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Gian Lorenzo Bernini, Giovanni Lorenzo Bernini기독교 고전주의와 장경주의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는 보로미니와 함께 이탈리아 성기 바로크를 대표한 건축가다. 나폴리에서 태어나 로마에 정착한 뒤 일찍부터 조각에 소질을 보여 이른 나이에 교황청 예술단에 들어갔다. 미켈란젤로와 공통점이 많은데, 서양 예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 가운데 한 사람인 점, 미술의 전 분야에 타고난 천재인 점, 조각에 제일 뛰어난 점, 이를 바탕으로 건축에서도 주요 작품을 남긴 점, 장수하면서 여러 명의 교황을 예술 후원자로 둔 점 등이 그러하다.
베르니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50여 년간 교황청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아 7명의 교황을 예술 후원자로 두고 성기 바로크를 이끌었다. 건축에서는 로마 스쿨의 적자로 정통 고전주의를 이어받았다. 제도권 안의 모범생답게 그의 건축에서 역동적 창조력은 부족했다.
그러나 종합예술을 바탕으로 장경주의라는 자신만의 기법을 창출해서 바로크 기독교 고전주의의 한 유형을 완성했다. 베르니니는 당시 기독교 건축이 매너리즘에 오염되었다고 보고 이것을 로마 기독교의 기본 정신으로 되돌리는 일을 종교적, 예술적 의무로 삼았다.
가톨릭 정신의 승리와 하늘의 영광을 찬양하는 일이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조각, 공예, 회화 등 여러 장르를 동원해 흥겹고 극적인 종교적 장면을 연출했다. 감상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극장 무대 위에 올려 놓은 것처럼 처리했는데 건축은 이런 무대 윤곽을 형성하면서 내용물을 담는 전체 그릇의 역할을 했다(도 7-9).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로마, 1640-47.
예술과 종교가 하나가 되고 이를 위해 다시 미술의 모든 장르를 하나로 종합화하면서 장경주의를 완성했다. 교회의 실내에 더해지는 채플, 닫집, 제단 등에서 많이 구사했는데 라이몬디 예배당(Cappella Raimondi, 로마, 1640~47)을 거쳐 코르나로 예배당(Cappella Cornaro, 로마, 1647~51)에서 가장 완성도 높게 나타났다.
코르나로 예배당은 아빌라의 성 테레사(St. Teresa of Avila)에게 봉헌한 작품으로 제단, 감실, 측벽으로 구성되었다. 제단은 벽면 앞에 두 단의 데크를 펼쳐놓은 것처럼 처리했고 감실은 그 뒤로 타원형 공간을 파서 만들었다. 감실에는 베르니니의 조각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성 테레사의 환희〉를 놓았다
측벽에는 높은 돋을새김으로 새긴 코르나로 가문 추기경들의 조각상을 더했다. 이런 구성은 장경주의를 지향한다. 전체 구성은 극장을 축소해놓은 것으로 제단은 객석에, 감실은 무대에, 측벽은 오페라하우스의 개인용 작은 방에 각각 해당한다. 추기경 조각상은 관객이 되어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다(도 7-11).
감실은 무언가 특별한 행사가 벌어지는 별도의 독립 공간인 극장의 무대가 되었다. 특별한 행사는 〈성 테레사의 환희〉였다. 천장에는 하늘에서 빛이 떨어지는 장면을 금세공으로 조각해서 종교적 희열을 표현했다. 감실 안쪽 천장에 굴뚝을 뚫어 자연광도 끌어들여 빛의 효과를 높였다. 테레사의 격정과 찬란한 빛은 가톨릭의 부활과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했다. 모든 시선은 이 특별한 행사에 모아졌다. 측벽의 추기경 조각상은 숨을 죽이고 이 장면을 집중하며 바라보았다.
- 2도 7-11 코르나로 예배당,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내
-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1647-51.
성 베드로와 퀴리날레의 성 안드레아
교황청 예술단의 핵심 멤버로 진입한 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의 마무리 작업을 책임졌다. 교황이 바뀔 때마다 부침을 겪긴 했지만 1624년에서 1660년대 말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크고 작은 마무리 작업을 담당하며 교황청의 총본산을 최종 완공했다.
브라만테가 1500년대 초반에 초안을 낸 이래 10여 명의 건축가를 거치며 150여 년을 끌어온 대역사였다. 이 가운데 베르니니의 대표작은 성 베드로 내 닫집(Baldachin, St. Peter's 1624~33)과 산피에트로 광장(Piazza di San Pietro, 1656~67)이다.
