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문학관은 지난 2009년 12월9일 착공돼
2011년 7월15일 준공되어20개월의 공사기간이 소요됐으며,
총사업비 38억2100만원(국비 2억, 도비5억2500만원, 군비 30억9600만원)이
투자됐다.
문학관의 시설규모는 지하 1층, 지상 2층 연건축 면적 640㎡이고
주요공간으로는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다목적실로 구성되어있다.
전시시설의 특징은 박인환 시인이 활동한 한국전쟁후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과 시인과 관련된 인물, 서점, 다방, 선술집 등의
역사적 명소를 현장감있게 재현함으로써 박인환 시인의 문학적 세계가
일반인들에게 쉽게 접근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또한 2011년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시인 박인환 거리, 목마와 숙녀’ 공공미술 가꾸기 사업으로
‘시인 박인환 거리 아치조형’, ‘시가 열리는 나무’, ‘책읽는 목마’,
‘하늘이 비치는 시 벤치’, ‘시인의 꿈’ 등 6개의 공공미술 작품들이
설치되어있다.
박인환문학관은 2012년 제15회 강원도 경관우수건축물
평가심사에서 비주거부분 우수상에 선정되었다.
박인환 [朴寅煥] 한국 시인브리태니커
태어난 때 | 1926. 8. 15 |
---|---|
태어난 곳 | 강원 인제 |
죽은 때 | 1956. 3. 20. |
소속 국가 | 한국 |
직업 |
시인 |
서구적 감수성과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면서 어두운 현실을 서정적으로 읊은
후기 모더니즘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광선(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939년 서울 덕수초등학교를 마쳤다. 이어 경기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해방이 되자 학업을 중단했다.
서울로 와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여러 시인들과 사귀었고,
서점을 그만두고는 〈자유신문〉·〈경향신문〉 기자로 근무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군 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하고 피난지 부산에서 김규동·이봉래 등과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했다.
1955년 대한해운공사에서 일하면서 미국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심장마비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1946년 〈국제신보〉에 시 〈거리〉를 발표해 문단에 나온 뒤 〈
남풍〉(신천지, 1947. 7)·〈지하실〉(민성, 1948. 3) 등을 발표하고,
1949년 김수영·김경린·양병식 등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합동 시집을 펴냈다.
모더니즘 시를 지향했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 〈검은 강〉·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했는데,
이들 시는 8·15해방직후의 혼란과 6·25전쟁의 황폐함을 겪으면서 느꼈던
도시문명의 불안과 시대의 고뇌를 감성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특히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되는 〈
목마와 숙녀〉는 그의 시의 특색을 잘 보여주면서도 참신하고 감각적 면모와
지적 절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1955년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번역해서 공연하기도 했다.
시집으로 생전에 〈박인환 시선집〉(1955)이 나왔고, 이어 〈목마와 숙녀〉(1976) 등이
발행되었다. 죽기 1주일 전에 지었다는 〈세월이 가면〉은
뒤에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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