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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실 ■/스크랩 - 세계의 건축가

세계의 건축가 -027. 루이스 칸 Louis Isadore Kahn

 

1. 건축가 루이스 칸 Louis Isadore Kahn

 

 




 

1. 개요

루이스 이저도어 칸(Louis Isadore Kahn, 1901년 2월 20일 ~ 1974년 3월 17일)은 미국 필라델피아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현대 건축가이자 모더니즘 건축 최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현대 건축을 지배하던 모더니즘 사조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전통 건축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의적인 현대 건축으로 승화시켰다. 말 그대로 전통과 혁신을 실현시킨 몇 안되는 건축가이다. 특히 빛을 잘 이용해서 극적인 장면을 잘 나타내는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

특이한 점은 인생 후반에 센스가 폭발하여 남은 20년 동안 질풍같이 걸작들을 남기다가 죽었다.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이 제정되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수상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좀 더 오래 살았다면 프리츠커상을 받는 것은 확실했다고 여겨질만큼 뛰어난 건축가였다.[1]

2. 인생

2.1. 출생과 성장

본명은 '이체레이프 시무일롭스키(Итце-Лейб Шмуиловский, Itze-Leib Schmuilowsky)'이다. 1901년 러시아 제국 리플랸트현(리보니아현) 에젤군 아렌즈부르크(Аренсбург, 현 에스토니아 사레주 쿠레사레·Kuressaare)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일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이는 유대인[2]이었던 그의 부친이 러일전쟁에 징집될 것을 두려워하여 1906년에 미국으로 이민하였기 때문이다.(무려 17번이나 이사를 했다.)

부친은 스테인드글라스 기사였고 모친은 하프 연주가였다. 피는 못 속이는지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 재능이 돋보여 음악가 혹은 화가가 되려고 하다가 건축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벽난로의 불에 데어 손과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는데, '불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불붙은 탄을 손으로 잡았기 때문이었다. 트라우마로 남을 법 하지만, 칸은 평생 불꽃의 따스함과 빛을 사랑했고, 그것들이 충만한 건축을 남겼다.

그는 에콜 데 보자르 방식의 대학교육을 받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르 코르뷔지에등의 유럽의 모더니즘 건축가의 작품에 보다 큰 영향을 받았다. 졸업 후 20년간 건축교수를 맡기도 했다.

학부를 졸업한 루이스 칸은 나름대로 뛰어난 건축가이긴 했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세계적인 명성과는 좀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1900년부터 195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모더니즘 건축의 전설들이 활동하고 있던 시기였고, 루이스 칸은 그에 비하면 평범했다.

2.2. 모더니즘 건축을 넘어서다

펜실베니아와 예일 대학 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교수에 불과했던 그는 1955년 논문 하나를 발표한다. '오더와 디자인'(Order & Design)이라는 이름의 이 글에서 시작된 그의 건축철학은 1960년 이후의 세계 건축계의 움직임을 촉발하게 된다.
  • 오더(Order)란 "~가 되려고 원하는" 이상이며 디자인(Design)이란 특정한 상황의 결과로서 생긴 것을 의미한다.
  • 공간은 '봉사받는 공간' 과 '봉사하는 공간'으로 나뉜다.
  • 기하학적 형태란 그저 딱딱한 미니멀리즘과는 다르다. 'Form'을 최대한으로 표현해 주는 물리적 속성을 발견하고 Form의 의지에 명확한 실체를 주는 것을 뜻한다. 또한 아름다움이란 '놀라움'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 본질에 대한 질문은 숙련된 전문가보다 미숙한 구도자의 속에서 생긴다.

이는 모더니즘 건축이 가졌던 단점과 한계를 명백하게 짚어주며 그를 뛰어넘은 것인데,
  • 모더니즘 건축에서는 창조에 대한 기본 철학이 정립되지 못했다. 애초에 과거의 창조 방식을 싸그리 부정하면서 새로운 것을 찾고자 했었기 때문에 가진 한계였던 것이다. 칸은 이러한 철학을 정립했다.
  • 기능주의와 미니멀리즘은 기존의 건축체계를 부수는 데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건축 위계를 정립하지는 못했다. 칸의 위계설정은 건축 뿐만 아니라 공간까지 아우르며 위계 문제의 해결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 역사의 가치를 부정하던 시기에 칸은 역사적 건축(이집트, 로마, 그리스) 에 잠재하는 물질적인 존재성을 재발견한 것이다. 그러면서 묻혀져가던 미적이며 감성적인 가치를 건축에 다시 불어넣었다.
  •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엘리트주의에 한방 먹였다. 이후 건축가들은 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거나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등 다각적이며 민주적인 자세를 가지게 된다.

2.3. 인생의 후반기

그야말로 질풍같이 달린다. 아래에 있는 주요 작품들은 전부 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들이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달라진 건축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걸작들을 남기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당연한 추측은 물론 인생의 경험들이 무르익으며 위의 이론을 정립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지만, 다른 추측으로는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을 여행하면서 불멸의 고전 건축을 보며 인생의 기쁨과 건축에 대해 통달했다는 추측도 존재한다.

아무튼 그렇게 인생의 후반 20년 동안 커다란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 감각도 부족했지만 평생 돈 되는 설계 의뢰를 마다하고 사람이 사는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건축을 추구한 나머지 재산은 파산상태였다. 그럼에도 후학을 위해 교육에도 힘썼는데, 대학 강의를 위해 무리하게 서둘러 이동하다가 73세에 뉴욕의 펜실베이니아역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쓸쓸하게 죽었다. 당시에 루이스 칸은 옷도 남루하고, 신분을 증명해 줄 소지품이 아무것도 없어서 신원을 확인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3. 주요 작품

 

3.1. 리처드 의학 연구소


Richard Research Laboratory

펜실베니아 대학교 의대의 실험실 건물이다. 모듈화된 연구실 건축양식으로 건축학적으로는 많은 격찬을 받았고 루이스 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힌다.

반면 이 건물에서 실제로 일해본 연구자에게는 대개 "내가 일해본 최악의 실험실 건물" 이라는 평가를 받는 편. 복수의 연구실을 별도의 블럭으로 된 구획으로 나누어놓았으나 실제 연구를 하는 연구자에게는 옆방의 기기 하나 쓸려면 문을 서너번 여닫고 들락거려서 동선을 길게 하는 매우 비합리적인 구조라는 평가.


