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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2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 언어로 세상을 움직인 두 유세객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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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열전 제23 편 ㅡ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서론(序論): 말이 검보다 날카로울 때

전국 시대와 한나라 초기를 통틀어, 권력의 중심에 서지 않고도 역사의 방향을 바꾼 인물들이 있었다. 왕도 아니고 장군도 아닌, 오직 언어와 논리와 기개만을 무기로 삼은 사람들이다. 『사기(史記)』 열전 스물세 번째인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은 바로 그 두 유형의 인간을 한 편에 담았다. 전국 시대의 노중련(魯仲連)과 한나라 초기의 추양(鄒陽). 두 사람은 시대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달랐지만, 사마천(司馬遷)은 이들을 하나의 열전으로 묶어 배치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두 사람은 모두, 불의한 권력 앞에서 자신의 언어를 굽히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노중련은 이 무렵 유세객들이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혓바닥을 놀렸던 것과 달리, 사심 없이 천하를 위해 유세한 은자였다. 그는 장대한 풍체에 뛰어난 책략을 지녔으나, 조정에 나가 벼슬을 살지 않고 고고한 절의만을 지키며 살았다. 추양은 그와 결을 달리한다. 권력의 언저리에서 문객으로 살아가며 참소와 모함을 받아 죽음의 문턱에까지 몰렸지만, 옥중에서 붓을 들어 자신의 무고함과 세상의 이치를 논한 인물이었다. 노중련이 세상 밖에서 세상을 움직인 자라면, 추양은 세상 안에서 세상과 싸운 자였다. 사마천은 이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 언어와 기개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살아남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본론(本論): 각자의 방식으로 불의에 맞서다

 

1. 노중련 — 천하를 떠돌며 어려움을 풀어주다

 

노중련은 나이 열두 살 때 이미 유명한 논객과 설전을 벌여 상대를 압도하며 천리구(千里驅)라는 별명을 얻었다. 장성한 뒤에도 벼슬자리를 구하지 않고 천하를 주유하며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았다. 그의 삶은 고정된 자리 없이, 필요한 곳에 나타나 일을 해결하고 다시 사라지는 방랑의 연속이었다. 이 자유로움이 그의 언어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중련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결정적인 장면은 조나라 한단(邯鄲) 포위전에서였다. 진나라가 장평(長平)에서 조나라 40만 대군을 구덩이에 파 묻어 죽인 후 계속 진군하여 조나라의 도성 한단성을 포위하자, 위나라가 유세객 신원연(新垣衍)을 한단성에 잠입시켜 조나라 효성왕으로 하여금 진나라 소양왕을 황제(帝)로 높여 위난을 면하라고 권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타협이 아니었다. 진나라 소양왕을 황제로 인정한다는 것은 천하의 패권을 진나라에 공식적으로 넘겨주는 일이었다. 마침 조나라에 들렀던 노중련은 이 사실을 알고 신원연을 직접 만나 논변을 펼쳤다.

 

노중련은 "저 진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자칭하고 죄악으로써 천하에 정사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을지언정, 내가 차마 그 백성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 한 마디가 신원연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진나라 장군이 군사를 후퇴시켰고, 마침 위나라가 조나라를 구원하여 한단의 포위가 풀렸다.

노중련의 논변은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니었다. 그는 진나라가 황제국이 되었을 때 각 제후국의 신하들이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지, 진나라가 천하를 지배할 경우 어떠한 통치 방식을 택할지를 조목조목 논증했다. 역사적 선례를 들고, 논리의 구조를 쌓고, 상대방의 심리 속으로 파고드는 언어였다. 그것은 설득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상이었다.

 

조나라가 노중련의 공로에 보답하고자 봉하려 하자, 노중련은 사양하며 "천하의 선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남을 위해 환난을 없애고 분란을 해소하고도 취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거절 속에 노중련의 삶 전체가 담겨 있다. 그는 공로를 세웠지만 그에 따른 대가를 원하지 않았다. 천하를 위한 행위는 천하에 속하는 것이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철학이었다.

그의 또 다른 활약은 연나라 장수 요성(聊城) 수비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나라 장수가 제나라 영토인 요성을 점거하고 항복을 거부하자, 노중련은 편지 한 통을 써서 화살에 묶어 성안으로 쏘아 보냈다. 편지를 읽은 연나라 장수는 눈물을 흘리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편지 한 통이 수만 군사를 움직이지 못한 요새를 무너뜨렸다. 노중련의 언어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칼이 아닌 글자로 역사를 바꾸는, 전국 시대가 배출한 가장 순수한 의미의 지식인이었다.

2. 추양 — 옥중에서 붓을 들어 자신을 구하다

추양(鄒陽)은 노중련과는 결이 다른 인물이다. 그는 은자가 아니라 문객(門客)이었다. 권력의 외곽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재능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당대의 전형적인 유세객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노중련에 버금가는 기개와, 어쩌면 더 생생한 인간적 고뇌가 담겨 있었다.

