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기념공원
글 : 위키백과
유엔기념공원(영어: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UNMCK)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남구에 있는 1951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 묘지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장병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위치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대연동)에 있으며,
평화공원, 부산문화회관, 부산박물관 등과 이웃하고 있다.
시설
총 면적은 176,486 ㎡, 기념묘지 면적은 14.39 ha이며,
대한민국 정부가 1978년에 건립한 12 미터 높이의 유엔군 위령탑이 있다.
상징구역
참전국 및 유엔기가 게양되어 있고, 안장국의 기념비가 있다.
주묘역
대부분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고,
영연방, 호주,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의 위령탑 및 기념비가 있다.
녹지지역
유엔군 위령탑, 제 2 기념관, 무명용사의 길,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등이 있다.
기념건축물
추모관, 기념관, 정문이 있다.
추모관과 정문은 김중업이 설계했다.
정문
정문은 1966년 11월 30일 만들어졌다.
지붕을 받치는 8개의 기둥의 끝을 순간과 영원을 상징하는
사발형태(주두)로 디자인하여 전몰장병들을 위한
부드럽고 엄숙한 기립을 표현했다.
지붕의 네 모서리 끝 추녀는 머나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지붕아래 네 개의 물받이는 전몰장병의 눈물을,
유리로 마무리된 지붕 천창은 유엔군의 영혼의 빛을 나타낸다.
“ 이국 땅에서 평화를 위하여 싸우다 간 여러 나라들의 전사들에게
두 손 모아 경건히 바친 작품이다.
<중략>
이 소품은 한껏 부푼 선에 부드러움을 불어 넣어,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향수를 기억하면서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으려는
벅찬 작업의 소산이다.
유엔 관계 건축 가운데서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라는
우탄트 총장의 찬사를 들은 작가로서는 큰 기쁨인 동시에
작가 개인에게도 소중한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
—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열화당, 1984년
기념관
기념관은 1968년 건축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사진 자료 및 기념물이 전시되고 있다.
홍매화
추모명비
추모명비는 추모공원의 중반부에 해당하며,
전반부에서 묘역을 지나 공원으로 진입하는 주동선에 있고,
기본계획 임채운, 실시설계는 조민석이 했다.
방문객은 정돈된 잔디를 가로지르는 좁고 긴 진입축을 통하여
숙연한 마음자세를 가다듬으며 접근하도록 되어 있다.
반사 연못까지 올라온 방문객은
원형 마루판으로 돌아서 높은 곳으로 올라서면 주변을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 벽은 반사 연못 안에 핀 연꽃과
전사자의 철모를 형상화한 조각이 현재의 푸른 하늘과 전쟁의 참혹함,
그들의 희생정신이 평화를 가져왔음을 상징한다.
반사 연못 안에 있는 기둥 위에 꺼지지 않는 불꽃은
그들의 명예와 희생, 사라지지않고 영원히 기억될 것임을 상징한다.
제단 뒤에 5 미터 높이의 침묵의 벽이 전체 시설물의 배경 역할을 하여
내부 공간이 망자들의 공간임을 강조한다.
대지 2,874.0 ㎡에 추모명비 조형물 820.60 ㎡,
보행로 부분 209.56 ㎡, 조경 부분 1,843.86 ㎡로 되어 있다.
추모관
한국전쟁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1964년 8월 21일 유엔이 추모관을 건립했다.
이 건물을 지탱하는 여섯 개의 노출된 들보와 추상성,
영원성을 강조하는 기하학적인 삼각 형태로서
주요 특징으로 추모관 양쪽 스테인드글라스에는
각각 평화의 사도, 승화, 전쟁의 참상, 사랑과 평화 등의 의미를 가지며,
내부에는 전투지원 참전 16개국을 뜻하는 16의 선이 중앙 정면 바닥에서 부터
유엔 상징을 통과하여 하늘로 승화한 뜻으로 천장을 가로지르는 형태에서,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과 의지를 담은
추모공간으로 엄숙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유엔기념공원
역사
1951년 1월 18일: 유엔군 사령부에서 묘지 조성
1952년 4월: 묘지가 완공되어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에 가매장되어 있던 한국전쟁 유엔군 전몰장병 유해 안장 시작
1955년 11월 7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
1955년 12월 15일: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문 제 977(X) 호로 채택, 토지에 대한 불가침권 부여
1959년 11월 6일: 유엔과 대한민국간에 “유엔 기념 묘지 설치 및 관리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을 체결하여 유엔기념묘지로 출발,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에서 관리
1974년 2월 16일: UNCURK 해체로 11 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Commission for the UNMCK)에 관리권한 위임
1974년 10월 24일: 문화재청에서 근대문화재로 등록(등록문화재 제359호)
1975년 3월 30일: 공식명칭을 ‘재한유엔기념묘지’(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UNMCK)에서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변경
1975년 12월 26일: 문화재청에서 종전 '재한유엔(UN)기념공원'에서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등록문화재 명칭을 변경 고시
현황
파병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제연합은 1950년 6월 28일 제2차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이라는 이름으로 유엔(UN)군을 파병할 것을 결의하였다. 지원현황은 전투병력과 장비 등을 지원한 전투지원 63개국과 병원선, 의료진, 의약품 등을 지원한 의료지원 5개국 등을 포함하여 총 63개국이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해 참전하였다.
전투지원 (26개국): 미국, 영국, 터키, 캐나다, 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남아공, 콜롬비아, 그리스, 태국, 에티오피아, 필리핀, 벨기에, 룩셈부르크.
의료지원 (5개국): 노르웨이,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스웨덴 등
희생[편집]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기간동안, 참전 21개국 중 17개국 (의료지원국 중 노르웨이 포함)에서 40,896 명의 유엔군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안장
1951년 ~ 1954년 사이에 21 개국 유엔군 전사자 약 11,000 여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룩셈부르크, 필리핀, 태국 등 7 개국 용사의 유해 전부와 그 외 국가의 일부 유해가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되어 , 2012년 현재 유엔군부대에 파견 중에 전사한 한국군 중 36 명을 포함하여 11 개국의 2,300 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영국군 885명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 전사자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것은, 숨진 곳에 묻는 영국 풍습에 따른 것이다.
단, 안장자 모두가 전사자는 아니다. 미군의 경우 한국전 참전자 본인이 원한 경우 사후 이곳에 안장하였다. 또한 다른 나라도 전쟁이 끝난 직후 병력을 철수한 게 아니라 몇 년 더 한국에 머물렀는데 이 머무르는 도중에 사고를 당해 죽은 경우도 이곳에 안장한 경우도 있다.
국제관리위원회
1974년부터 대한민국을 포함한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남아공, 터키, 영국, 미국 등 전사자가 안장된 11 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관리위원회(재한유엔기념공원 관리처)가 유엔기념공원 관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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