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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2014 - 매화 향기, 은하수강 따라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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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 매화 향기, 은하수강 따라 흐르다

 

 

 

 

 

 

20년 만에 시집을 한 권 샀다

 

 

“ 윤이월 매화는 혼자 보기 아까워 없는 그대 불러 같이 보는 꽃

 

생쌀 같은 그대 얼굴에 매화 한 송이 서툰 무늬로 올려놓고 싶었다

손가락 두 마디쯤 자르고 사흘만 같이 살고 싶었다

 

혼자 앓아누운 아침 어떻게 살아야 매화에 닿는가

꽃이라는 깊이 꽃이라는 질문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매화는 분홍에서 핀다 분홍은 한낮의 소란을 물리친 색

점자처럼 더듬거리다 멈춰 서는 색

 

새벽 짐승처럼 네 발로 당신을 몇 번이나 옮겨 적었다

분홍이 멀다

 

먼, 분홍

 

 

- 서 안나, 「먼, 분홍 - 립스틱 발달사」“

 

 

 

매화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시이다.

매화예찬이기 보다 인간의 사랑에 관한 시이지만,

'매화'라는 단어만 보아도 가슴이 저리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시의 전문을 실었고,

같은 시집에 ‘매화분합 여는 마음’이라는 시도 있다.

 

쉽게 다가서기 힘든 매화의 속성처럼

세상의 어떤 사랑이든지 기쁨과 슬픔, 상처와 애환 등,

사랑의 본질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2014년 매화기행을 정리하는 첫 문장으로 삼았다.

 

 

2014년, 올해도 여느 해처럼 매화기행의 첫 출발은

남해 거제도로부터 시작된다.


 

 

 

 

 

 


 

 

 

 

 

 

 

 

 

 

 

 

 

 

 

 

 

1. 한려수도, 겨울왕국을 해빙하는 미소

 

 

- 거제 구조라초등학교 춘당매( 2014.02.15.)

 

 

입춘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3일 오전

거제도 구조라초등학교의 춘당매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제주도의 얼어 붙은 바다를 건너온 매향이

마침내 한반도의 최남단 거제도에 도착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보다는 매화소식이 1주일정도 빨랐지만

올해는 지난해 겨울처럼 혹독한 추위가 없었는데도

매화소식은 더디기만 했었다.

 

한반도의 봄은 언제나 거제도가 열어왔고

올해 거제도의 봄은 2월 3일 춘당매가 열었다 

 

살을 에이게 시리고 길었던 겨울왕국의

세찬 해풍을 잠 재우고 두꺼운 얼음을 녹이는

‘한반도의 봄 전령사’ 춘당매 다섯 그루가

코발트 빛 겨울바다를 향해

미소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  거제 공곶이 홍매 ( 2014.02.15.)

 

거제 와현해수욕장의 예구마을에서

작은 언덕을 넘으면 ‘공곶이’가 나온다. 

산 뒤편에 일부러 숨겨놓은 듯 자리를 잡아 

‘비밀의 화원’으로 불린다.

 

이곳 공곶이의 대표적인 명물은 수선화이지만

이제 겨우 새순이 올라오는 있는 상태로 아직 한참 이르고

붉은 동백만이 홀로 피었다

그런데 뜻밖에 동백나무들 사이로

 꽃을 피운 홍매와 백매 서너 그루가 있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공곶이의 홍매가

구조라의 춘당매와 함께

거제의 봄을 열어 가고 있다.

 

 

 

 

 

 

 

 

 

 

 

 

 

   

 

 

 

 

 

   2. 영남알프스를 깨우는 화엄의 빛

 

- 양산 통도사 자장매 ( 2014.02.22.)

  

 입춘을 하루 앞둔 지난 2월3일,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가 꽃망울을 터뜨려

'공식적인 한반도의 봄'을 알렸다.

 

올해의 개화시기는 예년보다 15일 정도 빨랐고

공교롭게도 거제 구조라의 춘당매와 같은 날 첫 꽃망울을 터뜨렸다.

하지만 개화속도는 춘당매보다 훨씬 더뎌서

이제 겨우 5% 남짓 개화상태를 보이고 있다.

