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매화 향기, 화엄의 강 따라 흐르다
제20대 총선이 몇 일 전에 끝났다
선거가 '국민의 축제'가 아니라
정당 및 계파간의 아귀다툼으로 실망만을 준 것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마는
유독 올해는 더 형편 없었다
'선거구 획정의 지연'과 '계파 죽이기식의 살벌한 공천파동' 등으로
점철된 기성 정치권의 계속된 구태와 오만은
마침내 '선거혁명같은 준엄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임을 분명히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오히려 '지역주의 타파'의 근본적이고 오래된 숙제는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부초같은 '제3세력의 등장'으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려진 다소 어지러운 형국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300명의 선량들은
저마다 '국민의 머슴'을 자처하며
찬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한표를 읍소했지만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그 중의 당선된 일부는 머잖아
'갑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오랜 경험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뽑힌 선량들은
그런 구시대적인 실수를 결코 되풀이 하지 말고
우리의 역사를 밝혀 준 선조들에게서 지혜를 구하고 배워서
자기희생과 남을 배려하는 인간존중의 철학, '선비정신'을 익혀
국민과의 약속을 성실히 실천해 나간다면
앞으로는 굳이 찬 바닥에서 '석고대죄 이벤트'를 연출하지 않더라도
항상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음은 결코 의심할 필요가 없는
분명한 진리일 것이다
매화는 '선비의 꽃'이다
현재 유통중인 1,000원권 지폐 전면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영정과 성균관 그리고 활짝 핀 매화가 그려져 있다.
우리 화폐의 모델로 등장할 만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선비였던 퇴계 선생은
실로 대단한 '매화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평생을 매화와 함께 살면서 100편 이상의 매화시를 썼고
평소에도 매화를 매형(梅兄)으로 부르며 하나의 인격체로 대했으며,
마지막 유언이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였다고 한다.
지조와 의리를 목숨처럼 알고 실천한
선비들이 가장 사랑한 꽃, 선비정신을 대변하는 꽃, 매화는
눈으로 보는 꽃이 아니라 가슴으로 실천하는 꽃이었다
'매화는 아무리 춥고 어려워도 결코 자신의 향기를 팔아서
안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梅一生寒 不賣香)'는 철학으로
옛날의 곧은 선비들은 가난하게 살아도 그 청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지조와 명예를 지키고 학문과 덕을 닦는 '선비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어진 우리의 '선비정신'은
오늘날,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되살리고 이어가야 할
차원 높은 문화이자 생활철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몇 일 전, 아침부터 봄비가 내리던 국회의원 선거 당일에
2016년, 매화기행의 정리를 구상하면서
문득 떠올려 본 잔상 들인데
사군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매화의 가치와 덕목은
먼 고문서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서도
충분히 적용과 실천이 가능하리라는
작은 희망을 혼자 상상해보았다
2016년 병신년, 올해의 매화기행은
1월 중순에 시작하여 4월 초순에 모두 끝이 났다
그 행복했던 2달 반 동안의 이야기를 나는 지금 정리하려고 한다
그 가슴 떨리던 축복과 감동의 순간들을!
해마다 매화기행의 첫 출발은
따뜻한 해풍이 실려오는 거제나 부산으로 시작되었었지만
올해는 창원의 작은 찻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01. 겨울왕국에서 오신 손님
- 창원 예담원 <운룡매> ( 2016. 01. 09.)
2016년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올 연말연시는 유례가 없는 이상 난동 기후가 지속되어
겨울 추위는 실종되고 봄날씨를 방불케하는 기상이변이 계속되었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자연생태계의 교란이 시작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독 올해 겨울의 이상기후는 더 심한 것으로 느껴진다
아니나다를까, 새해 벽두부터 여기저기서
매화가 꽃망울이 달리기 시작했다는 소식들이 간간히 들리더니
근처, 창원의 어느 주택가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인을 통해서 확인해 보았더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겨울 날씨가 겨울답지 못하니
올해는 매화가 예년보다 일찍 필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새해 첫주에 매화를 볼 수 있으리라곤 결코 짐작조차 못했었다
토요일 아침에 설레는 마음으로 매화 앞에 섰다
사림동 경남도립미술관 건너편, 전통찻집 <예담원>의 뜨락에
매화나무 한그루가 활짝 피었다
10년생 내외의 백색 <운룡매>였다
어리고 여린 <운룡매> 한그루가
의젓하고 대견하게 새해 아침부터 꽃을 피워서
미술관과 예다원 일대를 잔잔한 매향으로 감싸고 있다
2층 <예다원>에 차 마시러 들어갔다가
분재 <장수매>도 덤으로 구경했다
02. 호국의 얼로 붉게 피다
- 부산 UN공원 <홍매> ( 2016. 01. 16.)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는
거제도의 춘당매,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그리고 금둔사의 납월매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대표적인 매화중의 하나이다
지난해에는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이자
가장 춥다는 '대한'무렵(1월 19일경)에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지만
올해는 '소한'무렵(1월 6일경)에 꽃을 피워냈으니
개화시기가 지난 해보다 약 보름정도 빨라진 셈인데
근래에 기성을 부리는 기상이변은 매화의 개화시기마저
뒤죽박죽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지난해에 UN기념공원측에서
매화 관람객들을 위한 배려로, 매화 주변에 포토라인을 설치하는
성숙된 서비스를 도입하여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었는데
올해도 포토라인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어
매화감상과 사진촬영에 편리함과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새해 셋째주 토요일
날씨는 잔뜩 흐렸지만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로
UN기념공원의 매화나무 아래서 가족단위의 상춘객들이
이른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03. 잔인한 계절
- 순천 금둔사 납월매 ( 2016. 01. 23.)
