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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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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칠불사 - 아자방은 현재 공사 중 (2023.06.06.) 하동 칠불사 칠불사(七佛寺)는 가야불교의 발상지이며,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이며, 동국제일선원이다. 또한 해동계맥을 수립한 율 도량이고, 동다를 증흥한 차도량이며, 거문고를 전승한 현악의 도량이기도 하다. 칠불사는 지리산의 중심봉인 반야봉(1,732m)의 남쪽 8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은 『옥룡자결』(玉龍子訣)에 의하면 지리산 칠불사는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으로, 제일의 양택이라고 했다. 임진란에 퇴락한 가람을 서산대사와 부휴대사가 중수하였다. 그 후 1800년에 큰 화재가 나서 보광전, 약사전, 미타전, 벽안당(亞字房), 칠불각, 설선당, 보설루, 요사 등 10여 동의 건물이 전소되었는데 대은율사와 금담율사에 의해 모두 복구되었다. 그러나 6·25전란으로 인해 1951년 1월경에..
하동 쌍계사 금당 (2023.05.13.) 지리산 쌍계사 금당 [ 智異山雙磎寺 金堂 ] 개설 신라 시대 의상(義湘) 대사의 제자인 승려 삼법(三法)은 대비(大悲)·선백과 함께 당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정상(頂相) [머리뼈]을 모시고 신라로 돌아와서, 봉안한 뒤 조그만 암자를 세우고 정진하다가 입적(入寂)하였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폐사되었는데, 그 뒤에 진감 선사(眞鑑國師) 혜소(慧昭)가 이 장소를 찾아서 절을 세운 것이 지금의 지리산 쌍계사 금당 (金堂)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1. 육조의 정상을 모시고 온 삼법 화상 삼법 화상의 출생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661년(문무왕 1)경에 태어나 739년(효성왕 3)에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 대사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를 받았으며, 너무도 총명하여 경장(經藏)..
야생차 시배지, 하동 쌍계사 (2023.05.13.) 쌍계사 雙磎寺 옥천사(玉泉寺), 지리산쌍계사 시대 - 고대/삼국 문화재 지정 -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제21호 건립시기 - 723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요약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삼법이 창건한 사찰. 시도기념물.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관장하는 말사는 43개이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쌍계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적 변천 이 절은 723년(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머리를 취..
김해 봉황동유적 ( 패총과 봉황대, 2023.04.08.) 김해 봉황동 유적 金海 鳳凰洞 遺蹟 Archaeological Site in Bonghwang-dong, Gimhae (대한민국의 사적 제2호) 1. 개요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에 위치한 1~4세기경 청동기시대, 금관가야 유적이다. 1963년 사적 제2호로 지정되었다. 2. 상세 원래 사적 제2호는 김해 회현리 패총이었다. 바로 옆에 봉황대 유적(과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이 있었는데, 이 두 유적이 서로 관련이 크다는 지적이 있어왔고 2003년에 둘을 합쳐서 사적 제2호 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재지정했다. 패총(조개무덤)과 봉황대는 김해 봉황동 유적의 일부분이 되었다. 2.1. 회현리 패총 패총, 즉 초기 가야 사람들이 조개를 까 먹고 조개껍데기 등 각종 쓰레기를 버린 구덩이로 수많은 중요한 유물..
화엄사 사사자석탑 (2023. 03.) [숲과 사찰 사사자심층석탑] 1,400년을 뛰어넘은 연기조사의 孝心, 다시 서다 국보 35호 지리산 화엄사 사사자四獅子삼층석탑은 각황전(국보 67호), 석등(국보 12호) 과 함께 화엄사를 대표하는 국보로서 화엄사의 상징이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국내의 대표적인 이형異形 석탑이다. 2층으로 높게 만들어진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와 상륜부로 이뤄져 있다. 상층기단에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모퉁이에 세워놓은 구조인데 사자의 형상은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상태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네 마리의 사자에 둘러싸인 채 합장을 하고 있는 어머니상이 조각돼 있는데 이는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석등..
영주 인동 장씨 종택 (2023. 02.) 화기리 인동 장씨종택 (花岐里 仁同 張氏宗宅)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8호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은 화기리 꽃계 마을 입향조인 장언상(1529∼1609)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꽃계 마을은 장언상이 터를 잡은 이후 후손들이 번창하여 인동장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인동장씨 종택은 기와지붕 집으로 앞쪽에 본채, 뒤쪽에 사당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ㅁ’ 자형을 이루고 있으나 각각 독립된 건물로 평면구성이 특이하다. 사랑채는 정면 3칸의 누각형 건물이고, 안채는 가운데 대청이 3칸, 좌측에 큰방과 부엌이 있고 우측에 상방, 부엌, 고방 등으로 되어 있다. 사당에는 장말손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이 종택은 처음 만들었을 때의 모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으며, 구조가 독특하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가옥과 민속 ..
영주 해우당고택 (2023. 02.) 영주 해우당고택 해우당 고택(海愚堂古宅)은 1879년(고종 16)에 의금부도사를 지낸 김낙풍(金樂灃)[1825~1900]이 건립하였다. 김낙풍의 본관은 선성(宣城), 자는 성발(聖潑), 호는 해우당(海遇堂) 또는 대은(大隱)이다. 김낙풍은 평생을 거의 서울에서 지냈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며, 사귄 이들이 모두 명류(名流)들이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는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 막역지우로 지내면서 두터운 우정을 나누었고, 집권 후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했다. 영주 지역에서도 이산서원 원장을 지내는 등 추앙을 받았다. 김낙풍의 저서로 유고(遺稿) 2책이 있다 해우당 고택은 평탄한 대지에 산을 등지고 북서향하고 있다. 행랑채와 방앗간채가 ㅁ자형 평면을 이룬다.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로 사랑채 오른쪽 ..
영주 김세기 가옥 (2023. 02.) 영주 김세기 가옥 김세기 가옥은 경북 영주 선비촌에 있는 고택으로 서민들을 위해 자신의 의술을 펼치는 선비의 가옥으로 설정하여 약방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곳이다. 김세기는(1852~1908) 1874년 고종때 사마시를 거쳐 1882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성과 대사헌을 거쳤던 인물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대문채는 맞배지붕으로 기와를 올려 단촐하면서도 운치가 있다. 가운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한 기와집이 위풍 당당하게 서있으며 맨 오른쪽에는 대청 마루가 있고 그 옆으로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마루 앞에는 약탕기가 질서 정연하게 놓여있어 옛 약방의 향기를 물씬 풍이고 있어 아이들의 체험학습 장소로 제격이다. 마루밑에는 잘 마른 장작이 쌓여 있고 가마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