 

종무소 앞의 통도매와 영취매는

꽃망울만 매단 채 아직도 꿈속에 잠겨있고

2주 후쯤에나 세가지 색으로 물든 분홍빛 화엄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 창원 '설뫼원' 농장의 납매 ( 2014.02.23.)

 

 

섣달(음력 12월)을 뜻하는 한자 랍(臘)과

매화를 뜻하는 매(梅)가 붙여져 ‘납매’라 불리는 이 꽃은

매화와 비슷한 향기를 뿜고,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을 피우는 특성이

매화를 닮았긴 하지만 사실 장미과의 매화와는 상관이 없는

받침꽃과의 다른 식물이다.

 

진주수목원에도 시험재배 중인 납매가 몇 그루 있고

한겨울에 피어나는 노란색 꽃으로 향기가 강하고

추위를 뚫고 찾아오는 손님에 비유해

‘한객(寒客)’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3. 봄비와 매화 

 

   

 - 순천 금둔사 납월매 ( 2014.03.01.)

 

 새벽부터 봄을 재촉하는 차가운 봄비가

그칠줄 모르고 계속 내렸지만 순천 금둔사로 차를 몰았다

 

금전산 자락의 소박한 금둔사는

빗속에서도 적지 않은 탐매객들이 매화나무 아래에 알록달록 붙어있고

절집은 비안개와 매화향에 취해 꿈을 꾸고 있다

 

1월 말에 제주도에서 시작된 매화소식이

2월 초에 거제도의 ‘춘당매’로 바다를 건너 전해지고

뒤를 이어서 순천 금둔사의 '납월매'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

전국의 탐매객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한해의 탐매여행이 드디어 시작된다

그래서 납월매의 개화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일반적으로 탐매여행의 출발점이 된다 

   

금둔사를 대표하는 6그루의 납월매는

거의 만개한 상태이고 대웅전과 산신각 옆의 납월매만 

아직 20%정도의 개화상태를 보이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도 개화상태는 위치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지만

 온종일 내린 봄비를 듬뿍 머금은 매화들의

청초한 싱그러움과 조용한 아우성이

남도의 봄을 열고 있다

 

 

 이제 이 비 그치고 나면

산등성이 몇 개 너머에 있는 선암사의 홍매와 백매를

긴 겨울잠에서 깨우기 시작할 것이다.

 

 

 

 

 

 

 

 

 

 

 

 

 

 

 

 

 

 

 

 

 

 

 

 

 

 

 

 

 

- 순천 금둔사 청매화 ( 2014. 03.01.)

 

 

금둔사의 대웅전 근처에 있는 청매화이다

 

동짓달에 꽃을 피우는 납월매가 만개한 뒤, 지기 시작할 무렵에야

청매화가 꽃망울을 열기 시작하여

금둔사의 봄을 이어가기 때문에 청매화가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다

 

흰꽃에 푸른 꽃받침을 가진

100년생 내외의 홑꽃 청매화이다.

  

 

 

 

 

 

 

 

 

 

 

 

 

 

 

 

 

 

 

 

- 낙안읍성 홍매 (2014.03.01.)

 

 

금둔사로 올라가는 길에

낙안읍성에 점심식사 때문에 들렀다가

낙안읍성 성벽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홍매화이다

 

원래 낙안읍성의 민가에 있다가 고사했다던

유서 깊은 납월매의 후손으로 보이며

금둔사의 납월매와 같은 시기에 만개한

20년생 내외의 겹꽃 홍매이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낙안읍성 안에도

좋은 매화가 있다는 사실도 새로이 알게되었다

내년이 기대된다

 

 

 

 

 

 

 

 

 

 

 

 

 

 

 

 

 

 

 

 

 

4. 향기에도 소리가 있다

 

 

 - 통도사 자장매 ( 2014.03.08.)