음력 12월(납월)의 엄동설한의 눈 속에서도
꽃을 피워낸다는 금둔사의 <납월매(臘月梅)>가
1월15일 무렵에 개화가 시작되었다 하니
올해의 포근한 겨울날씨로 인하여 지난해 보다는 개화시기가
무려 20일 정도 빨라진 셈이다
하지만 1월 18일경에 갑자기 몰아친 강력한 기습 한파에
개화 초기의 꽃잎 들이 그만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얼어 버린 여린 꽃잎 들은 이내 시들었고
일부는 이미 꽃잎을 떨구고 있다
매년, 제대로 꽃도 피워 보지 못하고 벌써 시든
<납월매>를 볼 때마다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모두가 움츠리고 세상이 꽁꽁 얼어 붙은 이 엄동설한에
불굴의 생명의지로 굳굳이 꽃을 피워내어서
이 세상에 한줄기의 빛을 던지고 장렬히 스러진
시들고 퇴색해 버린 꽃잎의 모습은
결코 초라하거나 추하지 않다!
그런 시련들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추운 겨울을 걷어 내고야마는 <납월매>의 선구자적인 희생은
어쩌면 <납월매>의 예고된 숙명일 것이고
그래서 <납월매>의 시든 꽃잎들은 결코 좌절이 아니라,
'영광의 상처'로 기억 될 것이다!
04. 영축산의 빛
- 양산 통도사 자장매.1 ( 2016. 01. 31.)
때마침, 일요일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그동안 미뤄왔던 양산 통도사로 차를 몰았다
안개 낀 새벽 고속도로를 달려 통도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솔숲 사이로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서둘러 <자장매(慈藏梅)> 앞으로 달려갔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이르다
통도사 자장매는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대표적인 매화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UN기념공원의 홍매화가 피고나면
1~2주 후에는 자장매도 뒤따라 핀다
따라서 보름전에 UN기념공원의 홍매화가 만개했으니
그 뒤에 갑작스런 강추위가 왔다고는 하지만
자장매의 개화가 상당히 진행됬으리라고 기대하고 찾아왔는데
5% 이하의 아주 미미한 개화율을 보이고 있었다
때 늦은 추위가 '한반도의 공식적인 봄'의 도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자장매 주위에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자장매 곁에 아주 빈약한 백매가 한 그루 있었었는데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수령 30년 내외의 건장한 백매 한 그루가
새로 자리를 잡았다
벌써 개화가 시작되었는데 앞으로 자장매와의 조화가
자못 궁금해진다
자장매의 부진한 개화 덕분에 시간이 남아서
이번에는 모처럼 대웅전 법당에도 들렀다
해도 올라오지 않은 미명의 법당에
어두운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20 여명의 신도들이
긴 침묵 속에 빠져있다
온기라고는 촛불 하나밖에 없는
춥고 적막한 공간에 뜨거운 신심 한자락만이
공허한 법당을 맴돌고 있었다
05. 영축산의 꿈
- 양산 통도사 자장매.2 ( 2016. 01. 31.)
3주만에 통도사 <자장매(慈藏梅)>를 다시 찾았다
미명의 새벽부터 많은 진사님들이 <자장매> 앞에서 진을 치고 있지만
<자장매>의 개화는 더디기만 하고 기대만큼 진척이 없다
오히려, 일주문 밖의 <능수매>가 개화를 시작하였고
<자장매>가 만개할 무렵에야 피기 시작하는
종무소 옆의 <통도매>와 <영취매>의 개화가 올해는 상당 수준 진행되었다
아래 위 순서도 없이 <자장매>와 개화를 다투고 있는
어지러운 상황이다
더군다나, 새벽의 꽃샘 추위가 장난이 아니고
짖궂은 꽃샘 바람마저 흙먼지를 일으켜 끊임없이 괴롭히니
꽁꽁 언 손발 뿐만아니라 마음마저 심란해진다
또 다시 훗날을 기약하고
아직 피지는 않았겠지만, 청도 운문사에 있다는
백매와 홍매 한쌍을 보기위해
다시 길을 잡는다
06. 매화, 소나무를 만나다
- 창원수목원 매화 ( 2016. 03. 01.)
창원대로를 지나다가 우연히 들런 <창원수목원>은
소규모의 수목원이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자연지형을 잘 살려 조성하여 창원 도심쪽 전망이 양호하고
특히 창원 도심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접근성과 개방감이 아주 뛰어난 곳이었다
수목원은 아직도 찬바람이 많이 남아 있지만
봄철 새단장과 고개를 내민 야생화들로 서서히 활기를 뛰기 시작한다
곳곳에 10년생 이내의 매화들도 식재되어 있고
특히 푸른 소나무숲 사이로
건강하고 어린 수양매들이 자라고 있었다
추운 겨울철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는
대나무 그리고 매화와 함께 숱한 시련에도 변치 않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서
오래도록 동양화의 소재로 사랑받아 온 절친 사이이니
좀 더 자라면 좋은 그림이 나올 듯하다
07. 영축산 안개속으로 지다
- 양산 통도사 자장매.3 ( 2016. 03. 05.)
