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해우당고택
해우당 고택(海愚堂古宅)은 1879년(고종 16)에
의금부도사를 지낸 김낙풍(金樂灃)[1825~1900]이 건립하였다.
김낙풍의 본관은 선성(宣城), 자는 성발(聖潑), 호는 해우당(海遇堂) 또는 대은(大隱)이다.
김낙풍은 평생을 거의 서울에서 지냈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며,
사귄 이들이 모두 명류(名流)들이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는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 막역지우로 지내면서
두터운 우정을 나누었고, 집권 후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했다.
영주 지역에서도 이산서원 원장을 지내는 등 추앙을 받았다.
김낙풍의 저서로 유고(遺稿) 2책이 있다
해우당 고택은 평탄한 대지에 산을 등지고 북서향하고 있다.
행랑채와 방앗간채가 ㅁ자형 평면을 이룬다.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로 사랑채 오른쪽 1칸이 돌출된 것이 특징이다.
지붕은 큰사랑채만 별도로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나머지는 맞배지붕에 골기와를 이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바깥마당이 나오고,
다시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을 열면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상방,
오른쪽에 안방을 배치하고, 안방 앞으로 정지·고방을 배열했다.
정지는 안마당 쪽으로 개방되어 있고,
정지와 고방 상부에는 우물마루를 깐 다락을 두었다. 상방 앞으로는 상방 정지,
중방, 고방을 꾸며 놓았다.
상방의 정지는 안마당 쪽으로 벽체 없이 개방되어 있고
위에는 상방다락이 놓여 있다.
사랑채는 중문을 중심으로 좌측에 작은사랑과 마루방을 두었고,
우측에는 큰사랑방과 마루방을 연이어 꾸며 놓았다
사랑방 2칸 중 뒤쪽 1칸은 ㄱ자로 꺾어 책방 1칸을 두었으며,
마루방과 빈소방은 ㅁ자형 평면에서 오른쪽으로 1칸 돌출되어 있다.
큰사랑채는 작은사랑채보다 다소 지대를 높여 통주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툇마루에 계자각 헌함을 돌렸다.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는 방앗간채가 들어서 있다.
해우당과 대은정(大隱亭)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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