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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26. 자객열전(刺客列傳) ㅡ 죽음으로 의(義)를 완성한 자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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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격열전의 형가를 소재로 하여 장예모 감독이 만든 영화 <영웅>의 포스트)

 

 

 

사기(史記) 열전 제 26편 ㅡ 자객열전(刺客列傳)

 

Ⅰ. 서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중국 역사 서술의 정점이자 인간 군상(群像)을 탐구한 불멸의 문학이다. 그 가운데 「자객열전(刺客列傳)」은 제26편으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라는 격동의 시공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의리와 신의를 실천한 다섯 인물의 생애를 기록한다. 사마천은 단순히 암살자들의 행적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행위 이면에 자리한 사상적 동기와 인간적 고뇌를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역사 서술을 한 차원 높은 인간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은 조말(曹沫), 전제(專諸), 예양(豫讓), 섭정(聶政), 형가(荊軻) 다섯 명이다. 이들은 출신 배경도, 자객이 된 동기도, 행동 방식도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의 도리'라는 당대의 이념적 규범 아래 자신의 전 존재를 내던졌다는 점에서 하나의 정신적 계보를 이룬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통해 '()'의 윤리가 단순한 용맹이 아니라 의리(義理), 보은(報恩), 지조(志操)라는 복합적 가치 체계 위에 세워진 것임을 설파한다.

 

Ⅱ. 본론

1. 조말(曹沫) — 협박으로 되찾은 치욕

「자객열전」의 첫 번째 인물 조말은 노()나라의 장군으로, ()나라와의 거듭된 전쟁에서 패하여 나라의 영토를 잃은 인물이다. 그는 제환공(齊桓公)과 노장공(魯莊公)의 회맹(會盟) 자리에서 단도를 들어 제환공을 협박하여 빼앗긴 영토를 되돌려받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킨다. 이 장면은 군사적 패배를 외교적 결단으로 전복한 대담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국의 신하로서 주군의 치욕을 홀로 감당하려 한 충절(忠節)의 극단적 표현이기도 하다.

조말의 행위에서 눈여겨볼 점은 그가 자신의 생사를 초탈하여 오직 나라의 체면 회복이라는 대의에 복무했다는 것이다. 제환공이 협박에 굴복하여 약속을 이행하려 하자, 관중(管仲)이 신의를 지켜야 천하의 신뢰를 얻는다고 진언하여 환공이 실제로 영토를 돌려주었다는 사실도 역설적이다. 즉 조말의 칼끝이 관중의 대의론과 맞물려 하나의 역사적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사마천은 이를 통해 '()'의 행위가 단독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상대방의 도덕성과 함께 작동하는 복합 사건임을 암시한다.

2. 전제(專諸) — 오자서의 계략과 어부(魚腹) 속의 검

전제는 오()나라의 공자 광(公子光), 즉 훗날 오왕 합려(闔閭)가 될 인물의 의뢰를 받아 오왕 요()를 시해한 자객이다. 오자서(伍子胥)가 광을 위한 적임자로 전제를 추천하면서 이 사건이 시작된다. 전제는 구이(具夷) 지방까지 가서 물고기 요리법을 배운 뒤, 연회 자리에서 생선 뱃속에 단검 '어장검(魚腸劍)'을 숨겨 오왕 요에게 접근하여 칼을 꺼내 찌른다. 전제 자신도 그 자리에서 호위병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목적은 달성되었다.

전제의 이야기는 충성과 보은의 논리를 정면으로 구현한다. 그는 공자 광으로부터 두터운 예우를 받았고, 그 은혜에 목숨으로 보답한다. 주목할 것은 그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랜 기간 생선 요리를 익히는 치밀한 준비 과정이다. 자객의 이미지가 충동적인 폭력이 아니라 계획적인 의지의 실천이라는 점을 사마천은 강조한다. 전제의 행위는 주군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의 윤리를 가장 순수하게 구현한 사례로, 이후 열전의 인물들과 비교되는 하나의 원형(prototype)을 제시한다.

3. 예양(豫讓)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다'

예양은 「자객열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철학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원래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를 섬겼으나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지백(智伯)에게 귀의하여 국사(國士)로 예우받는다. 그러나 지백이 조양자(趙襄子)에게 멸망당하자 예양은 조양자를 죽여 지백의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한다. 그의 명언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고,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자를 위해 화장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는 이 결심의 선언이자 춘추전국 사()의 윤리를 압축한 문장으로, 동아시아 사상사에 영구히 각인된 말이다.

 

예양은 두 차례에 걸쳐 조양자 암살을 시도한다. 첫 번째는 왕궁의 변소에 숨어들었다가 발각되어 죽을 처지가 되었으나, 조양자가 그의 의기(義氣)를 높이 사 석방한다. 두 번째는 온몸에 옻칠을 하여 피부병자로 변장하고, 숯을 삼켜 목소리까지 바꾼 채 접근하지만 다시 붙잡힌다. 조양자는 이번에는 용서할 수 없다고 선언하지만, 예양의 간청을 받아들여 자신의 겉옷을 내어주고 예양은 그 옷을 세 번 칼로 찌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장면은 두 인물 사이에 형성된 기묘한 신의(信義)의 관계를 드러내며, 적과 자객 사이에서도 '사람됨'에 대한 상호 인정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예양의 서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행동이 현실적 성공 가능성과 무관하게 지속된다는 점이다. 그는 처음 암살 시도 때 이미 자신의 계획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결과가 아니라 의리를 향한 '과정의 수행'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성패를 초월한 윤리적 주체성의 선언이며, 사마천이 예양을 「자객열전」의 중심축으로 배치한 이유라 할 수 있다.

