬 넘은 아주 짙은 선홍색의 홍매화로

장육화丈六花라는 애초의 이름이 있었지만

특유의 아주 짙은 붉은 색이 검은 빛을 띈다하여 일반적으로 화엄사 

<흑매黑梅>라고 많이 불린다

 

<흑매>는 화엄사와 지리산을 대표하는 명물이지만

천연기념물 485호로 지정된 아주 귀한 매화가 큰절 위쪽의 암자,

길상암 대나무 숲에도 있다

천연기념물 <길상암 야매野梅>

산청 단속사지 들판의 <원리 야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대나무 숲에서 나고 자라서

작고 하얀 꽃을 피우는 400살이 넘은 야생의 들매화로서

현재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국의 유명한 고매화들의 개화시기는

지난 겨울의 추위와 개화 무렵의 날씨에 따라서 상당한 영향을 받기에

해마다 그 개화시기가 들쑥날쑥하기 마련인데

화엄사 <흑매>는 기후에 상관없이 항상 3월 하순에 만개하는

규칙적인 개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매화이다

그런데 경험상으로, 3월 하순 주말에는 비가 오는 날이

상당히 많았다

 

오늘도 새벽부터 봄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오후 들어서 비는 그쳤지만 화엄사가 있는 지리산 계곡에는 우박이 쏟아지고 

산 정상 노고단 부근에는 새하얗게 눈이 내렸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3월 말의 꽃샘 추위와 겨울 못지 않는 시린 칼바람으로 

<흑매> 주변은 큰 혼란에 빠졌다

<흑매> 앞에서 매화 사진 콘테스트 개회식과 음악회를 준비 중이던 화엄사는

부랴부랴 행사 장소를 실내로 옮겼고

항상 붐볐던 탐매객들도 서둘러 매화 앞을 떠났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삼각대를 접고,

<길상암 야매野梅>를 보러가려던 계획마저 취소하고

자동차 속에서 언 손을 녹일 수 밖에 없었다

 

2022년 3월 19일(토) 현재,

 화엄사 <흑매>의 개화율은 50% 수준을 넘어섰고

3월 넷째 주말쯤에는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화엄사를 나오면서 뒤돌아보니,

저멀리 뒷산 노고단이 흰 눈으로 덮혔고

봄을 시샘하는 마지막 비바람에 떨고 있는 화엄사 <흑매>의 

매혹적이면서도 고혹적인 그 선홍색 빛깔이

비안개 속에서 더욱 선명하다

그래서 더 애잔하다

 

 

 

 

 

 

 

 

 

 

 

 

지난 해, 불교계는 물론 전국에 홍매화 붐을 일게 한 화엄사 홍매화·들매화 사진 콘테스트는 코로나19와 경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 특별이벤트로 작용했다. 이에 화엄사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매년 홍매화·들매화 사진콘테스트를 연중행사로 정례화 할 것을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은 밝혔다.

 

화엄의 역사 공간에서 화엄 천년의 공간 향기에 취하다이라는 부제로 여는 2022홍매화·들매화 프로사진 및 휴대폰카메라 사진 콘테스트는 원년의 주제, ‘천년도량 그곳에서 홍매화와 노닐다.’에서 한 발 나아가 내딛은 주제로서 지난해의 첫 경험을 뛰어 넘은 행사로 기획하였다. 하여, 올해는 휴대폰 사진에서 나아가 전문 사진작가 콘테스트로 분야를 넓혀 시행하는 것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2022 홍매화 ·들매화 전문 사진 작가 및 휴대폰 카메라 사진 콘테스트로 분야를 나누게 되는 이번 사진 콘테스트는 촬영기간을 오는 310()에서 27()18일간 촬영하여 접수를 하게 된다. 프로 사진작가들의 경우, DSLR, DSLT 사진을 화엄사 홈페이지에 접수창에 업로드하면 되고, 휴대폰 카메라 사진은 지난해와 동일하게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화엄사 홈페이지 사진 접수창을 통해 업로드하면 된다.

 

출품은 개인당 1작품이다. 출품된 작품의 소유권은 화엄사와 구례군이 공동으로 가진다. 상을 받은 작품 중 선택된 작품은 화엄사와 구례군 홍보 책자 및 2023년 달력에 게제 될 예정이다

(글출처 : NDK남도경제신문)



 

 

 

 

 

 

 

 

 

 

 

 

 

 

 

 

 

025. 구례 운조루 <위매> (2022.03.19.)

 

 

'남한의 3대 명당중 하나'라고 알려진 구례 구만들 평야에

인근 지역의 낙안군수를 지냈던 유이주 선생이 약 250년전에 지은

명품 한옥이 '운조루雲鳥樓'이다

 

그 창건주 유이주 선생은 조선시대의 무장으로서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위魏나라에 들러서

두 번 꽃을 피운다는 유성류 나무와 매화 1그루(위매魏梅)를 가져와서

사랑채마당에 심었다고 한다

 

현재, <위매>의 원목은 고사하고 그루터기만 남아 있지만

뿌리 곁의 곁가지 하나가 살아남아 이젠 터를 잡고 호기롭게 만개하였다

비교적 꽃을 일찍 피우는 백색의 겹꽃 매화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문가의 쇠락한 뜨락에서 오늘도

'운조루의 영광과 정신'을 말해주고 있다

 

 

 

 

 

 

 

 

 

 

 

 

 

 

구례   운조루 雲鳥樓

 

 

 지리산 노고단이 형제봉을 타고 내려오다가 섬진강 줄기와 만나서 만들어낸 기름진 평야를 가진 구례는, 사방으로 험준한 산들이 병풍처럼 마을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늑한 산간분지에 자리를 잡은 천혜의 삶의 터전으로서, 이중환의「택리지」에서 ‘나라 안에서 가장 살만한 곳’으로 꼽았을 정도로 지리적 혜택이 뛰어난 고장이다. 

 

 구례 시내에서 경남 하동 쪽으로 섬진강을 따라 19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토지면 오미리의 넓은 들, 구만들을 만난다. 이 구만들 일대는 금환락지金環落地, 곧 풍요와 부귀영화가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명당으로서 남한의 3대 길지吉地중 하나라 알려져 왔다. 그래서 구례를 이야기하자면 풍수지리사상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

옛 지사地士들은 한반도를 절세의 미인 형국으로 보았고, 지리산이 자리 잡은 구례 땅은 그 미녀가 무릎을 꿇고 앉으려는 자세에서 옥음玉陰에 해당하는 곳이라 했다. 그리고 그 미녀가 성행위를 하기 직전 금가락지를 풀어 놓았는데 그곳이 명혈名穴이 되어 금환락지라는 것이다.

