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웨이브온 - 카페의 본질을 구현한 건축으로 구겐하임 빌바오의 아성에 도전하다
● 장소 :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맞이로 286
● 준공 : 2016년 12월
● 설계 : 곽희수
● 수상 : 2018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2017 제24회 세계건축(WA)상,
‘Wag the dog’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영어속담이다.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부문 본상을 수상한 기장 웨이브온에게 딱 맞는 표현이다.
지상 3층, 494.66㎡(약 150평)의 이 카페를 연간 90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덕분에 매출만 한 달에 4억~5억 원.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를 포함해 매출 1위에 올랐다.
카페 서쪽으로 풍광 좋은 임랑해수욕장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동쪽으로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자리해 은연중 기피 장소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웨이브온은 하루 평균 3000명이 찾는다고 한다.
대중교통이 불편해 차를 몰고 오거나 택시를 타고 와야 함에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케이크를 먹으며
풍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오전 11시부터 자정까지 길게 줄을 선다.
실제 올해 9월 카카오내비 이용자가 가장 많이 검색한 전국 음식점 조사에서 3위를 차지했다. 카페 중에서는 1위다.
웨이브온이 자리한 곳엔 원래 해변로를 따라 레스토랑 고스락의 방갈로가 있었다.
고스락은 지금도 영업 중인데, 그중 언덕배기에 있는 방갈로를 허물고 웨이브온을 지은 것이다.
건축주인 허장수 고스락 회장은 “외관을 보고 소문이 나 첫날 매출 300만 원을 기록하더니
그다음 날 2배인 600만 원, 사흘째 1000만 원으로 치솟았다”며 “기왕 지을 거 최고로 짓자는 생각에 아낌없이 투자했지만 이렇게 빨리 성공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6명으로 시작한 이 카페 직원은 32명까지 늘어났다. 주변 땅값도 3배는 올랐다는 것이 허 회장의 설명이다.
웨이브온을 설계한 곽희수 이뎀도시건축 소장은 콘크리트 건축의 마술사다.
콘크리트 건축 하면 서양식 건축이 바로 연상되지만 곽 소장은 전통 한옥의 건축 원리를 콘크리트로 빚어낸다.
다이빙대처럼 한쪽 끝은 고정됐지만 다른 쪽 끝은 돌출된 캔틸레버로 역동적 형상을 빚어내는 동시에
한옥의 처마 역할을 부여한 것이 그중 하나다.
실제 정남향으로 바다를 마주한 웨이브온의 창가 테이블에 앉았을 때 따가운 햇살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독특한 외관을 빚어낸 캔틸레버가 자연스럽게 차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웨이브온에는 전통 한옥의 옥외가구로서 평상(平床)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요소도 숨어 있다고 한다.
그게 뭘까.
주차장에서부터 걸어 매끈한 노출콘크리트로 지은 웨이브온에 접근하면 그리 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소나무 언덕 위에 세운 작은 카페 같다. 안으로 들어서 1층 매대를 접할 때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미닫이유리창 너머로 바다를 접한 안마당에 선베드를 연상케 하는 콘크리트 벤치가 부채꼴로 펼쳐진 것을 보면서
심상치 않은 공간 구성을 감지하게 된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1층 매대 위 공간을 직사각형으로 뚫어놓은 대신, 다양한 높낮이로 구성된 테이블 공간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 어느 장소에서나 유리를 통해 남해와 동해가 만나는 기장의 바다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3층은 그에 비해 공간은 작지만 밖으로 나가면 이페 원목으로 계단과 바닥을 구성한 옥상에서 탁 트인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또다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거기서 내려다보니 정남향의 1층 테라스 말고도 동향의 테라스에도 선베드가 즐비하게 설치된 것이 보였다.
해송들 사이로 그 선베드에 혼자 누워 있는 사람도 있고, 여럿이 어깨를 붙이고 앉아 바다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상의 현대적 각색이 거기 그렇게 펼쳐져 있었다.
적게는 1명, 많게는 10명까지 공유할 수 있는 그 평상 덕분에 웨이브온의 실내외 수용 인원은
최대 500명까지 된다고 한다.
[ 1 층 ]
웨이브온을 위에서 보면 맷돌을 연상케 하는 2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슬쩍 어긋남으로써
다양한 공간을 구성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 바다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2층의 투명벤치가 최대 명당으로 꼽히지만 여러 번 방문한 사람은 올 때마다
자리를 바꿔가며 풍광을 즐기는 듯했다.
이런 웨이브온의 독특한 공간 구성은 도넛 모양으로 건물 가운데를 텅 비워둔 데서도 발생한다.
곽 소장은 “한국의 모든 카페를 가보면 사람들이 창가를 따라 가장자리에 앉기 때문에
정작 한가운데는 휴면공간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직사각형 모양의 가운데를 비우거나 계단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넓은 공간감을 갖게 했다”고 설명했다.
카페라는 공간의 정수를 건축에 투영한 것이다.
곽 소장은 그 형태가 사람의 귀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도 했다.
가운데 귓구멍은 비었지만 그 주변을 이루는 귓바퀴가 소리의 공명을 돕는 구조.
