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청원 이항희 가옥
- 작은 마당이 아름답다 -
충청북도의 서부 중앙에 자리 잡은 청원군은 상당산맥을 중심으로 동쪽은 남한강이, 서쪽에는 금강이 흐른다. 충청북도 최대 곡창인 미호평야는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이 만들어 놓은 넓은 충적평야이고, 청원군과 대전 사이에 놓여 있는 대청호는 금강에 댐을 설치하여 만들어진 거대한 호수로서, 중부 내륙의 너른 들에 용수를 공급하는 중요한 수원지 역할을 한다. 대청댐은 중부권에서는 충주호 다음으로 큰 인공호수로서 관광자원이자 미호평야의 젖줄이 된다.
대청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문의문화재단지는, 1980년 대청댐 건설이 계기가 되어 수몰위기에 처한 지역문화재를 보존하고 주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총 4만여 평의 대지위에 민가 5동, 관아건물 1동, 성곽 및 성문 1개소, 유물전시관 1개소로 문의면 문산리에 조성되었다.
청원군의 지리적인 도시형태는 청주시를 둘러싸 포위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두 지역을 통합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는데, 1995년 도농복합통합화 무산 이후로, 2009년 행정구역 개편안에 따라 다시 청주시와의 통합론이 물망에 올랐으나 일부의 반대로 역시 좌절되었다.
그러나 통합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이어져서, 2012년 4월 24일 한범덕 청주시장과 이종윤 청원군수는 ‘청주·청원 통합추진 합의문’에 서명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해 줄 것을 행정안전부에 건의하여, 2012년 6월 27일에 주민투표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주민투표에서 약 80%의 찬성으로 오랜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2014년 7월에 4개의 구청으로 도농통합시가 출범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현재 청원군은 청주국제공항을 비롯하여 오송역이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의 분기역으로서의 운영을 시작하였고, 경부고속도로와 당진-상주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가 군을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하다.
윗고분터 마을의 전경. 마을 제일 뒤쪽에 이항희 가옥의 지붕만 겨우 보인다. ( 2012. 08.)
청주에서 25번 국도로 보은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남일면으로 들어서면 무심천 위로 고은교를 지나게 된다. 보은방면과 문의방면의 분기점이 되는 고은삼거리를 돌아서 오른쪽에 주유소를 보면서 좌회전하면 고은리 윗고분터 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 도로는 옛날에는 한적한 국도였는데 남일-문의간 도로확장공사로 인하여 도로여건이 좋아지자 통과차량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래서 마을 진출입에 바짝 신경을 써야 하는 새로운 불편이 생겼다. 교통여건은 개선되었지만 사고위험은 증가하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윗고분터 마을의 뒤쪽으로, 좌구산에서 뻗어 내린 태봉胎峰 산기슭에, 마당의 공간 분할이 아름다운 ‘청원 이항희 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남일면 고은리의 윗고분터 마을은 경주 이씨 집성촌으로 70여세대가 모여 살고 있는데, 마을 가장 위쪽의 기와와 초가로 이은 집이 바로 이항희 가옥이다. 마을 입구 국도에서 보면 어지러운 양옥들 사이로 이항희 가옥의 지붕만 겨우 보이지만, 원래는 마을 전체가 이항희 가옥의 토지였는데 해방이후부터 친척들이 집을 짓고 살도록 허용하면서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항희 가옥은 마을을 향해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고, 집의 전면부와 사랑채는 별도의 담장을 두르지 않아서 마을을 향해서 열려있는 상당히 개방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안마당 앞의 가운데마당(중정)의 모습 ( 2012. 08.)
내가 4번이나 방문한 이항희 가옥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택이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소박한 정겨움과 공간미학이 느껴지는 무척 매력적인 집이라는 게, 답사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감정이다.
아담하고 실용적인 대문간을 중심으로 좌우로 이어진 행랑채와 사랑채의 외관구성이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이고, 안채와 사랑채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기와대신 초가로 지붕을 처리하여 조화와 검소함을 실천하였고, 각각의 건물을 연결하는 공간과 동선의 짜임새와 전개는 막힌 듯 열리고, 열린 듯 닫아서, 자연스러우면서도 리듬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집이다.
규모가 으리으리하고 볼 게 많아서 주목받는 집이 아니라, 작고 단순하지만 다양한 공간체험과 개성적인 구성으로 인해서 보면 볼수록 호감이 가는 매력적인 집이라는 것이다.