채광이 너무 잘되는 관계로 여름에는 지나치게 덥고 빛이 너무 많이 들어와 연구에 지장을 끼치는 관계로 위에서 보다시피 더덕더덕 종이를 붙이거나 (...) 블라인드와 선팅으로 조절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실험실 내부에서도 불필요하게 많은 구획이 설정되어 공간이 낭비되는 경우가 많다. 건축가의 의도와 실제 건물을 사용하는 사용자간의 괴리가 큰 건물이라 할 수 있다.

3.2.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도서관

 




Philips Exeter Academy library
 

도서관은 책을 담는 것이 아닌 책을 읽는 사람을 담는 것이다라는 점을 강조해 설계한 작품. '책의 정신'을 공간으로 나타낸 가장 훌륭한 도서관으로 평가받는다. 보스턴 북쪽의 작은 마을 엑시터에 있는 명문 보딩스쿨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도서관으로, 미국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만큼 커다란 사립학교 도서관이다. 서구의 고딕 성당 건축에서 가져온 천장의 형태를 현대건축으로 잘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장의 X형태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육중한 느낌의 물체가 떠있다는 신비한 존재감을 주며, 빛을 반사시켜 건물 밖의 빛을 로비로 끌어오고 있다.

지역 주민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전통적인 건물이 가득한 엑시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 여론이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건물이 지어진 후로는 그런 소리는 쏙 들어갔다고 한다.

3.3. 킴벨 미술관


Kimbell art museum

상부에 빛을 받아들이는 틈을 낸 볼트 구조 하나로 건축의 구조, 기능, 공간, 설비, 그리고 아름다움을 전부 해결한 걸작. 이 건물만큼 모든 것이 통합된 건물은 아직 나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볼트는 반원형의 둥근 천장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로마부터 쓰여지던 오래된 천장 구조다. 이 것을 재해석하여 빛을 받아들이는 창을 내어 천장인 동시에 조명으로 활용한 것. 실로 전통과 혁신이란 말에 딱 맞는 걸작이다. 이 과정의 핵심은 텍사스의 강렬한 햇빛을 부드럽게 만들면서도 잘 반사시켜 실내를 비추는 것에 있었는데, 그 장치를 설계하는 것이 난관이었다.

미국 댈러스-포트워스의 포트워스에 있다. 바로 뒤에는 안도 다다오의 포트워스 현대 미술관이 있으며, 댈러스에는 렌조 피아노의 내쉬 조각센터가 있는데, 나름대로 건축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둘의 작품조차 이 킴벨 미술관을 오마주해서 만들어졌 정도로 킴벨 미술관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인 지금은 렌조 피아노에 의해 앞에 신축동을 짓고 있어서 번잡하다.

3.4. 소크 생물학 연구소


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조너스 소크의 연구소 건물.[3] 태평양을 향해 난 이 건물의 중정[4]은 종종 20세기 가장 위대한 공간으로 선정되곤 한다. 대칭과 무장식의 기하학적 아름다움 자체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바로 비움으로써 완성된 공간이라는 철학적인 개념이다. 원래 루이스 칸은 이 공간에 나무를 심을려고 했지만,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조언에 따라 빈 공간으로 놔두게 되었다. 그 대신 태평양과 하늘을 벽으로 가지고 있는 새로운 빈 공간을 얻게되었던 것!
그리고 조너스 소크의 연구소라는 점에서 더욱 빛난다. 브루탈리즘 양식의 예시 중 하나로 손꼽히며, 해당 연구소 바로 옆에 위치한 UCSD의 캠퍼스 도서관 역시 브루탈리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중앙의 수로는 알함브라 궁전의 정원을 연상케 한다. 역시 고전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있다. [5]

워낙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의 걸작인데다가 특히 아름다운 중정으로 유명한 건물이라 건축에 관심이 있는 여행객이라면 사진을 남기고 싶겠지만 외부인은 중정에는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부지 밖에서 찍는 외부 건물 사진은 자유.
유명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이 해당 연구소의 중정 모습을 패션쇼 예고용 영상에 사용하기도 했다.

3.5. 다카 국회의사당


Jatiyo Sangshad Bhaban 샹샤 바반.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있는 국회의사당. 아마도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자 가장 예술적인 국회의사당 중 하나일 것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가벼움과 중세 성처럼 보이는 투박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루이스 칸의 대인배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미국에서는 당연시되는 건축장비나 기반시설이 없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지만[6] 가난한 나라였던 방글라데시(당시에는 동파키스탄)의 민주주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루이스 칸은 1962~1974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설계를 하였다. 그것도 70대의 노인이(...) 그래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루이스 칸에 대해 굉장히 감사한다고 한다.

그러나 루이스 칸의 역작이자 그를 파멸로 몰고간 작품이기도 하다. 너무나 길어진 설계기간과 방글라데시 공무원들의 불성실한 설계비 지급으로 인해 고통받았다 한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돈을 삥땅치고 조금 주거나 안주기까지 했다고 하니 루이스 칸의 대인 기질이 느껴진다. 물론 단순히 공무원들이 불성실했기때문만은 아니고 1960년대 중후반의 정국혼란과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으로 도중에 공사가 중단된 시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스 칸이 방글라데시가 독립되는것까지는 지켜봤지만 자신이 건설을 주도했던 국회의사당이 완공되는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74년에 세상을 떴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작품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 참고로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기 시작한것은 1979년도이고 1982년도에 최종완공되었다.

3.6. 기타

이 외에도 걸작들은 많지만, 미국 뉴헤이븐 예일 대학교에 있는 Yale University Art Gallery와 Yale Center for British Art도 위의 건축물들에 비견되는 좋은 작품이다.

4. 평가

건축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 현대의 모더니즘 건축이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와 같은 결정론적인 태도에 의한 건축을 행하였다면, 1960년대의 칸의 출현 이후로 "형태는 인간의 기본욕구에 따른다."라는 인간의 목적론적인 태도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칸의 이러한 사고는 그 당시의 시대상이 기능적 근대주의가 팽배해 있을 때 나온 것으로 한 시대의 변혁을 의미하는 것이다.

