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천의 『사기』
서론: 동양 역사학의 거인과 그의 불굴의 삶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 무제 때 활약한 역사가로, 동양에서 역사학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서양의 헤로도토스와 함께 동서양 역사학을 각각 대표하는 거장으로, 그가 쓴 『사기』는 중국 이십사사의 하나이자 정사의 맨 처음에 위치하는 역사서입니다. 역사 기록을 넘어 인간의 삶과 역사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철학적 걸작으로, 중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양은 물론 전 세계에서 역사서의 명작으로 손꼽힙니다.koreasan.tistory+1
1. 사마천의 출생과 성장 : 태사령 가문의 아들
사마천은 기원전 145 년경 중국 섬성성 용문 (현 하양) 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사마담은 당대 최고의 천문관측자이자 역법 전문가로, 태사령 (太史令) 이라는 관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태사령은 천문 관측, 역법 제정, 국가 기록 관리를 담당하는 직위로, 당시 매우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에게 어릴 때부터 고전과 문헌을 가르쳤고, 특히 상고 시대의 역사와 전설에 깊은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wikipedia+2
7 세 때 사마담은 태사령이 되어 무릉으로 이사했고, 사마천은 어린 시절부터 고대 문헌과 역사 기록에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사기』 집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20 살이 된 사마천은 중국 전역을 여행하며 각지의 유적을 방문하고, 고대 전설과 사료,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했습니다. 이러한 여행은 사마천이 단순한 서재 학자가 아니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를 기록한 '살아 있는 역사학자'가 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h21.hani.co+1
2. 역사가로서의 길과 아버지의 유언
3 년 뒤 사마천은 아버지를 뒤이어 태사령이 되었고, 천문 관측과 역법 전문가로서 태초력 제정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는 한 무제가 황제로서의 권력을 강화하던 시기로, 사마천은 황제와 가장 가까운 직무를 수행하며 중앙 정치의 핵심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blog.naver+1
기원전 104 년, 사마천은 태초 원년에 본격적으로 『사기』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마담은 임종 전에 "내가 태사령으로 역사 기록을 맡았지만, 제왕의 치세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 완성은 너의 사명이다"라고 유언했습니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전설적인 황제부터 한 무제까지 약 2천 년에 걸친 중국 역사를 완성하기로 결심했습니다.youtubeblog.naver
3. 이릉 사건과 궁형 : 치욕과 사명의 대결
사마천의 삶에서 가장 치명적인 사건은 기원전 99 년 발생한 '이릉의 화 (李陵之禍)'입니다. 당시 한나라 장수 이릉은 흉노 정벌에 나섰으나, 포위되어 결국 항복했습니다. 이 소식이 장안으로 전해지자, 무제와 조정관료들은 이릉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가족을 처벌했습니다. 이때 사마천은 이릉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릉은 진정한 장수였습니다. 그는 적은 병력으로 적을 많이 죽였고, 항복은 임시 조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brunch.coyoutube
이 발언은 무제를 격분시켰고, 사마천은 반역죄로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사형은 피할 수 없었지만, 사마천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결이고, 다른 하나는 궁형 (宮刑) 이었습니다. 궁형은 남성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형벌로, 유교 사상 영향 하에서 가장 치욕적인 형벌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치욕을 감수하고라도 궁형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wikipediayoutube
사마천은 이릉 사건 후 "이 때문에 내 창자 (마음) 가 하루에도 열 번씩 비틀린다"라고 썼습니다. 그는 치욕과 고통 속에서 아버지의 유언과 역사가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텼습니다.brunch.co
4. 사기 완성 : 치욕을 극복한 위대한 업적
궁형 후 2 년 뒤 사마천은 중서령 (내실 기록 담당) 으로 복귀했고, 황제의 신임을 더 받았습니다. 그는 치욕을 딛고 『사기』 집필을 계속했습니다. 기원전 91 년경, 약 13 년간의 집필 끝에 130 편, 약 52 만 6,500 자의 대작을 완성했습니다.brunch.co+2
『사기』는 본기·세가·표·서·열전의 5 가지 체제로 구성되었습니다. 본기는 12 권으로 제왕의 언행과 업적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했고, 세가는 30 권으로 제후국과 영웅들의 흥망성쇠를 기록했습니다. 표는 10 권으로 연대별 중대 사건을 표로 정리했고, 서는 8 권으로 각종 제도의 역혁을 기록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전으로, 70 권에 달하며 다양한 인물들의 전기였습니다.youtubeitem.cjonstyle+1