 혹자는 지리산의 선녀가 노고단에서 섬진강에 엎드려 머리를 감으려다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이 바로 구만들 일대라고도 하였다.

 

 누구나 명당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이곳에, 영조임금 때 낙안군수를 지낸 삼수공 유이주 선생이 운조루雲鳥樓를 7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창건하였다. 삼수공은 남한산성 보수와 수원 화성 축조에 관여할 정도로 건축에 능통했던 무관인데,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 건설할 때, 성을 튼튼하게 쌓으면 되지 왜 이렇게 아름답게 쌓느냐고 신하들이 물으니, 정조임금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이 능히 적을 물리칠  수 있느니라!” 라고.

''''''

 

(글 출처 : blog.daum.net/arky7/2023)

 

 

 

 

 

 

 

 

 

 

 

 

 

 

 

 

 

 

 

026. 밀양 <금시매> (2022.03.20.)

 

 

밀양의 금시당과 벽곡재 앞뜰에는

수령 210년의 매화 <금시매今是梅> 수령 450년의 은행나무

그리고 마당에는 100년 넘은 백송이 있다

이광진 선생이 금시당 신축시 직접 심은 은행나무는

수고 22m, 나무둘레 5.1m의 거목으로

밀양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주변의 인기 높은 달성 도동서원의 은행나무와

경주 운곡서원의 은행나무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품격과 자태를 지녔다고 말 할 수 있다

 

<금시매>는 금시당과 벽곡재의 중간지점인 2단 화계의 

가장자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

어느 쪽에도 지우치지 않는 중용의 위치에 절묘하게 자리를 잡아서

양쪽 마당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시매>의 수령은 여태껏 160년 정도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 금시당을 방문한 수목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210년 정도가 올바른 나이라고

바로 잡아 주었다고 주인어른께서 귀뜸해 주신 적이 있었다

금시당의 주인어른은 여주 이씨 후손으로

대도시에서 생활하다가 4년 전쯤에 귀향해서 금시당과 벽곡재를 관리하면서

방문객들에게 여러 도움을 제공해 주고 계신다

 

옛날에 주인어른이 금시당으로 귀향하시기 전에는

항상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기에, 담장 너머로만 <금시매>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주인어른의 배려로 방문이 자유로워진 것은 상당히 고마운 일이고

감사드려야 할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이 귀찮을 법도 한데

친절하게 맞아 주시는 주인어른의 모습에서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명문가의 높은 선비정신을

뵐 때마다 느끼곤 한다

 

그래서 밀양의 <금시당>

밀양강에 살포시 내려앉은 <금시매>의 달달한 향기뿐만 아니라

손님을 접대하던 접빈객接賓客의 선비의 품격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인문학의 산 교육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3월 6일에 사전답사를 왔을 때는 

전혀 꽃망울을 열지 못하고 <금시매>는 아직 꿈 속에 잠겨 있었는데

2주만에 활짝 만개하였고, 어제 내린 비로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밀양의 산성산이

밀양강을 향해 흘러내리다 웅지를 튼 백곡계곡 언덕위에

금시당과 백곡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대규모로 숲을 이룬 깊은 골짜기로서 백곡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뒤로는 산성산 일자봉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용두산龍頭山 능선이 내려가고

왼쪽으로는 호두산虎頭山 능선이 내려가는 요지로서

금시당과 백곡재는 용과 호랑이의 꼬리가 맞닿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금시당은 조선시대 문신인 금시당 이광진 선생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로서

금시당今是堂이란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내용 중

覺今是而昨非 중에서 今是를 취한 것이라 한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늘은 잘한 일이요

벼슬살이에 얽매였던 지난날은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의미로서

산수와 전원에서 여생을 즐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명종 21(1566)에 처음 지어졌던 금시당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3년에 백곡 이지운 선생이 다시 복원한 건물이고

금시당 옆의 백곡재는 백곡 이지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 철종 11년(1860) 

후손들에 의해서 세워진 건물이다.

금시당과 백곡재는 건축양식 및 규모까지 대체로 동일한데

온돌방과 마루의 배치가 반대 방향으로 자리 잡은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027. 통도사 <오향매> (2022.03.26.)

 

 

2019 2월에 통도사 <자장매>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오향매>를 처음 발견했었다

다섯 갈래의 우람한 고목에 아직 채 꽃망울도 달리지 않은 나목이었기에

아래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지리산 골짜기에서 옮겨온 통도사의 새로운 식구,

매화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그윽한 매화향이

부처님께 향 사르며 예배하는 성불을 향한 수행자의 향기, 

1) 수행자가 계율(戒律)을 잘 지키는 향기(戒香)

2) 수행자가 마음을 쉬게 하는 향기(定香)

3) 수행자의 마음에 걸림이 없는 향기(蕙香:혜향)

4) 마음을 뛰어 넘는 향기(解脫香)

5) 수행자의 마음에 나와 남의 구별이 없는 향기(解脫知見) 

다섯 가지의 향기를 닮았다 하여 오향매라고

주지스님이 지었다

 

지리산 남녘 깊은 골짜기에서 자생한 이 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고매이다

여러 귀한 인연으로 통도사에 뿌리 내리고

순백색의 꽃을 피워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공양하고

영축총림의 일원으로

당당히 도량의 주인이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개말이다

그리고 품위와 격조가 있으면서도 정이 묻어나는

주지스님의 환영사라고 할 수 있겠다

 

 

 

 

 

 

 

 

 

 

 

 

<오향매>의 등장으로 인해

영각影閣 앞의 마당은 통도사의 매화 정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영각 바로 앞에 통도사의 스타, <자장매>가 턱 버티고 서 있고, <자장매>의 맞은 편, 

천자각과 영산전의 측면 모서리에 <오향매>가 새로 자리를 틀었다

그리고 <오향매> 앞뒤로 젊은 청매 4그루가 호위를 하며

울을 만든 모양새이다

다만, 영각과 영산전으로 이루어진 이 환상적인 정원

대웅전과 종무소 쪽으로의 통과동선으로 인해서 가끔 분위기를 깨는 것은

‘매화 정원’의 아쉬운 점이다

 

영각影閣은 역대 주지 및 큰스님들의 진영을 봉안한 건물로

정면 8칸 측면 3칸의 긴 장방형 평면으로 된 팔작집이다

현재의 건물은 1704(숙종 30)에 다시 지었고

처음에는 영자전이라 불리다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탄 후에 다시 복원하기 위하여 건물 상량식을 마쳤더니