닫집은 비정형주의와 장식주의를 대표했다. 청동으로 만든 기둥은 나선형으로 처리했다(도 7-12). 매너리즘에서 표준 고전주의를 부정하는 어휘로 처음 사용한 것인데 이곳에서는 의미가 바뀌어서 바로크 자연주의 장식을 새기는 바탕 면으로 변했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로마, 1624-33.
ⓒ 임석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밑동 표면에는 사선 방향의 빗살무늬를 새겼고 몸통과 윗동에는 꽃잎과 풀잎 등의 자연주의 문양을 새겼다. 엔타블러처는 문장이 새겨진 커튼 모양을 흉내 냈다. 지붕은 박공 윤곽을 기본 모티브로 삼아 곡선 피라미드인 횃불 모양으로 처리했다. 코니스 윗면과 기둥 위 네 모서리에는 천사 조각상을, 피라미드 정상에는 부활한 예수 조각상을 각각 세웠다.
산피에트로 광장은 교황 알렉산데르 7세가 활발하게 벌인 로마 재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성 베드로 앞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광장을 만드는 계획으로 이전부터 입안했다가 중단된 것을 추진한 것이었다. 타원과 거대 기둥이 핵심 아이디어였다.
타원은 바로크를 대표하던 도형이라는 시대적 상징성이 있었다. 이것을 옆으로 누인 안정적 구도로 사용해 정통 고전주의의 건축 분위기와 어울리게 했다. 산탄젤로 다리에서 시작해서 성당으로 진입하는 긴 동선에서는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쉼표 역할을 했다(도 7-13).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로마, 16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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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 광장은 되도록 많은 군중이 성당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운집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도 성당에 도움이 되었다. 성당 정면에는 교황이 대중들을 위한 미사를 집행하고 일요일의 성채 강복식 때 모습을 드러내는 성채 강복식 발코니(Benediction Loggia)가 있었는데 옆으로 누인 타원은 발코니와 적절한 거리와 각도를 유지하게 해주었다.
거대 기둥은 타원 윤곽을 따라 광장의 경계를 형성했다. 광장 자체가 내곡면을 기준으로 가로 195미터, 세로 14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였으며 이 윤곽을 모두 328개의 기둥 숲이 에워쌌다(도 7-14). 이집트와 페르시아 건축에서 추구하던 기둥 숲을 3배 가까이 능가하는 규모와 숫자였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로마, 16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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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상상력과 척도를 초월한 기둥 숲은 정통 고전 어휘를 사용해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며 바로크 기독교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장면이 되었다. 오더는 도심 속 외부 공간에 가톨릭 신비주의와 기독교 제국의 위용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순한 양식을 사용했다.
말년 대표작인 퀴리날레의 성 안드레아(Sant'Andrea al Quirinale, 로마, 1658~70)는 타원과 장경주의를 합한 구성이었다. 건물의 전체 윤곽을 타원 하나만으로 짰는데 이번에도 옆으로 누여서 고전적 안정감을 우선했다. 출입구에서 제단에 이르는 중심 동선을 단축에 맞추어서 이동을 줄이는 방식으로 타원의 역동성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는 것을 경계했다(도 7-15).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로마, 165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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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에서는 앞의 예배당에서 사용했던 장경주의를 반복했다. 제단입구는 '쌍기둥 두 세트-높은 엔타블러처-곡선을 이용하여 변형 처리한 박공'으로 이루어진 닫집으로 꾸몄고 박공에는 성 안드레아의 조각상을 놓았다.
제단 벽면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을 흉내 낸 황금공예 장식으로 가득했고 그 사이를 천사들이 유영했다. 천장에는 창을 뚫어 자연광을 끌어들여 신비주의 효과를 높였다. 옆으로 누인 타원 평면은 제단을 향한 집중을 높여서 장경주의 효과를 높였다.
출입구도 무대처럼 꾸며서 장경주의로 처리했다. 건물의 전체 윤곽을 형성하는 신전 파사드는 무대의 배경 막으로 읽혔고 그 앞에 출입구 차양이 무대 세트처럼 돌출했다. 차양을 계단 위에 올려 무대 효과를 높였으며 차양 위에 조각상을 더해 시선이 더욱 집중되도록 했다(도 7-16). 출입구에서 제단에 이르는 동선에 장경주의가 연속으로 등장하면서 기독교 공간의 극적 효과를 최대로 높였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로마, 165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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