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기념관이 들어선 김해 봉하마을은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뒤쪽으로 봉화산을 끼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좁은 들이 있고 철길 너머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습지인
화포천이 흐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속하고,
봉화산(烽火山)의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烽下)마을’이라고 불린다
봉화산 정상에는 마을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사자바위와 봉수대가 있어서
그 곳에 서면 드넓게 펼쳐진 평화로운 봉화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봉화산 자락에 포근히 안긴 봉하마을의 대통령 생가와 사저, 윗 쪽의 정갈한 묘역,
그리고 이번에 신축한 기념관 등이 자연 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봉화들녘을 넘어서 건너편 뱀산(피맥산)까지 외부 공간영역이 확장되고 이어진다
마을을 보호해 주고 있는 뱀산에는 감나무 단지가 있는데
그 곳에는 대통령이 젊은 시절 공부했던 마옥당이 있었는데 이번에 전시관과 함께 복원되었다
그런데, 진영읍 봉하마을은 대도시에 인접한 도농복합도시로서
주변에 공장들이 많이 산재해 있는 관계로 환경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화포천은 공장폐수로 오염되어서 죽은 하천으로 버림을 받았었는데
노 전 대통령이 귀향 후, 주민들과 함께 직접 쓰레기를 치우며 환경정화에 힘쓴 결과
지금은 국토교통부로부터 '아름다운 하천 100선' 에 선정될 정도로
자연생태환경이 뛰어난 건강한 하천으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최근에 대통령 기념관이 준공됨으로 해서
대통령 생가와 대통령 사저, 마옥당, 그리고 묘역을 중심으로 하는 추모공간과
친환경 농법의 봉화들녁 뿐만아니라 생태학습공원에서 화포천으로 이어지는 생태체험탐방공간이
이제야 제대로 된 틀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생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있는 생가에서 1946년 9월 1일에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8살까지 생가에서 살았으며 이후 봉하마을 안에 있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대통령은 신혼생활과 사법고시 공부까지도 봉하마을에서 했으며,
1975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에 부산으로 떠났다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창인 강태룡 씨가 생가를 매입하여 김해시에 기부채납하면서
생가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생가는 초가집 형태로서 본채와 아래채(헛간)로 단촐하게 구성되어 있다
노대통령의 기억에 따라 '대통령의 집'을 설계한 정기용씨가 설계했다
대통령 묘역
"이 장소는 국가보존묘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다
온갖 정치적 역정과 유난한 삶을 마친 그였기에,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이 찾게 될 장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증과 이해로만 이 장소가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욱이 어느 정파나 이념의 포로가 되는 장소로만 머문다면
이곳은 욕되고 욕되다
이 장소는,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었든
같은 시대 속에서 나의 존재가 다른 이들의 풍경의 일부분이 되었음을,
그래서 같은 공동체를 만들었음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두가 보편적 가치를 구하는 곳이며,
결국 우리 자신의 성찰을 구하는 장소로, 성찰적 풍경meta-landscape으로 만들어졌다
누구든지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고자 할 때,
그리고 그로 인해 고독하고 적막할 때 여기를 찾아 월대 위에 서서 위안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함으로 이 장소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라는 한계를 넘어,
우리 모두를 위한 장소가 된다
다시 말하면 이 장소는 스스로를 추방한 모두를 위한 풍경이며,
그렇게 우리의 선한 기억에 오래 머물기를 소망한다"
(글 출처 : <노무현의 무덤(2010). 승효상>)
<깨어있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
<대통령 기념관>은 노 전 대통령의 삶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 역사와 시민문화의 성장을 살펴보고
대화와 타협, 토론문화 등을 배우고자 만들어진 공간으로서
대통령 묘역 입구에, 임시 가건물 형태로 유지되던 ’추모의 집‘을 헐고
고인의 사후, 13년 만에 기념관의 건립을 보게 되었다
건물 설계는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했던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승효상 건축가가 맡았다
건물은 지상 2층 연면적 1,300평의 규모로서, 도로에서 바로 진입하게 되는 2층에는,
시민 편의 시설과 서비스 및 지원시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1층에는 기념관의 중심시설인 전시 공간이 자리 잡았다
관람객들이 먼저 만나게 되는 2층에는
시민들과 어린 자녀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과 가족 쉼터, 수유실이 마련되어 있고
토론 및 모임 활동이 가능한 세미나실, 기획전시 라운지 등이 준비되어 있다
한 층을 내려서야 만나게 되는 1층은
대통령의 전 생애와 참여정부 시절의 국정 철학 및 공과 과를 입체적이면서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10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다양한 체험 및 교육 활동이 가능한 소규모 공연장(다목적 홀)과
대통령 사료를 보관하는 수장고가 갖추어져 있다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전시관 개관기념특별전
- 봉하는 자봉이다
노무현재단에서는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의 개관을 기념하여
봉하마을 자원봉사 15년의 기록 사진전 『봉하는 자봉이다』를 전시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했다
'봉하찍사' 김영호 작가를 객원 큐레이터로 초대하여
작가께서 15년간 찍어 오신 봉하마을과 자원봉사자들의 사진을 선보이는 자리로서
제1부 아름다운 농촌마을
제2부 생태, 가장 소중한 보배
제3부 사람사는 세상
으로 구성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봉하마을을 가꾸고 지켜온 자원봉사자들의 소박하고 활기찬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김해 오광대 공연
김해오광대 무형문화재 공연이 11월 27일 봉하마을 잔듸광장에서 펼쳐졌다
김해오광대는 남부형 민속가면극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연희되어 왔을 것으로 추정되며,
1937년 무렵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중단된 이후,
1980년대 중반 김해문화원에서 들여와 재연을 시작하여
당시 김해군 이북면(현 한림면)의 첫 공연이 연희되었으며, 보존회를 통하여 꾸준히 전승 및 연희되고 있다.