이 구성은 후대 중국 정사 편찬의 표준이 되었으며, 기전체 역사서술의 기본 틀을 마련했습니다. 사마천은 왕과 제후뿐만 아니라 패배자, 비극적 인물, 은자, 자객, 상인, 여성, 오랑캐까지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정치적·도덕적 비평과 문학적 서사 기법, 주류 밖 목소리를 통합하는 문제의식 덕분에 후대 정사의 '열전 체제' 표준이 되었고, 동아시아 사학·문학·윤리 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hiearth-hh.tistory+1
5. 사기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사기』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사마천은 '역사는 인간이다'라는 철학을 가진 역사가였습니다. 그는 제왕의 업적만 기록하지 않고, 패배자와 비극적 인물의 삶을 함께 기록했습니다. 항우가 비록 패배했지만 그 서사적 위력을 본기 (itelj) 에 포함시켰고, 자객과 상인, 여성까지도 기록했습니다.koreasan.tistoryyoutube
또한 사마천은 역사를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도덕적 교훈을 제시하는 서사로 보았습니다. 《태사공 서》에서 사마천은 "나는 황제로부터 태초까지를 기록하여 백 30 편의 글을 남겼다"고 썼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데 지향해야 할 모법과 준칙을 제시하는 철학적 서사였습니다.namu+1
오늘날까지 『사기』는 중국의 문화와 정신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습니다. 옛부터 "사기는 역경에 처해 좌절하는 사람에게 역경을 극복할 힘과 지혜를 주고, 영광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그 영광을 지키는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youtube
6. 사마천의 사후와 사기의 영향
사마천은 기원전 86 년경 사망했습니다. 그가 죽은 직후 『사기』는 널리 퍼지지 않았으나, 후대에 이르러 그 가치가 재발견되었습니다. 한나라 이후 중국 정사 편찬의 표준이 되었고, 동아시아 역사서술의 기본 원리로 자리 잡았습니다.blog.naver+1
한국과 일본에서도 『사기』는 중요한 고전으로 읽혔습니다. 한국의 경우,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사기』를 역사적 교훈과 도덕적 성찰의 책으로 읽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이전부터 유학자들과 군사들이 『사기』를 통해 전략과 통치 철학을 배웠습니다. 오늘날에도 중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양은 물론 전 세계 역사학자와 일반 독자들이 『사기』를 읽고 있습니다.keaj+1
7. 사마천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
사마천이 왜 궁형을 자처하며까지 사기를 완성했을까요? 그 이유는 아버지의 유언과 역사가로서의 사명감 때문입니다. 그는 "내가 죽어도 사기는 남을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사명은 치욕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youtubekeaj
또한 사마천은 역사 기록이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라, 후세에게 교훈을 주는 생명력 있는 서사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역사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생생한 인물과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이 『사기』를 단순한 역사서가 아닌, 인간 서사로 만든 핵심 요소입니다.hiearth-hh.tistory+1
결론: 사마천과 사기는 왜 오늘날에도 중요한가
사마천의 『사기』는 2천 년 전에 쓰였지만,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삶과 역사의 보편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혼란한 시대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치욕을 감수한 한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통해 완성된 위대한 역사 서사는 오늘날에도 독자들에게 영감을 줍니다.koreasan.tistoryyoutube
『사기』를 읽는 것은 2천 년 전 중국 고대사를 배우는 것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마천은 역사가로서 치욕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며, 역사의 진실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삶과 작품은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점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brunch.coyoutube
오늘날 우리가 『사기』를 읽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 지식 습득이 아니라, 역경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는 인간 승리의 이야기, 치욕을 극복한 사명의 힘, 그리고 역사와 인간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사마천과 『사기』는 2천 년을 관통하여 여전히 우리에게 힘과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youtubekoreasan.tistory
☆《사기(史記)》전체 130권 종합 목록
「사기」는 전설상의 오제(五帝)로부터 전한 무제(武帝) 시대까지를 다루는 기전체(紀傳體) 형식의 중국 역사서로, 본기·표·서·세가·열전 다섯 부문 총 13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서는 각 부문의 전체 목록을 표로 정리한 것이다.