전날부터 내린 봄비로
영축산 아래 화엄의 세상은 자욱한 비안개로 덮혀있다
이른 새벽, 무풍한송로의
솔숲 사이로 떨어지는 싸락비를 맞으며
부드러운 솜같은 안개를 헤치고 <자장매>를 찾아가는 길은
구도자의 모습을 쬐끔은 닮았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며
파릇파릇한 솔향기를 맡으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미로를
이슬 방울을 툭툭 차며 걷는다
이미 만개한 <자장매>와
<통도매>,<영취매> 홍매 삼총사는 비안개에 젖었지만
처연하면서도 담담한 모습으로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도사 <홍매 삼총사>는
단아하고 매력적인 자태와 색채로
우리나라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이지만
올해는 꽃 필 무렵에 동해를 입어 많은 팬 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예년보다 꽃도 적게 달렸고
분홍빛 작은 꽃잎들은 찢어지고 시들어 숱한 상처를
훈장처럼 가지마다 달고 있다
지난 겨울은 너무 따듯해서 탈이었는데
공교롭게도 1월 말, 꽃 필 무렵에 기습 한파가 몰아 닥쳐
이제 막 피어난 여린 꽃잎들이 꽁꽁 얼어서
이내 곧 시들어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근래 들어서 점점 더 심해지는 기상이변은
따지고보면 우리들 스스로가 자초한 환경재앙이기에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올해 통도사 <홍매 삼총사>의 매력은
이상기후로 예년보다는 빛이 좀 바랬지만
고난의 겨울을 몰아내고 포근한 봄을 여는
우리나라 매화계의 선두 주자로서의 소명을 마무리하고
영축산에서 점점 내려앉는 안개속에서
서서히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08. 매화 춤추다 -1
- 마산 청연암 무학매 ( 2016. 03. 12.)
마산 청연암은
무학산의 학봉 기슭에 자리잡은
푸른 합포만이 잘 내려다 보이는 정원이 잘 가꾸어진
조그만 비구니 절이다
우연히 대웅전 마당에 있는 매화의 소식을 접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 갔지만 매화는 벌써 지고 있었다
수령은 4~50년 내외로 보이는 어린 백매인데
인위적으로 만든 듯 하지만 수형이 특이하여 눈길을 끈다
나무가지들이 수직으로 자라지 않고 지면에 수평으로 펼처져 있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듯 한 화사한 자태를 연상 시킨다
그래서 나는 아직 이름이 없을 것 같은 이 매화나무의
이름을 지어보기로 했다
<무학매舞鶴梅> 라고!
09. 옥천에 피는 꽃
- 고성 옥천사 <백매와 홍매> ( 2016. 03. 12.)
옥천사는 경남 고성군 연화산 자락에 있는
약수가 나오는 샘으로 유명한 절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자방루는
승병교육및 전시에 지휘본부로 쓰인 건물로
전면에 승군들이 훈련하는 연병장으로 활용된 아주 넓은 마당이 있는데
그 마당 가장자리에 홍매와 백매가 1그루씩 있고
그 사이에 어린 백매 1그루도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개화가 많이 진행된 걸로 파악하고 찾아 갔는데
아직 개화초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옥천사 <홍매>는
수령 약 130년의 분홍색 겹매화이고
홑꽃의 <백매>는
범종각 옆에서 비스듬히 자라고 있다
10. 고성 장산마을의 꽃
- 고성 <허씨 고가 매화>와 <노산정 매화> ( 2016. 03. 12.)
고성 <허씨 고가 매화>
경남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의
김해 허씨 집성촌 <허씨 고가>에 이름난 매화가 있었다
그러나 수령 200년을 자랑하던 그 매화는 오래전에 고사하여
지금은 대문 앞에 그 원목 형체만 남아 있어
아쉬움을 준다
하지만 안채 후원에
수세가 빈약하지만 2세, 3세 후계목들이 자라고 있어
다행히 명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고성 <노산정 매화>
장산리마을의 강학기관인 노산정에서
우연히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고매를 발견하였다
족히 수령 150년 내외로 보이는 홑꽃의 백매로
아직 건강한 수세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 <허씨 고가 매화>를
충분히 대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반갑고 대견스러웠다
11. 석양에 다시 피다
- 김해공고 <와룡매臥龍梅> ( 2016. 03. 12.)
일주일 전에
통도사 갔다오는 길에도 들렀었지만
비가 내려서 차 안에서 휙 둘러만 보고 갔었는데
그 사이 백매들은 많이 졌고 홍매들은 한창 열정적으로
꽃잎을 피우고 있다
해마다 3월에 개최하는
김해건설공고의 '매화축전' 행사는 이틀전에 끝이 났고
아직도 많은 탐매객들이 교정을 찾고 있지만
저녁이 가까워지자 아직도 냉기가 매섭다
서둘러 철수하려다가
근처 아파트 너머로 지고 있는 해를 배경으로
매화를 찍을 수 있는 좋은 포인트를 포착하였다
추위로 고생은 좀 했지만
색다른 분위기와 색감의 사진을 얻을 수 있어서
돌아오는 찻속에서 내내 즐거웠다
12. '산청삼매'의 꿈-1
- 산청 <남명매> ( 2016. 03. 13.)
