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양산 통도사 홍매화 (2021.02.11.)
설날연휴 첫 날에
<자장매>를 보러 통도사로 달려갔다
원래는 연휴 말미에 느긋하게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SNS 상으로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올해 <자장매>의 개화가 무척 빨라서 벌써 만개 직전이라는 정보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하루라도 더 빨리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소문대로 <자장매>는 만개 직전의 개화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예년의 <자장매> 개화시기와 비교해 보면 개략 2주 정도 빠른 상태이지만
그런데 여러모로 좀 이상했다
일반적으로 매화의 개화시기는
소한, 대한을 거쳐 입춘을 전후하여 그 해의 날씨와 기온에 따라서
2~3주 내외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올겨울은 연초에 30년만의 강추위가 몰아쳐서
예년보다 더 추웠기 때문에 올해의 매화 개화시기는
2~3주 늦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맞다
그런데도 <자장매>의 개화시기가 오히려 빨라진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올겨울에 30년만의 강추위가 몰아쳤지만
그 반면에 봄날보다도 더 포근했던 이상고온의 따뜻한 날씨도 많았었다는 팩트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면 무리가 있을까?
날씨와 기온은 두 가지 모두 식물의 개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통도사의 <자장매>는 추위보다는 온기에 더 강렬하게 반응하는
강한 DNA와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맹추위 속에서도 한 조각의 불빛과 온기에 의지해 꽃잎을 열었지만
금새 다시 밀어닥친 맹추위와 비바람에 꽃잎이 꽁꽁 얼어버려서
꽃이 피자말자 이내 시들고 꽃잎은 퇴색되고 떨어져 버리게 된다
올해 2월 11일 <자장매>의 모습이 그랬다
우리나라 홍매화의 표준 색깔이라는 고운 분홍빛은 생기를 잃었고
아직 만개 전인데도 벌써 반 정도가 이미 시들었고, 꽃잎도 많이 떨어졌다
이른바 ‘상처뿐인 영광!’이다
매화가 북풍의 칼바람 속에서도
고드름처럼 얼어 붙은 가지목을 지키며
불빛 하나 없는 눈 덮힌 산과 들에서 온기 없는 별빛을 받으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은
얼어 붙은 대지를 녹이고 혹독한 추위를 걷어내고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세상을 열어야 하는 '선구자적 역할' 때문이다
그런 뒤에 초연히 시든 꽃잎을 떨구어야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그 옛날 선비들이 매화를 존중하고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매화의 여러 덕목 중에서도 이 ‘선구자적 역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선구자적 역할’의 대표적인 매화가
순천 금둔사의 <납월매>이고
코로나 19로 어려운 올해는 통도사의 <자장매>가 그 ‘선구자적 역할’을
훌륭하게 이어받았은 것으로 보인다
‘통도사의 자장매가 꽃을 피워야
한반도에 봄이 온 것을 공식적으로 인증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반도의 봄 전령사'로서의 <자장매>의 개화는 의미가 특별하고
그 역할을 가리켜 어느 시인은
‘대자연이 쓰는 시詩의 첫문장’이라고 노래했다
긴 겨울의 터널 끝에 얼핏 보이는 작은 불빛처럼
얼음장 속에서도 키워 낸 불씨와 온기를 한반도에 전해서
마침내 봄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 전령사'로서의 그 선구자적 역할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고 할 것이다
영남알프스의 한 축인
영축산 아래에 자리 잡은 불보사찰 통도사에
수령 370년이 넘는 홍매화가 1그루 있다.
스님들의 영정을 보관하는 영각 앞에 자리 잡은 이 홍매화는
‘우리나라 홍매의 표준’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고운 색과 자태가 빼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매화중의 하나이다
아이돌급의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 홍매는
신라시대 때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이름을 따
<자장매>라고 불리는데
매화나무 아래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다
“임진왜란 후 통도사 중창을 발원한 우운대사는
먼저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축조하고 인조23년(1643년) 이후
참회하는 마음으로 역대 조사의 진영을 모실 영각(影閣)을 건립했다.
상량보를 올리고 낙성을 마치니 홀연히 매화 싹이 자라나서
해마다 섣달 납월에 연분홍 꽃이 피어 사람들은 이를
자장스님의 이심전심이라 믿었다.
매화는 매서운 추위가 뼛속까지 사무칠 때 향이 더욱 짙어진다.
그 특성이 수행자의 구도행과 닮았고 자장스님의 지계 정신을 표현한다 해서
이를 자장매화(慈藏梅花)라 하였다.”
통도사에는 자장매 외에도 절 입구 종무소 앞에
홍매화 2그루가 더 있다
그래서 <세가지 색의 분홍>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 통도사이기도 하다
천왕문에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우측 매화가
수령 150년 된 진분홍 겹꽃의 <영취매>이고,
좌측이 수령 50년 정도 된 <통도매>인데 홑꽃의 연한 분홍색으로
담백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통도매>
<영취매>
[밀물썰물] 통도사 자장매
부산일보 임광명 논설위원
일본에서 가장 일찍 피는 매화는 규슈 다자이후(太宰府)의 덴만구(天滿宮)에 있는 비매(飛梅)다. 덴만구는 일본에서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 미치자네(845~903)를 기리는 신사. 누명을 쓰고 규슈로 유배된 스가와라는 교토에 있을 때 아꼈던 매화가 너무나 그리웠다. 그 간절함이 통했는지 매화는 교토에서 규슈로 하룻밤 새 날아와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스가와라는 “내가 없더라도 이 매화가 피면 봄이 왔음을 알고 나를 기억하라”고 했단다. 아무튼 일본 사람들은 비매가 피어야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고 한다.
덴만구 비매에 비견할 만한 매화가 경남 양산 통도사에 있는 자장매다. 자장매라는 이름은 신라 시대 자장율사에게서 따왔다. 자장율사가 통도사 창건 후 금강계단을 열고 화엄경을 설하자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들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나무를 심고 지식수(知識樹)라고 했는데, 바로 매화나무를 일컬음이었다.
실제 자장매는 수령이 370년 정도로 진분홍색 홑꽃의 홍매 계열에 속한다. 통도사 영각 앞에 있는 이 자장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피고 가장 오래 피는 매화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자장매가 피어야 비로소 봄이 오는 것으로 여긴다.
자장매가 필 무렵 통도사 영각 앞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 사진가들도 포진해 있기 마련이다. 해마다 2월 무렵 절정으로 피었을 때는 오목하고 가지런한 붉은 꽃잎과 노란 꽃밥이 어울리는 조화가 절묘하다. 한낮에 햇볕을 타면 붉은색은 더욱 화사해진다.
올해 자장매도 벌써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예전 같지 않게 그 모습이 초라하다고 한다. 여느 때와는 달리 풍성하지 않고 오히려 앙상해 보인다는 것이다. 경내 매화나무들에 가지치기를 한 때문일 것이라는 게 통도사 관계자의 추측이다. 하지만 그렇게 심드렁하게 이해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지난해 사부대중은 코로나19로 몹시도 힘겨워했는데, 어쩌면 그 아픔이 자장매에도 그대로 전해진 건 아닐까.
여하튼, 괴로움이 다한 후에야 달콤함이 뒤따르고, 아픈 뒤에 성숙해지는 법이라고 했다. 9세기 중국 선종의 조사 황벽 스님도 “뼈에 사무치는 추위 한 번 겪지 않고서야(不是一飜寒徹骨) 어찌 콧속 파고드는 매화 향을 얻겠는가(爭得梅花撲鼻香)”라고 설파했다. 올해 통도사 자장매는 유달리 붉으리라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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