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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남 . 부 산

하동 옥종면 모한재 및 은행나무

 

 

 

 

 

 

 

 

 

 

안계리 은행나무

[ 安溪里銀杏- ]

 

 

유형

식물/보호수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산766

보호수 지정 일시

1982210

보호수 지정 번호

12-23-12-1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수령 약 400년의 보호수.

 

개설

 

은행나무는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중국이 원산지이며,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전해져 올 때 함께 들어 왔다고 전해진다.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암수 딴 몸이다. 높이 20~30m에 이르며, 5월경에 지름 3내외의 아주 작은 꽃이 피므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수꽃은 1~5개의 연한 황색이며 많은 수술이 있다. 암꽃은 녹색이며 한 가지에 6~7개씩 달리고,

길이 2의 꽃자루에 각각 2개씩의 밑씨가 달리지만 그중 1개만 10월경에 익는다.

열매는 둥근 핵과(核果)이며, 바깥 껍질 속에 단단한 껍질을 지닌 흰색의 알맹이가 들어 있다.

흔히 열매로 알고 있는 것은 씨이다.

 

줄기는 곧게 자라며 나무껍질은 그물 모양으로 갈라져 울퉁불퉁하다. 가지는 잘 갈라지는데,

긴 가지와 짧은 가지 두 종류가 있다. 잎은 긴 가지에서는 어긋나며, 짧은 가지에서는 3~5개씩 조밀하고

어긋나게 달려 마치 한곳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또 긴 가지의 잎은 깊이 갈라지고,

짧은 가지의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한 것이 많다.

다른 겉씨식물과 달리 은행나무의 잎은 부채꼴로 중간 부분이 갈라진다.

 

형태

안계리 은행나무는 높이 12m, 가슴높이 둘레 4.7m에 이른다.

 

역사/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안계리 은행나무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가 직접 심었다고 전한다.

하홍도(河弘度)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맥을 계승한 학자로서 남명 이후 제 1인자로 칭해진다.

안계마을 입구에는 하홍도(河弘度)를 기리는 조선징사겸재하선생유적비(朝鮮徵士謙齋河先生遺蹟碑)’

서 있기도 하다.

 

현황

안계리 은행나무는 1982210일 보호수 제12-23-12-1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겸재 하홍도가 벼슬을 멀리하고 후학을 양성한 옥종면 안계리 산766번지 모한재(慕寒齋) 앞에 있다.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

 

 

 

 

 

 

 

 

 

 

 

 

 

 

 

 

 

 

 

 

 

 

 

 

 

 

 

 

 

 

 

 

 

 

 

 

 

 

 

 

 

 

 

 

 

 

 

 

 

 

 

 

 

 

 

 

 

 

 

 

 

 

 

 

 

 

 

 

 

 

 

하동 모한재

 

 

한자 河東慕寒齋

영어의미역 Mohanjae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77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채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하홍도(河弘度)를 기리는 사당.

 

[개설]

 

하동 모한재(慕寒齋)는 겸재(謙齋) 하홍도[1593~1666]가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며,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을 비롯한 당대의 유학자들과 교류하던 곳이기도 하다. 

겸재 하홍도는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공부하며 실천하였던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중 한 사람이며, 

특히 예학에 밝았던 인물이다. 하동 모한재에는 미수 허목이 친필로 쓴 하동 모한재의 현판과 기문,

영귀대(咏歸臺)’라는 금석문이 남아 있다.

모한이라는 재명은 주자의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사모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위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776번지 사림산 아래에 위치한다.

 

[변천]

 

하동 모한재는 1635(인조 13) 겸재 하홍도가 처음 건립하였다. 하동 모한재에는 하홍도의 위패가 있는데, 

위패는 원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있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면서 하동 모한재로

옮겨 오게 되었다. 하동 모한재 강당 마루에는 옛 종천서원의 현판 등도 보관되어 있다.

2001년부터 행정적 지원을 받아 담장 보수 등 경내를 관리하고 있다.

 

[형태]

 

하동 모한재 경내에는 사당인 모한재, 경승루(敬勝樓), 관리사, 협문, 출입문인 도광문(道光門), 

국헌처사 진양하공 사적비(菊軒處士晉陽河公事蹟碑) 등이 있다. 