 

아직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을 나서서 

고속도로 위에서 발갛게 동이 트는 새벽을  맞으며 

서서히 붐비기 시작하는 통도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7시 10분이다

 

아직 새벽 공기가 매서운 냇가를 따라서  절집으로 올라가는데,

일주문 앞의 수양매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였고

‘대자연이 쓰는 시詩의 첫문장’이라고 칭송 받는 

영각 앞의 자장매와 종무소 앞의 통도매와 영취매 앞에는

벌써 4-50명의 진사님들이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자리를 선점하고 있다.

 

  

통도사는 올해 들어서 2주전(2월 22일)에도

성급한 마음에 이미 한차례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자장매의 개화상태는 채 10% 수준도 못 되었는데, 

그로부터 2주만에 자장매는 완전히 만개했고

깊은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통도매와 영취매가

개화율 10% 정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자장매의 개화시기는 입춘 전후(2월 3일)로

지난해보다 보름정도 빨랐지만 이후에는 계속 침묵을 지키다가

만개시기는 작년과 비슷해져 버렸다.

 

  이쁘지 않는 매화가 있겠냐만은

‘우리나라 홍매의 표준’이라고 평가 받을 만큼

고운 빛을 자랑하는 자장매의 우아한 매력은 지금이 한창이고

또 다른 매력의 영취매와 통도매는

다음 주까지 그 부드러운 3색 향기를 이어갈 것이다.

 

 

"향기에도 소리가 있다"

 극락암의 경봉선사께서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매화는 마음으로 보고 귀로 듣는 꽃이라고도 했다

 

문득, 통도사의 매화들이 지금 한창 울리고 있을 분홍빛 3중주가

                                  무척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 통도사 영취매 ( 2014.03.08.)

 

 

 

 

 

홍매화

 

                       도종환

 

 

 

눈 내리고 내려쌓여 소백산 자락 덮여도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속 홍매화 한 송이

 

 

 

 

 

 

 

 

 

 

 

 

 

 

 

 

 

 

 

 

 

 

 

 

 

 

 

 

 

 

 

 

 

- 통도사 통도매 ( 2014.03.08.)

 

 

일명 '자장분홍색매'로 불리는 

종무소앞의 홍매이다.

 

수령은 오래되지 않았고,

야매계의 홑꽃으로 연한 분홍색꽃을 피운다.

꽃잎이 다소 크고 오목하며 꽃받침은 적자색이다

 

진분홍빛 영취매 곁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

자태 뿐만아니라 그 분홍의 대비가

황홀함마저 느끼게 한다

 

 

 

 

 

 

 

 

 

 

 

 

 

 

 

 

 

 

 

 

 

 

 

 

 

 

  

 

 

- 통도사 극락암 매화 ( 2014. 03. 08.)

 

 

통도사 극락암에도 매화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애써 찾아 갔지만

10년생 이내의 아직 어린 '풋 것' 들이다

 

분홍빛이 너무 현란하여 심히 우려가 되는

 홍매 3그루와 백매 3그루가 있다.

 

 

 

 

 

 

 

 

 

 

 

 

 

 

 

 

 

- 김해건설공고 와룡매 (2014.03.08.)

 

통도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김해건설공고에도 잠시 들렀다.

 

건설공고 교정에는

심은 지 80~90년 된 고매(古梅)에 속하는 나무들이

'매화로'  양 옆으로 81그루나 도열해 있다.

오래된 나무들이 꼬이거나 땅으로 기는 독특한 형태의

‘용트림하는 모습’이어서 ‘와룡매’라고 불린다.

 

81그루의 나무 중 백매가 63그루, 홍매가 18그루다.

백매들은 이미 활짝 피었고,

홍매와 청매는 다음 주말까지 갈 것 같다.

 

 

건설공고에서는 매년 매화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마침 때가 맞아 '매화 향기와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의

        선율 속에서 매화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하지만 하모니는 별로였었다     

 

 

 

 

 

 

 

 

 

 

 

 

 

 

 

 

 

 

 

 

 

 

 

 

 

              

5. 미처 몰랐던 부산의 매화들

 

 

- 부산 UN기념공원 매화 ( 2014. 03. 15.)

 

 

부산 UN기념공원에는 2월 말쯤에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와 비슷한 시기에

 일찍 꽃을 피우는 홍매와 백매가 1그루씩 있다.