지리산 천왕봉을 앞뜰로 삼은
산천재의 <남명매>가 만개하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아하고 화사하게 만개하여
<산청삼매(山淸三梅)>의 마지막 위용을 굿굳이 지키고 있다
지난해에는 현장에서 수고하시던
안승필 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님과 같이 사진도 찍었었는데
올해는 저녁 6시가 넘은 너무 늦은 시각에 도착하여 뵐 수가 없었고
빛이 모자라 사진도 몇 장 찍지 못했다
13. '산청삼매'의 꿈-2
- 산청 <정당매>와 <운리 야매> ( 2016. 03. 13.)
단속사지 <정당매政黨梅>
640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던 정당매는
2년전에 안타깝게도 <산청3매>로서의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난해에 산청군청에서
어린 후계목 3그루를 정당매 주위에 심어 놓았는데
그 후계목에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이 후계목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640년 전통의 정당매의 영광을 이어줄 날을
기대해 본다
<운리 야매(野梅)>
지리산 계곡 웅석봉 아래 운리 들판에서
삼백 여년의 인고의 세월을 홀로 버텨 온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들매화가 운리 야매이다.
얼마전에 고사한 정당매와
같은 DNA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운리 야매는
날개짓을 준비하는 도약의 자세로 하늘을 향해 가지를 펼치고
폐사된 단속사와 고사한 정당매의 부활과
옛 영광 재현을 꿈꾸고 있다
14. 매화 춤추다 -2
- 전주 경기전 <경기전매慶基殿梅> ( 2016. 03. 13.)
몇 년동안 별러왔던
경기전慶基殿의 와룡매를 보기위해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려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경기전의
개장시간에 맞추어 입장했는데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와룡매를 배경으로한 모델 아가씨 2명과
프로 진사님의 한복 야외촬영을 한동안 넋 놓고 구경하다가
경기전 와룡매의 기묘하고도 단아한 매력에 서서히 빠져든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건물인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가 있는 경역에 매화 4그루가 있다
마당의 중심에 유명한 와룡매가 있고
전주사고 옆쪽으로 조금은 빈약한 키가 큰 녹악매(청매) 2그루가 더 있고
건너편에 어린 홍매 1그루가 있다
와룡매의 수령은
1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꽃잎은 3겹의 녹악매(청매)이다
매화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녹악매(청매)는
연록의 꽃받침과 새하얀 꽃잎으로 투명하고도 신비로운
백옥색을 띤다
경기전 와룡매를 직접 친견하니 과연 명불허전!
늘씬한 모델처럼 묘하게 휘감긴 가느다랗고 유려한 몸매에
많지도 않고 적당한 수의 연푸른 꽃잎을 달아
동양화의 대표적 기법, '여백의 미'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차원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15. 무위사에서 마음을 비우다
- 강진 무위사 <홍매> ( 2016. 03. 19.)
월출산 아래 무위사에는
소박하고 단아한 대웅전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첫 손가락으로 꼽는
극락보전(국보 13호)이 있어서 오래 전부터 가끔 들렀던 절인데
매화를 보기위해서 찾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무위사 홍매는 원래 극락보전 앞마당 있던 것을
201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한다
수령은 약 100년정도 되었고 진분홍색의 겹꽃을 피운다
비교적 일찍 피는 수종으로 3월 초순에 만개하여
벌써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16. 덕으로 꽃을 피우다
- 나주 도래마을 매화 ( 2016. 03. 19.)
나주시 다도면의 전라남도 산림연구원 근처에
풍산리 도래마을있다.
나주평야에 접해서 풍악산의 낮은 기슭에 자리 잡은 도래마을은
풍산 홍씨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유서 깊은 전통마을이다
마을 뒷쪽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홍기응 가옥>이 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 가진 자가 못가진 자에게 베풀고
더불어 함께 사는 도덕적 의무 - 를 몸소 실천했던
아름다운 일화가 집안의 전통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도래마을은 전통한옥 답사차 몇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홍기응 가옥>에 200년된 홍매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갔지만
대문은 굳게 잠겨있고 주인은 보이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담장너머로 사진 몇장만 찍고
지나가는 이웃의 친지분께 여쭈어보았더니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셨다
도래마을에 가장 오래된 매화는 근처 <홍기창 가옥>에 있는데
역시 문이 잠겨있어 구경하지 못했고
앞집 <홍기헌 가옥>에도 400년 이상된 매화가 있다고
직접 안내해 주셨다
<홍기헌 가옥>의 매화는
화단에 방치된 아주 오래된 고목으로
한쪽 가지는 완전히 고사하였고 나머지 가지에서 이제 막 꽃망울을 맺고 있는데
꽃받침이 푸른색의 청매로 보인다
1~2주후쯤 다시 오면 꽃 핀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나오는 길에 전라남도 산림연구원에도 들러서
어린 매화 몇 그루를 확인하였다
17. 축제 시작되다
- 해남 '땅끝매화축제' ( 2016. 03. 19.)
