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집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과 철학을 만납니다
2006년 3월경,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에 고향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돌아가서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30여 년 만에 돌아가는 고향이기 때문에 집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대통령의집’은 그렇게 첫 주춧돌을 놓게 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보다 건축가와 많은 대화를 나눈 건축주였습니다. 집터 선정에서 건축 설계, 인테리어, 조경까지 집 안팎 어느 한 곳 대통령의 생각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필사(筆師)로 알려진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당시 대통령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저가 완성되기까지 그가 들인 공이 적지 않았다. 일 하나하나에 꼼꼼한 분석과 검토를 하는 성격인 데다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도 즐겨 하는 천성이라 궁리와 고민이 많았다. 그만큼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자신이 삶을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할 집이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욕심도 많이 낼 수밖에 없었다. 고려해야 할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편해야 했다. 전직 대통령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했다. 작은 농촌 마을에 어울리는 외형도 갖추어야 했다. 너무 커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초라해서도 안되었다. 두루 실용적이어야 했다. - <기록(2014)>, 205쪽
농촌 공동체 발전의 베이스캠프
대통령의집은 ‘기적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고(故)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했습니다. ‘흙 건축의 대가’, ‘생태 건축가’로 불리는 그는 건축물에 시각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담는 ‘스토리텔러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에 살 집을 부탁해도 될 만큼 정기용 건축가의 건축 철학이 자신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두 사람은 2006년 4월 27일 청와대에서 건축주와 건축가로 첫 상견례를 가집니다. 대통령이 건넨 제안은 정기용 건축가의 예상을 다소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마을 공동체의 모델이 될 베이스캠프. 이것이 대통령이 첫 번째 만남에서 내게 주문한 내용이었다. 사저 설계에 대한 것보다 봉하마을에 대한 계획을 함께 펼쳐나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먼저 왜 농촌 마을로 귀향하려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주 간단명료히 “농촌에 가서 봉사 좀 하려구요”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내 집뿐만 아니라 봉하마을을 함께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농촌 마을로 내려가 산다고 하면 그 마을에 많은 변화를 예측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 마을을 위해 긍정적인 일을 해야 되고, 무슨 일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공부도 해야 되기 때문에 봉하마을에 대해 함께 구상하자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것은 무주 ‘면민의 집’이나 여러 도서관 건립 프로젝트 등, 농촌 주민을 위한 공공 건축 작업을 통해 내가 매달려온 과제이기도 했다. … 그러고 보면 내가 설계한 불편한 흙집은 마을의 삶을 함께 보듬고 함께 고민하고 일하자는 대통령의 생각이 스며있는 것이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살림집을 설계했다기보다 농촌 살리기를 위한 베이스캠프를 설계하고 새로운 봉하마을을 함께 꿈꿨던 것이다. -<노무현이, 없다(2010)>, 101쪽
지붕 낮은 집
‘지붕 낮은 집’은 설계 당시부터 부르던 이 집의 아명(兒名)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정기용 건축가가 함께 지었는데, 노 대통령은 ‘부끄럼 타는 집’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름처럼 평평한 지붕을 가진 대통령의집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나지막한 건물입니다. 노 대통령은 혼자만 우뚝 서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선과 조화를 이루는 집을 바랐습니다. 사람들과도 어울림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이 살 집이 새로 들어오면서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보아온 경치를 가리거나 독점하게 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사자바위 아래,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마을 쪽으로 대통령의집을 바라보면 뒷산 산세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집의 굴곡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더 멀리 화포천 쪽에서 보면 정말 부끄럼을 타는 것처럼 집의 모습이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불편한 흙집
대통령의집에는 여러 가지 전통 건축의 특징들이 나타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채나눔’ 입니다. ‘채나눔’은 농촌 살림집의 안채, 사랑채 개념을 현대적으로 수용한 설계 기법입니다. 상공에서 집을 바라보면 중정(中庭)을 중심으로 경호동과 사무동, 사랑채와 안채가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각 공간을 나눈 채들이 모여 작은 마을처럼 하나의 집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이 중에서 국가가 소유하는 경호 시설을 제외하고 대통령 내외가 생활했던 사적 공간은 안채와 부엌, 사랑채와 서재 네 곳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공간이 저마다 다른 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동하려면 반드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생활하기에는 다소 불편하지만 새소리를 듣고, 바람을 느끼고, 풀 내음을 맡으며 자연과 친하게 지내는 삶에 어울리는 구조입니다. 또 집 안 어느 공간에 있더라도 채광과 조망을 통해 시간의 흐름, 날씨의 변화를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퇴임 후에 농촌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대통령은 정기용 건축가가 제안한 채나눔 배치를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집의 자재는 황토, 적삼목, 화강암 등 전부 자연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창(窓)을 통해 바깥 경치를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내는 ‘차경(借景)’, 뒷산과 맞닿은 비탈면을 활용해 만든 화계(花階) 역시 대통령의집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친화적 건축 요소입니다.
“자연과 사람, 민주주의가 되살아나는 터전으로”
2008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5년간의 청와대 생활을 마치고 많은 시민들의 환영 속에 봉하마을로 돌아옵니다. 이날 정기용 건축가는 집을 지으면서 작업했던 주요 건축 스케치들을 책으로 묶어 대통령에게 선물합니다. 그 첫 장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축하하며 쓴 편지였습니다.
건축가들은 집을 한 사람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집을 지으며 남달리 깊이 교류했던 두 사람이었기 때문일까요. 정기용 건축가의 글에는 ‘지붕 낮은 집’으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대통령 내외분께
2006년 4월부터 2008년 1월까지 1년 9개월 동안 작업했던 주요한 건축 설계 스케치 모음집을 드립니다.
건축가에게 주택 설계는 큰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대통령 내외분의 뜻깊은 질책과 신중한 논의와 서로 존중하는 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붕 낮은 집은 점점 근사해졌습니다. 그래서 지붕 낮은 집은 단순히 지어진 것만이 아니라 즐겁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낮게 그러나 당당하게, 이 지붕 낮은 집에 대통령 내외분의 평안과 행복이 늘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 이 땅의 자연과 사람이 되살아나고 민주주의가 새롭게 꽃피는 터전으로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2008년 2월 23일
정기용
(글 출처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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