전각 앞에 <자장매>가 저절로 돋아났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영산전靈山殿의 영산靈山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한 영취산의 준말이다

후불탱화는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정경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고

그 주위에 여덟 폭의 팔상도八相圖를 배치하였다

팔상도는 석가모니 생애를 여덟으로 나누어 묘사한 불화이다

이와 같이 팔상도를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영산전靈山殿

팔상전(八相殿, 捌相殿)이라고도 한다

천자각은 학승들을 가르치는 강원(승가대학) 겸 기숙사 건물로 쓰이며

황화각이라고도 한다

 

<자장매>가 지기 시작하면 <오향매>가 피기 시작한다

한반도의 봄을 연 <자장매>가 질 무렵이면 항상 아쉬움이 앞서지만

그때쯤부터 <오향매>가 피기 시작한다는 것은

또다른 희망이기도하다



 

 

 

 

 

 

 

 

 

순천 승주의 선암사를 '꽃절'이라고 칭송하는데

3월 초순 매화가 피는 시절의 통도사도 그에 못지않다고 말 할 수 있다

사찰 경내 곳곳 요소요소에 매화가 피지 않은 곳이 없고

선방 앞에도 화사한 매화 한 그루씩은 꼭 있다

 

통도사 <자장매>는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대표적인 매화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UN기념공원의 홍매화가 피고나면

1~2주 후에는 <자장매>도 뒤따라 피어서

'한반도의 공식적인 봄'을 알린다

그러나 올해는 2월 달에 늦추위가 한동안 맹위를 떨치면서

개화시기가 2주 정도 늦어지고 냉해를 입고 말았다

더군다나 유래없는 봄가뭄마저 겹쳐서, 꽃잎이 제대로 달리지도 못했다

특히 <자장매>는 꽃잎이 아주 성글게 달리고, 그마저 일찍 시들어서

<자장매>의 화사하고 우아한 자태를 기대했던 관람객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제, 봄이 깊었다

<영축매> <통도매>를 비롯하여

일주문 옆의 <수양매>와 영산전 옆의 <청매>들은 이미 모두 졌고

<육화당 백매>와 <오향매>도 남은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바야흐로, 통도사의 봄이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028. 통도사 <육화당 백매> (2022.0326.)

 

 

통도사의 입구, 일주문 우측의 육화당은

원래 입적하신 월하스님의 유품을 전시하던 노천유물관으로 사용되었고

그 후 통도사의 종무행정 일체를 관장하는 사무기능을 지닌

종무소로 운영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도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불교대학과 템플스테이 등 신도교육의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통도사는 세 가람이 합쳐진 대사찰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상로전,

통도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한 중로전,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하로전으로 구분한다

646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뒤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중건·중수되면서 규모가 계속해서 커졌기 때문인데

육화당은 하로전의 입구에 속한다

 

육화당이 종무소로 이용되던 시절에는

대문이 항상 굳게 잠겨 있어서 내부를 볼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2020년부터 빗장이 풀리기 시작한 것 같다

대문 오른쪽에 물고기 그림의 돌로 만든 수조가 놓여 있고

그 뒤쪽 담장 곁에 <육화당 백매>가 있다

 

 

 

 

 

 

 

 

 

<육화당 백매 >에 대해서는 자료가 전혀 없어서

매화의 내력이나 수명 등 이력을 알기가 어렵다

 

몸통에 큰 상처가 남아 있는 <육화당 백매>는

수령 200년 내외의 고매로 보이고

3~4년 전쯤, <오향매>와 비슷한 시기에 육화당 담장 곁으로

옮겨 심은 것으로 짐작해 본다

 

그리고 육화당 담장 곁으로 매화를 새로 심은 깊은 뜻은

일주문 앞의 <수양매>로 부터 시작하여

<통도매>, <영취매>로 이어지는 '통도사 매화길'을 이어주는 중간 지점에

징검다리를 만들어 이어주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또 나름 짐작해 본다

 

아무튼, 통도사 산문 입구에서

담장 너머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 미소 짓는 <육화당 백매>는

아주 투명하고 흰 백색의 예쁜 꽃을 피우고

조용히 지고 있었다

 

 

 

 

 

 

 

 

 

 

 

 

 

 

 

 

 

 

 

 

028. 장성 백양사 <고불매> (2022.03.27.)

 

 

백양사 스님들은 1700년경부터

현재의 절에서 북쪽으로 100m쯤 떨어진 옛 백양사 앞뜰에다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고 한다

1863년 경 백양사가 큰 홍수를 만나

 대웅전 등 주요 건물들이 피해를 입자 절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짓기로 결정하고

스님들은 아껴오던 매화나무들 중에서 모양새가 좋은

홍매와 백매 각 한 그루씩을 옮겨 심었으나 백매는 오래지 않아 죽고 

홍매만 살아남아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고불매古佛梅>라는 명칭은

부처의 원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서, 1947년에  '고불총림'이 결성되면서

홍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왜색 불교의 잔상이 선명하던 1940년대 말의 백양사는

부처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백양사 고불총림을 결성했는데

고불古佛 '부처 원래의 모습',

고불총림古佛叢林은 옛 큰스님들이 모인 도량을 뜻한다

그 뒤, <고불매>는 역사성과 학술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2007년 천연기념물 제 486호로 지정되었다

 

백암산의 백학봉과 잘 어우러진 <고불매>

담홍색 꽃이 피는 매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태와 기품을 지녔고,

선암사의 <선암매>, 전남대의 <대명매>,

담양 지곡리의 <계당매溪堂梅>, 소록도의 <수양매垂楊梅>

더불어 호남5湖南五梅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우화루雨花樓 옆 담장에 기대 선 <고불매>

수령이 360, 높이 5.3m, 뿌리목 줄기둘레가 1.5m 정도이고,

땅위 70cm쯤에서 줄기가 셋으로 갈라져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단정하게 가지가 뻗고 모양도 깔끔하여

고목의 기품과 포스가 살아있다

백양사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고불매> 앞에 상을 차리고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며 막걸리를 공양하고

독송을 해 오고 있다 

 

2022년 3월 27일(일) 현재,

백양사 <고불매>의 개화상태는 약 60% 정도 진행되었고

3월 말쯤에 완전히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의 <고불매>  탐매여행기 중 일부이다

 

고불매가 모두 져 버렸다

며칠 전에 만개했다는 정보를 분명히 확인하고 왔는데

이틀 동안 세차게 내린 비 때문에 꽃잎이 모두 떨어져버린 것이다

평소에 <고불매> 주위에 그 많던 관광객들이 없으니

오히려 편리한 점도 있다고 느끼며 촬영 중인데

지나가던 스님이 한마디 하신다

 

"이미 꽃이 져 버렸는데 사진은 뭐하러 찍누?"