칸은 모더니즘은 물론이고, 합리주의, 신고전주의, 심지어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로도 분류될 수 있으나, 단순히 어떤 사조의 작가로 분류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런 분류 이전에 칸은 그의 독특한 건축적 사고와 몇몇 작품으로 인하여 근대건축에서 현대건축으로의 전이적인 삶을 살았던 건축가로서 평가받고 있으며, 칸의 명성은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두 시대에 걸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 크게 격동하여 변화하는 시기에 속해 있으면서, 시대의 변화 사이에 있는 교량으로써 존재한 것이다.

5. 이야깃거리

키도 작고, 옷 입는 센스도 없고, 얼굴에 화상까지 있어 멋지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외모였지만, 그는 동시에 세 여자와 사랑하고, 아이를 갖고, 추억을 나눠가진 바람둥이였다. 오히려 화상이 동정심을 유발시켰다고(...)

그런데 루이스 칸은 (여자 빼면) 일에만 빠져 사는 성격이라 세 아이들 중 한 아들인 나다니엘 칸은 아버지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자랐고, 후에 자기 아버지가 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지 알고 싶어서 루이스 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My Architect -A son's journey'를 찍었다. 이 영화는 건축과 가족에 대한 수작 다큐멘터리로 평가받는다.

6. 어록

  • "방(room)은 건축의 시작이며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단위이다. 동시에 평면이란 방들이 그 속에서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독특한 빛을 가진 공간의 구조이다."
  • "벽돌아, 너는 뭐가 되고 싶니?"
  • "나는 빛이란 모든 존재를 주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 "나는 위대한 건물은 잴 수 없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며, 디자인 과정에서 '잴 수 있는 것'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에는 잴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

출처 - 나무위키

 

 

 

 

 

 

 

 

 

 

2.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루이스칸 / national parliament of bangladeshi, Louis isadore Kahn

 
 
 Architect  2022. 9. 24. 
 

 

빛을 건축물에 들이는 방법...

빛과 그림자의 건축가 루이스칸

 

 

 

 

 

 

 

 

 

 

 

 

 

 

 

 

 

3. 벵갈의 빛과 침묵_루이스 칸과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대우건설 사보
1999. 5. 01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나라 중의 하나라고 한다. 실제로 이 나라의 수도인 다카( Dhaka) 의 공항에 도착하면 구걸을 위해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이 상징하듯 도시 전체가 빈곤의 그림자에 싸여 있다. 길거리의 풍경도 서구의 문명에 잘 길들여진 눈에는 비위생적이요 불결하게 보인다. 물론 건물도 값싼 재료와 원시적 공법으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며 그것도 잔뜩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어 대단히 볼 품 없어 보일 수 밖에 없다. 마치 60년대 초 서울 변두리의 풍경이 이랬을까.
그러나 그러한 대단히 보잘 것 없는 건물들을 가만히 보노라면 그 가운데서도 범상치 않은 부분들을 언뜻 발견하게 된다. 즉 잘 짜여진 입면과 건실한 평면구조, 벽돌의 정교한 디테일 등, 결코 쉽지 않은 현대건축의 정수 같은 부분들이 이들의 길거리 건축에 일상처럼 박혀져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해서 이 가난한 도시의 건축들이 이처럼 보석 같은 모더니즘의 어휘를 가지고 있을까.
이 의문은 곧 풀렸다. 그것은 바로 루이스 칸이라는 불세출의 건축가가 이 도시에 던진, 시어(詩語)와 영감에 찬 건축,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때문이었다. 인근의 나라에 비해 찬란한 고대 문명의 유적 조차 많지 않은 이 도시에 갈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하루에도 수 많은 이들이 이 건축을 보기 위해 그리고 건축의 본질성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이 뜨거운 땅을 찾아 오는 것이다.

루이스 칸( Louis Kahn ). 그는 1901년 에스토니아에서 태어 나서 4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 필라델피아에 이민을 간다. 유 펜으로 불리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폴 크리트( Paul Cret ) 라는 고전주의 건축에 정통한 선생에게 보자르식 건축을 공부하였으나 정작 그가 진정한 건축을 알게 된 것은 학교에서가 아니었다. 에꼴 드 보자르식 건축교육이란 장인정신에 입각하여 고전 건축의 비례나 테크놀러지, 디테일 등을 철저히 전수 받는 방법이다. 따라서 루이스 칸이 그 당시 유럽 건축계를 진동 시킨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가치였던 모더니즘의 건축에 접근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1928년 고향을 방문하게 되면서 유럽의 건축 현장들을 보게 되고 드디어 그가 배워온 그의 모든 텍스트를 떠나야 한다고 결심한다. 고전건축에 익숙하여 그것이 건축의 전부로 알았던 그에게는 모더니즘은 대단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특히 꼬르뷔제의 건축은 그에게는 “반역적 사건”이었다고까지 그가 술회하였다.


물론 모더니즘 건축 만이 그에게 새로운 안목을 던져 준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계속되는 여행에서, 이집트의 거대 기념물과 그리스의 신전과 로마의 욕장 특히 카라칼라 욕장의 폐허, 스코틀랜드의 성, 프랑스의 도시마을, 고딕성당, 르네상스 교회, 이탈리아 광장 등을 만나면서, 역사적 건축으로부터도 통시대적으로 건축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본질적 단서를 제공하는 보편성에 대한 발견과 성찰을 통해, 그의 건축을 완성해 나갔다. 그는 동시대의 건축가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깨달음이었으나 그는 투철한 사색을 통해 그의 건축은 영감 속에 성숙하게 된다. 그는 때때로 시어 같은 단어를 구사하며 건축을 설명한다. 어떤 경우는 읽기조차 이해하기 조차 어려운 그의 말이지만 그의 건축은 항상 원론적이고 본질적 문제를 상기 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심오한 건축의 세계로 이끈다.


‘침묵과 빛’ – 이 말은 그의 건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이다. 비록 간결한 단어이지만 이 단어로 그의 건축이 얼마나 영감적이며 사색적인가를 알 수 있다.

1962년 동과 서로 나뉘어있던 파키스탄 정부는 동 파키스탄의 수도 다카에 새로운 국회의사당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루이스 칸에게 이를 의뢰하게 된다. 동 파키스탄은 민족구성 상 벵갈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어 결국 1971년 동서 분쟁 끝에 방글라데시로 독립하게 됨에 따라, 그 전부터 루이스 칸이 계획해 오던 행정타운은 이 나라의 상징적 중심이 되고 말았다.
루이스 칸은 그 당시 미국에서 존경 받는 건축가임이 틀림 없었지만, 사업적으로는 실패에 가까웠다. 설계기한을 어기기 일쑤이고 알지 못할 소리만 외는 그를 좋아 할 건축주나 개발업자들이 그 당시에도 있기가 힘들었을 게다. 그러한 그에게 이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는 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환상이었을 것임이 틀림 없다.


