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산정사는 임진왜란때의 선무원종공신인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 이달(李達) 장군의 사우로 1880년에 건립되었으며 1931년에 한 차례의 보수가 있었다. 강당과 대문채의 2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담장의 전면 바깥쪽에 관리사와 고사를 두고 있는데 경사진 지형에 따라 담장으로 두른 경내는 전면의 외부보다 높이가 높으며 담장 내부의 지형은 거의 평탄하다. 철산정사는 강당과 대문채를 마주보게 배치하고 담장을 두른 간단한 배치형식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전면 반 칸에 퇴를 둔 전퇴집이며 실의 배열은 좌로부터 방, 방, 마루, 방의 순으로 배열하였고 전면의 반칸은 모두 툇마루로 구성하였다. 방의 뒤쪽으로는 모두 벽장을 시설하였고 마루는 모두 우물마루로 구성하였다.
큼직한 자연석을 4~5단 쌓아 다소 높게 조성한 기단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초석은 자연석을 이용하였고 기둥은 전면에만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방의 정면에는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고 대청쪽 출입문은 쌍여닫이의 굽널세살문을 끼웠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대청쪽 출입문은 없는 상태이다. 방의 정면 문틀 아래에는 머름을 두고 방과 대청의 벽체에는 모두 중인방을 쓰고 있어 격식을 갖추려고 애쓴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가구는 3량구조로 툇간에서 보낸 퇴보와 연결한 대들보 위에 긴 각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한 간단한 구조로 단순, 소박한 조선시대 건축의 가구법을 잘 적용하고 있으며 홑처마에 박공지붕 형식이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대문의 좌, 우칸을 다 창고로 사용하고 있으며 3량구조, 우진각 지붕형식이다.
철산정사는 지붕의 물받이를 댄 것과 전면 계단과 댓돌을 시멘트로 바른 것에 큰 변형이 없고 마루의 청판과 배면 벽체의 일부가 탈락한 것 그리고 문짝이 없는 것 등 관리가 다소 미흡하기는 하나 강당의 입면비례가 훌륭하고 중인방의 사용이나 머름을 둔 것 등 격식을 갖추려고 애쓴 점과 간결한 가구법 등 조선시대 건축의 예를 잘 따르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 (자료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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