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 대비사
1. 개요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운문산 기슭에 자리한 대비사(大悲寺)는 신라 진흥왕 시대부터 이어온 1,400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찰입니다. 대비사는 동화사의 말사이며, 운문사와 산고개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 18 년(557)에 신승이 운문산(당시 호거산)에 들어와 3 년 후인 560 년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7 년 걸려 오갑사를 완성했는데, 서쪽의 소작갑사 또는 대비갑사로 불린 오갑사 중의 하나로, 신라 진평왕 22 년(600) 원광국사가 제 1 차 중창을 실시한 사찰입니다.[ko.wikipedia]







2. 창건과 중창
- 신라 시대 창건
신승이 운문산에 들어와 절을 짓기 시작한 것은 신라 진흥왕 21 년(560)이며, 진흥왕 27 년(566)에 완공되었습니다. 이후 진평왕 22 년(600)에 원광 국사가 첫 중창을 했다. 대비사의 이름은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뜻에서 비롯되었으나, 일설에는 수양차 이 절에 오랫동안 지낸 대비 왕비 때문에 '대비갑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도 합니다.[blog.naver]
- 고려 시대 이전 위치와 이동
창건 당시 대비사는 박곡리 마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 현재의 운문산 기슭 위치로 옮겨 왔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동은 사찰의 규모 확대나 방위 변화, 또는 당시 정치적·종교적 상황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ko.wikipedia]
3. 부도와 고승 주석
입구 동쪽 산기슭에 줄지어 서 있는 11 기의 고승 대덕 부도는 이 절에 많은 고승이 주석하고 왕래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부도는 일반적으로 고승의 묘탑이나 사리를 안치한 것으로, 대비사의 불교 역사적 깊이를 입증하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ko.wikipedia]









4. 건축과 문화재
- 보물 제 834 호 대웅전
대비사의 대웅전은 1985 년 보물 제 834 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규모는 정면 3 칸, 측면 3 칸의 단층 건물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encykorea.aks.ac]
- 건축 양식
대웅전은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포(栱包)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설치된 다포계 건축 수법을 보여줍니다. 이 건물은 17 세기 경에 다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공포의 일부에 조선 초기 건물의 양식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체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의 구성도 꼼꼼하고 튼튼합니다.[ko.wikipedia]
- 세부 특징
- 석조 기단: 잡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습니다.[gb.go]
- 기둥머리: 창방과 평방을 두고 그 위에 다포계의 공포를 구성했습니다.[ko.wikipedia]
- 공포 구성: 기둥사이에는 각각 2 개의 공간포를 두었는데 그 간격의 정연함이 우수합니다.[gb.go]
- 포작 : 외 2 출목, 내 3 출목으로 전형적인 방식을 따랐으며, 세부는 간결하고 견실합니다.[gb.go]
- 가구 : 1 고주 5 좌로 대좌 위에 종좌를 걸었으며, 종좌에 우물천장을 대었습니다.[gb.go]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갖춘 건물로서, 조선 초기에서 중기에 걸친 양식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입니다.[ko.wikipedia]
- 보물 제 1957 호 영산회상도
석가모니 불상 뒤로 걸려 있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탱화는 보물 제 1957 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탱화는 3m 가 넘는 대형 불화로, 17 세기 후반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gb.go][youtube][blog.naver]
영산회상도 탱화는 한때 도난당했으나, 다행히 무사히 회수된 작품입니다. 이는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과 당시의 문화재 도난 문제를 드러내는 사례입니다.[blog.naver]
- 경북 유형문화재 석조 석가불자상
대비사에는 석조 석가불자상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불상은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중요한 불교 조각품입니다.[youtube]
- 사천왕상
대비사에는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사천왕상은 운문사 작압전에 모셔 있는 사천왕을 모태로 하여, 대비갑사에 갑오년 춘절에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blog.naver]














5. 역사적 확인과 발굴 조사
- 신라 오갑사 역사 확인
2018 년 BBS 불교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경북 청도 대비사가 신라 오갑사 중 하나인 소작갑사였다는 사실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한국 문화재 연구원 강상진 조사 부장이 대비사를 정밀 발굴조사한 결과, 대웅전 건물터에서 금당으로 추정되는 신라시대의 건물주와 가마를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youtube]
- 유물 출토
건물터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수막새, 화암막씨, 평기와편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대비사의 신라 시대 역사와 규모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입니다.[youtube]
- 학술대회
청도군 청소년수련관에서 청도 대비사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신라 오갑사 역사가 재차 확인되었으며, 건물터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대비사의 중요성이 입증되었습니다. 사찰 정비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youtube]










