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금오산 금오산성 (金烏山城)
금오산성(金烏山城)은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김천시 남면, 칠곡군 북삼면에 걸쳐 있는 금오산(해발 976m) 정상부와 계곡을 따라 내·외성 이중 구조로 축조된 대표적인 산성입니다. 이 산성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 임진왜란에 이르기까지 영남 내륙 방어의 핵심 요충지로 기능하며, 역사적·군사적·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적입니다.
1. 금오산성의 축조와 구조
초기 축성 배경과 연혁
금오산성의 정확한 초축 연대는 문헌상 명확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사료에 따르면 고려 말기에는 이미 성이 존재하여 인근 백성들이 왜구의 침입을 피해 성내로 피난하고, 군사를 징발해 방어에 나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1410년(태종 10), 1413년(태종 13)에 수축(보수)한 기록이 남아 있어, 지속적으로 산성의 기능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 금오산성은 천생산성과 함께 영남 내륙 방어의 중심지로, 왜군의 침입에 맞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습니다. 1595년(선조 28)과 1596년(선조 29)에 대대적인 보수와 방어책 강화가 이루어졌고, 1606년에는 승군(僧軍)을 동원해 내성의 대대적 수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금산, 선산, 지례 등 9개 고을의 백성들이 동원되어 7개월간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성 내에 우물과 창고, 군기고 등이 설치되었습니다.
1639년(인조 17)에는 외성(外城)이 추가로 축조되어 이중 산성 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외성은 둘레 4,135척(약 1.25km), 높이 14척(약 4.2m)으로, 군량과 병기를 비축하는 군창의 역할도 했습니다.
산성의 구조적 특징
- 내성(內城)
내성은 금오산 정상부를 테뫼식(테를 두른 형태)으로 둘러쌓아 둘레가 약 10리(약 4km)에 달합니다. 험준한 절벽은 천연의 성벽을 삼아 인공 축성을 최소화했으며, 성벽의 높이는 최대 3m에 이릅니다. - 외성(外城)
외성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谷)을 감싸는 형태)으로, 둘레 약 5리(약 2km), 내·외성 전체 길이는 6.3km에 달합니다. 내성보다 낮은 위치에 축조되어 내성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 성벽과 방어시설
성벽은 자연 암벽과 인공 석축을 혼용해 축조되었으며, 성문, 암문, 여장(여성의 몸체를 보호하는 낮은 벽), 치성(적의 공격을 막는 돌출 구조물) 등이 설치되었습니다. - 성 내 시설
성 내에는 우물, 연못, 창고(내성창, 대혜창), 진남사(사찰), 도선암, 금오서원, 길재사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폐허가 되었습니다. 일부 암문과 성문, 금오정(샘), 금오산성중수송공비(중수 기념비) 등이 남아 있습니다.
2. 금오산성의 역사적 역할과 의의
고려·조선시대의 방어거점
금오산성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던 시기, 인근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피난해 군사와 함께 성을 지키고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던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조선 초기에도 지속적으로 보수되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영남 내륙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조정은 금오산성을 포함한 주요 산성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고, 1595~1596년 두 차례에 걸쳐 군사력과 방어시설을 대대적으로 강화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도 왜군이 산성을 점령해 많은 피해가 있었으나, 이후 성을 재정비해 방어력을 높였습니다
조선 후기와 근대의 변화
1639년(인조 17) 경상감사 이병진의 건의로 외성이 축조되었고, 1868년(고종 5)에는 다시 고쳐 쌓는 등 꾸준히 보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산성의 군사적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고,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러서는 유적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3. 금오산성의 현황과 문화재 가치
현존 유적과 보존 상태
금오산성은 내성과 외성의 일부 성벽, 암문, 성문, 금오정, 중수비 등이 남아 있습니다. 성벽의 상당 부분이 붕괴되었으나,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는 편입니다. 성 내에는 폭포와 계곡, 연못, 우물 등 풍부한 수자원이 분포해 있어, 장기 방어에 유리한 입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재 지정과 평가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67-1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따라 경상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습니다. 금오산성은 호국 국방시설로서 역사적·군사적 가치가 높아, 관방유적으로서의 보존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4. 금오산성의 지리적·문화적 특징
- 입지
금오산성은 구미, 김천, 칠곡 경계의 금오산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합니다. 산의 험준한 지형과 천연 암벽을 적극 활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 주변 유적
금오산성 인근에는 도선굴, 해운사, 약사암, 대혜폭포, 금오서원, 길재사 등 다양한 문화유적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있어, 역사·문화·생태관광의 명소로 손꼽힙니다.
5. 금오산성의 의의와 오늘날의 가치
금오산성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 임진왜란, 조선 후기까지 한반도 내륙 방어의 핵심 산성으로 기능하며, 지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내·외성 이중 구조와 천연 지형을 활용한 축성법, 다양한 방어시설과 창고, 우물 등은 당시 군사건축의 우수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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