거제도의 춘당매, 금둔사의 납월매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화시기가 빠른

대표적인 매화이다

 

이미 3월 중순이라

유명한 홍매는 시들어 버리고 꽃잎 몇 개만 남았지만

후문(동문) 앞의 백매는 지금 활짝 피었다.

 

 

 

 

 

 

 

 

 

 

 

 

 

 

 

 

 

 

 

 

 

 

 

 

 

- 충렬사 만월매 ( 2014.03.15.)

 

 

부산 충렬사 경내에는

10그루가 조금 넘는 매화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가지 상부를 동그랗게 전지를 하여

달덩이처럼 둥글어 '만월매'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령은 약 50~80년 정도이고

기념관 뒤쪽의 산책로에도 전지가 되지않은 자연상태의

홍매 2그루와 백매가 섞인 홍매 1그루가 있다.

  

 전반적으로 백매들은 이미 많이 졌고

홍매들은 지금이 한창이다.

 

 

 

 

 

 

 

 

 

 

 

 

 

 

 

 

 

 

 

 

 

 

 

 

 

 

 

 

 

 

 

 

 

 

 

 

 

 

 

 

 

 

 

 

 

 

 

 

 

 

 

 

 

 

 

 

 

 

 

 

6. 창원의 매화

 

- 경남도청의 매화 ( 2014.03.16.)

 

 

창원시에 소재한 경남 도청의 공원과

주변에는 10그루가 조금 넘는 매화들이 있고

경남 경찰청 전면 화단에도

홍매 1그루가 있다

 

대부분이 1983년도 청사 신축 전후에 심은 것들이라

수령 30년을 조금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요일의 도청 공원에는

모처럼 20도를 넘는 화창한 봄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나왔고

 KBS 창원방송국에서도 봄날의 휴일 풍경을 취재나왔다가

매화를 스케치해 갔는데

저녁 9시뉴스에 잠깐 방영이 되어 무척 반가웠다 

 

 

 

 

 

 

 

 

 

 

 

 

 

 

  

 

 

 

 

 

 

 

 

 

 

 

 

 

 

 

 

 

 

 

 

 

 

 

 

- '창원의 집' 백매 ( 2014.03.16.)

 

 

200년전 조선시대에

순흥 안씨 퇴은 두철 선생이 살았던 의창구 사림동의 '창원의 집'에는

수령 100년 내외로 보이는 백매 1그루와

아주 어린 홍매 1그루가 있다

 

2주전(3월2일)에 잠깐 들렀을 적에는

아직 필 생각도 않더니 그새 활짝 피고

벌써 지기 시작하였다

 

어느 사진 동아리에서 출사 나온 젊은이들과

어린애들이 함께 어울려 매화와 새봄을 만끽하고 있는

향기로운 일요일 오후였다

 

 

 

 

 

 

 

 

 

 

 

 

 

 

 

 

 

 

 

 

 

 

 

 

7. 밀양강에 매화 향기 흐르고

 

 

- 밀양 백곡재 금시매 ( 2014.03.22.)

 

 

밀양의 산성산이 강을 향해 흘러내리다

절벽을 이룬 밀양강 언덕위에

금시당과 백곡재가 자리하고 있다

 

금시당 이광진 선생이 지은 정자와 

백곡  이지운 선생을 추모하는 백곡재의 중간 뜨락에

수령 160년의 백매화 1그루가 있다

 

지난 해 이맘 쯤(2013.03.31.)에

금시매를 처음 보러 갔다가

대문은 잠기고 관리인도 안계시어 아쉽게 발길을 돌렸었는데

올해는 운이 좋아서 14대 종손 어른의

자상한 설명 뿐만아니라 떡과 커피 대접도 받고 왔다

 

금시매는 만개하여

벌써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개화가 7-80% 진행되던 지난 주말이 적기였다고 종손께서 알려주시고

가을에 은행나무가 물들면 또 구경오라며

친절하게 배웅해 주셨다

 

 

종손 어른의 따뜻한 인품과 함께

금시매의 향기가 밀양강으로 내려 앉고 있는

포근한 봄날 오후였다 

 

 

 

 

 

 

 

 

 

 

 

 

 

 

 

 

 

 

 

 

 

 

 

 

 

 

 

 

 

 

 

 

 

 

 

 

 

 

 

  

 

- 표충사 백매 ( 2014.03.22.)

