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영천 정용준 가옥 ( 연정고택 )
- 자연과 더불어 산다 -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영천시는, 태백산맥의 정기를 담은 보현산과 팔공산, 운주산을 배경으로,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에 접해있는 전형적인 도·농복합형 도시이다.
남천과 북천이 합류하여 금호강 유역의 곡창지대를 만들었고, 사과와 포도의 주산지이기도 하며, 근래에는 근교농업이 발달하여 농공병진의 산업구조로 바뀌고 있다.
중앙선·대구선 철도와 경부 및 대구-포항고속도로에 접해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금호강이 시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어 북측에 구시가지가, 남측에는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는 영천지방을 경주 양동마을과 연계해서 ‘영남의 양반문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관광코스’라고 예찬하였는데, 영천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포은 정몽주 선생이 있다. 포은 선생은 동방 성리학의 시조로서 추앙받는 분이고, ‘목숨을 버릴지언정 두 왕조를 섬기지 않겠다’는 충절을 단심가로 노래하고, 기울어가는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다 이방원에게 피살당했는데, 임고면 고천동에는 선생을 모신 임고서원이 있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때 처음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선조 때 사액을 받아 재건되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때 철거되었다가 1965년에야 다시 복원되는 시련을 겪었다.
1. 임고서원 2. 선원리 함계정사
3. 선원리 환구세덕사 4. 삼매리 매산고택
임고면 선원마을 원경 - 우측 상단에 고속도로가 보인다 ( 2012.09.)
임고면 선원마을 근경 - 신선교 다리 앞 ( 2012.09.)
북영천 IC에서 영천댐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가 복숭아밭을 지나서 마을회관 앞, 신선교에서 좌회전하면, 주변의 자연과 경치가 너무 아름답고 뒷산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어서 도연명의 무릉도원에 비견할만하다 하여 선원仙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임고면 선원仙源마을이 나온다.
마을의 동쪽과 남쪽으로 자호천紫湖川이 흐르고 약 200m 높이의 학산鶴山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선원마을의 뒷산 언덕이 고리 모양으로 마을을 감고 있다 하여 환고還皐라고도 불렸는데, 영천에서 가장 살기 좋은 세 곳 「일 자천, 이 환고, 삼 평호」중 하나에 속할 정도로 주거환경이 뛰어나기로 이름 높았던 곳이다.
선원마을은 영일 정씨들이 모여 사는 씨족마을로 마을 입구 언덕에는 함계정사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유교 문화가 융성하였던 조선조 중엽에 이기설로 유명한 함계涵溪 정석달 선생과 그의 아들인 매산梅山 정중기 등 뛰어난 유학자를 배출하기도 했으며, 마을 뒤로는 선조의 묘소를 중심으로 약 3천평이 넘는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고, 마을에는 종가를 비롯한 10여 채의 고색창연한 고택들이 남아있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이 선원마을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정용준 가옥은 일명 연정고택蓮亭古宅이라고도 불리는데, 집 앞 냇가에 연정蓮亭이라는 운치 있는 정자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연정고택 전경 - 1 ( 2005. 03.)
연정고택 전경 - 2 ( 2012. 09.)
연정고택 전경 - 3 ( 2012. 09.)
연정고택 전경 - 4 ( 2005. 03.)
연정고택은 정용준씨의 8대조가 조선 영조임금 시절(1725년)에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원마을에서 가장 깊숙하고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마을의 다른 집들과는 달리 집의 배치향이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렇게 방향을 달리 잡은 이유는, 전면의 안산을 고려한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보이며, 집이 평탄한 구릉지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집 뒤에는 대나무 숲으로 인공적인 차폐림을 조성하여 뒷산이 없는 단점을 보완하도록 하였다.
연정고택의 전체적 구성은 본채와 정자인 연정蓮亭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는 사랑채와 문간채가 '一'자형으로 붙어 있고, ‘ㄱ’자형 평면의 안채와 곳간채, 그리고 아래채가 이어져 전체적으로 ‘ㅁ’자형 평면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와 6.25동란을 겪으면서 대문채, 부속채와 담장이 소실되고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전체적인 배치와 모습을 정확히 알기가 어렵게 되었다.
연정고택 사랑채와 아래채 ( 2005. 03.)
연정고택 곳간채와 안채 ( 2005. 03.)
연정고택 안채와 아래채 ( 2005. 03.)
연정고택 아래채 ( 2005. 03.)
연정고택 주출입구의 오른쪽으로 위치한 사랑채는 사랑방, 대청, 지금은 대문으로 쓰이는 중문과 광, 작은 사랑방, 마루방이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사랑방에는 반 칸 정도의 방과 대청이 붙어 있는데, 집 전체의 규모로 볼 때 사랑방과 대청이 매우 협소해서 안채에 비하여 사랑채의 위상이 많이 축소되고 약화되어 있는 구성이다. 그나마 전퇴 부분에 계자 난간을 설치하여 사랑채라는 이미지를 미흡하나마 살리고 있다.
주출입구의 오른쪽으로 위치한 사랑채 (2006.07.)
안 채 - 1 (2006.07.)
곳간채와 안채 (2006.07.)
안 채 - 2 (2006.07.)
안 채 - 3 (2006.07.)
