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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남 . 부 산

함양 허삼둘 가옥(금천리 윤씨 고가) - 2 (2012.10.)

 

 

 

 참으로 사랑스런 집이었다. 비록 사람의 온기가 끊긴 뒤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기는 했지만 옛 살림의 속내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런 집이었다. 함양 허삼둘 가옥. 우리 고가(古家) 중 아마도 유일무이하게 안주인의 이름을 딴 특이한 이 집은 2004년 두 차례의 화재로 새까맣게 그을리고 말았다. 그즈음 함양 안의는 유독 화마에 시달렸다. 화림동계곡의 농월정이 전소되었고, 안의에서 함양 가는 길목의 정여창 고택도 일부가 소실되었다. 모두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었다.

 

 

 안의는 물이 많은 고장이다. 화림동계곡의 남계천을 비롯해 지우천, 신안천, 귀곡천 등이 흘러들어 남강을 이룬다. 수기(水氣)가 많은 탓인지 예로부터 음기(陰氣)가 센 곳으로 알려져 왔다. 옛 이름이 안음으로, 이웃 산음과 함께 ‘음’자 지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영조 4년(1767) 산음에서 일곱 살 난 여자아이가 아이를 낳는 고약한 일이 일어나자 음기가 너무 센 탓이라며 산음을 산청으로, 안음을 안의로 개명했다. 그런 안의가 일시에 덮쳐든 화기에 시달린 사실은 짐짓 아이러니하다.

 

 

 허삼둘 가옥이 이 땅에서는 드물게 ‘페미니즘적인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집안의 속내와 관련이 있다. 이 집은 1918년 윤대흥이라는 사람이 진양 갑부인 허씨 문중에 장가들면서 부인 허삼둘과 함께 지은 집이다. 어쩌면 경제적 실권을 쥐고 있었을 안주인의 이름을 붙인 것 말고도, 집의 구조도 그때까지의 사대부집 사랑채 중심 구조가 아닌 안채의 편리성 위주로 지어져 특이하다. 이는 갑오개혁 이후 변화된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그 헤게모니가 어떠하든 허삼둘 가옥은 권위를 내세우는 전통 양반가옥과는 달리 여성의 동선을 우선으로 고려한 가옥 배치로 새삼 눈길을 끈다.

 

 

 그 중 백미는 ㄱ자로 꺾인 안채 모서리에 배치한 부엌이다. 양쪽 마루를 통해 곧장 부엌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통로를 냈고, 꺾인 부분에 선반과 시렁을 설치해 가사활동에 편리한 수납공간으로 활용했다. 오방형의 부엌 안은 기둥만 두 개 서있어 공간이 보다 넓어 보인다. 부엌을 중심으로 안채의 한쪽은 사랑채로, 다른 한쪽은 곳간으로 이어진다. 이 역시 집안 살림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과이다. 비록 갖가지 모양의 창살로 호사를 부리고, 과도하게 높은 솟을대문으로 권위를 내세우려 한 점도 엿보이기는 하지만, 허삼둘 가옥의 미덕은 살림을 배려한 집으로서 이미 그 가치가 남다르다.

 

 

 그런 사랑스런 집이 새카맣게 그을린 채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퇴락한 마루하며 무너진 장독대, 방초만 무성한 마당은 우리 마음의 풍경인양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다시 마루에 매끄러운 윤기가 돌고, 시렁 위에 살림살이가 가지런하고, 장독대에 마당에 사람의 온기가 문득 되살아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 더욱 절실해지는 그리움 때문이다. 고향 그리고 집, 잊히지 않는 삶의 추억 때문이다.

 

 주소: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196

 

(출처 : 유성문<여행작가> rotack@lycos.co.kr     2011 02/08ㅣ주간경향 9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