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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안동 봉정사 영산암 - 2 ( 2013. 10.)

 

 

 

 

     승효상의 [‘我記宅處’] ‘부실한’ 영산암이 내겐 더 크다

                             [중앙일보] 입력 2011.07.02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

 

 

지난 5월 말, 르코르뷔지에가 진실의 건축이라며 극찬한 르토로네 수도원을

찾아간 게 사실 나로서는 다섯 번째 방문이었다.

더러는 가이드를 부탁 받아 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 곳을 다섯 번이나 간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건축이라도 이곳은 더구나 폐허인데 왜 그렇게 나를 계속 순례하게 하는

장소가 되었을까. 물론 수도원 여행은 다른 곳을 가는 것보다 좀 특별하다.

여행이라는 게 몸을 움직여 이뤄지는 일이지만, 수도원에 도달하면 그때부터

여행길에 지친 육체는 쉬고 정신은 오히려 맑아져 영혼이 사유의 길을 따라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듯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르토로네 수도원은 아마도 이를 위한 최적의 장소다. 그래도 다섯 번째라니…

뭔가 내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르토로네 수도원수도원은 이탈리아의 수도사 베네딕트의 가르침에 따른 수도 규칙이

6세기에 수립되면서 본격적 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11세기 무렵에 이르러 수도원의 세력이 커져 급기야 세속적으로 변하자,

수도의 진정성을 찾는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교회 개혁의 움직임이 일어나

금욕적 베네딕트 규칙을 철저히 따르기 위해 시토회가 창설되었다.

이들 중 일부가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의 숲 속 물가의 땅을 찾아 세운 게

르토로네 수도원이다.

12세기 후반에 짓기 시작해 13세기 초 완공했다고 하지만, 전체 건물이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한 사람의 강력한 지도 아래 지어졌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수도원 건축이 갖는 완벽한 통일성은 어떤 건축보다 우월하다.

 

 

 

 

 

 

 

 

 

 

 

 

 

 

 

 

 

 

 

울창한 상수리나무 숲 속을 지나 계곡의 물을 건넌 후,

안내소를 거쳐 폐허의 축대에 올라 햇살 가득한 마당을 안게 되면,

이 수도원 본당의 정면과 마주하게 된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소박하고 단아한 입면인데, 출입문은 가운데 있는 게 아니라

오른편 한구석에 작게 뚫려 있다. 가만히 몸을 숙이고 들어가 내부의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다소곳이 서 있으면, 아 지극히 아름다운 빛의 다발들이 고요하게 공간을 밝히며 밀려온다.

바닥과 벽, 기둥과 천장 모두 한 가지 석재로만 이루어진 공간 속에 이 감동적인 빛은,

때로는 석재의 거친 표면을 긁기도 하고 모서리의 각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하며

둥근 천장을 부드럽게 감싸며 돈다. 그러고는 더할 나위 없는 고요가 그 위에 내려앉는데,

마치 우리의 영혼이 그 고요 속에 거주하며 빛을 발하는 듯하다.

 

 인근에 있는 돌만 사용해 지은 집인데, 그 석재의 쓰임이 검박하고 절제돼 있다.

석재끼리의 맞춤과 이음은 대단히 정교하며 부재의 가공도 정직하다.

어디 모자람이 없고 넘침도 없다.

본당 옆 중정을 감싸는 회랑의 바닥은 지형을 따라 완만하게 흐르고,

그 바닥의 돌판 위에 아치형 창틀을 통해 강렬히 새겨지는 빛과 그림자의 행렬이

팽팽한 긴장을 만든다.

수도사들은 이 빛과 그림자를 밟으며 진실됨과 경건함을 구했을 게다.

그리고 몸을 낮추어 돌들의 소리를 경청하며 응답으로 찬트를 불렀을 것이다.

그야말로 성서에 기술된 대로 돌들이 일어나 찬양했다.

 

 

 

 

 

 

 

 

 

 

 

 

 

 

 

 

 

 

 

 

 

 

 

 

 

 

 

 

 

 

 

 

 

 

 문득 의문이 일었다. 그래서 이 완벽한 건축으로 무엇이 더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래서 결국 폐허가 되었을까. 그때, 불현듯 내 뇌리 속을 파고든 한 건축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땅 봉정사에 있는 영산암이었다.

 

봉정사 영산암영산암은 고려시대 지은 절인 봉정사의 부속 암자인데,

대웅전 동쪽 요사채에서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비탈 위에 고즈넉이 앉아 있다.

본래는 계곡의 개울을 건너야 갈 수 있었지만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의 촬영 장소로 알려지면서 몰려오는 이들을 맞기 위해 길에 석판을 까는 바람에

운치가 없어져버렸다.

 

 수도정진을 목적으로 하는 이 영산암은 부처가 설법할 때면 꽃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뜻의

우화루 하부를 통해 출입한다.

바로 서면 키가 닿을 정도여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눈높이에 마당이 전개된다.

마당에 오르면 양편에 요사채가 있고, 단을 높인 안쪽에 법당인 응진전과 삼성각이

가로막아 전체적으로 마당의 공간을 한정하는데, 고요가 깊게 깔려 있다.

 

 

 

 

 

 

 

 

 

 

 

 

 

 

 

 

 

 

 

 

 

 

 

 

 

 

 

 

 

 

 

 

 

 

 

 

마당은 손바닥만 하고 그것도 두 단으로 갈라져 있으며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볼품없는 받침 위에 서 있다.

건물들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쓰인 부재도 대단히 부실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난간과 계단은 아슬아슬하기까지 한데,

그럼에도 전체를 지배하는 침묵과 고요의 그 깊이와 맑기가 여간 아니다.

불가해한 비움. 어쩌면 완벽하지 못해, 아니다 완벽은 비움이 아니므로 의도적으로

완벽을 버린 까닭에 얻은 자유로움이다. 그래서 여기서 육신은 더욱 편안하고

영혼은 더없이 자유로우니, 그게 수도원 건축이 가져야 할 최고의 목표일 게다.

 

 그렇다. 대상무형(大象無形)이라 했다. 큰 사유는 형태가 없으니,

부실한 영산암이 내게는 더욱 크다.

이제 완벽한 르토로네에는 그만 와도 될 것인가.

                                        승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