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열전 중 첫 번째 ㅡ 백이열전 (伯夷列傳) : 도덕적 선택과 역사의 기록
1. 서론
백이열전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 중 첫 번째에 배치된 글로,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인 백이와 숙제의 삶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의리와 도덕인지,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서사입니다. 사마천이 수많은 역사 인물 중에서 유독 백이와 숙제를 열전의 첫 번째에 배치한 것은 단순한 순서가 아니라, 그가 역사가로서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신호입니다. 보통 역사서는 제왕이나 영웅, 패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마천은 권력을 거부하고 도덕적 원칙을 선택한 두 은자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이는 사마천이 권력의 크기보다 인간의 도덕적 선택을 더 중요하게 보았음을 의미합니다.
2, 본론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둘째 아들인 숙제를 후계자로 정해 두었지만,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형인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했고, 백이는 "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아버님의 명이다"라며 왕위를 거부하고 나라를 떠났습니다. 숙제도 형을 따라 왕위를 받지 않기로 하여 결국 고죽국 사람들은 가운데 아들을 군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는 권력을 탐하지 않고 서로 양보하는 의로운 태도였으며, 이후 두 사람은 주나라의 서백 창을 찾아갔으나 도중에 서백이 죽고 아들 무왕이 아버지 주를 대신해 은나라 정벌을 준비 중임을 알게 됩니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무왕에게 간언을 올립니다. "아버지가 죽어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창칼을 들고 전쟁을 한다면 그것을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 "신하가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따집니다. 이 말은 주나라의 정벌이 비도덕적임을 드러내는 것이자, 무왕의 행위가 권력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폭력임을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좌우 신하들이 이들을 죽이려 했으나, 강태공이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말려 보호받고 떠나게 됩니다. 이후 무왕이 은나라를 평정하고 천하가 주나라를 받들게 되었지만, 백이와 숙제는 그 일을 부끄럽게 여겨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다가 굶어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권력보다 의리를 선택한 삶,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말을 가져오는지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백이와 숙제는 왕위를 거부하고, 정벌을 비판하고,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도덕적 원칙을 지키는 삶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들을 실패한 인물로 기록하지 않고, 『사기』 열전 중 가장 첫 번째로 배치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사마천이 왕조 역사에서 보통 제왕과 영웅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관습과 달리, 도덕적 은자를 가장 높은 위치에 둔 독특한 태도입니다.
백이열전의 가장 큰 특징은 전기 다음에 사마천 자신의 논평이 매우 길게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보통 열전은 인물의 행적을 서술한 뒤 짧은 논평으로 끝내지만, 백이열전에서는 논평이 전기보다 훨씬 오래 지속됩니다. 사마천은 "하늘은 언제나 착한 사람과 같이 한다"라는 말이 정말 옳은지 묻고, 백이와 숙제처럼 착한 사람이 굶어 죽었는데, 오히려 도척이라는 악명은 높은 도적은 끝까지 잘 살다가 죽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공자가 가장 칭찬한 제자 안연도 궁핍하게 살아 요절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벌을 받는다는 말이 정말 옳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백이의 비극을 통해 사마천 자신이 겪은 고난과 치욕을 정당화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에게 백이는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일생을 지켜낸 인물로 비쳤고, 그로 인해 사마천은 자신의 삶을 백이와 중첩시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3. 결론
백이열전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옛 인물의 전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철학적 글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옳다고 믿는 길을 선택하는 태도, 그리고 그런 인물을 잊지 않고 기록하려는 사마천의 시선이 핵심입니다. 또한 백이와 숙제의 이름은 후대에 잊혀질 뻔했으나 사마천이 기록함으로써 기억되었고, 이는 "이름이 없는 사람들까지 기록하는 것이 역사가의 도리"라는 사마천의 역사관을 보여줍니다.
결국 백이열전은 『사기』 전체가 지닌 문제의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편입니다.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를 통해 의리와 지조, 도덕과 권력, 착한 사람의 비극과 악한 사람의 성공, 그리고 역사의 기록과 기억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습니다. 이 편은 단순한 전기 서술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철학적 글이자, 궁형을 당한 뒤에도 역사를 써 내려간 사마천 자신의 자화상이자 자위입니다. 그래서 백이열전은 『사기』를 읽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할 편이며, 사마천이 역사가로서 어떤 태도를 지녔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중요한 글입니다. 사마천은 백이열전을 통해 역사가는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약자와 실패자, 도덕적 원칙을 지키다 고통받는 자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사기(史記)》전체 130권 종합 목록
「사기」는 전설상의 오제(五帝)로부터 전한 무제(武帝) 시대까지를 다루는 기전체(紀傳體) 형식의 중국 역사서로, 본기·표·서·세가·열전 다섯 부문 총 13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서는 각 부문의 전체 목록을 표로 정리한 것이다.