다소 신비스러워 보이는 그의 건축철학을 미루어 보드라도 그는 동양의 철학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이미 19세기에 벵갈의 르네상스를 만들었다고 칭하는 시성 타고르를 위한 협회에 50년대부터 회원이었으며, 예술은 휴머니티여야 한다는 타고르의 말을 빌려 그의 건축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가 이 벵갈의 문화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러나 1963년 처음으로 현장을 방문하면서, 다카의 델타에서 쌀을 경작하는 문화권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수평의 땅과 그 위를 덮는 물, 벼를 비롯한 물과 친근한 식생 그리고 진흙의 토양에서 벵갈인들이 갖는 생활과 종교를 목격하고 이를 건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몰두했을 것이다.
그는 일찍이 건축에서 같이 모이는 기능에 대해 중시하였다. 즉 같이 모여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를 나누는 건축 즉 공동성이 건축에서 갖은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그와, 모여야 하는 요구가 뜨거운 벵갈인들이 만난 것은 서로에게 행운이었다. 특히 루이스 칸은 국회의사당의 중요한 기능인 ‘법을 만드는 작업’을 종교적 의식으로 여겼으며 이는 모든 일상이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벵갈인들의 의식 혹은 전통적인 인도 미학의 관점에서는 절대적으로 환영 받는 개념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건축이 놓인 위치는, 다카의 구 도시로부터 북쪽에 세--방글라나가르( Sher-e-banglanagar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농사를 짓는 곳이었으며, 행정타운을 위한 전체의 부지 면적은 백만 평이 넘는 평원의 땅이었다.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주변에 국회관련 시설들을 두고 북쪽으로 신도시의 여러 시설을 둔 마스터 플랜은 루이스 칸이 오래 전부터 그리던 이상도시에 대한 그림이었다. 물론 이 가운데 가장 중심 된 시설은 국회의사당이다.
국회의사당은, 주변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서도 필요해진 호수를 파서 그 흙으로 약간의 둔덕을 만들어 그 위에 서게 되었다. 지난 무갈 제국의 영화를 연상하게 만들었을까, 남쪽의 광장에서 보면 회색의 콘크리트로 만든 원통과 육면체들이 서로 모여 성채처럼 우뚝 솟아 벵갈인들의 자부심을 부추긴다. 삼각형과 사각형 그리고 원형의 개구부가 회색면의 콘크리트 속에 파여 짙은 음영을 드리우고 이 사이로 내밀한 내부의 풍경을 암시한다. 가까이 가면 주변 수면에 투영된 또 하나의 의사당은 이들의 전생인 듯, 바람 결에 어른 거리며 더욱 신비한 풍경을 만들고 짙게 푸른 나무와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이 이들의 탄탄한 배경이다. 루이스 칸이 여기서 만들고자 했던 것은 건축이 아니라 풍경이었다고 한다. 소위 벵갈의 랜드스케이프, 평원에서 그는 집합의 건축을 세워 대비시키고자 하였다. 집합의 건축. 이는 루이스 칸 건축의 중요한 원칙이 된다.
정작 우리를 황홀케 하는 것은 이 건축의 내부에서 가지는 공간과 빛의 경험인데, 그 집합의 건축에 대한 원칙도 내부에 들어가면 더욱 분명해 진다. 내부는 국회의사당 중앙홀을 중심으로 회랑이 돌고 그 회랑의 주위에 사무국이나 회의실, 식당, 라운지 그리고 기도실 등이 둘러져 있다. 소위 만다라적 중심성이 주변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면 확립되어 있다. 그가 말한 대로 ‘이런 방들의 집합이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듯 다른 성격의 시설들이 집합되어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이 건축을 단순한 하나의 건축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작은 도시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회랑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길’이다. 이 도시의 ‘중심 도로’인 회랑에는 이들 시설들을 연결하기 위한 ‘작은 길’인 브리지나 계단, 경사로 들이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위에 뚫린 천창과 원형의 개구부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조화가 마치 우리를 신비의 세계에 초대한 듯 하다. 우리는 석탑의 주위를 돌 듯 명상하며 그 길을 걷는다. 빛은 때로는 벽에 부딪힌 물처럼 떨어져 내려 오기도 하고 때로는 폭포처럼 느닺 없이 벽을 뚫고 들어 오기도 한다.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며 환하기도 하고 은밀하기도 한 이 빛들은 마치 교향곡을 듣는 듯 그 전개가 아름답기 그지 없다. , 그가 말한 ‘침묵과 빛’.


중심부에 놓인 의사당 중앙홀을 들어가면 그가 이룩하려 한 이상세계를 목격하게 된다. 의사당은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어 아마 때때로 발생할 벵갈인들의 갈등까지 그들에게는 공동의 목표를 같이 하는 것임을 확인시킬 것이다.
천정을 덮은 파라볼릭 지붕 사이를 뚫고 내려오는 빛은 그들이 믿는 신의 그들에 대한 축복이며 아름다운 약속 아닌가.

루이스 칸이 벵갈인들의 기억과 욕망, 고통과 환희 그리고 그들의 찌들린 빈곤까지 얼마나 이해했던 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이 건축이 이 지역의 정쟁적 성격에서 비롯된 프로파간다적인 것이라는 비난에도 귀 기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비난이 있든 칸이 만든 이 건축은 그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존경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더구나 평생을 건축의 본질성을 구현하기 위해 예언자적 삶을 산 그가 다카의 평원을 사랑한 후에 세운 이 건축은 우리에게 보여준 그의 이상세계이며 세월이 지난 이제는 다카인들의 이상세계인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자부하고 있었다.


현대 건축에서 불세출의 업적을 남긴 루이스 칸은 느리게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이 건축의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날, 펜실베니아의 기차역에서 숨을 거둔다. 그 사체가 루이스 칸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였었으며 그의 나이 74세였다.
‘우리 시대의 보석’인 이 건축은 그가 숨을 거둔 지 9년이 지난 후인 1983년에야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건축은 앞으로 수 없이 많은 세월동안 벵갈의 평원 위에 버티어 서서 벵갈인들에게 벵갈의 빛과 침묵으로서 루이스 칸과 함께 기록되고 기억될 것이다.