중심 건물인 모한재는 정면 5,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관리사가 외쪽으로 붙어 자 형태를 이룬다. 

하동 모한재의 입구에는 유적이 오래되었음을 알려 주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2그루 있으며, 

노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모한재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진양 하씨(晉陽河氏) 종중이다.

1996 3 1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지정되었고, 2021 11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후손들을 중심으로 매년 음력 3 10일 겸재 하홍도의 기제일에 석채례를 올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하동 모한재는 조선 후기 재야에서 공부하며 실천하였던 겸재 하홍도를 기리는 곳으로, 

절의를 지키며 도학을 실천하였던 선비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지라 하겠다.

(글 출처  디지털하동문화대전)

 

 

 

 

 

 

 

 

 

 

 

 

 

 

 

 

 

 

 

 

 

 

 

 

 

 

 

 

 

 

 

 

 

 

 

 

 

 

 

 

 

 

 

 

 

 

 

 

 

 

 

 

 

 

 

 

 

 

걷기 좋은 선비의 길에서 세상일 잊다, 하동 모한재

 

 

하동군 옥종면사무소 소재지를 지나

지리산 쪽으로 향하다 까막고개 넘기 전 하동 유학의 중심마을인 안계마을이 나온다. 

조선시대 때 현재의 경남 하동군 안계마을은 진주목(晋州牧)에 속했다. 

진주의 이름난 마을로 사람들은 안계와 원당, 사월을 꼽았는데

그 첫 번째 꼽힌 마을이 바로 안계마을이다.

 

모한재는 하동 안계마을에서 사림산 조용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마을 안내판 맞은편에는 모한재(募寒齋) 이정표가 나온다. 

모한재 이정표 바로 뒤에는 '조선 징사(徵士) 겸재(謙齋) 하 선생 유적비'가 나온다. 

모한재는 이 마을 출신 유학자 겸재 하홍도(河弘度,1593~1666) 선생이 

1635년 창건한 것이다.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학덕을 닦고 실천했던 유학자인 겸재 선생은

모한재에서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안계마을은 둘러싼 사림산(士林山)쪽으로 향했다. 

조용한 산길을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자 400년이 넘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먼저 반긴다. 

마침 서원에는 음력 3 10일마다 지내는 제사를 의논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모여

외삼문인 도광문(道光門)이 열려 있었다. 

도광문 옆에는 공손하게 고개 숙이는 듯 소나무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조용히 경내를 들어가 재사(齋舍)를 둘러보았다. 

뜨락에는 국헌처사 진양하공 사적비(菊軒處士晉陽河公事蹟碑)가 오른편에 있고

옆에 경승루가 있다. 

정면에 있는 모한재 마루에 앉았다. 

모한재 현판은 남인의 영수였던 미수 허목 선생의 친필이다.

 마치 겸재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치는 소리라 들리는 듯하다.

 

모한재 현판은 남인의 영수였던 미수 허목 선생의 친필이다.

 

모한재 옆에 있는 경승루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밖 풍경을 구경하다 사당으로 향했다. 

사당 사우(祠宇)앞에는 환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무환자나무가 있다.

 중국에서는 근심과 걱정이 없는 나무로 통한다는 나무가 사당 앞에 자리 잡아

덩달아 내 몸마저 개운한 느낌이다.

 

 

모한재를 나와 고즈넉한 주위를 걸었다. 

카펫처럼 푹신한 낙엽길이 좋다. 개울로 향하는 대숲은 더 좋다.

 

 

'꽃이 한창 필 무렵 비가 그치질 않아/

 집집마다 복사꽃 자두꽃 모두 다 활짝 피었네/ 

울긋불긋 그려서 취한다고 누가 읊었나/ 

소나무 대숲을 홀로 보노라니 그림 속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하네'

 

 

겸재집에 실린 시 한 편 나지막이 읊조리며 생각에 잠긴다.

 흐르는 물소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내 안으로 들어온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선비의 길에서 잠시 세상일을 잊는다. 

발길 움직이는 대로, 멈추는 대로 둘러보면 그뿐이다. 

이곳은 시간마저 봄볕처럼 따스하게 흐른다.

(이상 글 출처  오마이뉴스김종신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