전북 고창으로 가는 길에
해남군 보해 매실농원에서 열리는
'땅끝매화축제' 현장에 잠깐 들러보았다
차량정체를 고려하여 행사가 끝날 무렵에 맞추어 방문하여
별 고생 없이 휙 둘러 볼 수 있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땅끝매화축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보해매실농원에서 매화의 만개 시기에 펼쳐지는 봄맞이 축제로서
광양 다압면의 '청매실 축제'와 양산 원동면의'매화축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매화축제' 중의 하나에 속한다
광양과 양산의 매화농장이
산의 구릉지에 위치 한 것에 비하여
보해 매실농원은 평지에 넓게 펼쳐진 것이 가장 눈에 띠는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매실농장의 매화나무는
꽃보다 열매인 매실을 생산하는 곳이기에
크고 많은 매실을 따기 위하여 오래전부터 품종개량을 거듭하였고
그래서 대부분의 농장들이 일제시대 때 들여온 '왜매'를 많이 심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통 토종매화와는 구분이 된다
우리의 '토종매'는 꽃잎이 작고 매실도 작지만
꽃의 모양이나 향기는 '왜매'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진하며
백년도 않된 '왜매'에 비하여
수백년이 넘는 이름 난 고매들이 전국에 수두룩하다
그래서 탐매꾼들이 매화를 찾아 매실농장으로 가는 일은 없지만
나는 매화를 보기위해 보해 매실농원을 들런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자주 보았던 매실농장을 구경하기 위해
잠깐 들렀을 뿐이다
18. 매화 춤추다 - 3
- 화순 임대매 ( 2016. 03. 19.)
지난해 해질 무렵에
어렵게 임대매를 처음 대면했을 때의 그경이와 감동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부서진 몸통 전체가 땅에 드러누워 있고
가지 하나만 세워서 하얀 꽃을 피우고 있던
수령 300년 와룡 백매의
그 생명의 신비와 의지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었다
그리고 향후 보존에 대해 우려도 했었다
다행히 올해도 무사히 꽃을 피웠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년보다 꽃이 많이 빈약해졌다
도래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동병상련의 김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몇년 전에 마을길을 확장하면서 임대매의 뿌리 일부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더 늦기전에 관계 당국의 관심과 노력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19. 백운동정원의 봄
- 강진 백운동정원 매화 ( 2016. 03. 19.)
강진 월출산 자락에 자리잡은 백운동(白雲洞) 정원은
한국적 전통 정원의 원형이 잘 보존된 원림으로서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으로
계곡의 물길을 정원으로 끌어들여 연못과 정자를 만든
탁월한 정원구성기법이 돋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기록에 의하면 앞 동산에 홍매 100그루를 심었고
정원 내부에도 많은 매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2그루만 남아 있다
정원 우측 동백나무숲 옆에 있는 매화는
수령이 족히 2~300년은 된 듯한 청매이지만 수세가 많이 허약하고
계곡쪽 담장 옆의 매화는 아직 어린 백매이다
현재 행정당국에서 백운동 정원을 정비.복원중이니
앞으로 매화의 관리상태도 나아지리라 기대해 볼 수 있겠다
20. 나비처럼 날다
- 함평 관음사 매화 ( 2016. 03. 20.)
함평군 함평읍 관음사의
대웅전 마당에 있는 매화이다
대웅전에 바짝 붙어 있는 매화나무의 위치로 볼 때
오래전에 대웅전 마당에 매화를 심었다기 보다
이미 매화가 자라고 있던 빈 터에
절이 들어와서 새로 터를 잡았을 수도 있지않나 하는
고증이 않된 상상을 해 본다
매화나무 앞 팻말에는 수령 370년으로 나와 있고
군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실제 수령은 150년 내외로 알려져 있다
꽃은 많이 졌지만 수세와 나무의 양육상태는 양호해 보이고
흰색의 홑꽃이다
21. 사라진 향기
- 부안 내소사 매화 ( 2016. 03. 20.)
전나무 숲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 천년고찰 내소사에
150년 된 백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 갔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절에 근무하는 보살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매화는 잘 모르겠다며 아무 관심도 없는 오래된 벚꽃을 가리켜 준다
갑자기 내소사 백매의 신상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끝내 내소사 백매의 안위를 확인하지 못하고
대웅전 아랫마당의 젊은 매화 한쌍으로 위로를 삼으며
어느새 한층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기나 긴 전나무 숲길을 빠져 나왔다
22. 백제의 향기를 잇다
- 부안 개암사 <홍매> ( 2016. 03. 20.)
전북 부안의 개암사를 처음으로 찾았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조용하고 조촐한 가운데 우리에게 무한한 마음의 평온을 안겨다주는
저 소중한 아름다움을 끝끝내 지켜준 그 고마움의 뜻을 담은
답사 일번지의 영광을 강진과 부안 모두에게 부여하고 싶었다‘ 는
그 곳, 부안에 있는 조용한 절이다
능가산 개암사는
원효와 의상대사가 머물렀던 우금굴(원효방)과
백제 부흥운동의 아픈 역사가 스러있는 울금산성 등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백제의 천년고찰이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은
울금바위를 등지고 남향하여 2중기단으로 높게 자리하고 있고
매화나무는 전면 진입부의 넓은 마당의 한켠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개암 홍매>는 옅은 색의 분홍빛 겹꽃으로
수세와 외부상태는 양호해 보이지만
하부 둥치에 보호대를 감고 있어 약간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수령은 200년과 400년의 2가지 설이 있는데
나는 400살에 한표 던지고 싶다
유홍준 교수가 이런 말도 했었다 한다
“나라면, 개암사에 살고 싶다.
적막함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 곳에서라면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닌 원래의 내가 될 수 있고,
나만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오고나서 안 사실인데
부안은 조선시대 황진이와 대적할만한 명기였던 이매창의 고향으로
매창梅窓은 당대의 문사인 이귀, 허균, 유희경 등과 교유가 깊었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이었다.
매창은 일편단심으로 사랑한 남자 유희경과 재회하여
기적에서 종적을 감추었으나 38세의 젊은 나이에 객지에서 요절하여
자신이 사랑하던 거문고와 함께 부안에 묻혔다고 한다.