 

 

 

 

 

 

 

 

4. 루이스칸 스터디 - 3 / Fisher House

 
 Architect  2022. 11. 29. 
 
 
 
안녕하세요.!

오늘은 루이스칸의 주택 중에 피셔하우스라는 작품에 대해서 소개드리겠습니다.

 

주택영역 구성의 네가지 과정

루이스칸 건축에 대해 논문 중 하나인 '주택 작품의 경계공간에 의한 영역구성'이라는 논문에서

칸의 주택의 본질이라고 여겼던 것과 주택의 발전과정? 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1) 방의 분리와 집합

2) 경계의 긴장 발생과 경계공간 생성

3) 영역의 중첩과 경계공간의 변형

4) 영역적 깊이 형성

의 순으로 나누어 있었고, 이번에 소개할 피셔하우스는 3번째 단계에 놓여있습니다.

 

1
‘방’의 분리와 집합
De Vore House
1954-55
Adler House
1954-55
2
경계의 긴장
발생과 경계공간
생성
Morris House
1957-59
Clever House
1957-61
Goldberg House
1959
Fleisher House
1959
3
영역의 중첩과
경계공간의 변형
Esherick House
1959-63
Shapiro House
1959-73
Fisher House
1960-67
4
영역적 깊이
형성
Stern House
1966-70
Honikman House
1971-73
Korman House
1971-74

 

 

평면을 놓고 보면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는데요, 루이스칸은 나는 항상 사각형으로 시작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초기의 형태는 네모박스를 어긋나게 놓거나 반듯하게 놓거나, 대칭적으로 놨다고 한다면, 후기로 갈수록 네모박스의 형태가 보이지 않고, 뭔가 다른 영역을 형성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Availabilty의 개념

루이스칸이 추구하고자 했던 주택의 본질, 주택의 영역을 구성해나가는 설계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어

“주택이라는 시설을 생각해보자. House. 즉 상징적 의미에서의 주택에 대한 대답과,

A House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 A House는 정황적인 집이다. 그것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그것은 의뢰자가 누구인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위치가 어디이고 방은 몇 개인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건축가는 그의 능력을 A House가 아닌 House를 만드는데 발휘한다.

그것은 건축이 진정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건축가는 House 그 자체, 즉 상징적으로

House를 다룬다. 즉 살기 좋은 장소로서의 영역을 발견해내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이것이 건축가의 일이며 또 그는 그렇게 해야만한다.

건축가는 침실과 거실, 부엌등 방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그는 방들이 기여하는 방식에 따라 배치함으로써 방들이 거기에 있고,

그것들이 올바르게 그곳에 있으며, 또 그것들이 거기에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 결과 진정으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의 영역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건축가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정(Home)이다.

Home은 그 속에 살게 되는 거주자와 관계된다. 건축가는 Home에 적합할 영역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점만을 제외하고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House에 대한

이 세가지 (House, A House, Home)의 성격은 모두 한곳에 있어야 한다.

A House : 건축주가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의 목록으로 만들어진 공간 구성

House : 더 나아가 건축주가 미처 알지 못했던 주택의 가능성을 발견해주고 담아줄 수 있는 건축가가 해결해야하는 몫

Home : 주택의 틀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담아내는 것

Availabilty : 가능성은 거주하는 사람들이 채워가는 것이므로 건축은 가능성을 위한 틀을 제공해 주어야한다.

Availabilty는 Fisher House(1960-69)의 설계과정에서 루이스 칸이 주택 설계의 어려움을 고백했던 이유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됨

주택이 건축가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개인의 선택을 위해 가능성을 담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점이 설계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라는 것

2. 유보의 공간 ; 경계공간

유보의 공간이란 머무름의 공간이다.

머무른다는 것은 공간으로부터 인간이 소외되지 않고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린아이에게 계단은 한번에 쉬지 않고 여러 개를 뛰어 오르내릴 수 있을 만큼 정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노인에게 계단은 숨을 가다듬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머무름의 장소로서 계단에 창문과 의지를 덧붙여 만든다면 노인은 자연스럽게 계단을 오르다가

멈추어서 우연히 그곳에 떨어져 있을 책을 집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왜 거기 멈추어있느냐고 물어보면 할아버지는 이 책이 이렇게 흥미로운지 몰랐구나,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계단이다.”

3. 영역구성 ; 가능성을 담는 틀

루이스칸의 주택에서 가능성의 본질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있다.

경계공간이 개입되면서 형성되는 이중적 의미의 거리차이는 영역적 깊이를 생성하여

선택의 기회와 가능성을 담는 켜를 만들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건축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다양성을 흡수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 예배당은 누구나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곳은 안으로 꼭 들어갈

필요가 없도록 주위로 이분의 공간을 가져야만한다. 즉, 당신이 예배당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필요도

없도록 엠불러토리를 가져야만 한다.”

…….

“본질적인 것은 예배당은 개인적인 의식이며 어떤 고정된 틀이 있는 의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이것으로부터 당신은 form을 얻는다.

Form은 이런것으로부터 나오며, 당신에게 예배당으로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바꾸거나

수정하거나 현대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LOCATION

 

피셔하우스는 노만피셔 박사와 도리스 부인 그리고 그의 두딸을 위해 설계한 집입니다.

피셔하우스의 사이트는 필라델피아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30km정도를 가면 나오는 핫보르라는 지역입니다.

피셔하우스는 1960~67년에 완공되어진 칸의 후기작중 하나입니다.

 

동시대의 건물들

피셔하우스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철과 유리를 이용한 고층 또는 넓은 공간과 빠른 시공기간을 지닌 건물들이 지어진 시기에 전혀 다른 재료와 스케일을 가진 건물들을 지었습니다.

칸이 생각한 건물의 형태

 

칸은 Bryn I 기숙사 설계에서 채택된 대각선 배치 사각형의 기하학적 도면을 취하여, 아메다바드와 다카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스파와 건물을 대각선으로 연결하는 더 자유로운 형태로 더욱 다양화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이 대각선 배열은 그 지역의 기후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눈부심을 줄이고 환기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책은 1970년대에 중요한 설계 이슈입니다.

대각선 배치 시스템은 각 건물과 개별 방을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노출시켰습니다.