Ⅰ. 본기(本紀)
역대 제왕의 사적을 편년체로 기록 · 총 12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오제본기(五帝本紀) | 황제(黃帝)·전욱·제곡·요(堯)·순(舜) |
| 2 | 하본기(夏本紀) | 하(夏) 왕조 |
| 3 | 은본기(殷本紀) | 은(상, 商) 왕조 |
| 4 | 주본기(周本紀) | 주(周) 왕조 |
| 5 | 진본기(秦本紀) | 진(秦)의 제후국 시기~통일 이전 |
| 6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 진시황·이세황제·자영 |
| 7 | 항우본기(項羽本紀) | 항우 |
| 8 | 고조본기(高祖本紀) | 한 고조 유방 |
| 9 |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 | 여태후 |
| 10 | 효문본기(孝文本紀) | 한 문제 |
| 11 | 효경본기(孝景本紀) | 한 경제 (저소손 보충) |
| 12 | 효무본기(孝武本紀) | 한 무제 (저소손 보충) |
※ 항우는 황제가 아니었으나 진(秦) 멸망 후 실질적 패권자로서, 여태후는 실권자로서 본기에 편입되었다.
Ⅱ. 표(表)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정리한 연표·월표 · 총 10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삼대세표(三代世表) | 하·은·주 삼대의 제왕 계보 |
| 2 | 십이제후연표(十二諸侯年表) | 춘추시대 12제후국의 연대기 |
| 3 | 육국연표(六國年表) | 전국시대 6국 및 진(秦) |
| 4 | 진초지제월표(秦楚之際月表) | 진 멸망~한 건국 사이의 월별 기록 |
| 5 | 한흥이래제후왕연표(漢興以來諸侯王年表) | 한 건국 이후 제후왕 연표 |
| 6 |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 | 고조 공신 후(侯) 봉작 연표 |
| 7 | 혜경간후자연표(惠景閒侯者年表) | 혜제~경제 연간 후 봉작 연표 |
| 8 | 건원이래후자연표(建元以來侯者年表) | 무제 건원 이후 후 봉작 연표 |
| 9 |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建元以來王子侯者年表) | 무제 건원 이후 왕자 출신 후 연표 |
| 10 |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 | 한 건국 이후 장상·명신 연표 (저소손 보충) |
※ 10권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는 후대에 일부가 유실되어 저소손(褚少孫)이 보충하였다.
Ⅲ. 서(書)
정치·사회·문화 제도를 다룬 전문 논술 · 총 8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예서(禮書) | 예법·의례 제도 |
| 2 | 악서(樂書) | 음악과 정치·교화적 기능 |
| 3 | 율서(律書) | 본래 병법·군사, 후반부는 음률 |
| 4 | 역서(曆書) | 역법(曆法) |
| 5 | 천관서(天官書) | 천문(天文), 천인감응 |
| 6 | 봉선서(封禪書) | 봉선(封禪) 의식 |
| 7 | 하거서(河渠書) | 치수(治水)·수리(水利) |
| 8 | 평준서(平準書) | 경제 정책, 물가 평준 |
※ 예서·악서·병서는 원본이 망실되어 예서·악서는 후대 자료로 재구성되었고, 병서는 복원되지 못한 채 율서가 그 역할 일부를 대신한다.
Ⅳ. 세가(世家)
제후국 및 주요 공신·황족 가문의 역사 · 총 30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 오(吳)나라 |
| 2 |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 제(齊)나라 (강태공 계열) |
| 3 |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 노(魯)나라 (주공 계열) |
| 4 |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 연(燕)나라 |
| 5 | 관채세가(管蔡世家) | 관(管)·채(蔡) |
| 6 | 진기세가(陳杞世家) | 진(陳)·기(杞) |
| 7 |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 위(衛)나라 |
| 8 |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 송(宋)나라 |
| 9 | 진세가(晉世家) | 진(晉)나라 |
| 10 | 초세가(楚世家) | 초(楚)나라 |
| 11 |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 월(越)나라, 구천 |
| 12 | 정세가(鄭世家) | 정(鄭)나라 |
| 13 | 조세가(趙世家) | 조(趙)나라 (전국) |
| 14 | 위세가(魏世家) | 위(魏)나라 (전국) |
| 15 | 한세가(韓世家) | 한(韓)나라 (전국) |
| 16 |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 전씨(田氏) 제나라 |
| 17 | 공자세가(孔子世家) | 공자(孔子) |
| 18 | 진섭세가(陳涉世家) | 진승(陳勝) |
| 19 | 외척세가(外戚世家) | 한대 황실 외척 |
| 20 |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 유교(劉交) 계열 |
| 21 | 형연세가(荊燕世家) | 형왕·연왕 |
| 22 |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 | 제 도혜왕 유비(劉肥) 계열 |
| 23 |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 소하(蕭何) |
| 24 |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조참(曹參) |
| 25 | 유후세가(留侯世家) | 장량(張良) |
| 26 |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진평(陳平) |
| 27 |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 주발(周勃) |
| 28 |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 한 문제 아들 양효왕 |
| 29 | 오종세가(五宗世家) | 한 경제의 다섯 계열 자손 |
| 30 | 삼왕세가(三王世家) | 한 무제의 세 아들 (저소손 보충) |
※ 공자세가(17권)·진섭세가(18권)는 제후가 아니었으나 사상적·역사적 영향력을 인정받아 세가에 편입된 예외적 사례다.