"꽃이 져서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기만 하네요......"

 

같이 갔던 일행의 이미 해탈한 대답이다

일행은 꽃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해마다 <고불매>를 만나러 백양사로 간 것이었다

벌써 꽃은 져도 <고불매>의 품격과 향기는 친구처럼 애인처럼

항상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이리라!

이미 '탐매의 도'를 터득한 것 같은 일행을

나는 놀랍고도 부러운 심정으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2019. 04. 06.)“

 

 

 

 

 

 

 

 

 

 

 

 

백양사는 대웅전과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백학봉의 암벽 및 식생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꼽혀왔을 만큼 이름난 곳이다

백양사가 위치한 백암산은 내장산과 함께 단풍이 특히 유명하며,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를 비롯하여 

1,500여종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자원의 보고라 할 만하다

 

백양사는 창건 역사를 전하는

정도전의 <정토사교루기>를 비롯하여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면앙정 송순 등

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곳을 탐방하여

백학봉과 쌍계루의 풍광을 읊은 시와 기문을 남기는 등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명승지이다.

특히, 백양사 대웅전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는 백학봉과 쌍계루 앞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백학봉의 자태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

지금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글출처; 문화재청)

 

 

 

 

 

 

 

 

 

 

 

 

 

 

 

 

 

030. 광주 <전남대 홍매(대명매)> (2022.03.27.)

 

 

전남대학교 광주 용봉캠퍼스

  대강당 앞에 있는 수령 400년 내외의 홍매이다

 

1621년, 고경명 장군의 손자인 월봉 고부천 선생이

조선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희종황제로부터 홍매 1그루를 증정 받아서

고향인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심고 <대명매大明梅>라 불렀다

  그 뒤, 선생의 11대 손자인 고재천 선생이 전남대학교 농과대학장 재직시에 

전남대학교 광주 용봉캠퍼스에 옮겨 심은 것이라 한다

원래, 1952년에 농과대학에 기증, 식재하였다가

 1976년에 다시 대강당 앞,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대명매大明梅란 매화나무 품종 중의 하나로서

일반적으로 꽃잎이 홑겹이며 붉은빛을 띤 품종을 말하나

<전남대 홍매(대명매)>는 부드러운 연분홍 빛의 겹꽃을 가진 겹홍매로서

자태가 당당하고,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매혹적인

5湖南五梅 중의 하나이다    

 

오전에 <고불매>를 보러 백양사를 갔었는데

그기서 <전남대 홍매(대명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관광객의 정보에 의하면, 오늘 아침에 <전남대 홍매>를 보고 왔는데 

현재 만개한 상태로 감상하기에 아주 적절한 때라는 것이었다

원래,  <고불매>와 <전남대 홍매>의 개화시기는

약 2주정도 차이가 있어서, 평소에 동시에 감상하기는 어려운 일인데 

<전남대 홍매>가 아직 지지 않았다는 반가운 소식에

예정에도 없었던 <전남대 홍매>를 2년 만에 보러 오게 되었다

 

2022년 3월 27일(일) 현재, <전남대 홍매(대명매)>는

코 끝을 간지러는 살짝 이는 미풍에도 꽃잎을 우수수 떨구기 시작하였고

활짝 만개한 후, 꽃잎이 시들기 시작하는 상태로서,

4월달에 방문하면 늦을 것으로 보인다

 

 

 

 

 

 

 

 

 

 

 

 

 

전남대 홍매 명명식

 

 

전남대학교가 개교 70주년과 전남대 홍매 식재 70주년을 기념해

2022년 3 24 전남대 홍매 명명식을 가졌다.

 

정성택 전남대 총장과 한은미 교수회장, 학생대표 등이 참석한 이날 명명식은

민주마루 앞 홍매가 분홍빛 자태를 뽐내며 만개한 가운데,

명판 제막·홍매 나무 가꾸기 행사 등으로 진행됐다.

 

전남대는 지난 2020년 기존 `대명매(大明梅)‘란 이름을

전남대 홍매(紅梅)’로 바로잡은 바 있으나 두 명칭이 여전히 혼용됨에 따라,

홍매 식재(기증) 70주년을 기념하는 전남대 홍매 명명식을 통해

이를 공식명칭으로 널리 알리기로 했다.

더불어 전남대 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도

이를 계기로 본격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전남대 홍매 1621년 월봉 고부천 선생이 명나라에 특사로 갔을 때,

희종황제로부터 한 그루를 증정받아 고향인 담양군에 심어 길렀고,

그의 11대 손자인 고재천 교수가 1918년 취목으로 분주해 키우던 것을

농과대학장에 재직하면서 1972년 대학에 기증해 1

976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대명매(大明梅)’는 조선시대 당시 대국인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존귀한 나무라는 의미로 사대주의 색체가 강하고,

1621년 당시의 대명매가 아니라는 지적에 있어 왔다.

 

한편, 전남대 농업실습교육원은 전남대 홍매의 체계적 보존을 위해

유전형질을 그대로 이어받는 무성번식을 통해 개체 수를 대량 증식하고,

홍매 꽃차도 만들어 선보이는 등 전남대학교 대표 브랜드로

육성해 나갈 방침이다.

(글 출처 : 광주in )

 

 

 

 

 

 

 

 

 

 

 

 

 

 

 

 

 

 

 

 

031. 안동 하회마을 <서애매> (2022.04.02.)

