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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5-016. 구례 매천사 매화 - 빙혼(氷魂)과 설산의 흰빛이 봄꿈에 어우러진다 (202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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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구례 매천사 매화

- 빙혼(氷魂)과 설산의 흰빛이 봄꿈에 어우러진다 (2025.03.15.)

 

 

구례 매천사(梅泉祠)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에 위치한 사당으로,

한말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애국지사였던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9842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7호로 지정되었으며,

매천 선생의 우국충절을 기리고

후세에 본보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매천 황현 선생은 1855년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났다

1886, 32세의 나이에 구례 만수동으로 낙향한 매천 선생은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을 위해 구안실(苟安室)과 일입정(一笠亭)을 지었다

'구안'이란 '넉넉하지는 않지만 편안하다'는 뜻으로,

이곳에서 그는 1천 수가 넘는 시를 지었고

주요 저술 활동을 펼쳤다

 

매천 선생은 선비의 절의를 상징하는 매화나무를 심고

작은 샘을 만들어 자신의 호를 '매천(梅泉)'이라 지었다

 이는 그의 고결한 정신과 학문에 대한 열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구례 매천사(梅泉祠)에는

건물 입구에 백매 1그루, 사당의 삼문 입구에 청매 1그루 

그리고 사당 좌측에 백매 1그루가 있다

하지만, 사당 삼문 앞에 있는 청매의 수세가 좀 빈약하여 

마음이 애잔하다

 

현재 매천사는 사당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관람이 여의치 않고 참배도 하지 못했다

 

 

 

 

 

 

 

 

 

 

 

 

 

 

 

매천 선생의 대표적인 저술로는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聞)이 있다

 특히 매천야록 1864년부터 1910년까지 47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한국 근대사 연구에 있어 필독서로 여겨진다

 

매천야록은 대원군의 집권기부터 경술국치까지의

위정자 비리, 일제의 침략, 의병의 활동 등을 편년체로 기록한 비사(秘史),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사건들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박탈되자,

매천 선생은 김택영과 함께 국권회복 운동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910 8 29, 일제의 강제 병탄으로 나라가 망하자

매천 선생은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국난에 죽는 자가 없다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라는 유서와 함께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자결했다

 이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선비로서의 절의를 몸소 실천한 행동이었다

 

 

 

 

 

 

 

 

 

 

 

     매천사(梅泉祠)

                                  김 영 래

 

  대문이 잠겨 있다. 문틈으로 마당을 본다.

매화 한 그루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재를 뒤집어쓴 기와 아래

나뭇결 다 삭아 없어진 얇은 마룻널.

 산수유 네 그루 담장 너머로 꽃등 내걸었다.

아지랑이 타고 찌르레기 떼 흩어지는 보리밭 길.

 

담벼락 따라 돌며 집안을 본다

사당 안쪽으로 또 한 그루의 매화,

볕에 초점 풀린 얼음 동공을 열고 있다.

(녹는 얼음, 추워서 떠는 빛--흰빛, 소름의 빛!)

 , 빼려야 뺄 것 없는 무삭(無削)의 뜰에

절명의 시어(詩語)처럼 떨고 있는 싸늘한 향기.

훌쩍 솟은 벽오동 위에서 봉황 대신 까치가 운다

 

 지리산 시암재에서, 남으로

백운산 도솔봉에서 쉬러 내려온 바람이

한낮에도 어슬어슬 뼈를 시리게 하는 구례 들판.

녹는 땅에 뜨는 뿌리 꽉꽉 밟아주기 위해

그가 오는 들녘은 어디인가

 

 사당 뒤 대숲의 산비둘기 떼, 대숲 뒤 송림의 맵짠 한숨.

몹시 추웠던 겨울, 되게 앓았던 세한(歲寒) 다 보내고

다시금 꽃샘추위에 몽우리를 맡긴

저 한빈(寒貧)한 이의 새벽, 그의 죽음.

빙혼(氷魂)과 설산의 흰빛이 봄꿈에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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