Ⅰ. 본기(本紀)
역대 제왕의 사적을 편년체로 기록 · 총 12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오제본기(五帝本紀) | 황제(黃帝)·전욱·제곡·요(堯)·순(舜) |
| 2 | 하본기(夏本紀) | 하(夏) 왕조 |
| 3 | 은본기(殷本紀) | 은(상, 商) 왕조 |
| 4 | 주본기(周本紀) | 주(周) 왕조 |
| 5 | 진본기(秦本紀) | 진(秦)의 제후국 시기~통일 이전 |
| 6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 진시황·이세황제·자영 |
| 7 | 항우본기(項羽本紀) | 항우 |
| 8 | 고조본기(高祖本紀) | 한 고조 유방 |
| 9 |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 | 여태후 |
| 10 | 효문본기(孝文本紀) | 한 문제 |
| 11 | 효경본기(孝景本紀) | 한 경제 (저소손 보충) |
| 12 | 효무본기(孝武本紀) | 한 무제 (저소손 보충) |
※ 항우는 황제가 아니었으나 진(秦) 멸망 후 실질적 패권자로서, 여태후는 실권자로서 본기에 편입되었다.
Ⅱ. 표(表)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정리한 연표·월표 · 총 10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삼대세표(三代世表) | 하·은·주 삼대의 제왕 계보 |
| 2 | 십이제후연표(十二諸侯年表) | 춘추시대 12제후국의 연대기 |
| 3 | 육국연표(六國年表) | 전국시대 6국 및 진(秦) |
| 4 | 진초지제월표(秦楚之際月表) | 진 멸망~한 건국 사이의 월별 기록 |
| 5 | 한흥이래제후왕연표(漢興以來諸侯王年表) | 한 건국 이후 제후왕 연표 |
| 6 |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 | 고조 공신 후(侯) 봉작 연표 |
| 7 | 혜경간후자연표(惠景閒侯者年表) | 혜제~경제 연간 후 봉작 연표 |
| 8 | 건원이래후자연표(建元以來侯者年表) | 무제 건원 이후 후 봉작 연표 |
| 9 |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建元以來王子侯者年表) | 무제 건원 이후 왕자 출신 후 연표 |
| 10 |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 | 한 건국 이후 장상·명신 연표 (저소손 보충) |
※ 10권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는 후대에 일부가 유실되어 저소손(褚少孫)이 보충하였다.
Ⅲ. 서(書)
정치·사회·문화 제도를 다룬 전문 논술 · 총 8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예서(禮書) | 예법·의례 제도 |
| 2 | 악서(樂書) | 음악과 정치·교화적 기능 |
| 3 | 율서(律書) | 본래 병법·군사, 후반부는 음률 |
| 4 | 역서(曆書) | 역법(曆法) |
| 5 | 천관서(天官書) | 천문(天文), 천인감응 |
| 6 | 봉선서(封禪書) | 봉선(封禪) 의식 |
| 7 | 하거서(河渠書) | 치수(治水)·수리(水利) |
| 8 | 평준서(平準書) | 경제 정책, 물가 평준 |
※ 예서·악서·병서는 원본이 망실되어 예서·악서는 후대 자료로 재구성되었고, 병서는 복원되지 못한 채 율서가 그 역할 일부를 대신한다.