 

지난 해 초봄(2013.03.31.)에

표충사의 매화를 처음 찾아 갔었는데

때를 놓쳐서 매화는 벌써 지고

석양에 잔잔히 흐르고 있는 향기에만 만족하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

  

종무소 앞 너른 마당에

삼층석탑과 나란히 사이 좋게 자리잡은

수령 150년 내외의 표충사 백매는

아직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호젓하고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올해는 너무 서둘러 약간 이른 감은 있었지만

개화 중반기의 생동감과 청초함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8. 산청 남사마을의 ‘오매불망(五梅不忘)’

 

 

   

 - 남사마을 이씨매 ( 2014. 03. 23.)

 

   

경남 산청의 남사예담촌에는

집집마다 오래 묵은 매화나무 한두 그루씩 없는 집이 없다.

그 중에서도 하씨, 정씨, 최씨, 이씨, 박씨 등

마을의 다섯 문중을 대표하는 다섯 그루의 매화나무

‘오매불망(五梅不忘)’이 유명하다

  

이씨매는

이씨 문중의 서재인 남호정사에 있는 백매로

이씨고택에 있었던 400년 된 고매가 20년 전에 고사하여

지금은 이씨 문중을 대표하고 있다

  

문이 잠겨서

담장 너머로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 남사마을 최씨매 ( 2014. 03. 23.)

 

 

수령 230년의 늘씬한 최씨매(梅)는 

 남사예담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을 거쳐서

최씨고택 사랑채 마당에 있다.

 

최근 몇 년동안 수척해진 모습을 보여왔는데

올해에는 많이 원기를 회복한 모습이다

 

주인 내외분께서

상당히 신경을 쓴다고 하는데

아마 그분들의 정성때문인 듯 싶다

 

 

   

 

 

 

 

 

 

 

  

 

 

 

 

 

 

 

 

 

 

 

- 남사마을 정씨매 ( 2014. 03. 23.)

 

 

남사예담촌의 정씨고택에는

수령 100년 가까운 정씨매 한 그루가 

선명당 뜰에서 자라고 있다.

 

공들여 잘 가꾸어진 화단은

매화를 비롯해 단풍나무, 배롱나무 등

진귀한 나무들로 채워져 있다

 

 

선명당 대청에서 바라보는 정씨매의 모습은

한옥 담장과 뒷편의 사양정사와도

무척 잘 어울린다

 

 

   

 

 

 

 

 

 

  

 

 

 

 

 

 

 

 

 

 

 

 

 

 

 

 

 

- 남사마을 원정매 ( 2014. 03. 23.)

 

 

진양 하씨가 32대째 살아온

원정고가의  '원정매'가 올해도 분홍색 꽃을 피웠다

원정공 하즙 선생이 직접 심은 매화는

수령이 670여년이나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이다.

  

원줄기는 오래전에 동사하고

곁가지에서만 간신히 꽃을 피우는데

올해는 지난해 보다 수세가 약간 풍성해져

그나마 고무적으로 보인다

 

 

집주인은 주로 외지에 계시지만

탐매객들을 위해서 작은 쪽문은 항상 열어둔다는

세심한 배려와 긍지는

원정매의 이름과 격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9. 매화는 져도 향기는 남는다

 

 

 

-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 ( 2014.03.23.)