PLAN

 

형태를 통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분리시켰으며.

사적 공간은 남북측을 따라 정렬되고, 정확히 45도 회전하는 공적 공간은 진입로와 평행하게 이어지는 북동남서선을 따라 정렬됩니다.

B1F PLAN

 

지하는 창고와 바비큐 그릴을 할 수 있는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바비큐 그릴은 1층의 벽난로와 연계됩니다.

 

1F PLAN

 

 

2F PLAN

 

피셔 하우스에서는 이 구분이 두 개의 독립된 큐브에 의해 더 명확하게 정의됩니다.

게다가, 두 개의 정육면체를 각지게 함으로써, 벽은 서로 다른 방향과 마주보게 만들어 각각의 면마다 다른 경치와 다른 품질의 빛을 제공합니다.

나란히 배열된 큐브 구성에 비해 공간의 밀도가 크게 향상돼 전체적으로 대각선 투시도가 유지되면서 공간은 실제보다 훨씬 깊어 보이고 각 방에 가장 적합한 빛의 품질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평면에서 완벽하게 정사각형인 사적 볼륨은 1층에 입구 복도와 마스터 침실이 있고 그 위에 2개의 다른 침실이 있습니다.

공적 볼륨은 직사각형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2층 높이에 거실, 식당 및 주방 공간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집 전체에 깊게 움푹 들어간 창문이 있다. 이것을 통해 겨울에는 빛이 들어오며 여름에는 직사광선이 차단됩니다.

 

거실과 주방 공간을 분리하는 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큰 석재 난로가 있지만 주방은 여전히 이 당시 전통적으로 있었던 공적 공간에 더 많이 열려 있습니다.

두 개의 별개 볼륨을 만들기로 한 결정은 처음에 노먼박사의 요구사항인 오피스와 집을 계획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오피스는 사라졌지만, 두 개의 볼륨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집에서 사생활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에 부합합니다.

ELEVATION

 

 

 

 

 

 

로마에 머무는 동안 그토록 감탄했던 고대 유적의 재료인 돌을 사용했습니다.

펜실베니아는 나무로 짓는 것이 더 저렴했기 때문에, 칸은 나무 구조의 전통적인 기술을 원활하게 사용합니다.

강쪽으로 기울어져있는 빛 때문에 지하는 석조벽을 목재 구조의 기초로 사용합니다

집 전체의 정면은 나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편백나무 목재 사이딩으로 구성됩니다.

SECTION

 

 

단면에서 하단부의 돌이 건물의 기초의 역할을 하고, 돌위에 격자로 나무가 얹어진 후 바닥을 깔아 구성됩니다.

지붕도 마찬가지로 격자형으로 쌓아져, 과거 목조 건물의 양식을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CIRCURATION

OPENING

SPACE

 

 

 

 

또하나 이상한 것은 현관에서 직접 거실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빌딩으로 들어가면서 "남의 집 마당을 통해서 우리 집으로 가는 느낌" 의 실내(거실)진입을 택했습니다.

매우 흥미롭습니다. (모든게 이상하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감이 안잡힐 정도로 정신을 빼앗는다.)

한편, 낮에 피셔부인이 주방에 있을 때 자녀가 학교에서 귀가해 2층의 침실로 막바로 올라가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앞의 건물은 본래 의사 오피스(외래진료) 건물로 구상되었던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관복도에서 본 접합부의 통창. 한 폭의 그림같습니다.

초라한 현관에 들어서면 기대치않게 나타나기때문에 더 효과적입니다. 기대치 않은 한 폭의 푸른 "풍경화"같습니다.

 

 

 

 

공간의 경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의도적으로 차경을 통해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볼 때 경계가 심리적으로 극대화 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이 이집의 하이라이트인 공간입니다.

거실 코너의 유리창으로 북측의 아름다운 조망과 동측의 오전 햇살이 들어와 풍요로운 느낌을 줍니다.

아름다운 돌쌓기의 벽난로 벽면에 빛이 부딪히며 더 풍성해집니다. 야외의 일부인 것 같기도합니다.

코너에는 통창과 환기용 목재덧개창문, 목재벤치 등으로 새로운 공간과 실내형태가 펼쳐집니다. 많은 생각이 집중된 공간입니다.

1951년 게넬하우스 이후로 15년만에 다시 생긴 벽난로. 45도 각도로 나란히 배치된 두 개의 큐브의 공간 구성 내에 20도 각도로 배치되어 이중 대각선 효과를 냅니다.

거실, 벽난로, 식당 등이 한 공간에서 모두 보입니다.

 

 

 

 

칸이 벤치나 빌트인 의자를 설치할 때, 그의 의도는 "하나 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벤치는 창문과 창턱 등 주변 요소와 구분할 수 없도록 설계돼 빛을 필수 요소로 만듭니다.

칸에게 벤치는 단순히 앉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빛에 싸여 있어야 했고 공간의 아우라가 스며들어야 했습니다.

벤치에 응답하는 것은 벽난로입니다.

반원통 모양의 돌무더기가 무작위로 분포되어 있으며, 고대 유적지의 기둥을 연상시키는 오래된 존재는 강력한 구심력을 발산합니다.

 

 

 

 

 

 

DETAIL

 

 

 

 

 

 

 

 

 

5. 루이스칸 스터디 - 4 / Flora lamson Hewlett library

 

 Architect  2022. 11. 30. 

 

안녕하세요.!

오늘은 루이스칸이 설계한 건물이긴 하지만, 루이스칸이 죽은 후에 완공된 플로라 램슨 휴렛 도서관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플로라램슨휴렛도서관이 루이스칸이 설계한 건물이라는걸 이번에 처음알게되었습니다.

플로라램슨 도서관은 루이스칸이 기획설계..? 정도의 단계에서 사망하여, 이후에 UC의 환경 디자인 대학에서 칸에게 배운 리차드 피터스와 조셉 에셔릭의 두 교수에게 프로그램을 완료하도록 위임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해당 자료가 많지않고, 도면 같은걸 찾을 수가 없어 찾아본 자료와 저의 분석으로 최대한 설명드리겠습니다.

 

 

플로라램슨도서관의 외부사진입니다.

 

외부에서 본 형태는 정사각형의 단이 안쪽으로 조금씩 들어가며 단을 지는 피라미드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4개층이며, GTU라는 곳의 도서관입니다. 여기서 GTU란 신학 대학원 연합입니다.