그후 개암사에서 <매창시집>이 간행되었고
부안군은 2001년에 매창공원을 건립하였다
23. 충효의 뜰에 피다
- 고창 <도암매> ( 2016. 03. 20.)
고창 도암서원은
멀리 중국에까지 효자로 알려졌던 선비
영모당 김질 선생을 모신 곳으로
경사진 언덕에 공간이 아주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고
후손들에 의하여 아주 깨끗하게 잘 관리가 되고 있는 서원이다
정문 좌측의 화단에 자리잡은 도암매는
옅은 분홍색 겹꽃으로 수령은 300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윗부분 줄기가 태풍에 모두 부러지고 밑 둥치만 남아 있지만
아주 왕성하고 화사하게 꽃봉우리들을 피우고 있다
개화하기 직전의
아주 귀엽고 앙증맞게 벙글어진 모습에서
들려오는 매화의 재잘거림과 아우성이
적막한 서원을 모처럼 온기와 생기로 가득 채워준다
한가지 '옥의 티'가 있다면
근처에 있는 천리향나무 한그루가 가벼운 향기를 흘려서
그윽하고 은은한 매향의 음미를 방훼하고 있기에
천리향은 다른 곳으로 옮기는 조치가 필요할 듯 싶다
모처럼, 정갈하고도 고요한 서원 툇마루에서
한참동안 넋 놓고 앉아있었다
아련한 도암매만 바라보고 한나절쯤은 보내고 싶었지만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다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24. 황혼에 세번을 찾다
- 담양 <삼문매> ( 2016. 3. 26.)
송강 정철 선생의 처가이기도한
창평면 해곡리 문화유씨 종가에 있는 홍매는
'와송당매'로 부르기도 하고
사람들이 세번 물어서 찾아 왔다고 해서
'삼문매'로도 불린다
해질 무렵에 도착한 방문은 올해로 세번째인데
첫번째는 꽃이 모두 져 버렸고
두번째는 전혀 피지도 않아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던
두번의 실패 끝에 세번째 만에 제대로된 꽃을 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수세가 좀 약해 보이는
수령 300여년의 분홍색 겹꽃의 홍매로서
송강 선생이 살았던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 매화>중 홍매와
같은 종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5. 좋은 매화사진은 새벽에 얻어진다
- 담양 <미암매> ( 2016. 3. 26.)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미암종가
윗쪽에 있는 수령 300년 정도의 매화이다.
우리나라의 홍매 중 가장 화려한 수세를 자랑한다는
미암매가 올해는 만개하였다
미암매는 3년전쯤에 대대적으로 외과수술을 받았는데
미암종가 종부님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원기를 회복 중이다
여러번의 방문 끝에 제대로 개화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흡족해졌다
한창 사진을 찍고 있는데
미암종가 종부님이 손님을 모시고 올라왔다
'사진을 찍어려면 돈을 내야한다!'고 농담을 건내신 후
'좋은 매화사진을 얻으려면 아침 일찍 사진을 찍어야한다'며
반전문가적인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매화를 자식처럼 아끼고 돌보는
종부의 관심과 애정이 매화향처럼 진하게 전해져온다
26. '춘 백양 추 내장'에 빠지다
- 장성 백양사 <고불매> ( 2016. 3. 26.)
새벽부터 순천 선암사, 구례 화엄사를 거쳐서
장성으로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백양사 <고불매>는 조금 이르다
아직 약 60% 정도의 개화율을 보이고 있지만
담홍색 꽃이 피는 매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태와 기품을 지녔고
그 특유의 매력적이고 달달한 향기는 절집 담장을 타고 넘어서
계곡의 쌍계루까지 흐른다
지난해에는 고불매 앞의 건물이 보수공사 중이었는데
올해는 마당 건너편 건물이 공사중이라 좀 어수선하고 소란스럽다
앞으로 고불매의 개화시기를 고려해서 공사를 시작하는
세심하고 지나친(?) 배려를 기대해 본다
27. '무우전 돌담길'의 전설
- 순천 선암사 매화 ( 2016. 3. 26.)
해마다 선암사는 매화 필 무렵에
2~3번은 꼭 방문하지만 번번히 때를 맞추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운 좋게도 적기에 매화를 감상하는 행운을 얻었다
매년 열리는 <선암사 홍매화축제>도
고매화들이 전혀 피지 않은 상태에서 축제가 열리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어제 열린 <제7회 선암사 홍매화축제>는 고매화가 만개해서
성공적으로 마쳤다
우리나라 '매화의 보고寶庫'
선암사를 대표하는 원통전 옆의 천연기념물 <선암백매>는
수령 600년이 넘는 고매지만 근래 몇년 사이에 가장 화사하게 꽃을 피웠고
무우전 돌담길의 20여 그루의 고매를 비롯하여
선암사 경내 곳곳의 3~400년 된 고매들이 일제히 만개했다
원래는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피는 것이 순리인데
'지구 온난화의 폐해'로 점점 그 원칙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무우전 돌담길'의 전설중
백매 한그루의 큰 줄기가 부러져 있었다
올해는 아직 태풍도 안 왔는데도 작은 충격에도
수백년 된 고목이 또 부러져 나가니
우려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28. 너무 붉어서 검어라
- 구례 화엄사 <흑매> ( 2016. 3. 26.)