 

 

경상북도에서 매화를 시화나 군화로 지정한 지자체가

안동시와 칠곡군, 울진군이고, 특히 안동은 '경북 2매'가 있는 이름 난 매화의 고장이다

경북지역을 대표하는 매화인 '경북 2매'는

안동 도산서원의 <도산매陶山梅>와 하회마을의 <서애매西厓梅>를 말 하는데,

도산서원에 있던 <도산매>는 아쉽게도 1980년대에 고사했지만

 하회마을에 있는 서애 류성룡 선생 종가집 충효당의 <서애매西厓梅> 

 '경북 2매'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류성룡 선생의 불천위 사당 앞, 정원에 있는 <서애매>

수령이 250년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뿌리에서 70cm 높이에서 5개의 줄기로 갈라진 모습으로

수고가 약 7M, 수폭이 10M에 달하는 우람하고 의젓한 자태를 자랑하며

부드럽고 옅은 빛의 분홍색을 띄는 겹꽃을 가진 홍매화이다

 

<서애매>는 본래 1950년 무렵에, 서애 선생의 13대손이 

대구의 문씨 문중에서 하회마을의 충효당으로 옮겨 온 것이라고 전해지며,

류성룡 선생의 유지를 기리는 유물관인 영모각詠慕閣과, 불천위 사당 중간 지점인

후원에서 충효당의 역사와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2019년 3월 하순의 늦은 오후에,

대문이 닫히는 충효당을 방문하여 <서애매>의 만개한 모습을 얼핏 보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병산서원의 쌍매를  보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갔던 그날 이후,

3년 만에 여유를 가지고 다시 찾았다

충효당 후원에는 백목련과 노란 산수유가 만발하였고

2022년 4월 2일(토) 현재, 

<서애매>는 화사하게 만개한 후에 서서히 지고 있었다

 

 

 

 

 

 

 

 

 

 

 

 

충효당은, 양진당에서 건너다보이는 서향한 터에 자리 잡고 있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가집이다 

난세의 충신, 서애 선생은 40여 년 동안의 관직생활을 마치고 말년에 고향, 

하회마을로 돌아 왔다

러나 청백리였던 선생은 변변한 집하나 없이 살다가 서미동의 초가삼간(弄丸齋)에서 돌아가셨다

그 후 선생의 손자인 류원지 선생이 선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서, 

유림과 제자들의 도움으로 먼저 안채를 신축하였고, 증손인 류의하 선생이 사랑채를,

8대손 류상조 선생이 행랑채를 완성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다

 

선생은 임진왜란중 자신이 몸소 체험한 참혹한 전란의 실상과 아픔을 글로 남겨서, 

후손들이 또다시 전철을 밟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남은 여생을 다 바쳐서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하였다.

징비란 말은 지난날을 경계하고(懲) 후에 근심이 있을까 삼간다(毖)는 뜻이다

그러나 노정승의 노력도 헛되이, 삼백년 후 또 다시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이번에는 막아내지도 못하고 36년간 그들의 속국이 되는 치욕을 당했다

죽어서까지 나라를 염려하고, 조국을 지키고자 했던 선생의 염원은 우리 후손들의 불찰로, 

먼지와 함께 책속에 뭍히고 말았다

 

 

 

 

 

 

 

 

 

 

 

서애 선생은, 부용대 아래, 옥연정사에서 징비록을 마무리하고 

66세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집안에 장례비조차 없었다 한다

그의 제자 우복 정경세 선생은 중국의 검소한 재상 제갈량도 고향에 뽕나무 800그루는 있었건만

선생님은 아무것도 없구나!” 하고 선생의 청빈함에 감탄하였다 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난세에 태어나 온몸으로 나라를 지켜 낸 영웅이었지만, 

후대의 평가는 훨씬 미흡하고, 선생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신 뒤, 문충공文忠公의 시호를 하사받았고, 하회마을 뒷산, 

병산서원屛山書院에 배향되셨다.

 

 

옥연정사에서 서애 선생이 말년에 쓴 시이다.

 

細雨春江上(세우춘강상) : 봄되어 강위엔 보슬비 내리고

 

前山淡將夕(전산담장석) : 앞산엔 그윽하게 저녁노을 지는데

 

不見意中人(불견의중인) : 마음에 그리는 사람은 볼길 없고

 

梅花自開落(매화자개락) : 매화만 홀로 피었다 지고있네

 

 

 

 

 

 

 

 

 

 

 

 

 

 

 

 

 

 

032. 안동 병산서원 <병산 백매> (2022.04.02.)

 

 

안동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 선생을 모시는 서원으로

서원 앞에, 모양이 꼭 병풍을 둘러친 듯하여 병산屛山으로 불리는 산이 있어

 그 이름을 따왔고, 임금으로 부터 편액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다

 

서애 선생 생전에, 시내에 있던 풍악서당을 1572년에

지금의 병산으로 옮겨 병산서당이라 하였다

그 후, 1607년 서애 선생이 돌아가시자,

정경세를 비롯한 지방 유림들이 서애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13년에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서애 선생의 위패를 봉안했다

1614년에 병산서원으로 이름을 고쳤고,

1863년 철종으로부터 병산서원 편액을 하사 받았다

 

병산서원 전면에 있는 만대루晩對樓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정면 7,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유생들의 휴식과 강학의 공간이다

병산서원 안에 있는 입교당立敎堂은 강당으로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로서 병산서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그리고 책을 인쇄할 때 쓰이는 목판을 보관한 장판각,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 등이

병산서원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선비의 중심 공간인 강당마당의 좌우로 

동재 앞에는 홍매화가, 서재 앞에는 백매화가 1그루씩 자리잡고 있어

각각 선비의 표상이 되었다

 

 

 

 

 

 

 

 

 

 

 

 

 

안동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고 제향하는 곳이자

한국 전통건축의 진수로 꼽히는 명품 공간이다

그래서 2019년에 전국의 서원 8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21년 초에는 강학공간인 만대루가 보물로 지정되는

경사가 있었다

 

서애 선생을 추모하고 인간의 도리를 공부하는 

그 선비의 공간 중심에 백매와 홍매 한 쌍의 매화나무가

강당마당에 좌우로 자리잡고 있다

 

유생들이 숙식하며 공부했던

동재 앞에는 <병산 홍매>가, 서재 앞에는 <병산 백매>가 1그루씩 있어서

각각 선비의 벗이자 지표가 되었다

언제부터 그 곳에 있었는 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매화만이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영광된 자리일 것이다

 

    진입하는 방향에서 보면 좌측에 있는 <병산 백매>의 수령은

 110년생 정도로 알려져 있다

개화시기는 항상 <병산 백매>가 <병산 홍매>보다 약 10일 정도 일찍 피고

홍매가 피기 시작하면 언제나 백매는 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병산 백매>와 <병산 홍매>를 동시에 감상하기는 어렵

2022년 4월 2일(토) 현재, 

<병산 홍매>는 지금이 한창인데,

<병산 백매>는 만개 후에, 꽃잎이 많이 졌다

 

 

 

 

 

 

 

 

 

 

 

 

 

 

 병산서원 <달팽이뒷간 청매>

 

 

