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화엄사 <흑매黑梅> (2021.03.20.)
조선 숙종 때 화엄사의 장육전이 불탄 자리에
각황전을 다시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선사桂波仙師가
이 매화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수령 300년이 훨씬 넘은 아주 짙은 선홍색의 홍매로
장육화丈六花라는 애초의 이름이 있었지만
특유의 아주 짙은 붉은 색이 검은 빛을 띈다하여
일반적으로 화엄사 <흑매黑梅>라고 불린다
<흑매>는 화엄사와 지리산을 대표하는 명물이지만
천연기념물 485호로 지정된 귀한 매화가 큰절 위쪽의 암자,
길상암에도 있다
이 <길상암 야매野梅>는 산청 단속사지 들판의 <원리 야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산속의 대나무 숲에서 자란
작고 하얀 꽃을 피우는 500살이 넘은 야생의 들매화로서
현재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새벽부터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줄기차게 내렸지만
각황전 옆의 홍매화<흑매> 앞에는 사람들과 우산으로 가득 찼고
촬영 포인트가 좋은 뒷산 위에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와 화엄사 <흑매>의 인기가 날로 치솟아
이젠 주말에는 매화 가까이에서 촬영하기조차도 많이 힘들어졌다
<흑매>를 보러 새벽부터 달려온 상춘객들의 열정과 정성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고 ‘매화 사랑’의 저변확대는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10년 전쯤에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그 옛날이
그리워 질 때가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 전국의 유명한 고매들의 개화시기는
지난 겨울의 추위와 날씨에 따라서 상당한 영향을 받기에
해마다 그 개화시기가 들쑥날쑥하기 마련인데
화엄사 <흑매>는 기후에 상관없이 항상 3월 하순에 만개하는
규칙적인 개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매화이다
저멀리 화엄사 앞산 노고단에 비안개가 가득하다
물방울을 머금은 작고 귀여운 분홍의 꽃잎 조각들이 모여서
매혹적이면서도 고혹적인 선홍색 빛깔을 띄고 있는 화엄사 <흑매>는
빗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그래서 애잔하다
2021. 03. 20.
지금, 화엄사에서는
천년도량에 봄이 오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산사의 봄을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제1회 홍매와·들매화 휴대폰 카메라 사진 콘테스트’로서
3월16일부터 27일까지 ‘천년의 도량에서 매화와 노닐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아 ‘폰카’로 불리는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산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됐다
신라시대 창건돼 각황전·석등·사사자삼층석탑 등
다수의 국보와 보물을 품고 있는 화엄사의 아름다움을 비롯해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우뚝 선 홍매화,
그리고 산내 암자인 길상암의 들매화를 통해
그곳에 찾아온 봄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역사와 문화,
자연의 조화까지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글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 화엄사 각황전 중건 설화 ]
<흑매>를 심었던 계파선사와 화엄사 각황전 중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불교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임진왜란때 승병들의 활약에 분노한 왜병들이 불을 질러 화엄사 도량이 전소되었다. 그 후 계파선사에 의해 화엄사 장육전 중건의 서원 기도가 시작되었다.
계파선사는 깊은 수행과 덕망을 갖추고, 자비를 실천하는 스님이었다. 어느 날 밤, 계파선사는 부처님 전에 향을 사르고, 무릎 꿇고 합장하고, 장육전 중건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날도 기도 중에 비몽사몽간 금빛 광명 속에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계파여! 큰 불사를 성취하려면 그 불사와 인연 있는 진실한 화주승을 선발해서 그 화주승이 복있는 시주施主를 만나야 하느니라."
"진실한 화주승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사옵니까?"
"알려주겠다. 물 항아리와 밀가루 항아리를 준비하되, 먼저 물 항아리에 손을 넣었다가,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게 하라.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는 스님이 진실한 스님이니라."
계파선사는 곧 대중들에게 고하고, 시험해 보았으나 아무도 성공하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낙담하는 중에 마지막 남은 공양주 스님이 손을 넣었는데 밀가루가 묻어 나오지 않았다.
계파선사와 대중 스님들은 가사 장삼을 수하고, 모두 공양주 스님에게 3배를 올리면서, 장육전 중건의 화주 소임을 맡기었다.
계파선사는 공양주 스님에게 말했다
"그대가 지난 10년을 공양주 소임을 맡아 그 어떤 대중 스님 보다도 더 큰 복덕을 지은 연고로 오늘 같은 이적을 보인 것이니, 부디 장육전 중건의 소임을 맡아 주도록 하라.
이는 문수보살님의 뜻이기도 하다."
새로 화주승이 된 스님은 큰 걱정 속에 간절하게 백일 문수 기도에 들어갔다. 백일 기도가 끝나는 날 밤, 꿈에 금빛 광명의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내일 아침 공양 전에 산을 내려가되,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장육전 시주의 약속을 받아라. 알겠느냐?"
"예, 그리하겠나이다."
꿈에서 깬 화주승은 이른 새벽 설레는 가슴을 안고 산문을 나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한참 내려 가던 중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화주승은 다가가서 인사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절에 와서 잔일을 거들고 남은 음식이나 누룽지를 얻어 가던 불쌍한 노파였다.
