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산청 <남명매> (2024.03.10.)
'산청3매' 중의 하나인
산천재 마당의 매화나무, <남명매南冥梅>는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이곳에
선생이 61세이던 명종 16년(1561)에 산천재를 지으면서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남명매>는 수령 450여 년의 연륜과 역사를 자랑하는 고매로서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 중심 줄기는 뒤틀리면서 하늘을 향해 뻗어 올랐고
연한 분홍빛이 도는 소담한 반겹꽃을 피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산청3매' 중에서
<원정매>와 <정당매>는 이미 오래전에 원목이 고사했다
그렇지만 다행히 <남명매>는 그 원목을 소중히 지켜서
450년 동안 숱한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남명매>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원목이 노쇠하여
2016년에 대대적인 외과수술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나무의 외과수술은
부패부제거 살균처리→ 살충처리→ 방부처리→ 방수 처리→
동공 충전→매트 처리→ 인공나무 껍질, 지주목 설치 등의 순서로
치료과정의 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보통 노거수나 거목의 외과수술은 동공이 크고
가지나 줄기의 상처에 부패가 심하여
부러지거나 갈라질 위험이 많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쇠조임 와이어작업도 함께 설치하게 된다
복잡한 외과수술을 거친 현재 <남명매>의 몸은 성한 곳이 없지만
비교적 잘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산청3매'중에서 <원정매>와 <정당매>는 원목을 지키지 못했지만
<남명매>는 치료와 보호의 보살핌을 받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 春山底處無芳草
봄 산 어디엔들 아름다운 꽃 없겠는가
只愛天王近帝居
내가 여기에 집을 지은 이유는
다만 천왕봉이 하늘에 가까운 걸 사랑해서 라네
白手歸來何物食
빈손으로 돌아 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銀河十里喫有餘
은하수 십 리 맑은 물 먹고도 남겠네 」
남명 선생이 말년에 산천재에서 쓴 한시이다
지리산 천왕봉의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려
산천재 앞을 흘러가는 은하수 강의 맑은 물만 마시고
선비의 지조를 지키고 살았던 옛주인 남명 선생은 가고 없지만
그 빈 뜰에서 <남명매> 는
450년 동안이나 은하수 강을 벗 삼아
오늘도 묵묵히 꽃을 피우고 있다
산청 시천면의 산천재山天齊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로서
조정에서 내린 벼슬을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으로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실천유학의 대가 남명 선생이 예순 한 살에 둥지를 튼 산청,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 자리에 선생은 산천재를 짓고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나무 한 그루를 뜰에 심고
항상 벗을 삼았다
산천재가 있는 현 위치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중산과 삼장으로 나누어 흐르다가 덕천에서 만나는 곳으로
산천재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으며
물 맑은 덕천강이 산천재 앞으로 흐른다
조식 선생의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다시 고쳐 지었는데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의 아주 단촐한 규모이다
남명 선생은 영남의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룬 호남 학파의 수장이다.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지만
죽어서 대사간에 이어 영의정에 추서된 선비이다
선생은 1501년(연산7년)에 경상도 삼가현에서 태어나
벼슬길에 나아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주했다가
그 후 의령, 김해, 삼가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선생은 61세가 되던 해에,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산청의 덕산으로 이주해
그곳에 서실을 짓고 산천재라 이름 하였다
이 ‘산천山天’이라는 당호는
<주역> 대축괘大畜卦의 “강건하고 독실하게 수양해
안으로 덕을 쌓아 밖으로 빛을 드러내서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말에서 그 뜻을 취한 것으로
강건한 기상과 독실한 자세로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깊숙이 묻혀 심성을 수련하고 올바른 수양을 하는 것이
학자의 길임을 천명한 것이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평생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은둔의 지사,
참 선비의 표상으로서
오늘날에도 존경을 받고 있는 분이다
멀리 아직도 흰눈에 덮혀있는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산청3매(山淸三梅)
예전에 우리의 선비들은 한겨울에 내린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깊은 산골 어디에선가 은은히 한 가닥 흘러나오는 매향을 따라서
눈 속에 핀 ‘설중매雪中梅’를 찾아가는 ’탐매探梅’여행을
격조 높은 봄맞이의 멋으로 삼았었다
매화가 떼거리로 피어나는 이름 난 매화축제의 매화는
대부분 매실을 대량생산하기 위해서 개량한, 일본에서 들여온 왜매倭梅가 퍼진 것으로
고아한 자태와 향기를 자랑하는
사군자 속의 고졸한 매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선조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우리 토종 매화의
단아한 자태와 향기를 만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토종 매화로서
매화의 연륜과 품격을 갖춘 고매화는 약 200여 그루 정도가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에서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매화로는
'산청3매梅'와 '안동2매梅‘가 유명하다
남사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의 <정당매政堂梅>,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가 ’산청3매'이고
안동 도산서원의 <도산매陶山梅>와 하회마을의 <서애매西厓梅>가
'안동2매‘에 속한다
그러나 도산서원의 <도산매>와 산청의 <정당매> 그리고 <원정매>는
애석하게도 근래에 완전히 고사하고 말았다
옛날에는 '산청3매'의 명성이 자자했었다지만,
현재, '산청3매' 중에서 <원정매>와 <정당매>는
근래에 원목이 고사하여 그 후계목이 대를 잇고 있는 상태이며,
온전히 제 몸으로 꽃을 피우고 있는 매화는 <남명매>가 유일한 실정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사실은
<원정매>와 <정당매>의 어린 후계목들이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이제는 제법 수형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명품 어미목의 명성과 자질을 이을 가능성과 희망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고사한 원목들을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편하질 않았었는데, 이제는 그 애석함이
나날이 성장하는 휴게목들을 함께 지켜보는 새로운 희망으로 바뀌게 된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럽고 즐거운 일이다
아울러, 후계목 복원에 관계했던 여러분들의 정성과 노력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2024년 3월 10일 현재, '산청3매'의 개화 상태는
2월 달의 포근했던 이상고온으로 대부분 만개하였다
예년의 경우라면 <남명매>가 가장 먼저 피고
뒤를 이어 <원정매>와 <정당매>가 일주일 정도의 시차를 두고 따라서 피는데
올해는 모두 함께 피어버렸다
산천재 앞쪽에 있는 남명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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