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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야기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세계유산-009.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6) ㅡ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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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Ⅰ. 서론

 

한반도 남서부와 서해안 일대에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거석문화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다. 전북 고창, 전남 화순, 인천 강화 세 지역에 걸쳐 분포하는 고인돌 유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유적은 2000 12월 오스트레일리아 케언즈에서 열린 제2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이라는 명칭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약 7만여 기의 고인돌 가운데 3만여 기가 한반도에 밀집해 있으며, 그중에서도 이 세 지역은 밀집도와 형식의 다양성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보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고인돌은 '괴다' ''이 결합된 순우리말로, 돌을 괴어 세운 무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영어로는 돌멘(Dolmen)이라 불리며,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과 더불어 인류 거석문화의 대표적 산물로 꼽힌다. 기원전 100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축조되기 시작한 한국의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나아가 사회구조와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선사시대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Ⅱ. 고인돌의 형식과 축조 방식

동아시아의 고인돌은 형태에 따라 크게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으로 구분된다. 탁자식은 땅 위에 서너 개의 굄돌을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얹은 형태로, 무덤방이 지상에 드러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달리 바둑판식은 땅 밑에 돌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받침돌을 놓은 뒤 덮개돌을 올린 형태다. 여기에 무덤방 위에 받침돌 없이 곧바로 덮개돌을 얹는 개석식도 있어, 한반도의 고인돌은 형식상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의 고인돌은 이러한 형식 변화를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며, 동북아시아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화순과 고창 유적 주변에서는 덮개돌을 캐낸 채석장이 함께 발견되어, 거대한 바위를 어떻게 채석하고 운반하여 세웠는지 그 축조 과정을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사회가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하고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증거로 평가된다.

 

Ⅲ. 세 지역의 개별적 특징

고창 고인돌 유적은 아산면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약 1.8킬로미터에 걸쳐 447기의 고인돌이 무리 지어 분포한다. 국내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는 이곳은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이 함께 나타나 고인돌의 발생과 성격을 파악하는 데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로 꼽힌다. 인접한 상갑리 일대는 북방식 고인돌이 나타나는 남쪽 한계선으로 알려져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계곡 일대 약 5킬로미터 구간에 596여 기가 밀집되어 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 최대 규모의 덮개돌이 존재한다는 점으로, '핑매바위'라 불리는 고인돌은 무게가 약 280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좁은 지역 안에 100톤이 넘는 대형 고인돌이 여러 기 밀집해 있고, 주변 자연환경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으며, 채석장이 함께 발견되어 축조 전 과정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특히 높게 평가된다.

 

강화 고인돌 유적은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 고려산 기슭을 따라 160여 기가 분포한다. 이곳은 해발 100미터에서 200미터에 이르는 비교적 높은 지대까지 고인돌이 세워져 있다는 점이 독특하며, 길이 약 6.4미터, 높이 약 2.5미터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탁자식 고인돌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내륙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강화도의 평야 대부분이 후대의 간척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래는 해안 언덕에 조성된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Ⅳ. 세계유산적 가치와 의의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한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둘째, 세 지역의 고인돌이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다양한 형식을 모두 포괄하고 있어 고인돌 문화의 형성과 변천 과정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셋째, 채석장의 존재를 통해 거석 기념물의 축조 과정 전반을 실증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유럽이나 중국, 일본의 거석 유적과 비교하더라도 뚜렷이 구별되는 독자적 가치를 지닌다.

 

고인돌은 단순한 무덤을 넘어 청동기시대 사회의 위계와 권력, 공동체의 결속을 상징하는 기념물이기도 했다. 거대한 덮개돌을 옮기고 세우는 작업에는 상당한 노동력과 조직력이 필요했을 것이며, 이는 당시 사회에 이미 계층화된 지배 구조가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고인돌 주변에서 출토되는 청동기시대 유물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신앙,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한편 고인돌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은 오늘날 각각 고인돌박물관과 유적공원을 조성하여 유물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이 선사시대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에는 유적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보존 관리 계획이 지속적으로 수립되어 왔으며, 정기적인 실측 조사와 모니터링을 통해 고인돌의 손상 여부를 점검하는 체계도 마련되어 있다.

 

Ⅴ. 결론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한반도 청동기시대 문화의 정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거석 기념물이다. 세 지역에 흩어진 1,000여 기에 이르는 고인돌은 각기 다른 지형과 조건 속에서도 공통된 장례 문화와 사회 체계를 공유하며, 형식의 다양성과 밀집도라는 두 축에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이 유적을 통해 우리는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사회 조직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보존과 연구를 통해 고인돌 유적이 지닌 인류 보편적 가치를 후대에 온전히 전달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 참 고 ]

출처 - 국가유산채널 > 영상 > 문화유산 > [KBS 6시 내고향] 내고향 문화재 29편 고창 고인돌

 

국가유산채널

문화유산채널의 새로운 이름, 국가유산채널

www.k-heritag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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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사진 출처 : 국가 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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