마을로부터 주진입로의 모습 ( 2006. 09.)
뒷산에서 본 이항희가옥의 모습 ( 2005. 04.)
전반적인 이항희 가옥의 내용과 특징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아주 잘 나와 있기에 부분적으로 발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안채의 상량문(上樑文)에 「숭정(崇禎) 기원후 사신유(四辛酉) 오월 초삼일 진시(辰時) 입주상량(立柱上樑) 건좌손간(乾坐巽間)」이라 하였으므로 1861년에 지은 것임을 알겠다. 그러나 사랑채, 기타 건물은 1930년대에 지었지 않았나 추측한다.
집의 앞쪽에 '一'자형의 행랑채와 사랑채가 있고 안쪽에 'ㄱ'자형의 안채가 자리한다. 광채와 곳간채는 안채의 양 옆으로 각각 위치하고 있다.
행랑채는 왼쪽부터 측간·외양간·행랑방으로 배열되었고 오른쪽 끝에 대문이 있다. 사랑채는 행랑채의 오른쪽에 있는데 행랑채의 댓돌이 낮은데 비하여 사랑채의 죽담이 훨씬 높아서 사랑채가 우람하게 보인다. 사랑채 오른쪽은 언덕으로 연결되며 앞은 넓은 바깥마당이다.
바깥마당은 담장 없이 외부로 개방되어 있다. 큰사랑방·대청·건넌방이 배열되었으며 바깥마당 쪽으로 툇마루를 놓았다. 행랑채의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를 경계하기 위한 담장이 축조되어 있고 그 사이에 작은 쪽대문을 설치하였다. 안채는 쪽대문을 통하여 출입할 수 있다. 이렇게 바깥마당과 가운데마당·안마당으로 구분을 지은 공간의 구성과 전개는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이다.
중앙에 있는 대청이 중심이 되는 안채는 활달한 구조를 하고 있다. 기둥 사이가 아주 넓은 반면 기둥 높이는 낮아 차분한 안정감을 주는 건물이다. 대청의 왼쪽으로 안방이 있고 안방 아래쪽으로 넓은 크기의 부엌이 있다. 골방과 건넌방은 대청의 오른쪽에 자리한다. 대청은 마당쪽으로 개방이 되어 있고 안방 앞의 툇마루를 통하면 부엌으로 동선이 연결된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외부공간의 구성과 조경이다. 바깥마당의 서쪽 측면에서 사랑채와 동쪽 곁의 회나무를 바라보면서 바깥마당에 이르고, 행랑채 동쪽 끝에 시설된 대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마당의 아담한 공간을 감지하며 담장에 시설된 일각대문(중문)을 지나면 안마당에 들어선다. 큰 공간에서 작은공간, 다시 중간공간 이러한 공간의 구성과 전개는 율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
행랑채와 사랑채 사이의 대문의 모습 ( 2012. 08.)
대문의 모습 ( 2006. 09.)
사랑채의 모습 ( 2012. 08.)
사랑채 후면과 담장의 모습 ( 2012. 08.)
이항희 가옥의 전체적 구성은, ‘一’자형의 행랑채와 사랑채, 'ㄱ'자형의 안채 그리고 안채 좌우의 광채와 곳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사당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다. 현존하는 건물 중 안채는 조선후기에 지은 것이고, 나머지 사랑채와 기타 건물은 1930년대에 지은 근대식 한옥건물이다.
근대식 한옥의 일반적인 경향은, 기둥간격을 넓히고 지붕을 높혀서 건물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권위적으로 바뀌어 지면서, 우리 전통한옥의 단아한 멋을 점점 잃어 가게 되는 안타까운 면이 나타난다. 그 변화 중에서도 가장 눈에 뛰는 것은 유리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구한말 이후부터 서양문물과 함께 들어온 유리는, 궁궐과 서울의 상류층 집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점점 지방의 지주와 부농의 집에까지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이항희 가옥의 사랑채도 그 당시 시대상황의 영향을 받았다. 건물을 키우고 퇴칸에는 유리문을 달았다.
당시의 유행을 반영한 것이었겠지만, 사랑채보다 약 100년 앞서 건축한 안채보다도 건물의 품격이 한수 아래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사랑채의 구성은 대청·사랑방·건넌방의 흔히 보이는 평면구성이며, 전면의 바깥마당은 아랫집과 뒷쪽의 큰 회나무로써 담장 없이도 외부공간의 분위기를 훌륭히 연출하였다.