안채는 일심당一心堂이라고도 하며 안방, 대청, 건넌방, 부엌, 광으로 되어있다. 안방이 2칸이고 대청이 4칸인데 안방의 뒤쪽에는 골방과 툇마루가 있고, 안방의 아래는 3칸 크기의 큰 부엌이 있다. 대청의 건너편에는 한 칸이 좀 넘는 크기의 작은방이라 불리는 건넌방이 있다.
넓은 안마당과 각 채의 연결 부위에 설치된 4곳의 출입문은, 안채를 밝고 개방적으로 느끼게 하는 요소로서, 일반적인 사대부집의 안채에서 느끼는 폐쇄적인 답답함과는 차이가 나는 점으로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곳간채는 판벽으로 처리되어 있고, 마루바닥이 지면에서 떠 있어서 곡식을 저장함에 있어 통풍처리와 습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외양간, 방앗간, 광을 가진 아래채는 안채의 부엌과 광을 마주보고 있으며 방앗간에는 디딜방아가 남아있다.
연정고택 사랑채 ( 2012. 09. 07.)
닫혀있는 중문에서 본 주출입구와 연정 ( 2012. 09. 07.)
연정고택 사랑채와 아래채 후면부의 연결부위 ( 2012. 09. 07.)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연정고택은 전형적인 사대부집 이라기보다는 부농의 집에 가까운 모습이다. 사랑채의 경우 사대부집의 사랑채 모습을 따르고는 있지만, 안채는 일반 민가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20칸이 넘는 넓은 안마당이 농사에 필요한 작업공간으로 활용되었고, 사랑채의 기능이 많이 축소되고 사당이 존재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대부집 이라기보다는 부농층 민가라고 보는 견해가 타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 정 - 1 ( 2005. 03.)
연 정 - 2 ( 2006. 07.)
연 정 - 3 ( 2006. 07.)
연 정 - 4 ( 2006. 07.)
연 정 - 5 ( 2006. 07.)
고택의 담장 밖 냇가에 조용히 자리 잡은 연정蓮亭은, 본채의 남서향과는 달리 정남향으로 계류와 언덕을 마주하고 있다. 흘러가는 계류를 막아 연못을 조성하고 낮은 언덕위에 정자를 앉혔다.
5칸 크기의 대청과 정면 3칸에 중앙이 마루로 되어 있고 계류 쪽으로 계자난간이 있다. 집을 지었더니 연못에서 저절로 연꽃이 솟아났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
작은 계곡 쪽을 넓혀 만든 연못은, 인공의 티가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산에서 흘러오는 계류가 정자 뒤편에서 잠시 웅덩이를 만들고, 연못으로 흘러들었다가 다시 아래쪽으로 빠져나간다.
계곡을 흐르던 맑은 물이 연못에서 잠시 노닐다가, 물 흐르듯이 제 갈 길로 돌아간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롭게 활용한 점은 주인의 높은 식견을 짐작케 하는 탁월한 솜씨라고 여겨진다.
연정고택과 정자, 그리고 작은 연못의 합리적인 구성과 친자연주의 사상은 연정을 설계했던 주인의 고매한 인품과, 삶의 지혜를 잘 대변해 주고 있고, 조선시대 민간정원 유적으로서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연 정 - 6 ( 2012. 09. 07.)
연 정 - 7 ( 2012. 09. 07.)
연 정 - 8 ( 2012. 09. 07.)
연 정 - 9 ( 2012. 09. 07.)
연 정 - 10 ( 2012. 09. 07.)
한편, 신선들이 살았을 법한 선원마을에도 시련은 있었다. 풍수가들이 말하기를, 선원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학산鶴山은, 알을 품은 학의 형상으로 백학포란형 白鶴抱卵形의 명당이라고 했는데, 근래에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마을의 정기를 간직한 학산鶴山을 절개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날로 쇠락해 가는 전통마을의 정신적인 지주마저 잘라내는 아픔이 있었지만 대의를 위해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법.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난 뒤 2006년 여름에 선원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을 어귀에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 ‘환영 여름이야기 영화 촬영’ - 그 뒤 영화 제목은 ‘그해 여름’으로 바뀌어서 2006년 말에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영화 '그해 여름'은 이병헌과 수애 주연의 작품으로, 가슴 속에 묻어둔 아련한 첫사랑을 찾아나서는 남자 주인공의 회상을 소재로 한 순수 멜로 영화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40년의 긴 세월을 넘나든다.
농촌봉사활동을 온 대학생(이병헌)과 시골처녀(수애)와의 아름답고 풋풋한 사랑이, 1970년대 군사독재시절의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되는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로서, 전체적인 내용과 전개는 진부하지만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옛날의 추억이 향수를 자극하는 잔잔한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젊고 아름다운 시절 이병헌과 수애가 밀애를 속삭이는 주무대가 이 곳 연정蓮亭이었지만, 대부분 부분 컷의 배경으로만 처리되어 연정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아무튼, 연정蓮亭은 가꾸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공간조성 기법이 돋보이는 자연생태적 친환경 연못으로서, 고택의 얼굴이자, 고택의 역사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아울러 달빛 고요한 밤에 연못가의 나무의자에 앉아서 이병헌과 수애가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사랑을 고백하던 수줍던 사랑도, 또한 연정蓮亭의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2012. 09.
영화'그해 여름'의 이병헌과 수애 ( 자료 : 네이버 영화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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