김해오광대는 모두 여섯 과장으로
첫째과장 중과장, 둘째과장 노름꾼과장, 셋째과장 양반과장, 넷째과장 영노과장,
다섯째과장 할미영감과장, 여섯째과장 사자무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대개 파계승의 풍자, 양반에 대한 조롱, 일부(一夫)대 처첩간의 삼각관계,
축사연상(逐邪延祥)의 주원(呪願) 등을 보여주고 있다
(글출처 : 김해시청)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은 건물 주출입구가 있는 도로 쪽이 건물의 전면부분에 해당되지만
정면에는 특별히 정형화된 건물 형상이 없다
다소 투박하면서 단순하기 그지없는 계단처럼 이루어진 이 건물은
“진짜 좋은 건축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설계자의 평소 건축관에 따라
화려한 기술이나 치장보다는 건물 용도와 본질에 집중하고 대통령의 삶과 정신이 투영된 소박한 건물이
되도록 노력한 설계자의 의도라고 보여 진다
전시관은 독특한 단면 구조를 지닌 지상 2층 규모의 기념관으로서 모두 10개의 독창적인 전시실과
세련된 옥외공연장까지 갖추고 있다
각 전시실들은 흥미보다는 관람객들이 성찰하고 사유하게 인도할 수 있는 공간구조와
요소들로 세심하게 배려되어 있다
건물의 지붕에 해당하는 옥상광장 좌측에 장애인과 어린이, 노약자를 위한 경사로가 있다
그 경사로를 처음 봤을 때, 그 면적이 너무 넓고 디테일에 공을 너무 많이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어느날, 아주 어린애 두 명이 엄마 도움도 받지 않고 그 경사로에서 너무 재미있게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고 난 후,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전반적으로, 기념관은 비록 반지하식 건물이지만
건물의 기능성과 공간의 활용도가 뛰어나면서도 전망은 막힘이 없다.
마찬가지로 동선도 거침없이 강물처럼 흐른다
생태문화공원 특별프로그램 - 새집만들기 체험행사
방문객 휴게시설이 포함된 체험지원시설 및 과수원 창고
마옥당 복원
노무현 대통령 77주년 생신을 맞은 지난 9월 1일에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전시관 개관식과 함께 마옥당 복원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방문객의 관람 편의를 위해 원래 모습보다 조금 크게 설계한 마옥당과
과수원 창고, 방문객 휴게시설이 포함된 체험지원시설은 준공 절차가 완료되면
내년에 시민분들께 선보일 수 있습니다.
지면을 통해 청년 노무현의 꿈과 도전을 느낄 수 있는 마옥당에 담겨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마옥당磨玉堂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고시 공부를 했던 곳이며,
대통령의 아버지 노판석 씨가 구슬玉을 갈고 닦듯磨 공부하라는 의미로 이름 지어준
아홉 평 남짓한 규모의 작은 토담집입니다.
1965년에 터를 닦고 이듬해인 1966년에 노무현 대통령과 둘째 형 노건평 씨가 직접 지었습니다.
호박만 한 크기의 돌과 짚풀을 섞은 진흙으로 담을 쌓았고 소나무 뼈대에 갈대와 진흙을 발라
그 위에 볏짚 지붕을 얹었습니다.
부엌 한 칸, 공부방 한 칸으로 구성했는데,
공부방에는 책상과 의자, 침구, 달력 외에는 다른 살림을 두지 않았습니다.
부엌은 작은 아궁이를 놓고 장작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아궁이 위에 검게 그을린 벽을 긁어 아버지가 지어준 ‘마옥당’이란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뱀산과 감나무 과수원
봉하마을을 길게 가로지르는 뱀산 중턱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어머니 이순례 씨가 7년간 개간하여 조성한 감나무 과수원이 있었습니다.
당시 새마을 운동의 여파로 어수선한 마을의 분위기를 피해 조용히 공부할 장소와 함께
과수원 내 감나무 묘목 도둑을 감시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해 이 과수원 안에 터를 잡고
토담집 마옥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청년 노무현의 꿈, 사랑, 성장이 담긴 곳
1966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어망회사에 취직합니다.
하지만 근무조건과 처우에 문제가 있어 한 달 반만에 퇴사하고 사법고시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1966년 제7회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하였고,
1971년 군 제대 후 마옥당에서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고시 공부 중 1973년에 결혼, 득남한 후 1975년 마침내 17회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합격자 60명 중 유일한 고졸 출신이었습니다.
이후 마옥당은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 자연스레 집이 무너졌고 그 터만 남아 있었으나
2022년에 복원하고 지원시설을 마련했습니다.
복원 공사는 당시 마옥당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의 자문과 고증을 거쳐 진행했습니다.
(글출처 : 사람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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