병산서원 밖의 서원 관리사인 고직사 앞에는

'달팽이 뒷간'이 있다

흙으로 쌓은 돌담의 시작 부분을

끝 부분이 가리워지도록 전체를 둥글게 감싸고 입구만 터 놓았는데

그 모양새에서 화장실 이름을 땄다

 

출입문이 없어도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고려된 구조로서

지붕을 없애고 지붕 대신 한 평 하늘을 들였고

문 대신 서원 뜰 한 자락을 들였다

 

 '달팽이 뒷간'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머슴뒷간'으로서

400여년 전 서원 건물과 함께 지어졌으며 병산서원의 부속건물로

근래에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이 곳에 서원을 세운 선비들은

병산과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재치와 해학이 넘치는 모양의

이 뒷간을 짓고, 그 옆에 향기로운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구비구비 흘러 온 낙동강을 배경삼아

화장실 앞에 절묘하게 자리잡은  <달팽이뒷간 청매> 

수령이 약 50년 내외로 보이고

푸른 꽃받침에 하얀 꽃을 피우는 키가 늘씬한 청매로서

수세가 왕성하고 청초한 푸른 빛을 띤다

 

 

 

 

 

 

 

 

 

 

 

 

 

 

 

 

 

 

 

 

033. 안동 병산서원 <병산 홍매> (2022.04.02.)

 

 

안동 하회마을을 감싸안고 있는

화산花山의 뒤쪽, 낙동강변에 자리잡은 병산서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물로 한국건축사의 백미로 꼽힌다

자연환경에 대한 대응방법, 공간의 구성과 흐름이

탁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이고,

서원의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존덕사에는 서애 선생과

셋째아들 류진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서애 선생을 추모하고 인간의 도리를 공부하는

그 선비의 공간 중심에 백매와 홍매 한 쌍의 매화나무가

강당마당에 좌우로 자리잡고 있다

 

진입하는 방향에서 보면 우측에 있는 <병산 홍매>의 수령은

110년 정도로 알려져 있고 <병산 백매>와 비슷하다

나무 높이는 2.5m로서 <병산 백매>보다 <병산 홍매>가 조금 더 크고 수세도 풍성하다

꽃은 연한 분홍 빛인데 활짝 피면 백색에 가까워진다

개화시기는 <병산 홍매><병산 백매>보다 약 10일 정도 늦게 피고

홍매가 피기 시작하면 언제나 백매는 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병산 백매><병산 홍매>를 동시에 감상하기는 어렵다

 

202242() 현재,

<병산 백매>는 만개 후에, 꽃잎이 많이 졌지만

<병산 홍매>는 지금이 한창으로서 만개 직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올해의 봄가뭄 탓인지 꽃이 너무 성글게 달려서, 예년처럼

화사한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승효상의 전통 건축 이야기(3) - 병산서원

 

 

 

자연에 순응하는 공간의 아름다움

 

 

서양 집들과 우리의 옛집이 다른 점 가운데 중요한 것은 자연을 대하는 방법이다.

공간 배치에 관해 이야기하면 대체로 서양의 집들은 내부지향형이다.

방들은 거의 반드시 복도를 통해서 접속되어 있고 대개 중복도여서 겹방이 많다.

중요한 방은 바깥과 직접 연결되는 곳 없이 집안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는데 그 방은 필경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사용하는 곳이며 둘러싸인 겹이 많을수록 세력가의 집이다.

바로 외부나 자연은 나를 해칠 수 있는 적이라는 생각 때문일 게다.

 

그들에게 자연은 정복하기 위한 대상이고 건축은 외부로부터의 은신처(shelter)일 뿐이어서, 자연과 적대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건축 개념이 그들 건축 역사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옛 건축을 보면 대개 방 자체가 홑겹으로 그냥 자연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방의 집합도 복도를

통하여 접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과 직접 연속되거나 바깥을 통하여 연결된다. 대청이나 툇마루 같은 공간은 내부인지

외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깥의 자연에 노출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자연 속에 집이 던져져 있는 모습이다.

이는 우리의 선조들에게 자연은 결단코 정복 대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하는 가치이며 어떤 경우에는 섬김의

대상이었으므로 자연의 섭리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었다.

따라서 집은 다분히 외부 지향적이며 앞산과 뒷산을 연결해 주는 매개적 역할을 할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집 자체의 모양에 대한 관심이 있을 수 없고 공간의 배열이 더 큰 과제였다.

우리의 옛집들을 생각하면 하나같이 그 생김이 다 똑같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전부가 기와집 아니면 초가이며 목조의 구조에 회벽이나 한지를 발라 마감한 것이니 무어가 다르겠는가. 그러나 이는

건축을 시지각 대상으로만 보는 과오의 결과이다.

 

우리의 옛 건축은 자연과 외부를 어떻게 건축 공간화 시키는가에 있으므로 그 건축이 앉은 장소에 따라 다 다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공간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우리 건축이 갖는 지적 감성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하회마을의 끝자락에 있는 병산서원은 단연 선두에 있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명재상이었던 서애 유성룡(1542~1607)을 모시는 사액서원이다. 그는 의성 김씨 대종가를

지은 학봉 김성일과 함께 퇴계의 수제자로 성리학의 대가요 징비록을 지은 대학자였다. 또한 24세에 관직에 나가 49세에 우의정에 오르고 이조판서·병조판서를 겸임한 당대 최고의 세도가였으니 풍산 유씨의 중흥자이다.

 

 

 

 

 

 

 

 

 

 

 

서애 유성룡 모시는 사액서원

 

 

퇴계의 후계자로서 서애와 학봉이 그 서열을 다투는 바람에 서애는 호계서원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고,

1572년 풍악서당에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서당을 1607년에 중건하고 후예들이 1614년에 서애의 위패를 모심으로써 병산서원의 칭호를 갖게 되었다.

권력과 더욱 밀착했던 호계서원이 당쟁의 중심이 되어 대원군 때 급기야 서원 철폐령의 대상에 올라 없어진 반면, 

병산서원은 다소 세력권에서 밀려나 있었던 까닭에 건축적으로 오히려 내실화되고 오늘날까지 건재하기에 이른다.

 

병산서원은 지리적으로 안동 시내와는 물론 하회마을과도 절벽 같은 너들대벽을 두고 떨어져 있는 곳이다. 

남쪽에 병산이 우뚝 솟아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밑으로 낙동강의 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고요한 곳이다. 따라서

공부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며 오로지 자연과 마주하는 삶을 살게 되는 곳이다.

