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史記)』 열전 제27 편 — 이사열전(李斯列傳)
서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중국 역사 서술의 원형으로서, 본기·세가·열전·표·서로 이루어진 방대한 체계를 통해 개인의 삶과 역사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포착한다. 그 가운데 「이사열전(李斯列傳)」은 열전 제27편으로, 진시황(秦始皇)의 통일 대업을 보좌하며 중국 최초의 중앙집권 제국을 설계한 법가(法家) 관료 이사(李斯)의 생애와 사상을 서술한다.
이사는 초(楚)나라 출신의 한낱 하급 관리에서 출발하여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진나라에 입사하여 마침내 승상(丞相)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도량형의 통일, 문자의 표준화, 군현제(郡縣制)의 확립 등 진제국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를 설계하고 실행하였으며, 법가적 통치 원리를 현실 정치에 가장 철저하게 구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사의 생애는 영광과 비극을 동시에 품고 있다. 시황제 사후 환관 조고(趙高)의 농간에 휩쓸려 유서를 위조하는 데 가담하고, 결국 조고의 정치 공작에 의해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본고는 이사열전의 주요 사건과 사상을 분석하고, 사마천이 이 인물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
1. 창고의 쥐와 측간의 쥐 — 이사의 출발과 입진(入秦)
이사열전의 서두는 이사의 청년 시절 유명한 일화로 시작된다. 하급 관청의 창고지기로 일하던 이사는 어느 날 측간(측소)에 사는 쥐가 사람의 발소리만 들려도 놀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창고의 쥐는 곡식을 풍족히 먹으며 편안히 사는 것과 대비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사람의 현명하고 어리석음도 쥐와 같으니, 다만 어느 곳에 처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人之賢不肖, 譬如鼠矣, 在所自處耳).'
이 일화는 이사의 인생관과 출세 지향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후 순자(荀子)에게 사사하여 제왕의 술(術)을 배우고, 당시 가장 강성하던 진나라를 택해 입사한다. '약한 주군을 섬기는 것은 치욕'이라며 그는 합종연횡(合縱連橫)의 세파를 헤쳐가며 진왕(秦王) 정(政), 훗날의 시황제에게 유세하여 신임을 얻는다. 이 대목에서 사마천은 이사의 현실 감각과 권력 지향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2. 제국의 설계자 — 간축객서(諫逐客書)와 통일의 공업
이사열전에서 가장 문학적 광채를 발하는 대목은 「간축객서(諫逐客書)」다. 한나라 간첩 정국(鄭國)이 수리 사업을 통해 진나라의 역량을 소모시키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진왕은 외국인 객경(客卿)을 모두 추방하는 명령을 내린다. 추방 대상이 된 이사는 이 명문 상소를 올려 왕을 설득한다.
「간축객서」는 역대 진나라가 외국 인재들을 등용하여 강국이 될 수 있었음을 역설하며, '태산은 흙 한 줌도 사양하지 않으므로 높을 수 있고,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으므로 깊을 수 있다'는 비유로 인재 포용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이 상소는 진왕의 마음을 돌렸고, 이사는 추방을 면하는 동시에 자신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이사는 이후 시황제의 천하 통일 과정에서 승상으로서 군현제 확립, 도량형·화폐·문자의 통일, 사상 통제를 위한 분서(焚書) 정책 수행 등 제국의 근간을 설계하였다.
3. 파멸의 공모 — 사구지변(沙丘之變)과 조고의 함정
이사열전의 후반부는 그의 몰락을 상세히 기록한다. 기원전 210년 시황제가 순행 도중 사구(沙丘)에서 급서하자, 환관 조고(趙高)는 이사를 설득하여 황장자 부소(扶蘇)에게 보내려던 유서를 위조하고, 막내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는 음모에 가담시킨다.
사마천은 이 장면을 통해 이사의 결정적 약점을 드러낸다. 조고가 이사를 설득할 때 내세운 논리는 '부소가 황제가 되면 몽염(蒙恬)이 승상이 될 것이고, 그대는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개인적 이해타산이었다. 이사는 권력 유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역사적 범죄에 공모하고 만다. 이후 조고는 자신의 전횡을 비판하는 이사를 역모죄로 몰아 체포하고, 잔혹한 고문과 심리 압박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다.
4. 요참(腰斬)과 멸족 — 비극적 종말과 사마천의 평가
이사는 결국 기원전 208년 함양(咸陽) 저자거리에서 요참(腰斬, 허리를 잘라 죽이는 형벌)에 처해지고, 삼족(三族)이 멸문된다. 형장에서 이사는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다시 황견(黃犬, 노란 개)을 끌고 고향 상채(上蔡)의 동문을 나가 토끼를 쫓고 싶구나'라고 탄식하였다 한다. 이 장면은 이사열전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러니를 집약한다. 창고의 쥐와 측간의 쥐를 비교하며 출세를 다짐했던 청년은, 생의 마지막 순간 고향의 소박한 삶을 그리워하는 늙은이로 서 있다.
사마천은 이사열전의 말미 '태사공왈(太史公曰)'에서 이사를 두고 깊은 아쉬움과 비판을 동시에 표명한다. 그는 이사가 순자의 학문을 계승하고 진나라를 도와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룬 공을 인정하면서도, '육예(六藝)의 도리를 돕지 않고 오히려 전제 권력을 강화하고 형벌을 혹독히 하며 아첨으로 군주의 뜻을 쫓았다'고 비판한다. 사마천은 이사가 끝내 진나라의 폐단을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그 폐정에 봉사한 점을 그의 근본적 한계로 지적한다.
결론
「이사열전」은 단순한 한 인물의 전기를 넘어,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 법가 사상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역사적 전환기에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텍스트다. 이사는 분명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시종일관 제국 권력의 확장과 자신의 지위 보전에 복무하였고, 위기의 순간마다 인의(仁義)보다 이해타산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였다.
사마천이 이사에게 던지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지식인은 권력에 봉사하는 기술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권력을 견제하는 도덕적 주체가 될 것인가. 이사는 전자를 선택하였고, 그 선택은 개인의 영화를 가져다주었지만 결국 파멸도 함께 가져왔다. 역설적으로 이사의 몰락은 그가 충성을 바친 법가적 제국 질서 자체의 취약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마천은 이사를 재능과 탐욕, 공업과 실덕(失德)이 교차하는 인물로 그린다. 그의 붓 끝에서 이사는 역사의 피해자이기 이전에 스스로 선택한 길의 귀결로서 비극적 최후를 맞은 인물로 자리매김된다. 「이사열전」은 이로써 법가의 시대, 제국의 탄생, 그리고 지식인의 책무라는 묵직한 주제를 하나의 인간 서사 안에 담아내는 『사기』 열전의 정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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