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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2-015. 김해 봉하마을 <민주매> (2022.03.13.)

 

 

 

 

 

 

 

 

 

 

015. 김해 봉하마을 <민주매> (2022.03.13.)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을 지냈던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퇴임 후에 낙향하여 고향마을에서 사셨던 분이다

서거하기 전까지 생활했던 그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의 집'

아주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고매가 한 그루 있었지만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노무현재단에서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집"이라고 했었던

고인의 유지에 따라 201851일부터 '대통령의 집'

국민들에게 정식 개방하기 시작함으로써

마침내, 고인의 체취와 흔적이 남아 있는 집안 곳곳과 매화를

전문 학예사의 안내에 따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 처음으로 매화나무의 대면이 가능했을 때에는

꽃이 가장 싱그러운 개화시기를 가늠하기 위해서

그 해만 해도 3번의 사전답사를 거쳐서

3월 중순쯤에 만개하는 개화시기 습성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만들어서 방문 적이 있었다

 

2020년 봄에는 코로나 19사태로

'대통령의 집' 관람이 중단되어서 아예 매화를 볼 수가 없었고

2021년 봄에는 잠시 관람이 다시 재개 되었지만 이내 중단이 되었고

다행히 2022년 올해는, 3월 둘째 주부터 '대통령의 집'

매화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

 

 

3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매화는

안방침실 오른쪽 장독대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밑둥에서 부터 뻗은 여러 가닥의 가지가 위쪽으로 보다는 옆으로 펼쳐져서

전체적으로는 밥사발 모양을 닮은, 소박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5장의 순백색 꽃을 피우는 홑꽃의 백매이다

 

유독 심했던 올해 봄가뭄을 해갈시키는 반가운 봄비가

오늘 '대통령의 집'에 포근히 내리고 있다

봄가뭄 탓인지 올해는 가지에 꽃잎이 아주 성글게 달려서

좀 여의고 수척해 보이긴 하지만

고인을 그리며 '대통령의 집'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오늘도 해사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 2009년 봄에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다

님이 어느날 갑자기 떠난 텅 빈 마당에

언제나 한결같이 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이 고매는

300년이 넘은 우리 토종의 와룡매이다

 

현장의 전문 학예사에 따르면,

2008년에 인근의 농장에서 이 곳 봉하마을로 옮겨 오게 된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평소에 농촌의 친환경 농법에 관심이 많았던 노 대통령께서

진주의 <문산농장>에 단감나무 견학을 갔다가

참하고 매력적인 매화나무를 발견하고 칭찬을 했더니

농장 주인이 즉석에서 방문기념 선물로 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민폐를 우려하여 대통령께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돌아 왔는데

다음날 농장 주인이 트럭에 싣고 와서 무작정 내려놓고

가 버렸다는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매화나무에 큰 상처가 남아 있다

생전에 대통령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매화나무의

밑둥에서 부터 줄기까지 껍질이 아주 흉하게 벗겨진 부분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을 때 그 상처가 생겼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온다

 

그런데 학예사께 물어보았더니

아직 '대통령의 집' 매화나무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매화 이름으로는

유명인사의 이름이나 지역명을 따서 지으면 무난하지만

고인께서 사양하실 것 같아서 포기하고

내가 직접 작명해 보기로 하였다

 

고인께서 평생을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하셨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키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셨으니

고인의 철학과 정신을 살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봉하마을 <민주매民主梅>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붕 낮은 집

 

 

지붕 낮은 집은 설계 당시부터 부르던 대통령의 집

아명兒名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정기용 건축가가 함께 지었는데,

노 대통령은 부끄럼 타는 집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름처럼 평평한 지붕을 가진 대통령의 집 지하 1, 지상 1층의

나지막한 건물입니다.

노 대통령은 혼자만 우뚝 서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선과 조화를 이루는

집을 바랐습니다.

사람들과도 어울림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이 살 집이 새로 들어오면서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보아온 경치를 가리거나 독점하게 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사자바위 아래,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마을 쪽으로 대통령의 집을 바라보면 뒷산 산세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집의 굴곡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더 멀리 화포천 쪽에서 보면 정말 부끄럼을 타는 것처럼

집의 모습이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글 출처 : 설계자 정기용 건축가)

 

 

 

 

 

 

 

 

 

 

 

 

 

 

 

 

대통령 사저관람을 마치고

봄비 속에 집 앞의 묘역을 찾았다

올해 5월이면 어느듯 서거 13주기로

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강산이 수도 없이 바뀌었지만

우리 사는 세상은 많이 바뀌지 못 한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을 그토록 염원했었던

선구자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제는 눈 앞까지 가까워진 것도 같았지만

바로 봄의 문턱 앞에서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타깝게 정권를 내줌으로써

한동안은 대한민국의 참된 민주주의와 정의가 왜곡되는

시련과 혼란이 이어질 수도 있게 되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선과 악, 그리고 정의와 불의를 구별해 내는 깨어있는 시민의 지혜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임을 절감하며

무겁고 죄송한 마음으로 묘역을 물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