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반 갤러리 ■/전시회.행사.공연

경주 첨성대 꽃단지 - 핑크뮬리 물들기 시작하다 (2024.10.05.)

728x90

 

 

 

 

 

 

 

    첨성대 핑크뮬리

 

첨성대와 월성, 계림 등이 모여 있는 동부사적지대에는

넓은 유휴지에 아름다운 꽃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계절마다 색채미 넘치는 꽃들의 향연이 펼쳐져 주변의 귀한 문화유적과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유채꽃, 벚꽃으로 물드는 봄을 지나

양귀비와 백일홍, 해바라기가 여름의 꽃단지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가을의 주인공은 핑크뮬리다

포슬포슬한 분홍빛 억새와 첨성대가 어우러지는

이채로운 풍광을 남길 수 있다

 

 분홍 갈대인 핑크뮬리는

여름에는 짙푸른 녹색의 잎을 띄다가

가을에 접어들면서 분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해 11월까지

은은한 연분홍빛 물결을 이룬다

시기를 거치면서 핫 핑크에서 빛바랜 인디핑크로

색감이 바뀌는 변신을 한다

 

경주 IC에서 가깝고 주변에는 대릉원 경주시 사적공원, 

국립경주박물관 등이 있다

 

 

 

 

 

 

 

 

 

 

 

 

 

국보 제31호 경주 첨성대는

신라의 옛 궁궐터인 월성에서 북서쪽으로 400m 떨어진

경주 인왕동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인 633(선덕여왕 2) 건설됐다

 첨성대 하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자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유명하다

  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

중간쯤에 남쪽 방향으로 정사각형의 문이 나 있다

맨밑에 사각형 기단 2개 층, 그 위에 원통형 몸체 27개층,

맨위에 사각형 정자석(井字石) 2개 층 등 총 31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정자석의 각 면은 동서남북을 가르키고 있다

 몸체 27개 층은 27대 국왕인 선덕여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것은 첨성대의 개요일 뿐

우리는 아직도 첨성대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최초의 첨성대 기록은 일연의 삼국유사'

삼국유사 '기이 제1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편 말미에

 "별기(別記)에는 선덕왕대에 돌을 다듬어서 첨성대를 쌓았다고 한다"고 기술돼 있다

같은 책 '왕력 내물마립간'편 끝에도

 "(내물왕의) 능은 점성대(占星臺) 서남쪽에 있다"고 씌여져 있다

 여기서는 특이하게 첨성대를 '점성대'로 표기하고 있다

 

  1454년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보다 자세한 내용과 더불어 실측자료도 실려 있다

 "당 태종 정관 7년 계사년(633)에 신라 선덕여왕이 세웠다

 돌을 쌓아 위는 정사각형, 아래는 둥글게 만들었다

 높이는 195촌이며, 위의 둘레는 216촌이고 아래의 둘레는 357촌이다

그 가운데가 뚫려 있어 사람들이 위로 올라 갔다."  

 

여러 문헌을 종합해 볼 때 첨성대가 천문을 살펴보던

기구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간 뒤 중간 부분 입구를 통해 들어가

안쪽에서 별을 관측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형태가 워낙 기이하다 보니 용도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

(글 출처 : 매일경제 배한철 기자)

 

 

 

 

 

 

 

 

 

 

 



 

 

 

 

 

세살 아이도 순장 흔적···신라 고분의 주인은 ‘10대 소녀

입력 : 2024.09.13. 

 

 

신라시대 고분인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무덤 주인인 10대 여성 왕족과 순장된 것으로 보이는 3세 어린아이의

치아가 각각 확인됐다.

 

신라 고분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연령의 순장자가 발굴됐지만

3세의 어린아이 순장자는 처음 확인됐다.

신라를 비롯한 고대 사회의 순장제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다.

 

순장은 왕·귀족 같은 지배층 권력자가 죽어 매장할 때

신하·노비 등 종속된 사람들을 함께 무덤에 묻는 고대 장례풍습이다.

신라와 가야 고분들에서 자주 확인된다.

순장이 확인된 황남동 120-2호분

지난 2020년 발굴조사 당시 금동관, 금동신발, 금귀걸이, 구슬팔찌 등

화려한 장신구를 착장한 10대 여성의 무덤으로 드러나 화제를 모았다.

......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실장은

어린아이의 주검은 무덤 주인의 발밑에 안치됐는데,

안치 방향이 무덤 주인과 반대방향이라며

주검이 안치된 위치, 유물의 출토 양상 등으로 볼때

순장자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 120-2호분에 12~15세의 공주 등 최고 지배층 젊은 여성을 묻을 때,

그 발밑 아래에 3세 아이를 순장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김 실장은 “3세 어린아이의 순장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120-2호분의 발굴조사는 신라나 고대 사회의 순장제도,

순장자의 성격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발굴단은 120-2호분이 502년 이전에 조성된 무덤으로 본다.

신라는 502(지증왕 3)에 순장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지증왕 당시인 502춘삼월 왕이 영을 내려 순장을 금지했다.

그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 때에 이르러 금지한 것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

 

신라와 가야는 물론 고구려, 백제에서도 순장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한때 성행한 순장제도는 내세관 같은 가치관이나

장례문화·무덤 양식 등의 변화, 불교의 도입과 확산 등에 따라

6세기 중후반에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가유산청과 경주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오는 19일부터 1019일까지 현장 접수를 통해 발굴 현장을

일반에 공개한다(일요일과 우천시 제외).

(글출처 - 경향신문)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