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문무대왕 수중릉(대왕암)
1. 전설: 용이 된 대왕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은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 불교식 화장을 치른 뒤 동해 바다에 자신의 유골을 뿌려 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죽어서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고,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신라를 영원히 수호하겠다는 것이었다. 삼국유사는 이 유언을 이렇게 전한다. <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나는 죽은 뒤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될 것이니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겠다고 했다 >
유언에 따라 문무왕의 유골은 동해 감포 앞바다의 바위섬에 뿌려졌다. 그 바위가 오늘날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이다. 해안에서 200m 남짓 떨어진 이 바위섬은 동서남북으로 물길이 나 있고, 그 한가운데 수면 아래에 넓적한 돌이 놓여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 돌 아래 문무왕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용이 된 문무왕은 이후에도 살아있는 자처럼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아들 신문왕이 즉위하고 얼마 뒤 바다에서 작은 산이 감은사 쪽으로 떠내려온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신문왕이 직접 배를 타고 나가 보니, 바다에서 검은 용이 나타나 피리와 옥대를 바치며 이르기를, 선왕이 지금 해룡이 되어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 특별한 선물을 내리겠다고 했다. 용이 일러준 대나무로 피리를 만드니, 이것이 천하를 편안케 한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었다. 적군이 쳐들어오면 물러가고, 가뭄에는 비가 오고, 홍수에는 물이 빠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잠잠해지는 신비의 피리. 삼국유사에 실린 이 설화는 단순한 신비담이 아니라 문무왕의 호국 의지가 후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신화로 승화된 것이다.




2. 역사 : 삼국통일의 완수자
전설의 무게만큼이나 문무왕의 역사적 실체도 압도적이다. 그는 신라 역사상 가장 혹독한 전쟁의 시대를 이끈 군주였다.
태자 시절부터 부왕 태종무열왕을 보좌하며 백제 정벌에 참여했던 문무왕은 660년 백제 멸망 이후 왕위에 올라 668년 고구려마저 멸망시키며 삼국통일을 완수했다. 그러나 통일의 진짜 시험대는 당나라와의 전쟁이었다. 당은 신라를 도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지만, 그 땅을 자국 영토로 삼으려는 야욕을 감추지 않았다. 문무왕은 이 거대한 제국과 정면으로 맞섰다.
당이 백제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고구려 옛 땅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신라마저 계림도독부로 편제하려 하자, 문무왕은 외교와 군사력을 번갈아 구사하며 이에 맞섰다. 671년 당의 세력권 아래 있던 백제 고지를 공략하고, 675년 매소성 전투에서 당군 20만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으며, 676년 기벌포 해전에서 당의 수군을 완파함으로써 마침내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삼국통일이 단순한 합병이 아니라 대당 항쟁을 통해 쟁취한 자주적 통일이었음을 보여준 결정적 국면들이었다.
통일 이후 문무왕은 내치에도 힘을 쏟았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수습하고, 삼국의 유민들을 통합하는 정책을 폈으며, 수도 경주의 방어 체계를 정비했다. 동해안 방어를 위해 이견대를 설치하고, 감포 일대 해안 경계를 강화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재위 21년, 681년 문무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스스로 화려한 능침 대신 바다를 택했다. 삼국사기는 유언을 이렇게 전한다. "죽고 나서 10일이 지나면 고문(庫門) 밖 뜰에서 화장하라. 상복을 입는 제도는 정해진 수에 따르되 검소하게 하라." 사후의 권위보다 나라의 안녕을 먼저 생각한 왕의 마지막 면모였다.



3. 대왕암 : 수중릉인가, 산골 장소인가
대왕암이 실제로 문무왕의 수중릉인지, 아니면 유골을 뿌린 산골(散骨) 장소인지를 둘러싼 논의는 오래되었다. 삼국사기에는 "동해 입구 큰 바위 위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에는 "유언에 따라 동해에 장사 지냈다"고 되어 있어 두 사서의 표현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대왕암을 직접 조사한 결과, 바위 한가운데 십자형 수로가 파여 있고 그 중심부 수면 아래에 길이 3.7m, 너비 2.06m의 큰 돌이 남북 방향으로 놓여 있음이 확인되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로, 인공적 조성의 흔적이 분명하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십자형 수로는 바닷물이 항상 들고나며 유골 주변을 씻을 수 있도록 의도된 구조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불교에서 화장 후 유골을 흐르는 물에 뿌리는 수장 풍습과도 연결된다.
완전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어서 유골의 존재가 실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대왕암 일대가 문무왕과 관련된 성역으로 신라 때부터 관리되어 왔음은 분명하다. 지금도 경주 감포 앞바다를 찾는 이들은 해안에서 대왕암을 바라보며 그 안에 용이 된 왕이 잠들어 있다고 여긴다.








4. 경주 이견대(慶州 利見臺)
경주 이견대는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에 있는 통일신라의 유적건조물로, 1967년 8월 1일 대한민국 사적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물로,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제31대 왕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다.
이견대는 화려한 능묘를 마다하고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곳이며 그의 아들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유서 깊은 곳이다.
봉길리 앞바다의 문무대왕릉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이곳에서 맞이하는 일출 또한 아름답다. 관람 시간 제한 없이 무료로 개방되며 전용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6. 감은사 : 용이 드나드는 절
대왕암과 떼어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 감은사(感恩寺)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직접 창건을 시작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 신문왕이 682년 완성하고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 이름 붙였다.
감은사의 위치는 의미심장하다. 대왕암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km 남짓 떨어진 감포 앞, 대종천 하류에 자리한다. 바다와 절이 서로 마주보는 형국이다. 신문왕 때 기록에 따르면, 감은사 금당(金堂)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을 뚫어두었다고 한다.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절 안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해 두었다는 것이다. 이 설화적 장치는 왕과 절, 바다가 하나의 호국 체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감은사지에는 현재 동서 두 기의 삼층석탑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두 탑은 높이 13.4m로, 장중하고 단아한 비례가 신라 석탑 미학의 정수로 꼽힌다. 1959년 서탑을 해체 수리할 때 탑 안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는데, 그 정교함과 화려함이 통일신라 금속공예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감은사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대왕암이 시야에 들어온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왕의 의지, 그 왕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아들의 마음, 그리고 호국 불교라는 신라 국가 이념이 이 풍경 안에 겹쳐 있다. 절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에서 절을 향해 용이 헤엄쳐 온다. 감은사와 대왕암은 그렇게 서로를 완성하는 한 쌍의 유산이다.



7. 유산의 의미
대왕암은 1967년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고, 국가유산 포털에서도 통일신라 문무왕의 무덤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문무왕의 수중릉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장묘 형식이다. 왕릉이라면 으레 거대한 봉분과 엄격한 석물로 권위를 과시하는 것이 동아시아 군주들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문무왕은 거꾸로 갔다. 자신의 몸을 바다에 풀어 나라의 방패가 되겠다는 선택이었다.
삼국통일이라는 역사적 위업과 대당 항쟁의 승리, 그리고 죽음마저 호국으로 귀결시킨 이 왕의 이야기는 신라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왕암 앞바다에는 지금도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파도가 바위 사이로 드나드는 소리가 천삼백 년 전 유언의 메아리처럼 들린다. 동해를 지키겠다던 그 약속이 아직도 이 바다에서 지켜지고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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