현재는 총 9개의 신학대학이 연합되어 있습니다.

LOCATION

 

플로라램슨도서관은 미국의 서쪽 버클리라는 지역에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정사각형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주차장이 있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도로가 있습니다. 주변은 대부분 주거지역이고 주거지역의 사이사이에 GTU의 건물들이 있는 형태입니다.

HISTORY

 

1971년 마스터플랜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GTU 마스터플랜의 핵심이자 캠퍼스의 핵심인 도서관은 1981년까지 이웃 사람들의 반대로 완공되지 않았습니다.

 

 

첫번째 사진은 1971년 이전 즉, GTU계획을 확장 하기 이전의 마스터플랜입니다.

오른쪽은 Quinn과 Oda가 계획한 마스터 플랜 초안. A라고 된곳이 도서관입니다.

마스터플랜 초안을 작성당시 별도의 라이브러리 프로그램을 계산하였습니다.

모든 GTU 기관에서 도서관 자료를 통합하면 650,000권이 되고, 주차장을 제외하고 60000평방피트 약 5700제곱미터 정도의 면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CONCEPT

루이스칸 / 이집트 피라미드 스케치

이집트 / 피라미드

한국 / 장군총

멕시코 / 치첸이트샤

 

“단단한 기하학적 콘크리트 피라미드"

설계당시 루이스칸은 단단한 기하학적 콘크리트 피라미드를 얘기했다고합니다.

피라미드는 저희가 생각하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있지만, 사각뿔 도형 또는 돌이나 벽돌 등을 층층이 쌓아 만든 뿔 형상의 거대 구조물을 총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피라미드들의 기능을 보면 무덤으로써 자신의 권력, 권위등을 상징하거나,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종교행사를 행하거나 하는 행위들이 벌어졌습니다.

 

칸은 어떤 시설을 생각할 때 그것들이 없었을 때 어떻게 지을지를 생각한다고 한다. 어쩌면 루이스칸은 가장 원초적인것에서 본인이 갈구하는 본질적인 것들을 찾아나가는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GTU, 신학대학원의 도서관의 형태를 가장 원초적인 피라미드의 형태에서 시작한거라고 생각됩니다.

PLAN

 

1층 / 연구관련 컬렉션, 도서관 직원 사무실 및 고객 서비스를 위한 전용 도서관 공간

2층 / Doug Adams Art Gallery, 대형 다용도실, 모든 교수진 및 학생 서비스 사무실

3층 / 관리사무실 /변경하면 새로운 전용 회의 및 교실 공간

1972년부터 루이스칸이 설계하였습니다. 그는 기획설계? 단계(1974년)에 사망하였습니다.

때문에UC의 환경 디자인 대학에서 칸에게 배운 리차드 피터스와 조셉 에셔릭의 두 교수에게 프로그램을 완료하도록 위임했다고 합니다.

 

네 개의 정사각형이 단단지어 쌓아 올린 형태의 평면입니다.

동쪽에 주출입구로 보이는 계단들이 있고, 서쪽은 까만 것들이 빼곡한 나무들로 추정됩니다.

첫 번째 정사각형의 안쪽에는 나무처럼 생긴것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SPACE

 

건물은 총 4개층입니다.

GTU 이사회는 비용문제로 인하여 건물을 두단계로 나누어 지었다고함. 1단계인 지하와 1층레벨, 2단계에는 나머지층을 지었다고합니다.

모든층의 기둥과 슬라브는 콘크리트 기둥과 기둥사이는 나무가 끼워진 형태이고 그 나무들도 정사각형의 형태로 끼워져 있습니다.

 

북쪽으로 들어오는 1층 메인 입구. 입구부분만 기둥이 없이 3개의 정사각형 나무가 합쳐진 모양으로 되어있습니다.

입구의 앞에는 긴 벤치가 놓여있고, 분홍색으로 된 플랜트 박스가 놓여서 각각의 창문들의 시야를 막아주고 있습니다.

서쪽으로 들어오는 지하1층 메인입구.

 

입구부분은 정사각형의 형태를 깨서 다른 언어들이 있고, 3층 부분에 유일하게 피라미드의 형태를 깬 볼록할 철 모양의 형태가 튀어나와 있습니다.

 

 

먼저 천장을 보면 우물정자로 되어있는 콘크리트 보의 사이로 정사각형의 목재 8개로 천장마감이 되어있고, 그 중앙에는 각뿔 모양의 천장이 있어 건물 내부로 자연광을 들이고 있습니다.

과거 피라미드에서도 힘이 가장 많이 드는 위치인 꼭대기의 중앙을 신성한 빛을 들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천장 밑의 벽에는 콘크리트 벽일부와 정사각형의 창 4개가 뚫린 목재 마감이 동서남북 4개의 벽에 마감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조각물을 두어, 떨어지는 빛이 더 잘 느껴지도록 배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밑으로는 원형으로된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고, 원형 보이드가 지하1층까지 뚫려 빛이 지하1~4층까지 퍼지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원형 가구들은 과거의 신앙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거기의 한부분에는 도서관의 책들을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와 그뒤로 직원들의 프론트가 배치된 것이 보입니다.

 

 

지하 1층은 커다란 탁자가 원형 보이드 밑에 길게 놓여 있습니다.

루이스칸은 죽기전에 “사서가 책을 놓을 수 있는 큰 탁자가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하고, 독자는 책을 들고 빛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진 배치라고 보여집니다.

 

 

 

 

 

Louis Kahn은 죽기 전에 "나는 도서관이 사서가 책을 배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선택된 페이지를 열어 독자를 유혹할 수 있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6. 킴벨미술관, 루이스칸 / kimbell art museum, louis isadore kahn

 

 Architect  2022. 9. 28. 

