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다섯 곳의 궁궐이 있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과 이궁인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덕수궁과 경희궁 등이 그곳이다. 궁궐의 봄은 공원이나 꽃길에서 느끼는 정취와 사뭇 다르다.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궁궐처럼 완벽하게 관리되는 공간이 또 있을까. 그리고 궁궐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다.
경복궁에서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경회루와 향원정이다. 경회루는 연회장으로 만든 곳이라 사방이 트여있어서 생동감이 넘치고 넓은 연못에서 수생식물들이 계절을 실감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경회루의 봄은 수정전에서 더 강렬하게 표현된다. 수정전은 세종 때 집현전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이런 우라질’을 습관처럼 중얼거리던 세종이 기어이 훈민정음을 반포했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정전은 일반에게도 공개된다. 수정전 북쪽 창가에 앉아 경회루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눠본 사람은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청량감을 오래오래 잊지 못한다. 이 봄에 놓칠 수 없는 일이다. 경회루에서 북쪽으로 더 들어가면 향원정이 나온다. 건청궁 바로 앞에 있는 이 정자는 고종이 명성황후와 조용히 살고싶어서 조성한 거처와 정원이다. 향원정을 두르고 있는 연못의 수생식물들과 진입로의 고목들, 그리고 청와대 뒤로 보이는 북악산에서 봄의 정취를 실컷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군락을 이루지는 많지만 부속 건물 주변의 개나리, 매화, 철쭉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경복궁의 후원인 아미산은 경복궁에서 가장 화려한 곳으로 꽃들이 만발한 동산이다. 건청궁은 복원하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역사의 현장이라 꼭 한 번 들려 볼만한 곳이다. 경복궁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과 5호선 광화문역에서 가깝다.
덕수궁은 벚꽃 천국이다. 대한문에서 중명전으로 이르는 진입로에는 최근까지만 해도 만개한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만개 직후에 내린 봄비로 화려함의 극치는 더 이상 볼 수 없으나 춘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지하철 1,2호선 시청역에서 가깝다.
궁궐의 봄은 창덕궁에서 절정을 이룬다. 창덕궁 후원은 다른 궁궐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왕실의 정원이다. 물론 후원으로 가는 길목마다 만개한 벚꽃과 진달래가 오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낙선재 앞 매화나무도 놓치지 말아야 할 아름다운 우리꽃이다. 후원에는 부용지, 애련지, 영화당, 애련정 연경당 등 연못과 정자, 그리고 진달래와 산수유가 꽃 구경 나온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창경궁도 꽃천지다. 정문인 홍화문 앞에는 앵두가 피었고 명정문에 이르는 길에는 살구나무 꽃이 피었다. 옥류천으로 가면 옥매화가 흐드러져 있는데, 명정문의 단청과 어우러져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밖에 어느 궁궐에 가도 볼 수 있는 벚꽃과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돌단풍, 제비꽃, 옥매화 등도 피어나고 있다. 창경궁 맨 안쪽에는 대온실이 있어서 자생목과 야생화를 볼 수 있다.
[글 이영근 (여행작가) : 매일경제 Citylife 제326호(12.05.08일자)]
창 덕 궁
낙 선 재
창 경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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