 

 

 

한달 전쯤, 뉴스에서 정당매의 고사 소식을 처음 접하고

결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지만 끝내 올봄에는 꽃을 피우지 않았고

메마른 가지는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640여년 전에, 정당문학 벼슬을 지낸

강희백 선생이 단속사 절에서 공부할 때 처음 심은 후

100년쯤 후에 고사하자, 후손들이 다시 후계목을 살려내어

기나 긴 세월동안, 그 시대 속의 인물과 그들의 삶과 정신을 이어왔고

540년의 유구한 역사와 선현들의 혼이 깃들여 있는 정당매는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생을 다하고 말았다

 

  4년 전에 내가 처음 대면했을 때도

오래 전에 원줄기는 고사하였고 곁가지 몇 개만 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지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었다

매년 봄이면 항상 궁금하고 어김없이 찾아가던

'친구같은 그리움'이었는데

회자정리라고 했던가!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주인과 절(단속사)은 사라졌지만

 정당매는 한 쌍의 삼층석탑과 함께 빈 폐사지를 지키며

봄이면 꽃과 향기를, 여름이면 열매를, 가을이면 역사를, 겨울이면 고아한 기상을

우리에게 600년동안이나 아낌없이 선물해 주었다 

 

 

 매화를 사랑하는 어느 소설가는

"꽃이 피고 진 600년의 아득한 시간은 소멸이 아니고

깨달음이었으리라"고 했다

 

정당매의 명복을 빈다  

 

 

 

 

 

 

 

 

 

 

 

 

 

 

 

 

 

 

 

 

 2011년 04월 02일 정당매의 모습

 

 

 

 

 

 

 

 

 

 

 

 

 

 

 

 

 

 

- 산청 운리 야매 ( 2014.03.23.)

 

 

 

지리산 동쪽의 끝자락

천왕봉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웅석봉 아래  들판에서

세찬 비바람과 설한풍에 온몸을 맡긴 채 

초연히 300년을 버텨 온 잡초의 생명력을 지닌 들매화가

 운리 야매(野梅)이다.    

 

 

선비의 뜨락이 아닌

황량한 폐사지의 바람부는 들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굳게 뻗은 얽히고 섥힌 가지는

삼백 여년의 기나긴 세월을 버텨 온

강인하고 거친 들매화의 야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10. 매화 향기, 은하수강 따라 흐르다

 

 

- 산청 남명매 ( 2014.03.23.)

 

 

 

봄 산 어디엔들 아름다운 꽃 없겠는가,

(春山底處無芳草))

 

내가 여기에 집을 지은 이유는

다만 천왕봉이 하늘에 가까운 걸 사랑해서라네,

(只愛天王近帝居)

 

빈손으로 돌아 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白手歸來何物食)

 

은하수 십 리 맑은 물 먹고도 남겠네.

(銀河十里喫有餘)

   

 

'실천 유학의 대가' 진정한 선비

남명 조식(曺植·1501~1572)선생이 말년에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 다 보이고  시천천과 덕천강이 만나는 물 맑은 곳에

산천재(山天齊)를 짓고서 쓴 한시이다.

   

책 읽고 물만 마시고도

'참된 선비의 삶'을 지켰던 주인이 가고 없는 빈뜰에서

'남명매'는 450년 동안이나 은하수강을 벗 삼아

 오늘도 꽃을 피웠다

 

 

 

 

 

 

 

 

 

 

 

 

 

 

 

 

 

 

 

 

 

 

 

 

 

 

 

 

 

 

 

 

 

 

 

 

 

11. 무소의 뿔처럼 부활하다 

 

 

- 순천 선암사 선암매 (2014. 03.29.)

   

오늘과 내일

많은 비가 예고되어 있었지만

무시하고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6시쯤, 남해고속도로 진주를 통과할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선암사에 도착할 무렵에는 제법 강해졌다

 

 

오늘 아침

선암사 일주문을 들어서는 심정은

여느 때와는 상당히 다르다

작년(2013년도)에 선암사의 매화들이

거의 꽃을 피우지 못하는 불상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못했다

 

다행히 올해는

정상적으로 꽃망울이 맺히고 있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하고 있었지만 우려와 기대가 섞인 조바심으로

걸음은 자꾸만 빨라진다

  

 

아~, 화려한 부활이다!

작년 한해를 쉬고

선암사의 매화들은 더욱 화사하고 더욱 짙은 향기로 돌아왔다

바람을 가르며 들판을 거침없이 달리는

무소처럼 우리곁에 다시 돌아왔다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단연 '선암사 무우전 매화길'을 최고로 꼽을 것이다

더우기 지난해의 시련을 겪고 소생했으니

더욱 애잔하고 사랑스럽다

때마침 봄비마저 내려

분위기를 맞춰준다

 

 

 

 

 

 

 

 

 

 

 

 

 

 

 

 

  

 

 

 

- 선암사 대웅전매 (2014. 03.29.)