안마당 앞의 가운데마당(중정)의 모습 ( 2012. 08.)
안마당에서 본 가운데마당(중정)의 모습 - 1 ( 2012. 08.)
안마당에서 본 가운데마당(중정)의 모습 - 2 ( 2012. 08.)
행랑채는 우진각 초가지붕이고, 서쪽부터 측간, 외양간, 행랑방, 대문 그리고 사랑채가 이어져 있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행랑채와 사랑채가 붙어 있는 형식이다.
행랑채와 사랑채 중간의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의 내외 구분을 위해 설치한 담장이 갑자기 앞을 가로막아 서고 정면으로 안채 출입용 작은 쪽대문이 보인다. 바깥마당에서 안채가 있는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주진입동선에 전이공간인 가운데마당(중정)이 별도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중정은 마을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바깥마당에 비하면 빈약하고 좁지만, 이 중정이 가진 힘과 에너지만은 만만치 않다. 안채가 있는 안마당을 보호하면서 자연스러운 동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작은 공간이지만 인간적이고 친근한 스케일로 손님을 맞아주는 탁월한 능력이 이 중정에 있다. 손님의 발밑을 지나는 수로(도랑)도 이 가옥의 운치 있는 멋이라고 할 수 있다.
대문을 들어선 손님은 예상치 못한 중정의 등장으로 동선의 방해를 받지만, 이내 이 소박하고 햇살 가득한 중정의 분위기와 정취에 흠뻑 빠지게 되고,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중문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안 채 - 1 ( 2012. 08.)
안 채 - 2 ( 2005. 04.)
안 채 - 3 ( 2012. 08.)
안 채 - 4 ( 2012. 08.)
안 채 - 5 ( 2012. 08.)
중문인 쪽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의 마당이 나온다. 마당 동편 끝에 곳간채가 있고, 좌측으로 틀어야 안채가 나온다. 안채가 정면에서 비켜 앉은 것은 아직도 내외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흔적으로 보인다.
안채는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집구조로 알려진 'ㄱ'자형 집으로 아주 개방적이고 자유스러운 구성을 취하였고, 앞으로 돌출된 전면부에 간이부엌을 배치한 점이 특징이 있다. 곳간채와 광채는 농가의 필수시설로서 20세기 중반 이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행랑채와 광채 ( 2012. 08.)
곳 간 채 ( 2012. 08.)
정원과 조경수는 사랑채의 400년 된 회나무, 안마당의 모과나무와 향나무, 뒷동산의 감나무, 백일홍 등
주위에 흔한 수종을 수수하고 꾸밈없이 심어서, 자연스러움을 중시했던 우리나라 민가의 전통적 정원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청원의 이항희 가옥은, 서양의 문물과 사상이 유입되던 근대사회의 초기 무렵에, 전통적 건축기법에서 벗어나서 근대건축으로의 변화를 보이던 과도기적 시기의 우리나라 농촌 지주계층의 대표적 살림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문과 안마당 ( 2006. 09.)
안마당과 중문 -1 ( 2005. 04.)
안마당과 중문 -2 ( 2012. 08.)
뒷산에서 본 이항희가옥의 모습 ( 2006. 09.)
후원의 모습 ( 2012. 08.)
현재, 이항희 가옥은 이덕희 씨의 소유로서 이항희 씨의 동생 이돈희씨가 거주하며 조형연구소로 활용하고 있다. 집안 곳곳에 조각과 조형물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이 그런 연유이다. 근래에 복원한 광채도 작업장으로 쓰이고 있다.
고택과 문화예술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고택 음악회’, ‘고택 문화제’ 등등의 문화행위는, 예술과 그 행위를 담는 공간인 한옥이 시너지효과를 일으켜서 그 감동을 2배로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아울러 한옥에도 사람의 체취가 흘러넘치고 그 온기로 인해서, 집의 존재 이유와 수명이 연장되는 잇점이 있기에 상부상조의 좋은 방법이다.
따라서 고택의 보존과 활용 측면에서도 문화예술과의 접목에 대한 적극적인 구상과 시도가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무더웠던 여름 어느날의 '청원 이항희 가옥'을 빠져나왔다.
20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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