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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달성 조길방 고택 (2022.10.30.)

 

 

 

 

 

 

 

 

 

달성 조길방 고택 (達城 趙吉芳 古宅)

- 국가민속문화재 제200호 -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3필지/1,412

지정(등록) 1984.12.24

소 재 지 대구 달성군 가창면 조길방길 92-1 (정대1)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함안조씨 동계공파문중

관리자(관리단체) ***

 

 

달성 조길방 고택은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초가 주택으로,

안채·아래채·사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약 200여 년 전 조길방의 선조가 난리를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안채는 정착 당시인 정조 8(1784) 경에 건립하였으며,

사랑채는 1925년 경에 확장하였고

아래채는 1955년 경에 무너진 것을 다시 지었다.

사랑채 뒤편의 부속채는 2005년 경에 헛간채를 고쳐 지은 것이다.

 

안채가 서향으로 자리 잡고, 안채 앞의 마당 좌우로 각각 아래채와 사랑채가

마주보도록 배치된 '튼 ㅁ 자' 형 구조이다.

안채는 앞면 4, 옆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부 지역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평면 구성이다.

출입이나 채광, 통풍을 위해 안채에 만들어 놓은 여러 개의 작은 문과 창은

서민 주거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상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양식이다.

반면 대청 전면에 둥근 기둥을 사용한 것은 초가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양식이다.

 

 

 

 

 

 

 

 

 

 

 

 

 

 

 

 

 

 

 

 

 

 

안채

 

 

 

 

아래채

 

 

 

 

 

 

 

안채는 높은 축대 위에 앉아 있고 그 앞의 낮은 마당 좌우에

각각 아래채와 사랑채가 마주보고 있다.

사랑채 뒤편 건물은 헛간채이다.

 

안채는 남부지역에서 주로 찾아 볼 수 있는 평면구성으로

좌로부터 부엌큰방대청건넌방 순으로 놓여 있다.

대청에서 큰방과 건넌방으로 통하는 키 작은 문과 큰방 앞의 앙증맞은 문은

드나들기가 어려울 정도의 작은 문이다.

이들 문은 상류주택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초가의 전형적인 창호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1칸 헛간과 2칸통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래채는 좌로부터 방앗간곳간온돌방외양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흔치 않은 오래된 조선시대의 귀한 초가로

안채 평면구성은 남부지방 서민주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질박한 초가의 참 모습을 읽게 하는 안채의 작은 창호가 눈길을 끈다.

 

조길방 고택은 조선 시대의 수수한 초가의 참모습으로 보존하고 있고

흔치 않은 오래된 초가이다.

특히 남부 지방 서민 주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주택 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글출처 : 문화재청)

 



 

 

 

 

아래채

 

 

 

사랑채

 

 

안채

 

 

 

 

 

 

 

 

 

아래채

 

 

 

 

 

 

 

 

문화재 지정 때 소유자이던 조길방의 먼 웃대 조상은

대구 동북방에 있는 동촌 비행장 근처에 살고 있었으나 9대조 광국(光國)대에

가화(家禍)를 당하여 총각의 몸으로 이 곳 한덤[大巖]에 숨어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하며, 

안채는 이 때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깊은 산골의 높이 약 800m나 되는, 

경사가 비교적 급한 산간마을인 이 곳은 예전에는 15호 가량 살았으나 현재 6호만 남아 있고,

 이 마을에서는 이 집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한다. 

마을이 숨듯이 들어앉은 산 전체가 서향(西向)으로 경사져 있어서 집은 자연히 서향하게 되었다. 

 

이 집의 안채는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서향으로 앉았고

왼쪽으로 축대를 연장하여 부엌 곁에 장독대를 갖추었다. 

축대 앞의 낮은 안마당에는 좌우에 아랫채와 사랑채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부속 건물처럼 낮게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채의 비중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안채는 남부형에 가까운 평면 구성으로 

2칸 마루의 왼쪽에 큰방과 부엌을, 오른쪽에 건넌방을 배치하고 있다. 

마루에서 큰방과 건넌방으로 출입하는 외여닫이 골판 세살문은

높이가 매우 낮아서 몸을 구부려야 드나들 수 있고, 

특히 안방 전면 벽에 낸 외여닫이 살창문은 그 크기가 매우 작아서

출입보다는 채광과 통풍에 뜻을 두고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건넌방 전면 벽에도 40여 년 전에는

같은 형식의 작은 살창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랑채는 방 2칸과 도장 1칸으로 되어 있으나 웃대에서 확장한 것이다.

 아랫채는 원래 오른쪽에서부터 마구간, 방앗간, 방의 순서로 배열된 3칸집이었으나

 30여 년 전 무너진 것을 지금은 같은 간살로 개조하였다. 

 

안채의 구조는 자연석 주초(柱礎) 위에 방주(方柱)를 세우고

방 주위에는 토벽(土壁)을 쳤는데 마루의 앞쪽 기둥만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두리기둥의 윗머리에는 주두(柱頭)나 보아지 없이 보를 바로 얹었고, 

삼량가(三樑架)에 동자주(童子柱) 대공(臺工)을 세운 간소한 구조로 되어 있다.

1988 7 1일 ~ 9 20일에 안채를 해체 복원하였다

(글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