6. 현대적 의미와 현황
- 동화사 말사
현재 대비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 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입니다. 이는 대비사가 현대 불교 체계에서 지역 말사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blog.naver]
- 자연과 문화의 조화
대비사는 운문산 기슭의 자연 경관과 불교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고즈넉하고 운치있는 사찰로, 정신적 안정과 문화 탐구를 원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공간입니다.[blog.naver]
- 문화재 보호와 교육
보물 대웅전과 영산회상도 등은 대비사의 역사적 가치를 대표하며, 문화재 보호와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도난당했던 탱화의 회수는 문화재 보호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youtube][blog.naver]

























7. 결론
청도 대비사는 신라 진흥왕 시대부터 이어온 1,400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불교 사찰입니다. 신라 오갑사 중 하나로서 창건되었고, 고려 시대에 현재 위치로 이동하며 여러 차례 중창을 했습니다. 보물 제 834 호 대웅전은 조선 초기에서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갖춘 중요한 문화재이며, 보물 제 1957 호 영산회상도는 17 세기 후반 불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형 탱화입니다.[encykorea.aks.ac][youtube][blog.naver]
2018 년 발굴조사로 신라 오갑사 역사가 확인되었고,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어 대비사의 역사적 깊이가 입증되었습니다. 현재는 동화사 말사로 기능하며, 운문산의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고즈넉한 사찰로 남아 있습니다.[blog.naver][youtube][blog.naver]
운문사와 대비사는 신라 오갑사 창건에서 비롯된 '쌍봉'으로, 지리적으로는 10 리 (약 4km) 거리에 산고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신승과 원광국사, 화랑도, 고려 시대 사액을 통해 깊은 연관이 있으며, 현대에는 동화사 말사로 같은 교구 본사에 속합니다.[ko.wikipedia][youtube]
두 절은 신라 불교사와 화랑도의 정신적 기지였으며, 현재는 운문산 자연 경관과 불교 문화가 조화되는 사찰 순례·등산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youtube][ko.wikipedia]
대비사는 신라 불교사의 살아있는 증거이자, 조선 시대 건축과 불화 예술의 걸작을 보유한 문화유산입니다. 이 사찰은 한국 불교사와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보전이 필요합니다.[ko.wikipedia][youtube]

