실제 도심 속 카페의 경우 두꺼운 통유리로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지만 웨이브온의 유리창은
슬라이딩 도어로 돼 있어 옆으로 밀고 나서면 바람소리와 파도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 2 층 ]
[ 3 층 ]
마지막으로 웨이브온에서 바라보는 경치에는 섬세한 프레임 연출이 가미돼 있다.
그 프레임 속으로 남쪽의 넘실거리는 바다와 서쪽의 임랑해수욕장의 흰 모래사장이 들어오지만,
동쪽의 고리원자력발전소는 들어오지 않는다.
웨이브온은 이제 부산 하면 떠오르는 태종대와 해운대의 아성을 흔들 정도가 됐다.
독특한 건축 하나가 원자력발전소의 그늘에 있던 공간을 관광명소로 바꿔놓은 셈이다.
곽 소장은 스페인의 쇠락한 항구도시에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관광도시로 변모한
빌바오의 예를 들었다.
2010년 이후 연평균 구겐하임 빌바오 방문객 수는 105만8810명.
구겐하임 빌바오가 대형 공공건축물임을 감안할 때 그것에 필적하는 웨이브온의 저력이 더 놀랍게 다가섰다.
(이상 글출처 : 주간동아 - 2018년 1166 호)
[ 루프탑 ]
곽희수 건축가
1967년 출생
2003년~현재 이뎀도시건축 대표
2014년~현재 서울특별시 공공건축가
2014~2015년 한양대 건축학부 겸임교수
2009~2013년 가천대 실내건축학과 겸임교수
<수상경력>
2016년-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아메리칸 건축상 AAP 골드메달, 세계건축상 WA,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
곽희수 이뎀도시건축 대표는 홍익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2003년 이뎀도시건축을 설립했다.
일간지에 ‘건축가 곽희수의 단편도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정선의 42번가 루트하우스(원빈 주택), 청담동의 테티스(고소영 빌딩), 태안의 모켄펜션, 가평의 신천리주택,
송정 코랄리니, 청주의 에스에프원, 청평의 게스트하우스 리븐델, 홍천의 유리트리트, 수원의 르디투어등이 있다
[인터뷰] 세계건축상 수상 곽희수 - "좋은 건축은 개인과 공공의 이익을 조화시켜야 한다"
건축가 곽희수가 생각하는 건축, 그가 만든 작품 설명, 과거 에피소드 등을 거쳐 대화 주제는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넘어갔다.
최근 마무리한 작품 ‘유 리트리트’를 설명하며 “사람은 잘 놀면서 살아야 한다. 놀아야 인간이다.
논다는 것, 쉰다는 것은 철저하게 주체적인 행위다. 남이 대신 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치열하게 ‘놀았다’.
한때는 록 음악에 빠져서, 그다음엔 건축에 빠져 놀았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주체적으로 놀았다.
-가수 신승훈, 배우 원빈의 집도 건축했다. 원래 연예인들과 친분이 있었나.
“대학 졸업 후 건축사무소에서 3년 동안 일하다가 이뎀도시건축을 세워 2003년 독립했다.
독립 후 첫 완공 작품이 신승훈의 빌딩이었다.
당시 새로 사무실을 차리고 신사동에 5층 빌딩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옆에 유명 사진작가 윤준섭의 건물이 있었다.
그가 신승훈을 소개시켜줬다.”
-갓 독립한 건축가에게 빌딩 건축을 맡기다니, 신승훈과 잘 통했나보다.
“신승훈과 몇 번 만나 음악 이야기를 하며 ‘우리에게는 록의 피가 흐른다’며 의기투합하고 술도 마시고 했다.
가설계를 보여달라고 하기에 ”그건 곤란하다. 나 곽희수다. 누가 신승훈에게 오디션 보라고 하나. 나도 마찬가지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계약서를 썼다. 신승훈씨는 톱스타고 나는 무명 건축가였는데 말이다.(웃음)”
-장동건·고소영 집을 건축하게 된 과정도 궁금하다.
“신승훈의 소개로 고소영을 만났다. 내가 구상한 그의 집을 스케치로 그리며 설명하는 걸 보더니 바로 계약하자고 했다.
고소영은 성격이 칼 같은 데가 있고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 2007년 청담동 고소영 건물 ‘테티스’를 만들었고,
2011년 장동건·고소영 부부의 신천리 주택을 설계하게 됐다.“
-건축 회사 생활 3년 만에 독립한 이유는.
“미대 못 가고 건축과 간 게 속상해서 처음 3년 동안은 학교에 거의 가지 않았을 정도로 건축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프랑스 유학파 교수가 내 작품을 보더니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났느냐며 엄청나게 칭찬을 했다.
칭찬을 받으니 신이 났다. 그때부터 집에도 안 가고 학교에서 먹고 자면서 미친놈처럼 건축을 했다.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데어로에, 루이스 칸 같은 세계 건축 거장들의 작품과 공간에 대한 해석을 읽고 따라 그리기도 하면서 ‘아, 건축이 정말 멋지다’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 졸업 후 들어간 건축 사무소는 내가 꿈꾸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의 보편성, 건축이 지향해야 할 미래는 그들의 관심이 아니었다. 오직 돈 버는 것만 생각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독립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하는 건축은 어떤 건가.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중재하고 조화시키는 건축이다.