추양은 제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양나라에 놀러갔다가 오나라의 장기부자(莊忌夫子), 회음의 매생(枚生)과 같은 명사들과 교우를 맺었다. 사람됨이 지혜롭고 재략이 있었으며, 성격이 강개해 구차하게 영합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 오왕(吳王) 유비(劉濞)의 문하에 있었는데, 오왕이 반란을 모의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오왕의 모반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결국 양효왕(梁孝王)의 문객이 되었다.

양효왕은 사방에서 호걸을 불러모으고 양승(羊勝)·공손궤(公孫詭)·추양(鄒陽) 등을 측근으로 두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자리는 곧 위기의 시작이었다. 양승 등이 추양을 시기해 양효왕의 면전에서 그를 모함했고, 분노한 효왕이 추양을 관리들에게 넘겨 죄를 물어 죽이려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추양이 선택한 것은 도망이 아니라 글이었다. 추양은 양나라에 놀러왔다가 참언을 받아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면 명성에 누가 될까봐 옥중에서 양왕에게 편지를 써서 올렸다(獄中上梁王書).

이 「옥중상양왕서(獄中上梁王書)」는 중국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명문(名文)이다. 추양은 편지에서 역사 속의 수많은 사례를 들어 충신이 얼마나 쉽게 참소당하는지, 군주가 편견을 갖고 신하를 볼 때 얼마나 큰 과오를 범하는지를 논증했다. 그는 고대 성군들이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기에 현인을 얻을 수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무고함을 간접적이지만 명징하게 드러냈다. 글 속에서 그는 원통함을 직접 토로하지 않는다. 대신 역사를 논하고 도리를 밝히며, 그 논리의 귀결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무죄를 가리키도록 구성했다. 이것이 추양의 탁월함이었다.

추양은 옥중에서 상서를 하여 마침내 양효왕으로부터 상객(上客)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글 한 편이 죽음을 생존으로, 죄인을 상객으로 바꾸었다. 추양의 이야기는 노중련의 한단 포위 해제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내밀한 차원의 싸움이었지만, 그 무기는 동일하게 언어였다.

3. 두 인물을 하나의 열전에 묶은 사마천의 시선

사마천이 두 인물을 동일한 열전에 배치한 것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편집적 주장이다. 노중련은 세상 밖의 자유인으로서 언어를 사용했고, 추양은 세상 안의 문객으로서 언어를 사용했다. 노중련이 명예와 보상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언어에 순수성을 부여했다면, 추양은 생사의 기로에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진정성을 증명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의 언어는 이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전국 시대와 한초(漢初)를 막론하고, 말로 먹고사는 유세객들이 넘쳐났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재능을 가장 높은 값을 쳐주는 군주에게 팔았다. 그러나 노중련은 상(賞)을 거부했고, 추양은 간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마천은 이 두 사람을 통해 말이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인격의 표현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결론(結論): 말이 남기는 것, 침묵이 남기는 것

노중련추양열전을 읽고 나면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언어는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노중련의 답은 '그렇다'이다. 그는 편지 한 통으로 요성의 성문을 열었고, 논변 하나로 한단의 포위를 풀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단순히 언어의 힘만이 아니었다. 그 언어를 떠받치는 것은 무욕(無欲)이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자의 말은 가장 순수하게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는다. 노중련이 설득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논리가 정교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논리 뒤에 사적 이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그것을 직감했다.

추양의 답도 '그렇다'이지만, 조건이 있다. 언어가 세상을 바꾸려면 목숨을 걸 만큼의 진정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추양은 감옥 안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글을 썼다. 그 상황이 글의 무게를 만들었다. 안락한 자리에서 쓴 상소와, 죽음을 앞에 두고 쓴 옥중 서한은 같은 글자라도 다른 무게를 갖는다. 양효왕이 마음을 돌린 것은 추양의 문장력 때문만이 아니라, 그 문장이 담고 있는 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마천이 이 두 사람을 열전에 남긴 것 자체가 하나의 언어 행위다. 수많은 왕과 장군들의 기록 속에서 사마천은 말로 싸운 자들의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았다. 권력을 가지지 않고도, 군사를 이끌지 않고도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노중련추양열전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오늘의 시각에서 돌아보면, 이 열전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지식인은 권력에 봉사하는 자인가, 아니면 권력에 맞서는 자인가. 노중련처럼 세상 밖에서 지켜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는 방식이 있고, 추양처럼 권력의 내부에 있으면서도 그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있다. 어느 쪽이 옳은가를 사마천은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두 가지 방식 모두를 기록함으로써, 언어를 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하나가 아님을 보여준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중련이 요성 안으로 쏘아 보낸 편지도, 추양이 감옥 안에서 써내려간 상서도, 수천 년이 지난 오늘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우리에게 닿는다. 그것이 언어의 힘이고, 그것이 이 열전이 두 인물을 함께 기억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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