 

빛의 폭포

 

 

 

 

 

 

 

 

 

 

 

 

 

 

 

 

 

 

7. 태양의 미학 -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

 
 
2022.10.25  FASHION,|

 

 

절제된 건축물이 자연과 만났을 때 가장 경이롭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곳. 루이스 칸이 설계한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다. 이 걸작을 관통하며 쏟아지는 아름다운 석양 속에 루이 비통의 2023 크루즈 컬렉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낯설고 생경한 것은 언제나 사람을 강렬하게 매료시킨다.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샌디에이고의 라호야 또한 마찬가지다. 멕시코 국경과 멀지 않은 이 낯설고 기이한 이방인의 도시는 지독하게 탐미적인 동시에 경이로운 방식으로 아름답다. 윌리엄 레너드 페레이라가 집필을 하던 가이젤 도서관, 마릴린 먼로가 주연을 맡은 <뜨거운 것이 좋아>의 촬영지인 코로나 호텔 등 미국 남부 예술이 만개한 황금 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경이로운 건축물과 공간이 호기롭게 펼쳐진 이 도시는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라호야 전체를 관통하는 석양에 강렬하게 매혹됐다. 대범하게 도시를 가로지르는 건축물 위에 석양이 관통하는 굉장한 순간 속에서 그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신비롭고 중독적인 캘리포니아의 이면적 아름다움 속에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빛과 사람 사이의 어떤 접촉점을 발견했고, 그 지점에서 옷이 아름다운 방식으로 반사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야말로 라호야의 태양이 이번 루이 비통 2023 크루즈 컬렉션의 시발점이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 것이다.

 

 

 

 

 

 
 
 
일몰 시간,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 한가운데로 볕이 쏟아지는 경이로운 모습.

이처럼 태양은 루이 비통의 2023 크루즈 컬렉션을 완성한 핵심 요소다. 라호야의 지평선을 기준으로 한 여러 건축물과 그것을 아우르는 모래와 절벽 등의 자연적 요소는 이번 크루즈 컬렉션이 추구하는 유목민적 미학을 더욱 견고하게 뒷받침하는 요소가 된다. 무엇보다 태양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는 회색빛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는 태양을 가장 직접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타들어가는 일몰 시간 동안 태양은 회색 콘크리트로 이뤄진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중앙에 위치한 분수의 정확한 중심축 내에 들어오는데, 이 짧은 시간 동안 태양은 건물을 포함한 모든 것을 놀라운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마치 태양이 코앞에 온 듯 금빛으로 쏟아지는 아름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각적 절정에 이르게 만드는데, 아마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이 지점에서 라호야의 태양에 마음을 빼앗겼을 터다. 그는 이와 같은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태양볕 아래서 옷과 사람 사이의 접촉점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그리고 그 접촉 속에서 완성되는 일련의 반사가 옷과 사람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았을까.

 

 

 

 

 

 
 
 
 
지평선을 기준으로 양옆으로 나뉘는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의 모습을 닮은 절개.

태양의 아름다움 속에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라호야의 사막과 태양이 선사하는 강인한 인상에서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간의 구조적 형태는 고스란히 유지하되 유동적이고 흐르는 듯한 실루엣을 동시에 선보였는데, 가령 수많은 드레이핑에 스냅을 더해 형태를 변형할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제트스키나 바다, 모래, 항해, 험준한 절벽 등 라호야 해변에서 영감 받은 아름다운 요소를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하여 프린트로 구현, 지금의 기술력과 라호야의 자연, 지구 사이의 극명한 대비를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라호야의 태양을 형상화한 빛나는 소재가 돋보이는 가방으로 움직임에 따라 놀라운 반사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지배적으로 주도한 리넨 소재를 비롯하여 자카드나 실크, 가죽, 트위드 등의 소재로 일궈낸 금속 팔레트는 라호야의 석양 속에서 더욱 극적으로 흔들리며 이전에 결코 보지 못한 놀라운 반사를 만들어냈다. 웨스트 코스트 특유의 깊고 길게 떨어지는 아름다운 태양볕 속에서 이 소재로 완성된 옷들이 사람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조우하니, 마치 석양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였다.

게다가 접착제나 열가소성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면과 실크, 양모와 같은 소재를 표현해냈다. 트위드나 시퀸, 가죽 등의 소재는 인위적 가공 없이 빛과 시간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산화될 수 있도록 가공했다. 직물의 변형이야말로 대단한 진화이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원초적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말이다.

 

 

 

 

 
 

 

 

 

 

 
 
접착제나 열가소성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트위드나 양모 등의 소재는 직물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진화했는데, 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축적하는 작은 태양 전지판과 같이 반사되는 밴드로 장식한 부츠가 바로 그것이다. 가방 곳곳에 루이 비통의 트렁크에서 영감을 받아 모서리 부분에 직각 금속 장식을 더했고, 모래 위에 인쇄한 것만 같은 가벼운 모노그램 엠보싱을 차곡차곡 쌓았다. 이 모든 것이 라호야의 석양빛 아래서 황홀한 금빛 색조로 물들며 지독하게 탐미적인 아름다움을 폭발적으로 쏟아내게끔 만든다.

 

 

 

 
 

 

 
 
 
니콜라 제르키에르와 배두나.

무엇보다 이번 2023 크루즈 컬렉션의 배경이 된 장소는 그간 패션쇼가 열린 전례가 없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소아마비를 치료하는 ‘폴리오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소크 박사의 연구소인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는 ‘파블로 피카소가 방문할 만큼 매력적인 건물을 지어달라’는 소크 박사의 요청 아래 루이스 칸이 무려 6년의 시간을 오롯이 바쳐 완성한 장소다. 그는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의 뒤를 이어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융성했던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을 소크 생명 과학 연구소에 적용했다.

이 건물의 중심에서는 라호야의 해변과 태평양이 시선에 들어오는데, 태양과 바다야말로 생명을 상징한다고 믿는 생명 공학 박사들의 믿음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고요와 성찰을 기반으로 완성된 이 건물의 철학은 루이 비통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크루즈 컬렉션이 지향하는 ‘건축적 여정’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생의학 연구소가 이번 2023 루이 비통 크루즈를 위해 처음으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고 크다.

 

 

 

 

 
 
라호야의 석양빛 아래서 황홀한 금빛 색조로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쏟아졌던 피날레.

이처럼 놀랍고 진기한 아름다움을 보고 있으니 이번 루이 비통 2023 크루즈 컬렉션의 스페셜 게스트는 다름 아닌 태양이라 말했던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건물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대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한 루이스 칸의 철학적 태도와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미학적 시선 사이에 어떤 공명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틈에서 컬렉션 내내 흘러나온 스파크스의 노래가 맴돈다. ‘Never turn your back on mother earth’라는 가사가 말이다.

CREDIT

  •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선영
  • 사진
    COURTESY OF LOUIS VUITTON
  • 출처
    W web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