화주승은 절망에 빠진 마음으로 노파를 쳐다보다가, 문수보살님의 계시를 기억해 내고는 노파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장육전 중건의 소원을 말하였다.
"대보살님! 부디 장육전을 지어 주십시오!"
노파는 놀라서 어쩔줄 몰라 하다가 스님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스님! 천지간에 의탁할 곳 없는 저 같은 노인네가 어떻게 그 큰 불사금을 시주할 수 있겠어요?"
"저는 어젯밤 꿈에 문수 보살님의 계시를 받고 지금 보살님께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시주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엎드려 애원하는 화주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파가 슬픈 음성으로 말했다.
"문수보살님의 뜻이라면 약속하지요.
하지만 금생에는 불사금을 드릴 형편이 않되니, 이 몸을 바꾸어서 약속을 지키도록 하겠어요."
그러고 나서 자신의 신세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본래 경주의 명문가의 여식으로, 시집가서 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중 시아버지가 무고를 받아 역모죄로 몰려, 하루 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하였습니다.
두남매를 데리고 달아나던 중에 두 남매는 화살에 맞아 죽고 나만 살아서 지금까지 성명을 숨기고 살아왔습니다.
이후 기도하되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건만, 스님께서 장육전 중건을 부탁하니, 한 번 더 환생의 슬픔을 겪을 수 밖에 없군요.
훗날 저와 만날때 두 가지 징표를 보이겠으니 잘 기억해 두십시오.
하나는 왼 손바닥에 '장육전丈六殿' 이라 쓴 글이고, 다른 하나는 오른 쪽 이마 위의 검은 점입니다.
스님! 내생에 또 봅시다."
그러고는 왔던 길을 돌아갔다.
화주승이 돌아가다 느낌이 이상하여 따라가보니 노파는 섬진강 속으로 뛰어 들고 있었다.
스님이 소리치며 달려갔으나 노파는 이미 강물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이후 화주승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천하를 떠돌며, 문수보살에 대한 원망과 노파에 대한 죄책감으로 정처없이 행각하였다.
그 후 무상無常한 산색山色이 여섯 번 바뀌었다.
그 무렵, 청나라 강희제는 나이 50이 넘어 공주를 얻게 되었다.
공주는 예쁘고 귀여웠고, 공주에 대한 황제의 총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된 연유인지 공주는 태어나면서 부터 감아 쥔 왼 손이 펴지지 않았고, 웃지를 않고 항상 슬피 울었다.
황제가 달래면 울음을 그쳤다가 혼자가 되면 슬피 울었다.
귀여운 딸에 대해 황제는 크게 걱정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 황후와 비빈들은 울기만 하는 어린 공주를 달래기 위해 궁궐 밖, 대로 변에 있는 누각에 올라, 대로 변에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시키고 있었다.
이상한 공주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구경하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보고도 그저 울기만 하던 공주가 갑자기 울음을 딱 그치고 활짝 웃으며 손으로 군중 속을 가르키며 말했다.
"저기, 우리 스님이 있어요."
황후가 놀라서 바라보니 그 곳에는 낯선 이국의 승려가 초라하게 서 있었다.
청나라까지 흘러 들어온 화주승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쳐다보자 놀라서 달아나려 하였다.
그러자 공주가 또 울음을 터뜨렸고, 황후가 물었다.
"저 스님을 데려 올까?"
공주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황후 앞에 불려온 스님은 조선에서 왔으며, 죽을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다.
그 때 공주가 달려와 스님의 옷을 잡고 웃으며 '우리 스님' 이라고 좋아하는 것이었다.
공주는 스님 눈 앞에 꼬옥 쥔 왼 손을 활짝 펴 보였다.
손바닥에는 '장육전' 이라고 씌어 있었고, 가르키는 이마에는 팥알만한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화주승은 그제서야 모든 사실을 깨달았다.
놀라운 사실을 보고 받은 황제와 황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비로소 인간의 육신은 멸해도, 그 진신眞身은 인연 따라 윤회전생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황제는 조선에서 온 승려를 특별히 접견하여 치하했다.
그리고 공주의 전생의 약속을 지켜 주었다.
그리고 죄수들에게 대사면을 내렸으며, 조선으로 돌아가는 화주승에게 장육전 중건 불사금을 시주하였다.
보고를 접한 조선의 숙종임금도 장육전 중건 불사금을 시주했으며, 큰 붓으로 중건되는 장육전의 이름을 '황제를 깨닫게 한 전당' 이라는 뜻에서 '각황전覺皇殿' 이라고 사액하였다.
그때가 청나라 강희제 38년이요, 조선 숙종 25년이 되는 기묘년(1699)이었다.
각황전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부처님을 두고 '깨달음의 황제'라는 뜻이고,
두번째는 '황제를 깨닫게 해 준 전당' 이라는 뜻이다.
약속을 지킨 노파의 움막에는 다음과 같은 원효대사의 게송이 적혀 있었다 한다.
莫生兮其死也苦 세상 태어나지 말아라 죽기가 괴롭다.
莫死兮其生也苦 죽지도 말아라 태어나는 것도 괴롭다.
(글 출처 : 각황전 중건 설화|작성자 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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