Ⅴ. 열전(列傳)
인물 중심의 전기, 사기의 압권 · 총 70권
| 권 | 편명 | 권 | 편명 |
| 1 | 백이 열전(伯夷列傳) | 2 | 관·안 열전(管晏列傳) |
| 3 | 노자·한비 열전(老子韓非列傳) | 4 | 사마양저 열전(司馬穰苴列傳) |
| 5 | 손자·오기 열전(孫子吳起列傳) | 6 | 오자서 열전(伍子胥列傳) |
| 7 | 중니제자 열전(仲尼弟子列傳) | 8 | 상군 열전(商君列傳) |
| 9 | 소진 열전(蘇秦列傳) | 10 | 장의 열전(張儀列傳) |
| 11 | 저리자·감무 열전(樗里子甘茂列傳) | 12 | 양후 열전(穰侯列傳) |
| 13 | 백기·왕전 열전(白起王翦列傳) | 14 | 맹자·순경 열전(孟子荀卿列傳) |
| 15 | 맹상군 열전(孟嘗君列傳) | 16 | 평원군·우경 열전(平原君虞卿列傳) |
| 17 | 위공자 열전(魏公子列傳) | 18 | 춘신군 열전(春申君列傳) |
| 19 | 범저·채택 열전(范雎蔡澤列傳) | 20 | 악의 열전(樂毅列傳) |
| 21 | 염파·인상여 열전(廉頗藺相如列傳) | 22 | 전단 열전(田單列傳) |
| 23 | 노중련·추양 열전(魯仲連鄒陽列傳) | 24 | 굴원·가생 열전(屈原賈生列傳) |
| 25 | 여불위 열전(呂不韋列傳) | 26 | 자객 열전(刺客列傳) |
| 27 | 이사 열전(李斯列傳) | 28 | 몽염 열전(蒙恬列傳) |
| 29 | 장이·진여 열전(張耳陳餘列傳) | 30 | 위표·팽월 열전(魏豹彭越列傳) |
| 31 | 경포 열전(黥布列傳) | 32 | 회음후 열전(淮陰侯列傳) |
| 33 | 한신·노관 열전(韓信盧綰列傳) | 34 | 전담 열전(田儋列傳) |
| 35 | 번·역·등·관 열전(樊酈滕灌列傳) | 36 | 장승상 열전(張丞相列傳) |
| 37 | 역생·육가 열전(酈生陸賈列傳) | 38 | 부·근·괴성 열전(傅靳蒯成列傳) * |
| 39 | 유경·숙손통 열전(劉敬叔孫通列傳) | 40 | 계포·난포 열전(季布欒布列傳) |
| 41 | 원앙·조조 열전(袁盎晁錯列傳) | 42 | 장석지·풍당 열전(張釋之馮唐列傳) |
| 43 | 만석·장숙 열전(萬石張叔列傳) | 44 | 전숙 열전(田叔列傳) |
| 45 | 편작·창공 열전(扁鵲倉公列傳) | 46 | 오왕비 열전(吳王濞列傳) |
| 47 | 위기·무안후 열전(魏其武安侯列傳) | 48 | 한장유 열전(韓長孺列傳) |
| 49 | 이장군 열전(李將軍列傳) | 50 | 흉노 열전(匈奴列傳) |
| 51 | 위장군·표기 열전(衛將軍驃騎列傳) | 52 | 평진후·주보 열전(平津侯主父列傳) |
| 53 | 남월 열전(南越列傳) | 54 | 동월 열전(東越列傳) |
| 55 | 조선 열전(朝鮮列傳) | 56 | 서남이 열전(西南夷列傳) |
| 57 | 사마상여 열전(司馬相如列傳) | 58 | 회남·형산 열전(淮南衡山列傳) |
| 59 | 순리 열전(循吏列傳) | 60 | 급·정 열전(汲鄭列傳) |
| 61 | 유림 열전(儒林列傳) | 62 | 혹리 열전(酷吏列傳) |
| 63 | 대원 열전(大宛列傳) | 64 | 유협 열전(游俠列傳) |
| 65 | 영행 열전(佞幸列傳) | 66 | 골계 열전(滑稽列傳) |
| 67 | 일자 열전(日者列傳) * | 68 | 귀책 열전(龜策列傳) * |
| 69 | 화식 열전(貨殖列傳) | 70 |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
※ * 표시(38·67·68권)는 원본 유실로 저소손이 보충한 편이다. 70권 태사공자서는 사마천이 130권 전체의 집필 동기와 편찬 취지를 밝힌 서문이다.
구성 요약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本紀 | 본기(本紀) | 12권 — 제왕의 편년 사적 |
| 表 | 표(表) | 10권 — 연표·월표 |
| 書 | 서(書) | 8권 — 제도·문물사 |
| 世家 | 세가(世家) | 30권 — 제후·공신 가문사 |
| 列傳 | 열전(列傳) | 70권 — 인물 전기 |
합계: 130권, 약 52만 6,500자
'■ 사는 이야기 ■ >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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