 

 

멀리서, 대웅전 뒤의

늠름한 매화를 발견하는 순간

모든 우려와 근심은 사라지고

한순간 벅찬 환희로 할 말을 잊는다!

 

선암사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매화,

대웅전 매화이다

 

 수령 450년 내외의

당당하고 기운이 왕성한 대웅전매가

봄비 속에서 화사하게 만개했다

 

 

 

 

 

 

 

 

 

 

 

 

 

 

 

 

 

 

 

 

 

 

 

 

 

- 선암사 첨성각매 (2014. 03.29.)

장경각 앞의 연못 건너

첨성각 돌담에 기대선 만개한 백매이다

  

수령 400년 내외의 잘 생긴 고매이지만

쟁쟁한 '선암매' 선배들 때문에

아직은 연못의 비단잉어와 놀아야 할

가련한 처지이다

 

 

 

 

 

 

 

 

 

 

 

 

 

 

 

 

 

 

 

 

 

 

 

 

  

- 선암사 원통전매 (2014. 03.29.)

 

 

6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로서

선암사와 역사를 같이 하는 매화이다

 

원통전 담장 너머로 머리를 풀어헤친 백매의 가지마다

물방울들이 보석처럼 미끄러져 내리고

먼산엔 비안개가 자욱하다 

 

 

애꿎은 봄비때문에

벌써 꽃잎이 많이 떨어졌다 

 

 

 

 

 

 

 

 

 

 

 

 

 

 

 

 

 

 

 

 

 

 

 

 

 

 

  

 

 

 

 

 

  

 - 선암사 무우전매 (2014. 03.29.)

 

 

우리나라 '매화의 보고'

선암사 무우전 돌담길이다

 

300년이 넘는 매화나무 20여 그루가

길을 따라 도열하고 섰다.

수령 550년의 천연기념물 ‘선암홍매’는

근래에 줄기 3개 중에 2개가 태풍에 부러져 사라졌지만

꿋꿋하게 분홍빛 꽃을 피웠다

 

 

 

 

 

 

 

 

 

 

 

 

 

  

 

 

 

 

 

 

 

 

 

 

 

 

 

 

 

 

 

 

 

 

 

 

 

 

 

 

 

 

 

 

 

 

 

12. 길상암에서 무릉도원을 꿈꾸다

 

 

- 구례 화엄사 흑매 (2014. 03.29.)

 

각황전 옆마당의 홍매화(흑매)는

이미 잘 알려진 유명인사라 이맘 때쯤이면

 항상 진사님들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그래서 새벽에 와야

차분한 감상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지만

올해는 개화시기가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빨라져 버렸고

먼저 선암사를 들러서 오다보니 늦어져 버렸는데

이미 홀로 만개해 있었다

  

 

화엄사 흑매는

지난 해보다 좀 더 여유롭게 성숙해졌고

그 짙은 선홍색 빛깔은 빗 속에서 더욱 선명하여

매혹적이면서도 애잔하다

 

 

 

 

 

 

 

 

 

 

 

 

 

 

 

 

 

 

 

 

 

 

  

 

 

 

 

 

 

 

 

 

 

 

 

 

 

 

  

 

 

 

  

 

 

 

 

 

 

 

- 화엄사 길상암 들매화 (2014. 03.29.)

 

서둘러 각황전 앞의 흑매 감상을 마치고

구층암을 거쳐서 길상암의 매화를 찾아가지만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길상암의 들매화도

지난 해에 선암사의 매화처럼 거의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사전 정보가 없어서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다가서는데

아~, 다행이다!

푸른 대숲 사이로 늘씬한 키의

야생 백매가 하얀 꽃을 화사하게 피웠다

 

 

'비쩍 마른 명태(함께 갔던 선배의 표현)'같은

모습이지만 5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로

산청 단속사지의 '원리 야매'처럼 산속의 들매화이다

원래 4그루가 있었으나 3그루는 죽고

한그루만 남았다

 

 

 

주인도 없는 길상암 툇마루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고매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길래 일어서려는데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진다

 

굵어진 빗방울에

하얀 매화 꽃잎이 맞아서 가지에서 떨어져

꽃비가 되어 푸른 대숲 사이로 너울너울 날린다!