Ⅳ. 세가(世家)
제후국 및 주요 공신·황족 가문의 역사 · 총 30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 오(吳)나라 |
| 2 |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 제(齊)나라 (강태공 계열) |
| 3 |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 노(魯)나라 (주공 계열) |
| 4 |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 연(燕)나라 |
| 5 | 관채세가(管蔡世家) | 관(管)·채(蔡) |
| 6 | 진기세가(陳杞世家) | 진(陳)·기(杞) |
| 7 |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 위(衛)나라 |
| 8 |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 송(宋)나라 |
| 9 | 진세가(晉世家) | 진(晉)나라 |
| 10 | 초세가(楚世家) | 초(楚)나라 |
| 11 |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 월(越)나라, 구천 |
| 12 | 정세가(鄭世家) | 정(鄭)나라 |
| 13 | 조세가(趙世家) | 조(趙)나라 (전국) |
| 14 | 위세가(魏世家) | 위(魏)나라 (전국) |
| 15 | 한세가(韓世家) | 한(韓)나라 (전국) |
| 16 |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 전씨(田氏) 제나라 |
| 17 | 공자세가(孔子世家) | 공자(孔子) |
| 18 | 진섭세가(陳涉世家) | 진승(陳勝) |
| 19 | 외척세가(外戚世家) | 한대 황실 외척 |
| 20 |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 유교(劉交) 계열 |
| 21 | 형연세가(荊燕世家) | 형왕·연왕 |
| 22 |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 | 제 도혜왕 유비(劉肥) 계열 |
| 23 |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 소하(蕭何) |
| 24 |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조참(曹參) |
| 25 | 유후세가(留侯世家) | 장량(張良) |
| 26 |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진평(陳平) |
| 27 |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 주발(周勃) |
| 28 |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 한 문제 아들 양효왕 |
| 29 | 오종세가(五宗世家) | 한 경제의 다섯 계열 자손 |
| 30 | 삼왕세가(三王世家) | 한 무제의 세 아들 (저소손 보충) |
※ 공자세가(17권)·진섭세가(18권)는 제후가 아니었으나 사상적·역사적 영향력을 인정받아 세가에 편입된 예외적 사례다.
Ⅴ. 열전(列傳)
인물 중심의 전기, 사기의 압권 · 총 70권
| 권 | 편명 | 권 | 편명 |
| 1 | 백이 열전(伯夷列傳) | 2 | 관·안 열전(管晏列傳) |
| 3 | 노자·한비 열전(老子韓非列傳) | 4 | 사마양저 열전(司馬穰苴列傳) |
| 5 | 손자·오기 열전(孫子吳起列傳) | 6 | 오자서 열전(伍子胥列傳) |
| 7 | 중니제자 열전(仲尼弟子列傳) | 8 | 상군 열전(商君列傳) |
| 9 | 소진 열전(蘇秦列傳) | 10 | 장의 열전(張儀列傳) |
| 11 | 저리자·감무 열전(樗里子甘茂列傳) | 12 | 양후 열전(穰侯列傳) |
| 13 | 백기·왕전 열전(白起王翦列傳) | 14 | 맹자·순경 열전(孟子荀卿列傳) |
| 15 | 맹상군 열전(孟嘗君列傳) | 16 | 평원군·우경 열전(平原君虞卿列傳) |
| 17 | 위공자 열전(魏公子列傳) | 18 | 춘신군 열전(春申君列傳) |
| 19 | 범저·채택 열전(范雎蔡澤列傳) | 20 | 악의 열전(樂毅列傳) |
| 21 | 염파·인상여 열전(廉頗藺相如列傳) | 22 | 전단 열전(田單列傳) |
| 23 | 노중련·추양 열전(魯仲連鄒陽列傳) | 24 | 굴원·가생 열전(屈原賈生列傳) |
| 25 | 여불위 열전(呂不韋列傳) | 26 | 자객 열전(刺客列傳) |
| 27 | 이사 열전(李斯列傳) | 28 | 몽염 열전(蒙恬列傳) |
| 29 | 장이·진여 열전(張耳陳餘列傳) | 30 | 위표·팽월 열전(魏豹彭越列傳) |
| 31 | 경포 열전(黥布列傳) | 32 | 회음후 열전(淮陰侯列傳) |
| 33 | 한신·노관 열전(韓信盧綰列傳) | 34 | 전담 열전(田儋列傳) |
