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그 후㉝] 제28회 경기도건축상 은상 ‘문호 23’
- 기자명 서정필 기자
- 입력 2024.01.23 13:41
북한강 너머 고래산 원경 겹치며 근사한 경치 뽐내는 곳
가족이 풍경 만끽하도록 자연 향해 열린 ‘ㄴ’자 형태 아름다운 집
이병호 건축사 “서향 원경(고래산)과 북향의 근경(푯대봉) 온전히 담으려 해”
해마다 전국 각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서 새로 지어진 건축물 중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서른세 번째 작품은 제28회 경기도건축상 사용승인 부문 은상 수상작 ‘문호 23’이다.
“10년을 경영하여 초려(草廬) 삼간 지어내어 /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내어두고 /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조선 전기 대표적 문필가이자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 면앙 송순 선생의 시조 ‘십 년을 경영하여’다.
학창 시절, 이 시조를 처음 보고 종장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보고 보리라’는 구절이 이해가 안 갔던 기억이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 강산을 둘러보고 볼 수 있는 집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던 까닭이다. 집 주변에는 되도록 커다랗고 멋진 건축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집’에 산다는 것은 다른 곳보다 빠르게 개발된 동네에 지어진 초현대식 건축물에 산다는 이야기를 의미했다. 그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 다시 본 이 시조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는 사람도 달라졌지만, 무엇보다 시대가 달라졌다. ‘집’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 ‘강산을 둘러보고 보는’ 집을 좋은 집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아졌다.
제28회 경기도건축문화상 사용승인부문 은상 수상작 ‘문호 23’(설계 이병호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오롯)은 이렇게 변화한 ‘좋은 집’ 기준에 맞는 집이다.
이 건축사가 처음 대지를 만난 건 지난 2020년 6월이다. 북한강 변, 평온한 풍경에 취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대지는 너무 근사한 풍경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이 건축사는 전한다. 멀리 강변 너머 고래산(高崍山)의 원경과 북쪽 방향 푯대봉이 자아내는 단아한 근경의 조화가 특히 좋았다고 한다. 푯대봉은 그리 높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은 산이었고 대지와의 거리도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 안정감을 만들었다.
1층은 송순 선생 시조 중 달과 청풍이 쓰는 칸 같은 곳이다. 공용 공간인 거실과 손님을 맞는 공용공간, 그리고 툇마루가 딸린 사랑방이 배치됐다. 사랑방은 다실(茶室) 겸 손님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2층에는 ‘나 한 칸’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침실과 욕실 등 사적 공간이 있는 곳이다. 열려있으면서 닫혀 있는 묘한 조화를 이룬다. 옛 문인(文人)이 머물렀어도 시상이 절로 떠올랐을 것 같은 아름다운 형상의 집이다.
이 건축사는 “공적 공간인 1층과 사적 공간인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재료와 형태를 구분해 오브제처럼 디자인했다. 이것으로 사용자가 성격이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전이(轉移)의 과정을 즐기길 바랐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설계자 이병호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이병호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을 설계하시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뒀던 점은 무엇입니까?
주어진 땅의 상황을 읽고, 올바로 해석하고자 노력합니다. 특히, 전원 속 집을 계획할 때는 주변의 소음과 시선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사방에 면한 서로 다른 경계와 어떻게 만나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합니다.
Q. 염두에 뒀던 점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었는지요?
남쪽 대지가 높아 우리 땅을 내려다보는 형국이었고, 동쪽으로는 마을 내 진입도로가 있었기에 대지 동남쪽 경계에 기대어 ‘ㄴ’자 홑집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도로의 소음과 옆 대지의 시선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편안한 집의 마당을 만들 수 있었고, 서향의 원경(고래산)과 북향의 근경(푯대봉)을 온전히 집에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주택에서 남향 설계가 자연스러운 법인데, 이를 벗어나는 제안이 큰 도전이었습니다. 주어진 땅의 조건과 조망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었던 과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Q. 건축사님께서 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사무소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사무소 이름 ‘오롯’은 “모자람 없이 온전히”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처럼 부족함도 과함도 없는 온전한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Q. 그 지향점을 이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집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역할인 심리적 안정감과 편안함을 위해 형태와 공간들에 균형감을 주려 노력하였고, 비교적 성과를 얻었다고 느낍니다.
Q. 이번 경기도 건축문화상 수상이 건축사님에게 어떤 의미인지요?
건축주와 시공사, 오롯에게 귀한 칭찬이고, 격려입니다.
Q.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동, 서, 남, 북 모든 향에는 각기 다른 매력의 빛과 바람, 그늘이 있습니다. 이들 매력을 충분히 담은 나지막한 단층집을 설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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