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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전통건축-10403. 청도 박곡리 여래좌상(珀谷里 石造如來坐像) ㅡ 화재로 훼손된 통일신라 전성기의 걸작(20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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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 (淸道 珀谷里 石造如來坐像)

 

1. 개요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淸道 珀谷里 石造如來坐像)은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295(박곡리)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 석조 불상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03호로 지정되었으나, 당시 명칭은 '청도박곡동석조석가여래좌상(淸道珀谷洞石造釋迦如來坐像)이었다.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현재는 따로 세운 불각(佛閣)에 봉안되어 있으며, 운문사와 함께 서쪽 대비갑사로 창건된 사찰인 대비사(大悲寺)로 들어가는 계곡 입구 마을에 모셔져 있다.[dapsa]

 

 

 

 

 

 

 

 

 

 

2. 역사와 유래

2.1 창건과 조성 배경

이 불상은 신라시대 호거산에 수행중이던 신승이 호거산을 중심으로 7년 동안 5개의 갑사를 창건한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대비사에는 신라 진흥왕 18년(577) 신승이 세우고, 신라 진평왕 22년(600)에 원광법사가 중창하였으며, 고려 인종 때 원응스님이 중창한 역사가 있다.[ruins.tistory]

본래 박곡리 마을에 있었는데, 고려시대 원응국사(학일스님)가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대비사는 567년(신라 진흥왕 28)에 창건했다고 전하며, 박곡리 대비저수지 상류에 위치한다.[blog.naver]

2.2 1928년 대화재로 인한 파괴

이 석불좌상은 1928년의 대화재로 많이 손상되었다. 1928년에 일어난 큰 불 때문에 광배 대좌는 물론 불신까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몇 차례 화재와 인위적인 훼손으로 원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세련된 작품의 특징을 느낄 수 있다.[encykorea.aks.ac]

 

 

 

 

 

 

 

 

 

 

 

3. 불상의 특징

3.1 치수와 구조

  •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 2.76m
  • 불상 높이: 1.54m (또는 1.35m로 기록)[pjb1223.tistory]
  • 재료: 전체가 화강암으로 만들어짐[bosar.tistory]
  • 연화대 높이: 약 1.2m[bosar.tistory]

3.2 얼굴과 신체 특징

화재로 인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눈, 코, 입의 일부만을 관찰할 수 있다. 얼굴의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온화하면서도 풍만한 인상으로 추정된다. 얼굴은 풍만하면서도 박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통일신라성기의 걸작불상으로 높이 평가된다.[pjb1223.tistory]

목에는 2줄의 주름인 삼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어깨는 힘차 보이고 가슴은 매우 당당하지만 그에 비해 허리는 잘록하게 표현되었다.[pjb1223.tistory]

3.3 의복과 자세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우견편단(右肩偏袒) 형태로, 몸에 밀착되었고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몸에 밀착된 우견편단의 법의 등에서 강건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통일신라성기의 걸작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bosar.tistory]

자세는 항마촉지인의 석가여래 자세이다.[blog.naver]

3.4 대좌(대좌)의 특징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분된 팔각 연꽃모양으로 당대의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pjb1223.tistory]

  • 상대석: 팔각 복연(復蓮)으로 복변팔엽(復辨八葉)의 연화문(蓮花紋)을 각 면에 조각하였다[bosar.tistory]
  • 중대석: 팔각으로 각 모퉁이에 기둥모양(柱形)이 있다[bosar.tistory]
  • 하대석: 팔각 복연으로 연화문을 조각[bosar.tistory]

대좌는 팔각이나 손상이 많으며, 상·중·하대로 구분된 8각 연꽃모양으로 당시의 특징을 잘 표현한다.[blog.naver]

4. 광배의 추정

현재 불상 옆에는 훼손된 광배와 석탑이 남아 있어서 이 일대도 옛 절터로 추정된다. 이 파편을 보면 주형광배(舟形光背)에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나타내었고, 외면에 불꽃무늬(火焰紋)와 연꽃무늬(蓮花紋)를 조각한 웅장하고 화려한 광배였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ruins.tistory]

 

 

 

 

 

 

5. 예술적 가치와 문화재 의미

5.1 석굴암 본존불과 양식 비교

이 불상은 비록 손상은 입었지만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 본존불과 양식이 비슷하며, 당당하면서도 세련된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불상으로 높이 평가된다.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으로 추정된다.[ko.wikipedia]

당당한 힘과 비교적 사실적인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석굴암본존불을 모방한 통일신라 말기의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다소 도식화된 면이 있지만 당당한 힘과 비교적 사실적인 표현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기 작품으로 평가된다.[encykorea.aks.ac]

5.2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대표작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높이 276cm이며, 당당한 체구에 풍만하면서 박력 있는 모습, 힘찬 어깨와 당당한 가슴, 잘쑥한 허리, 몸에 밀착된 법의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의 우수한 작품을 엿볼 수 있다.[blog.naver]

불상은 강건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통일신라의 걸작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세련된 작품을 느낄 수 있다.[blog.naver]

5.3 현재 상태와 보존

상호가 크게 훼손되고 잔존상태는 안 좋은 편이지만, 보물 제20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불상은 비록 손상을 입었지만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과 양식이 비슷하며 당당하면서도 세련된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ruins.tistory]

석가여래는 전 시대를 통하여 예배의 대상이 되었고, 이 불상 또한 마을주민들이 따로 불각(佛閣)을 세워 모시고 있다. 보호각 문을 열고 석불을 보면 항마촉지인의 석가여래다.[ko.wikipedia]

 

 

 

 

 

 

 

 

6. 방문 정보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은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295(박곡리)에 위치하며, 운문사와 함께 서쪽 대비갑사로 창건된 사찰인 대비사로 들어가는 계곡 입구 마을에 모셔져 있다. 이 길 좌측에 불상이 위치하며, 박곡마을에서 대비저수지를 감고 도는 박곡길로 가면 대비사를 도착한다 [dapsa]

7. 결론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은 1928년 대화재로 심각한 훼손을 입었지만, 여전히 통일신라 전성기의 우수한 불상으로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석굴암 본존불과 유사한 양식과 당당하면서도 세련된 표현은 통일신라시대 불교조각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마을주민들이 불각을 세워 모시고 있으며, 보물 제203호로 지정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 불상은 화재로 진면목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pjb1223.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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