구례 화엄사는 갈 때마다
절 입구부터 항상 인파로 넘쳐나고 새로운 불사로 요란스럽다
이번에는 정면 주출입구의 일주문이 보수공사 중이라
사람들의 동선이 측면으로 완전히 바뀌었고
상가들도 새 길을 따라서 이동을 해서 성업 중이다
각황전 옆의 <화엄사 흑매>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화사하게 만개했고
벚꽃 등 아직 봄꽃이 피지 않은 절집의 단연 인기스타로서
늘씬한 자태와 매혹적인 빛깔로 언제나 관광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29. 매화 아래서 친구를 기다리다
- 순천 송광사 <백매> ( 2016. 3. 27.)
2년전에 해질 무렵에 늦게 도착하여
후레쉬를 터뜨려가며 <송광매> 사진을 찍었고
저녘 예불을 알리는 법고와 사물을 두드리는 행사를
한참동안 숙연하게 지켜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200년이 넘은 <송광매>는
여전히 원기왕성하게 하얗게 눈부신 꽃들을 피웠고
대웅전 마당은 초파일 봉축등 설치 준비 작업으로 분주하다
승보사찰 송광사에 아는 스님이 계셔서
괜히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인연은 없었다
30. 들꽃처럼 450년을 피다
- 구례 화엄사 <길상암 야매> ( 2016. 3. 27.)
구례 화엄사는
각황전 옆의 <흑매>가 유명하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매화가 큰절 위쪽의
길상암에 있다
길상암은 모과나무 기둥으로 유명한 구층암을 거쳐서
호젓한 대숲을 지나면 나온다
올해도 <길상암 야매>가
푸른 대숲 사이로 하얀 꽃을 화사하게 피웠다
45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로
산청 단속사지 아래 들판의 <원리 야매>처럼
산속의 비탈길에 비스듬히 자연발생적으로 자란
야생의 들매화이다
길상암 툇마루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길상암 야매>를 보고있으니
관광객으로 붐비는 큰절이 속세이고
이곳, 길상암이 절간이지 싶다!
31. 해우소 매화가 웃다
- 순천 선암사 매화 ( 2016. 3. 27.)
하룻만에 선암사를 다시 찾았다
어제 같이 방문했던 일행중에 카메라 배터리가 문제를 일으켜
전혀 사진을 찍지 못했던 일행의 제안으로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아침 6시쯤에 절 입구에 도착했는데
그 시각에 30명 정도 단체로 출사를 나온 사진클럽이 있었다
아직 해도 올라오지 않았는데
우리나라 '매화의 보고寶庫' 무우전 돌담길은
진사님들로 서서히 붐비기 시작하고
수백년이 넘은 고매들은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어제는 미처 못 봤었는데
선암사의 유명한 명물 해우소에도
매화가 활짝 웃고 있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32. 매화 춤추다 - 4
- 구례 화엄사 <흑매>( 2016. 3. 27.)
선암사와 마찬가지로 화엄사도
어제(3월26일)에 이어서 두번째 방문이다
하루 사이에 매화에게 무슨 차이야 있겠냐마는
어제는 오전에 방문했고 오늘은 오후의 방문이라서
해(빛)의 위치가 달라지므로 해서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는 위치선정이 달라지고
색다른 느낌의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천연기념물 <길상암 야매野梅>도
찾아볼 수 있는 시간도 벌었고
해마다 통도사 <자장매>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분이
올해는 <화엄사 흑매> 앞에서도 새로이
캔버스를 펼쳤다
점점 선홍빛 <흑매>가
캔버스 위에서 머리를 풀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33. 인연
- 청도 운문사 <홍매> ( 2016. 04. 02.)
청도 운문사는 호거산 아래
장군평의 넓은 평지에 자리잡은 천년고찰로서
조계종 운문승가대학이 설치되어 있어
우리나라 비구니 스님의 교육과 연구기관으로서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도량이다
4월 첫째주 주말
장군평 계곡의 개울가에는 이미 봄빛이 많이 내려 앉아 있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가
‘은퇴한 뒤 운문사 앞에서 여관이나 하나 지어 살고 싶다!’고 했을 만큼
운문사의 자연환경과 매력은 뛰어난데
매화뿐만 아니라 하얀 목련, 개나리, 진달래 등 봄꽃이 만발하여
운문사의 봄빛은 화엄의 세상에 서서히 꽃물을 들이고 있다
운문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명한 <처진소나무>가 있고
건너편 명부전 담벼락 뒷편, 일반인들 출입이 제한되는 회성당의 뜰에
수령 약 150년의 홍매 2그루가 나란히 있다
원래 백매 1그루와 홍매 1그루의 쌍매로 알고 왔는데
자세히 보니 홑꽃의 아주 옅은 담황색 홍매로 판단되며
나머지는 지나치게(?) 화사한 자주빛의 겹꽃 홍매이다
학인스님들이 공부하고 선풍이 흐르는 절간의 뒷뜰에서
스님들의 관리와 보살핌 속에서 자란 <운문사 쌍매>는 아주 건강하고
가지의 처짐이 없이 모두 하늘을 향해 뻗은 단정한 모습이고
새내기 대학생처럼 생기와 청초함이 묻어난다
앞으로 잘 자라면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와 같은 명매의 계보를 이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이번 <운문사 쌍매> 감상의 좋은 기회는
불자인 고향 선배(보현화)와 승가대학 학장스님(일진스님)의
자비로운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학장스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34. 짧은 만남 긴 이별
- 밀양 표충사 <백매> ( 2016. 04. 02.)