건축주의 이익에 충실하면서도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는다.
세계 건축계를 리드하는 건축은 다 그렇다.”
-개인 소유의 건축이 공공의 이익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건가.
“건축물의 내부는 개인 소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 외관은 공공의 것이다.
건축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낭만을 느낄 수 있고, 생각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받는다.
도시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할 수도 있고, 그 지역의 성격을 바꿀 수도 있다.
강원도 정선의 원빈 집은 42번 국도변에 바싹 붙여서 지었다.
건물이 처음 지어질 당시 그곳은 알려지지 않은 외진 시골이었다. 이 집이 들어서고 나서 이 지역이 덩달아 유명해졌다.
어떤 이들은 원빈 집이 있는 42번 국도를 지나면서 ‘드디어 그 집이 보인다. 가슴이 뛴다’고 한다.
그렇게 건축이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 수도 있는 거다.
강남통신에 쓴 칼럼에서 난지 캠핑장에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선릉에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공중보행로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업용 빌딩을 만드는 건 건축주가 빌딩 임대료를 받기 위해서 아닌가.
“그 빌딩을 사람들이 좋아할수록 임대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고소영의 청담동 건물 ‘테티스’는 1층에 필로티를 세워 빈 공간을 만들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보기 힘든 구조 덕분에
이 빌딩이 화제를 모으며 더 많이 알려졌다.
가장 임대료가 비싼 1층을 빈 공간으로 두는 건 쉬운 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이 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2층 모두 1층 못지않은 임대료 수익을 올리고 있다.
청주 ‘에프에스원’이라는 빌딩은 2층에 커다란 계단을 설치했다.
누구나 그 계단에 앉아 도시의 풍광을 맘껏 즐길 수 있다. 2층의 상업 공간을 없앴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더한 거다.
용적과 면적을 다 채워서 외부인이 접근을 막는 건축은 좋은 건축이 아니다.
그런 ‘욕심스러운’ 건축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건축 의뢰 많이 들어오고, 돈도 많이 벌었겠다.
“별로 그렇지는 않다. 의뢰는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도시와 사람에게 필요하지 않은 건축이라면 내가 안 한다.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가끔 일이 없을 때면 사무소 직원들이 ‘타협하자, 직원 월급 준다고 생각하자’고 한다.
그런데 내가 수용을 못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열쇠 받아서 화장실 가게 만드는 공간이다.
임대 수익을 높이기 위해 1층을 작게 쪼개다 보면 화장실을 외부로 빼야 한다.
건축주와 의견 충돌 때문에 계약금 돌려주고 포기한 적도 있다.”
-건물 외관을 모두 회색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이다. 이 공법을 고집하는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콘크리트는 인간이 사용하는 건축 자재 가운데 가장 친환경적이다. 자연에서 나오는 거다.
오히려 내·외부에 본드로 벽돌이나 나무나 철을 붙이고 페인트를 칠하면 그만큼의 유해 물질을 사용하는 거다.
또 노출 콘크리트는 건축가로서 진검 승부, 맨몸 승부다. 건축의 구조 자체로 승부하는 거다.
콘크리트는 또 회색의 중성적인 소재다. 그래서 주변 경관이 들어올 여지가 많다.
건물을 완성하는 건 주변 자연과 경관이다. 건물이 마지막까지 표현해 버리면 주변이 들어올 여지가 없어진다.
가령 가평의 장동건·고소영 집을 보자. 주변이 산이다. 자연의 나무와 돌보다 더 멋진 마감재가 있을까.
그 집 외피를 인공의 나무나 벽돌로 장식한다는 거 이상하지 않나.”
-요즘 건축 중인 작품은.
“최근 홍천 계곡에 부티크 디자인 리조트 건축을 끝냈다. 나는 그곳을 ‘유 리트리트’라고 명명했다.
내가 생각하는 집에 대한 철학을 담았다. 집은 리트리트하는 공간이다.
리트리트라는 건 피정(避靜),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쉰다는 뜻이다.
자연을 느끼고 즐기고 바라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미국 영화감독 존 포드처럼 20단어로 자신을 설명한다면
‘나는 한국적 리트리트를 만들어 내는 건축가다’라고 말하고 싶다.”
-건축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
“실업률도 높아지고 세상 살기 힘들다고들 한다. 세상 탓하는 후배들 많이 본다.
그런데 창작은 그런 게 아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고흐가 자신이 살던 동네를 그린 명작을 남겼고,
모네는 루앙 성당을 그려 건물은 짓는 순간 완성되는 게 아니라 빛과 자연과 사람의 시각을 통해 달라진다는 걸 보여줬다. 조건을 불평하면서 시간을 보내선 안 된다.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지려 노력하고 관찰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다른 직업도 많다. 시대정신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창작은 주어진 조건을 자기화하는 것이다.”
(이상 글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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