* 운문산 오갑사의 창건, 사찰 위치 & 운문사와 대비사 관계
신라 오갑사는 경상북도 청도 운문산 일대에 신라 진흥왕 때 세워졌다고 전하는 다섯 사찰을 가리키며, 중심이 되는 대작갑사(현재의 운문사)와 가슬갑사·천문갑사·소보갑사·소작갑사로 구성됩니다.[encykorea.aks.ac]
전승에 따르면 오갑사는 운문산의 동서남북과 중앙에 배치되어 사방의 흉한 기운을 누르고 나라를 보전하려는 뜻을 담았으며, 단순한 산중 사찰이 아니라 국가적·군사적 의미까지 지닌 공간으로 이해됩니다.[yeongnam]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오갑사 관련 사찰은 중심 사찰인 운문사와, 소작갑사에서 이어졌다고 보는 대비사 정도이며, 나머지 가슬갑사·천문갑사·소보갑사는 전하지 않습니다.[ko.wikipedia]
1. 창건 전승
오갑사는 신라 **진흥왕 18년**(557년)에 한 **신승**(신성한 승려)이 청도 운문산(당시 호거산)으로 들어와 창건했다는 전승이 전해집니다. [blog.naver]
- 진흥왕 18년 (557): 신승이 북대암 옆 금수동(금수동 계곡)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달음
- 진흥왕 21년 (560): 깨달음을 얻은 후 도우(제도) 10여 인의 도움을 받아 오갑사 건립 시작 [blog.naver]
- 7년 동안 건설: 총 7여 년에 걸쳐 5개 사찰을 완성 [blog.naver](https://blog.naver.com/winexkorea/223295864859)
전승에 따르면 신승이 운문산에서 수행하던 중 산에 **'오령'** (다섯 개의 영험스러운 기운)이 있음을 알고, 사방의 흉한 기운을 누르고 나라를 보전하려는 뜻으로 오갑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temple.aritok](https://temple.aritok.com/bbs/board.php?bo_table=datagokr_Kor&wr_id=2505)
2. 각 사찰의 위치
오갑사는 **중앙에 대작갑사**를 두고,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사찰을 배치한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문헌 기록에 나타난 구체적 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blog.naver](https://blog.naver.com/bich2002/220544420884)
- 가슬갑사: 운문사 중심 대비 **동쪽 9,000 보**(약 5.4km) 지점
- 천문갑사: **남쪽 7 리**(약 2.8km) 지점
- 대비갑사 (소작갑사): **서쪽 10 리**(약 4km) 지점
- 소보갑사: **북쪽 8 리**(약 3.2km) 지점
현재는 **운문사와 대비사만이 남아 있으며**, 나머지 3개 사찰은 사지 (터) 로만 확인되고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ktriptips](https://www.ktriptips.com/kor/tourspot/299997)
3. 운문사와 대비사의 관계
● 공통점
- **동일 창건자**: 두 사찰 모두 동일한 신승이 창건한 오갑사의 일원 [temple.aritok]
- **동일 창건 시기**: 557년 (진흥왕 18년) 시작, 560년 (진흥왕 21년) 건립, 7년 동안 완성 [blog.naver](https://blog.naver.com/winexkorea/223295864859)
- **오갑사 중 생존 사찰**: 신라 말~고려 초 혼란으로 대부분 폐사되했으나, 이 두 사찰만 법등 이어오며 현재까지 보존 [ktriptips]
● 위치 관계
- **운문사**: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운문산 중앙)
- **대비사**: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590 (운문사 서쪽)
- 두 절은 **산고래 **(산등성이) 사이에 위치하며, 대비사는 운문사 서쪽에 자리 [temple.aritok](https://temple.aritok.com/bbs/board.php?bo_table=datagokr_Kor&wr_id=2505)
● 역사적 관계
- **600년 중창**: 신라 진평왕 22년 (600년)에 **원광법사**가 운문사와 비교작사 (대비사) 를 함께 중창 [yahoe.tistory](https://yahoe.tistory.com/tag/%EC%9D%B4%EB%AC%B4%EA%B8%B0%EC%A0%84%EC%84%A4)
- **군사·교육적 의미**: 오갑사는 순수 사찰 경지를 넘어 신라의 **군사거점**과 **화랑수련장** 역할도 수행 [koreaimg]
- **대작갑사 = 운문사**: 대작갑사 (중앙) 가 현재의 운문사 [blog.naver]
- **소작갑사 = 대비사**: 소작갑사 (서쪽) 가 현재의 대비사 [temple.aritok](https://temple.aritok.com/bbs/board.php?bo_table=datagokr_Kor&wr_id=2505)
4. 추가적 의미
오갑사는 신라가 불교를 중흥하고 삼국통일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여 군비를 정비할 때 창건되었으므로, **국가적·군사적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이해됩니다. [koreaimg]
특히 오갑사는 운문산 일대에 창건되고 화랑수련장이 만들어져, **화랑도의 핵심 동력**을 양성하는 교육도량으로 기능했습니다. [yeongnam](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1102010000292)
현재 운문사는 **전국 최대 비구니교육 도량**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대비사는 동화사의 말사로서 복원에 힘쓰고 있습니다. [instagram](https://www.instagram.com/p/DX3d45LjzVM/)
'■ 전통건축 갤러리 ■ > 경 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통건축-10404. 청도 운문사(雲門寺) ㅡ 천년 고찰과 화랑 정신의 발원지 (2026.06.06.) (1) | 2026.06.11 |
|---|---|
| 전통건축-10403. 청도 박곡리 여래좌상(珀谷里 石造如來坐像) ㅡ 화재로 훼손된 통일신라 전성기의 걸작(2026.06.06.) (0) | 2026.06.10 |
| 전통건축-10401. 청도 운곡정사(雲谷精舍) & 원모재(遠慕齋) (2026.06.06.) (1) | 2026.06.08 |
| 전통건축-10396.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 제2 석굴암 (2026.05.23.) (0) | 2026.05.26 |
| 전통건축-10371. 고령 개실마을 도연재 (2025.12.06.) (0) | 2025.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