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서(書)」제1편 ㅡ 예서(禮書)
『사기』 130편 가운데 「서(書)」는 여덟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서·악서·율서·역서·천관서·봉선서·하거서·평준서가 그것으로, 본기와 열전이 인물과 사건을 다룬다면 서는 제도와 문물, 자연과 인간 삶의 근간이 되는 체계를 다룬다. 그 첫머리에 놓인 예서는 인간에게 예(禮)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를 묻는 글로, 사마천 사상의 바탕을 엿볼 수 있는 편이다.
Ⅰ. 예관에서 얻은 깨달음
사마천은 예서의 첫머리에서 자신이 대행(大行)의 예관을 찾아가 하·은·주 삼대에 걸친 예제의 흥망성쇠를 직접 살핀 경험을 밝힌다. 그 결과 그는 예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규범이 아니라 인간의 성정(性情)과 습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임을 깨달았다고 적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실과 씨줄처럼 만 갈래로 얽혀 있지만, 그 어디에도 법도가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인의(仁義)로 사람을 이끌고 형벌로 다잡으면서, 덕을 두터이 쌓은 이는 지위와 봉록이 높아져 영화를 누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천하의 인심이 하나로 모이고 만민이 가지런히 다스려진다는 것이 예의 첫 번째 효용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나친 사치를 경계하여, 천자가 타는 큰 수레에조차 부들자리를 깔고 소박한 태갱(太羹)과 현주(玄酒)를 함께 쓰는 옛 예법을 든다. 화려함을 누리되 도를 넘지 않도록 절제하는 장치, 그것이 예라는 것이다.
Ⅱ. 공자 이후 무너진 예악
사마천은 주나라가 쇠퇴한 뒤 예악이 황폐해진 세태를 개탄한다. 제후 관중(管仲)의 집안이 천자에 버금가는 사치를 누렸고, 법도를 지키는 이는 오히려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반면 분수를 넘어서는 자가 영화를 얻는 세태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조차 밖에서는 화려한 것에 마음이 흔들리고 안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그리워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전한다. 공자 사후 그 도를 이은 무리마저 뿔뿔이 흩어져 등용되지 못한 사정을 두고, 사마천은 못내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않는다.
Ⅲ. 예는 욕망을 기르는 것
예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예를 금욕이 아니라 ‘기름(養)’으로 규정하는 부분이다. 사람의 몸은 편안함을, 눈은 아름다운 빛깔을, 귀는 좋은 소리를, 입은 좋은 맛을 원한다. 사마천은 예란 바로 이런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채워 주는 장치라고 설명한다. 오곡이 입의 욕구를, 향초가 코의 욕구를, 관현악기가 귀의 욕구를 기르듯, 예 또한 인간의 욕망을 사물과 조화시켜 서로 자라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욕망을 지니는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다툼이 생기고 다툼은 곧 어지러움으로 이어진다. 옛 선왕들은 이러한 혼란을 우려하여 예의를 세워 사람의 욕구와 사물이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예가 생겨난 근본 이치라는 것이다.
Ⅳ. 나라를 지키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예
예서 중반부는 예가 국가의 흥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역사적 사례로 논증한다. 사마천은 초나라가 무소가죽과 상어가죽으로 갑옷을 만들고 완 땅의 강철로 창을 벼려도 결국 진나라에 패망한 사실, 은나라 주왕(紂王)이 비간의 심장을 도려내고 포락형이라는 잔혹한 형벌을 두었어도 주나라 군대 앞에 무너진 사실을 들어,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 가혹한 형벌만으로는 결코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단언한다.
반대로 고대의 무기가 창과 활, 화살에 지나지 않던 시절에도 도리를 밝혀 백성을 진실로 아끼고 때에 맞게 부린 임금 아래에서는 나라가 절로 평안했다고 말한다. 요임금이 형벌을 거의 쓰지 않고도 천하를 잘 다스렸다는 옛말을 인용하며, 통치자가 도(道)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에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다는 것이 이 대목의 결론이다.
Ⅴ. 예의 세 가지 근본
사마천은 예가 섬기는 대상을 셋으로 정리한다. 생명의 근본인 천지, 인류의 근본인 선조, 다스림의 근본인 임금과 스승이 그것이다. 이 셋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사람은 편안히 살 수 없으므로, 예란 위로 하늘을 섬기고 아래로 땅을 섬기며 선조를 받들고 임금과 스승을 높이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이어 그는 신분과 지위에 따라 제사와 예법의 규모가 달라지는 구체적인 제도를 설명한다. 천자는 칠대(七代)까지, 제후는 오대까지 조상을 섬기며, 작은 영지를 가진 이는 그보다 적은 대수만을 섬기고, 희생을 하나밖에 갖추지 못하는 이는 아예 종묘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덕을 두텁게 쌓은 사람일수록 그 은택이 넓게 퍼진다는 원리가 예제 전반을 관통한다고 사마천은 설명한다.
Ⅵ. 한나라 예제의 곡절
예서 후반부는 진나라의 통일에서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예제가 정비되어 온 과정을 짚는다. 진나라는 육국의 예법 가운데 쓸 만한 것을 취해 군신의 질서를 세웠고, 한 고조 때에는 숙손통이 진나라의 옛 제도를 바탕으로 예제를 손보았다. 효문제는 도가의 학문을 좋아하여 번거로운 예법 대신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정치를 택해 예관의 상소를 물리쳤고, 효경제 때에는 조조가 제후국의 방자함을 경계하며 예제 정비를 주장하다 오초칠국의 난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무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유학자들을 불러 모아 예제를 새로 정하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사마천은 무제가 옛 태고의 예만을 고집하는 신하들에게, 백성의 뜻과 풍속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참된 예제라고 일깨운 조서를 소개하며, 태초 원년에 이르러 정삭과 복색을 바꾸고 봉선의 예와 종묘 백관의 의례를 정해 후세에 전하는 법도로 삼았다고 기록한다.
Ⅶ. 태사공의 논평
예서의 말미, 사마천은 태사공의 이름으로 직접 예를 예찬한다. 그는 예를 먹줄과 저울, 곱자와 그림쇠에 비유한다. 먹줄을 펼치면 굽고 곧음을 속일 수 없고 저울에 달면 가볍고 무거움을 속일 수 없듯이, 군자가 예로써 살피면 거짓과 위선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예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극치라고 그는 단언한다.
나아가 그는 예를 따르는 자는 편안하고 따르지 않는 자는 위태로우니, 천하가 예를 따르면 다스려지고 따르지 않으면 어지러워진다고 결론짓는다. 형식과 정욕이 서로 표리를 이루며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 그것이 예의 마땅한 흐름이며 군자가 머물러야 할 자리라는 것이다. 후덕함도, 원대함도, 숭고함도 결국은 예가 쌓이고 넓어지고 융성한 데서 비롯된다는 말로 사마천은 예서를 갈무리한다.
흥미로운 점은 예서의 상당 부분이 순자(荀子)의 예론(禮論)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사마천이 독창적 이론을 세우기보다, 앞선 유가의 사유를 사서(史書)의 틀 안에 담아 후대에 전하려는 뜻을 지녔던 것으로 풀이한다. 인간의 욕망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절제로 다스린다는 이 예론은, 형벌과 무력만으로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 사마천 자신의 역사관과도 맞닿아 있어, 예서는 단순한 제도사를 넘어 그가 130편 전체를 통해 말하고자 한 통치 철학의 서문과도 같은 무게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