청도 운문사를 다녀오는 길에
<표충사 백매>를 보기 위해 밀양으로 방향을 잡았다
표충사의 매화를 찾아 가는 길은 이번이 세번째인데
처음에는 너무 늦게 갔었고 두번째는 너무 일찍 방문하여
한번도 제대로 개화한 모습을 보질 못했었다
아마 이번에도 너무 늦게 와서
꽃이 모두 졌으리라고 판단이 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수령 150년 내외의 <표충사 백매>는 이미 모두 졌다
꽃이 모두 진 핼쓱한 모습으로 대웅전마당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꽃잎 한장도 내가 떠나면
곧 떨어질 것이다
해마다 매화가 모두 지고 매화의 계절이 끝이 나면
항상 서운한 마음에 한동안 매사에 의욕을 잃지만
매화가 져야만 다른 봄꽃들이 필 수 있음이
또한 자연의 섭리이기에 담담히 받아 들여야만 한다
이로써 2달 동안의
행복했던 매화여행이 모두 끝을 내린다
1월 중순, 부산 <UN공원 홍매>로부터 시작된 여정이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매>를 돌아
밀양 <표충사 백매>에서 끝을 맺는다
꿈길 같았던 2달 반 동안의 추억과 기억만으로
내년에 다시, 겨울을 뚫고 무소의 뿔처럼 달려올
매화를 기다리련다!
35. 매화 향기, 화엄의 강 따라 흐르다
내가 2005년에 우연히
안동의 묵계서원에서 <홍매>를 처음 알게 된 이후로
2011년부터 초봄에 매화기행을 다니게 된지 벌써 6년이 흘렀다
늦은 겨울, 남녘의 바닷바람에 달달한 매향이 실려오면
열 일을 제쳐두고 매화를 찾아 길을 나서는 일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연례행사이자
'삶의 의미'로 자리 잡은 지 어느듯 6년이 되었다
매화를 찾아서 겨울 속으로 나서는 탐매여행은
당나라의 자연주의 시인 맹호연이 홀로 먼 곳으로 떠나
눈 속에서 처음 피어나는
매화를 감상하고 온 데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선비들은 매화가 필 때면
멀리 있는 벗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를 읆고 술잔을 기울이며
찬 달빛 속에 핀 매화를 즐기는 풍류를 즐겼다
매화는 겨울의 마지막에 피는 꽃이면서
동시에 봄의 맨 처음에 피는 꽃이다
매화가 고드름처럼 얼어버린 가지목을 지키며
북풍의 칼바람을 맞으며 불빛 하나 없는 눈 덮힌 산야에서
온기 없는 별빛을 받으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은
얼은 대지를 녹이고 혹독한 추위를 걷어내는 봄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 초연히 꽃잎을 떨구어야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연꽃은 불교의 꽃, 장미는 기독교의 꽃,
매화는 유교의 꽃, 즉 선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선비들이 그토록 사랑한 매화는
일제 강점기에 식민통치의 억압으로 선비정신이 말살되므로써
매화의 정신과 덕목도 점점 잊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부 매화는 이름없는 선비의 뒷뜰에서
선비정신의 맥을 고이 지켜 왔고
많은 매화들은 깊은 산중 절터에서
스님들의 보살핌으로 토종매화의 명맥을 굳궂이 지켜왔다
올해 처음 대면한 운문사 <홍매>도
스님들의 보살핌 아래 잘 자라서 명매의 자질이 보인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그루의 매화
(선암매, 화엄사매화, 율곡매, 고불매)를 비롯하여
전국의 이름난 고매들이 일제 강점기와 주변의 무관심 등으로
깊고 깊은 겨울과 같은 시련을 겪었지만 부처님의 가피아래
매화향기는 화엄의 강따라 끊임없이 흘러왔다!
이제 2016년, 병신년의 매화기행을 마무리 하려한다
마침, 아주 가슴에 와 닿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 한편을 발견했다
늦은 밤 이 시를 조용히 음미하며
나는 또, 내년 2017년의 매화여행 꿈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2016. 04.17.
군북 집에서
매화 예찬
한 용 운
매화를 반가이 만나려거든,
그대여, 눈 쌓인 강촌(江村)으로 오게
저렇게 얼음 같은 뼈대이거니,
전생(前生)에는 백옥(白玉)의 넋이었던가.
낮에 보면 낮대로 기이한 모습,
밤이라 그 마음이야 어두워지랴.
긴 바람 피리 타고 멀리 번지고
따스한 날 선방(禪房)으로 스미는 향기!
매화로 하여 봄인데도 시구에는 냉기 어리고,
따스한 술잔 들며 긴긴 밤 새우는 것.
하이얀 꽃잎 언제나 달빛을 띠고,
붉은 그것 아침 햇살 바라보는 듯
그윽한 선비 있어 사랑하노니,
날씨가 차갑다 문을 닫으랴.
강남의 어지러운 다소의 일은 아예,
매화에겐 말하지 말라.
세상에 지기(知己)가 어디 흔한가.
매화를 상대하여 이 밤 취하리.
梅花何處在 雪裡多江村
今生寒氷骨 前身白玉魂
形容晝亦奇 精神夜不昏
長風散鐵笛 暖日入禪園
三春詩句冷 遙夜酒盃溫
白何帶夜月 紅堪對朝暾
幽人抱孤賞 耐寒不掩門
江南事蒼黃 莫向梅友言
人間知己少 相對倒深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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