 

병산서원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가르치고 배우는 곳인 강의동과 서애 유성룡의 위패를 모신 사당 부분 그리고 하인들이 머물면서 전체의 관리와 서비스를 담당하는 주소(廚所)가 그것이다.

물론 전체는 각 부분이 수행하는 기능에 맞는 규모를 유지하며 전체적으로 지형에 순응하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의 관심은 강의동 건축이 구성하는 공간의 아름다움이다.

강의동은 네 개의 건물로 이루어지는데 맨 위에 강의를 하는 입교당(立敎堂), 그 앞에 좌우로 학생들이 기거하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그리고 남쪽 아래에 누각인 만대루(晩對樓)가 있어 50~60평 정도 크기의 가운데 마당을

감싸고 있다.

밖에서 보면 중첩된 기와지붕이 만드는 풍모가 경사진 지형과 잘 어울려 있지만 가만히 보면 만대루라는 누각의 길이가 다른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이랬을까. 이 의문은 마당에 들어가 입교당에 앉아보면 절로 나오는 탄성과 함께 풀리게 된다. 앞산 병산이 만대루에 가득 들어와서 마당의 한쪽 벽면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만대루는 그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둥만 남기고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병산을 그 속에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그 크기는 마당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길이여야 한 까닭에 긴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건축은 프레임으로서만 존재하며 자연을 적극적으로 매개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입교당의 대청에 앉아 뒷벽의 목재문을 열면 병산은 마당을 타고 강당을 관통하여 뒷마당과 장판고를 넘어 뒷산으로 이어진다. 건축은 오로지 자연 속에 걸터앉아 있지 자연을 막거나 닫거나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기둥에 의지하고 걸터앉아 다시 병산을 보면, 병산은 이름 그대로 병풍 속에 닫힌 듯 펼쳐져 있고 시시때때로 물안개가 그 풍경을 변화시킨다. 틀림없이 사계절의 시간이 만드는 이 절경은 그 속의 갇힌 고요한 마당을 살아 숨쉬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건축은 자연의 매개자일 뿐

 

 

만대루에 올라 병산을 바라보면 도무지 내가 건축 속에 있지 않고 병산의 녹색에 파묻힌 것 같은데 뒤를 돌아보면 나는 마당을 두고 오로지 삼라만상의 본질을 논하는 자세가 되어 입교당을 마주한다.

 

역시 건축은 대상이 아니라 매개자일 뿐이다.

적당히 어긋나게 배치된 건물들은 아마도 직각이 갖는 부자연함을 슬쩍 부스러뜨린 결과이다.

 

어디를 보아도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결단코 흐트러지거나 방만하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시 저 고요한 마당이 갖는 긴장 때문일진대, 여기서 그 긴장은 단순한 침묵이나 그저 그런 고요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렇다. 그게 학문하는 올바른 태도이다.

그 장소가 바로 서원 아닌가.

 

 

 

 

 

 

 

 

 

 

 

 

 

 

 

 

 

 

034. 문경 <화장암 홍매> (2022.04.09.)

 

 

문경의 운달산 중턱에 

금선대와 김룡사의 중간쯤에 있어서

중암이라고 불리던 호젓한 암자가 있었는데

영조34년에 백련화상이 중건하여 화장암華藏庵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영조44년에 영파성규 화상이 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영각을 건립하였고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문과 법당 및 요사채가 남아있다

화장華藏이란 '부처의 진리로 장엄한 세계'를

말한다고 한다

 

2019년에, 우연히 운달산 깊은 산속 화장암에

좋은 매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이 채 녹지 않은 산길을 1시간이나 올라서 찾아 갔었다

그러나, 홍매는 전혀 피지 않았고 스님도 계시질 않았기에

2주 후에 다시 방문하여 만개한 <화장암 홍매>와 대면할 수 있었다

그 때는 화장암에 계시다는 불휴당 스님은 뵙질 못했었다

 

불휴당 스님은 문경 봉암사에서 참선하다가

30대 시절에 이 곳으로 들어와서 불상 하나 없고 행자나 신자도 없는 이 암자에서 

무려 40년 간 홀로 수행하고 계신다 한다

그래서 문경 화장암은 사월 초파일에도 연등 하나 걸리지 않고

신자 한 명 찾아오지 않는 참선도량이라고 한다

2021년 새봄에 다시 화장암을 방문했더니

<화장암 홍매>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해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지만

스님이 암자에 계셨다

 

매화를 보려면 하동이나 광양 매실마을로 가야지 여길 왜 왔누?

세진루 앞 홍매는 아직 안 피었으니까

장독대 옆에 활짝 핀 어린 홍매라도 구경하고 가던지......”

스님, 화장암 홍매는 몇 살 정도 되었습니까?”

내가 여기 들어온 지가 47년 전인데

 2년 후에 경주 기림사에서 남는 묘목을 얻어 와서 심었으니

45살 정도 되었겠네

스님 덕분에 <화장암 홍매>의 내력과 수령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속세를 등지고 참선하는 스님께 폐가 될 지도 몰라서

서둘러 암자를 물러나왔다

 

경주 기림사는 2020년 여름에 우연히 들런 적이 있었지만

매화는 생각지도 못 했었는데 다시 들릴 기회가 생기면

매화를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 막 진달래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산길을 내려왔다

 

 

 

 

 

 

 

 

 

 

 

 

 

 

화장암 가는 길 

 

                                                      이형권 시인

 

 

가지마다 저리도 봉우리가 무성한 이유는

필경 말못할 까닭이 담겨 있겠지요

생강나무꽃이 피고 진달래가 피고

사하촌의 봄빛이 부산해지도록

짐짓 저렇게 머뭇거리는 마음은

노장스님이 애를 태우며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겠지요

마흔해 전 동안거를 마치고 행각 중에

남녘의 함월산 자락에서

동자승처럼 얻어온 매화나무 두 그루

말 벗이라도 되려나 처마밑에 심어 둔 것이

용상방의 입승처럼

어느새 헌헌장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파른 축단위 낙수물만 스치는 자리거늘

거칠고 황량한 터를 좋아하는 노장처럼

매화나무는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인적이 끊긴 산중에서 그 많은 밤과 날들이

자줏빛 보자기에 싸인 금선의 노래처럼

성성하였던 것이겠지요.

나무 돌쩌귀 삐걱이는 소리처럼

해토머리에 무너져내린 세진루 석단

베어낸 매화나무 가지처럼 안쓰러운데

노장스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풀을 깎고 돌축대를 고쳐 쌓는 봄날이었습니다.