4. 섭정(聶政) — 홀어머니의 죽음 이후, 최후의 자유

섭정은 한()나라의 협객(俠客)으로, 한나라의 대부 엄중자(嚴仲子)로부터 한나라 재상 협루(俠累)를 죽여달라는 청탁을 받는다. 그러나 섭정은 처음에는 홀어머니가 살아계시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상례를 마친 다음에야 비로소 엄중자를 찾아가 단독으로 협루의 처소에 침입하여 그를 살해하고, 이어 수십 명의 호위병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스스로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알을 뽑아 창자를 쏟아낸 채 죽음을 선택한다. 이는 자신의 신원을 알지 못하게 하여 엄중자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섭정의 인물 형상은 여러 층위의 인간적 미덕을 함께 보여준다. ()의 윤리가 협()의 행위에 선행하며, 이는 그가 단순한 용사가 아니라 유교적 질서를 내면화한 인간임을 드러낸다. 또한 자신을 알아봐 주고 두터이 예우한 엄중자에 대한 보은(報恩)이 그의 행동을 추동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훼손하는 최후의 선택은 자기희생의 극단을 보여준다. 섭정의 누이가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슬피 울며 죽었다는 후일담은 「자객열전」 전체에서 가장 인간적인 감동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5. 형가(荊軻) — 역수(易水)의 이별과 미완의 대업

「자객열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형가(荊軻)의 이야기는 이 편 전체의 분량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상세하며, 사마천의 문학적 역량이 최고조로 발휘되는 대목이다. ()나라 태자 단()의 의뢰를 받은 형가는 진시황(秦始皇)을 암살하기 위해 진나라로 향한다. 그는 진나라를 배신한 번오기(樊於期) 장군의 목을 자진하여 갖다 바칠 것을 결심하고, 번오기 역시 대의를 위해 스스로 목을 내어준다. 형가는 연나라의 지도(地圖)에 독침이 담긴 비수를 숨겨 진왕 앞에 나아간다.

 

암살은 실패한다. 형가는 진왕을 잡는 데 실패하고 기둥에 기대어 비웃으며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 실패한 자객을 결코 패자로 그리지 않는다. 역수(易水)에서의 이별 장면 —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가운데, 장사(壯士)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 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숭고함을 언어로 포착한 중국 문학의 절창(絶唱)으로 꼽힌다. 형가는 이미 성패를 초월한 지점에서 행동하며, 그 행위의 순수성 자체가 역사에 의미를 부여받는다.

형가 서사에서 또 하나 주목할 인물은 고점리(高漸離). 형가가 길을 떠나기 전 두 사람이 주고받던 축() 연주와 가무는 영원한 이별의 의식(儀式)이었다. 고점리는 이후 눈이 멀면서도 진시황 앞에서 축을 연주하며 납으로 무게를 더한 악기로 황제를 해치려 했다가 죽임을 당한다. 자객의 정신이 형가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그 주변 인물들에게까지 파급되었음을 사마천은 놓치지 않는다.

 

Ⅲ. 결론

「자객열전」은 단순한 암살 사건들의 모음이 아니다. 이 편은 사마천이 정밀하게 구성한 하나의 사상적 작품으로, 춘추전국의 역사 속에서 '()를 위해 살고 의를 위해 죽는다' '()'의 이상(理想)을 다섯 개의 인간 형상으로 결정화(結晶化)한 텍스트다. 조말에서 형가까지, 각 인물은 시대와 동기와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자신보다 큰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 그것이 나라의 체면이든, 주군에 대한 보은이든, 홀어머니에 대한 효도든, 또는 역사의 물길을 바꾸려는 대의든 간에, 그들의 행위는 이 세계에 영원히 새겨지는 흔적을 남겼다.

 

사마천이 이 인물들을 열전에 수록한 것은 그들의 행위가 역사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조말을 제외하면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고, 형가는 임무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이 실패한 자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웠다. 이는 역사 서술의 기준이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걸어간 '정신의 방향'에 있어야 함을 선언하는 것이다. 사마천 자신이 이릉(李陵)의 일로 궁형(宮刑)을 받으면서도 붓을 꺾지 않은 것, 그 역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한 자객의 칼질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객열전」이 후대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의 이념은 이후 중국과 한국, 일본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전통에서 '의리' 담론의 핵심 명제가 되었다. 예양의 이야기는 수많은 고전 소설과 연극의 원천이 되었고, 형가의 역수 이별 장면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시문학의 표상이다. 섭정의 이야기는 훗날 음악 작품(聶政刺韓王) 등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자객열전」은 역사와 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탁월한 인간학적 성취다. 사마천은 역사의 패자들, 실패한 자들, 체제의 외부에서 살다 간 자들에게 불멸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단순히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의리란 무엇인가, 삶에서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이것이 「자객열전」이 이천여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살아있는 텍스트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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