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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남 . 부 산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 (2024.09.08.)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昌寧 述亭里 西 三層石塔)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700624일 지정)

소재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서탑길 4-7 (술정리)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조 불탑. 석탑.

 

내용

높이 5.1m. 흔히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과 함께 쌍탑이라고 불리지만,

별개의 석탑이다.

석탑이 있던 절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석탑에서 남쪽으로 200m 쯤 떨어진 곳에 영지(影池)라고 불리는 작은 연못이 있어,

절터와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된다.

 

석탑은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랐지만,

받침 부분의 구성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아래층 받침돌은 바닥돌과 받침돌의 면석을 한데 붙여서 만든

8장의 돌로 조합하였는데,

네 곳의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긴 4장의 돌을 배치하였고,

그 사이에 2개의 가운데 기둥을 조각한 중간면석 4장을 끼워 놓았다.

두툼한 덮개돌은 바닥돌과 마찬가지로 8장의 널돌로 이루어졌으며,

수평에 가까운 윗면에는 2단의 굄을 높게 조각하였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 역시 아래층 받침돌처럼 8장의 돌로 구성하여,

각 면마다 중간에 작은 널돌 1장씩을 끼웠는데,

모서리 기둥을조각하지 않고서 2구식(區式) 안상(眼象)을 새겨 특이하다.

다만, 남쪽면에는 길고 네모난 중간면석의 겉면에 문비(門扉)를 거칠게 오목새김하였는데,

아마도 후대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쪽면의 중간면석은 2단이고, 북쪽면의 중간면석도 2개로 갈라져 있는데,

이것 역시 후대에 보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은 4등분한 두툼한 널돌을 올린 모습인데, 처마는 짧고 두꺼우며,

거의 수평인 윗면에는 2단의 각진 굄을 높게 조각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몸돌은 모서리 기둥 외에 다른 조각을 하지 않았고,

2층과 3층이 적당한 비율로 줄어 안정감이 충분한 편이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지만 길이가 짧아 받침 1단의 넓이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윗면의 경사나 네 귀퉁이의 반전이 약간 두드러져 중후한 느낌을 준다.

전각(轉角)의 좌우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2개씩 남아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모서리 기둥과 덮개돌을 조각한 노반(露盤) 위에 하나의 돌에 조각한

앙화(仰花)와 보주(寶珠)가 얹혀 있다.

 

이 석탑은 받침돌의 결구(結構)와 조각에 특이한 수법을 구사하였지만,

가지런한 규율성은 잃지 않았다.

또한 탑신부는 다소 중후한 느낌이 있지만,

체감률이나 받침돌과의 균형은 대체로 무난한 편이다.

이러한 특징은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비교하여 조성 시기에

다소의 차이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참고문헌

경상남도의 석탑1,2 3(국립문화재연구소, 2016-2018)

경남의 사지I- 의령 함안 창녕(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09)

(寶物篇)文化財大觀 : 石造(문화재청, 2004)

한국의 탐구한국의 석조미술(정영호, 서울대출판부, 1998)

신라석탑연구(장충식, 일지사, 1987)

문화재대관보물2(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국보6 탑파(진홍섭 편, 예경산업사, 1983)

 

집필자

박경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昌寧 述亭里 西 三層石塔)

 

 

보물 제520

(1970624일 지정)

창녕읍 술정서탑길 4-7 (술정리)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昌寧 述亭里 西 三層石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삼층석탑이다.

197062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520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이 탑이 속해 있던 사찰의 이름은 전하지 않으며,

신라식 일반형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이 탑은 아래·위층 기단을 8개의 돌로 구성한 특이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바닥돌과 한돌로 붙여서 만든 8개의 돌을 짜 맞추었는데

각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그 사이로 가운데기둥을 2개씩 새겨 놓았다.

위층 기단도 8개의 돌로 구성되었고 각 면마다 중간에 작은 널돌을 한 장씩 끼웠으며,

모서리기둥을 두지 않고 4면에 2개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현재 남쪽면의 중간에 끼워져 있는 돌에는 거친 문짝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후대에 작업한 것으로 짐작된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얇고 평평하며 밑면의 받침은 5단씩이고,

네 귀퉁이가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있어 경쾌하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진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원래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국보 제34)과 함께 있었으나

그 위치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으며 같은 절터의 쌍탑이 아닌 별개의 탑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나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볼 때,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보다 다소 떨어지며

조성시기도 훨씬 뒤지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