다만,

올해는 떠돌이 같은 낯선 시자 하나가 들어

매화꽃 피는 낡고 빛바랜 툇마루에 앉아서

이 깊은 산중에 도착할 봄날의 첫 소식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수령 46년의 <화장암 홍매>는

고졸한 암자에 잘 어울리는 아주 옅은 분홍빛을 띄고

가지마다 꽃송이가 풍성하게 달려서 화사한 수세를 자랑한다 

얼핏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나이가 같은 두 그루의 홍매가 사이좋게 나란히,

요사채의 세진루 앞 축대 가장자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

마당에서 보면 건장한 한 그루의 홍매처럼 보이고

풍성한 수세와 밝은 꽃빛으로 새봄이면 적적한 암자를 환하게 밝히면서

아직 겨울이 남아 있는 깊은 산중에 따스한 봄기운을 불어넣는다

 

새소리마저 잦아들고 새로 나온 봄볕이 포근한

화장암 툇마루에서 잠시 망중한에 빠져본다

담장너머 백목련이 <화장암 홍매>와 때 맞춰 활짝 만개하였고

앞산이 진달래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코끝를 간지러는 바람내음마저 달달함이 묻어난다

 

<화장암 홍매>는 만개 후, 꽃잎을 떨구기 시작하였다

올해는 전체적으로 매화의 개화시기가

2월달의 늦추위 때문에 일반적으로 1~2주정도 늦어졌지만

<화장암 홍매>는 늦추위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예년처럼 제때에 꽃을 피웠고

'봄의 전령사'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조용히 지고 있다

 

오늘은 2022년 임인년 탐매기행의 마지막 날이다

<화장암 홍매>가 지기 시작했으니

이제, 봄이 깊었다!

통상적으로, 2달 동안의 길고 행복했던 그 해 탐매여행의 마무리는

<화장암 홍매> 앞에서 그 마침표를 찍곤 하였는데, 

올해는 지난 겨울에 TV를 통해서 새로 알게 된,

문경 '윤필암'을 탐매여정의 종점으로 잡았다

그래서 혼자 빈 절을 지키고 있는 <화장암 홍매>를 다시 한번 뒤돌아 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총총히 옮겼다

 

 

 

 

 

 

 

 

 

 

 

 

 

 

 

 

 

 

 

 

035.  문경 윤필암 매화 (2022.04.09.)

 

 

문경의 소백산이 서남쪽으로 뻗어내려

문경새재로 가는 길목에 사불산이 있고 그 서쪽으로 운달산이 이어져 있다

사불산의 지금 이름은 공덕산으로서 대승사를 비롯하여

윤필암과 묘적사 등의 산내 암자가 있고

운달산 기슭에는 김용사를 비롯하여 화장암과 금선대, 대성암등의

산내 암자들이 있다

운달산의 화장암 아래 김용사에서 사불산 윤필암으로 가는 길은

한나절에 함께 둘러 볼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린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알려진 윤필암潤筆庵

대승사의 부속암자로서 사찰 음식과 다도茶道로도 이름이 높다

지난 해 연말에 TV에서 윤필암의 스님과 사찰 음식에 대한 소개가 있었는데

사찰 곳곳에 매화나무들도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는, 탐매여행 마지막 날에, 운달산 <화장암 매화>를 보러 갔다가

인근의 윤필암에도 들리게 되었다

 

사불산 윤필암은 고려 후기에,

승려 각관과 찬성 김득배의 부인 김씨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는데,

인근의 묘적사에서 출가하였던 나옹화상 대선사가 돌아가시자

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서 묘적사 인근에 윤필암을 신축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1885년에 고종임금의 명으로 다시 중건하였으나

1980년대에 모든 전각을 새로 지어 20여명의 여승들이 수도하고 있는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윤필암 경내에는 사시사철 온갖 야생화로 잘 꾸며진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곳곳에 숨어있어서, 작은 '야생화 식물원'으로도

전국에 이름이 높은데, 매화나무도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관음전 석축 앞의 별목련과 함께 있는 백매,

관음전 입구의 백송과 함께 있는 수양 청매, 사불전 입구의 수양 백매 2그루,

다도산방 가는 길의 홍매 2그루, 그리고, 산신각 아래 백매 1그루 등이 있고

절을 감싸 안고 있는 야산에도 몇 그루의 매화나무가 보인다

아마, 1980년대에 윤필암을 신축할 때 함께 심은 것으로 추측되는

아직, 20~30년생 정도의 어린 매화들이 대부분이지만

윤필암 '야생화 식물원'에 고졸하고 청아한 향기를 더 하고 있다

 

 

 

 

 

 

 

 

 

[ 사불전 입구의 수양 백매 2그루 ]

 

 

 

 

 

 

 

 

 

문경 사불산四佛山에 대승사大乘寺가 있으며

부속 암자로 윤필암潤筆庵과 묘적암妙寂庵이 있다

      사불산의 유래와  대승사의 창건설화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붉은 천에 싸인 바위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졌고

그 4면에 불상(四佛)이 새겨져 있었다

   이에, 신라 진평왕이 몸소 찾아와 예를 올리고 대승사를 창건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대승사가 많은 대덕 고승들이 거쳐 간 천년 고찰로도 유명하지만

윤필암과 묘적암은 기도 수행처의 명당 자리로 이름이 높다

 

윤필암은 비구니선원이 있는 기도도량으로서

관음전과 사불전, 산신각, 선원이 갖추어진 비교적 규모가 큰 암자이다

주불전인 사불전四佛殿은 적멸보궁처럼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는데,

정면의 유리창을 통해 사불산 자락에 있는 사면석불을 불상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수려한 풍광과 비구니 사찰 특유의 정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이 윤필암은

우리나라 3대 비구니 선원 중의 하나이자, 가장 아름다운 암자로 꼽히기도 한다

 

윤필암에서 고즈녘하고 운치 있는 산길로 이어지는 묘적암은

신라 말기에 창건된 암자로서 나옹선사가 출가하여 수행한 사찰로 유명한데

성철스님, 서암스님 등 현대의 고승들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도했던 암자이다

묘적암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맞은편으로 사불산 정상의 사불암四佛巖을 볼 수 있다

 

나옹선사는 고려 말 최고의 선승으로 공민왕 왕사를 지냈으며

침체된 고려말 불교를 쇄신하고 선불교의 선풍을 고양시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

위대한 고승으로 평가 받고 있는 분이다

나옹선사가 묘적암에서 남긴 선시가 오늘까지 전해져온다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