| 35 | 번·역·등·관 열전(樊酈滕灌列傳) | 36 | 장승상 열전(張丞相列傳) |
| 37 | 역생·육가 열전(酈生陸賈列傳) | 38 | 부·근·괴성 열전(傅靳蒯成列傳) * |
| 39 | 유경·숙손통 열전(劉敬叔孫通列傳) | 40 | 계포·난포 열전(季布欒布列傳) |
| 41 | 원앙·조조 열전(袁盎晁錯列傳) | 42 | 장석지·풍당 열전(張釋之馮唐列傳) |
| 43 | 만석·장숙 열전(萬石張叔列傳) | 44 | 전숙 열전(田叔列傳) |
| 45 | 편작·창공 열전(扁鵲倉公列傳) | 46 | 오왕비 열전(吳王濞列傳) |
| 47 | 위기·무안후 열전(魏其武安侯列傳) | 48 | 한장유 열전(韓長孺列傳) |
| 49 | 이장군 열전(李將軍列傳) | 50 | 흉노 열전(匈奴列傳) |
| 51 | 위장군·표기 열전(衛將軍驃騎列傳) | 52 | 평진후·주보 열전(平津侯主父列傳) |
| 53 | 남월 열전(南越列傳) | 54 | 동월 열전(東越列傳) |
| 55 | 조선 열전(朝鮮列傳) | 56 | 서남이 열전(西南夷列傳) |
| 57 | 사마상여 열전(司馬相如列傳) | 58 | 회남·형산 열전(淮南衡山列傳) |
| 59 | 순리 열전(循吏列傳) | 60 | 급·정 열전(汲鄭列傳) |
| 61 | 유림 열전(儒林列傳) | 62 | 혹리 열전(酷吏列傳) |
| 63 | 대원 열전(大宛列傳) | 64 | 유협 열전(游俠列傳) |
| 65 | 영행 열전(佞幸列傳) | 66 | 골계 열전(滑稽列傳) |
| 67 | 일자 열전(日者列傳) * | 68 | 귀책 열전(龜策列傳) * |
| 69 | 화식 열전(貨殖列傳) | 70 |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
※ * 표시(38·67·68권)는 원본 유실로 저소손이 보충한 편이다. 70권 태사공자서는 사마천이 130권 전체의 집필 동기와 편찬 취지를 밝힌 서문이다.
구성 요약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本紀 | 본기(本紀) | 12권 — 제왕의 편년 사적 |
| 表 | 표(表) | 10권 — 연표·월표 |
| 書 | 서(書) | 8권 — 제도·문물사 |
| 世家 | 세가(世家) | 30권 — 제후·공신 가문사 |
| 列傳 | 열전(列傳) | 70권 — 인물 전기 |
합계: 130권, 약 52만 6,500자
☆ 중국 역사 연대표
| 삼황오제 | 전설 시대 | 황제, 요, 순, 우 | 중국 문명의 기원으로 전해짐 [ruins.tistory] |
| 하(夏) | BC 2000~1600경 | 우왕 | 전설과 초기 국가의 경계 [ruins.tistory] |
| 상(商) / 은(殷) | BC 1600~1046 | 주왕 | 갑골문, 청동기 문화 발달 [ruins.tistory] |
| 주(周) | BC 1046~256 | 문왕, 무왕, 주공 | 봉건제, 서주·동주로 구분 [ruins.tistory] |
| 춘추전국 | BC 770~221 | 공자, 맹자, 노자, 관중, 손자 | 제후국 경쟁, 사상과 병법 발전 [ruins.tistory] |
| 진(秦) | BC 221~206 | 진시황, 이사, 몽염 | 중국 최초 통일, 중앙집권 강화 [ruins.tistory] |
| 한(漢) | BC 206~AD 220 | 유방, 한무제, 장건, 사마천 | 유교 국가 체제 확립, 대외 교류 확대 [ruins.tistory] |
| 삼국 | 220~280 | 조조, 유비, 손권, 제갈량 | 위·촉·오의 분립 [ruins.tistory] |
| 진(晉)·남북조 | 265~581 | 사마염, 효문제 | 분열과 통합 반복, 북방 민족과 교류 [ruins.tistory] |
| 수(隋) | 581~618 | 양견(문제), 양광(양제) | 중국 재통일, 대운하 정비 [ruins.tistory] |
| 당(唐) | 618~907 | 이연, 이세민, 측천무후, 이백, 두보 | 중국 고전문화의 황금기 [ruins.tistory] |
| 오대십국 | 907~960 | 조광윤 전야기 인물들 | 분열기, 송 건국 직전 [ruins.tistory] |
| 송(宋) | 960~1279 | 조광윤, 왕안석 | 문치주의, 상업과 도시 발달 [ruins.tistory] |
| 원(元) | 1271~1368 | 쿠빌라이 칸 | 몽골 제국의 중국 지배 [ruins.tistory] |
| 명(明) | 1368~1644 | 주원장, 정화 | 한족 왕조 복원, 해양 진출 [ruins.tistory] |
| 청(淸) | 1644~1912 | 누르하치, 홍타이지, 강희제, 건륭제 | 만주족 왕조, 최대 판도 형성 [ruins.tistory] |
'■ 사는 이야기 ■ >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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