댓잎에 '두둑 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서걱서걱 대는 푸른 댓잎 사이로 간간히 흐르는

습기 묻은 아련한 매화향! 

 

 

아~,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13. 인생에 친구 한 명이면 충분하다

 

 

- 순천 송광사 백매 (2014. 03.29.)

  

새벽부터 빗속에서

선암사와 화엄사를 거쳐서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어둠이 내려 깔리는 6시 반이다

 

빗속의 무리한 강행군이라

처음에는 송광사를 생략할 계획으로 선암사에서 화엄사로 바로 건너 뛰었으나

아무래도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송광사로 다시 돌아왔다

 

남은 저녘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송광매 앞에 도착하기 위해서

매표소부터 뛰다시피 걸어서 대웅전 마당에 도착했다

  

수령 200년의 원기 왕성한 송광매는

3년 전에 처음보고 이번이 두번 째 만남이다

앞으로 잘 자라서 '선암 백매'의 전통을 이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7시쯤부터 송광사 저녘 예불을 알리는 

법고와 사물을 치는 행사가 10분 넘게 진행되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산사의

우렁 찬 북소리와 송광매의 촉촉한 향기는 묘한 대조를 이뤄 

역시 오길 잘 했다는 만족감과

길었던 오늘 하루 여정의 고단함을 씻기에

정녕 부족함이 없었다

 

 

한편으로, 새벽부터 빗속의 무리한 강행군을

식사도 거른채 묵묵히 동행해준 후배에게

정말 미안하고 무척 고맙다는 말을 이제야 전한다

 

새삼 느낀다!

'인생에 친구 한 명이면 충분하다!'

 

  

 

 

 

 

  

 

 

 

 

 

  

 

 

 

 

 

 

 

 

 

 

 

 

 

 

 

14. 열흘 붉은 꽃이 없다 

 

 

- 안동 묵계서원 홍매 ( 2014.04.04.)

 

 

안동 묵계서원의 홍매는

나에게 매화의 매력과 가치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 준 아주 인연이 깊은 매화이다

 

2005년 봄에 안동을 갔다가

예정에도 없었던 길안면의 묵계서원을 들르게 되었다

그날 오후의 묵계서원은 인적마저 끊어져 너무도 조용했었지만

글 읽는 선비들이 사라진

그 텅 빈 공간 속의 침묵과 적막 사이로

간간히 흐르는 묘한 향기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그 향기가 잊혀지지 않아서 잠을 설치게 만들었었던

바로 그 주인공이 묵계서원의 홍매였었고

해마다 매화기행을 나서게 된 단초를 제공한 홍매로

나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매화이다

 

 

령 100년 내외의

화사했던 홍매는 몇 해 전에 병에 걸려

 예전보다 많이 빈약하고 메마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초에 관리인께 전화해서 홍매의 개화상태를 확인하고 오늘 방문했지만

무정한 홍매는 그새를 못 참고 속절없이 져 버렸고

서원 입구의 어린 백매만이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을 한움큼씩

털어내고 있었다

 

 

 

 

 

 

 

 

 

 

 

 

 

 

 

- 안동 충효당 서애매 ( 2014.04.04.)

 

조선시대의 명재상

유성룡 선생의 종가집 충효당의 유물관 앞에 

수령 600년의 서애매가 있다

 

그동안 정보가 부족하여

최근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알게되어

관리사무소에 전화로 개화상태를 확인하고 찾아갔었는데

그만 심술궂은 봄바람이 꽃을 모두 떨어뜨리고 말았다

 

비록 만개한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늠름한 기상이 강릉의 율곡매를 많이 닮았다

강릉의 율곡매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때를 놓쳐

꽃이 달린 모습은 아직 보지 못해

숙제를 내년으로 또 넘겼다

 

 

 석양 무렵에 바삐 달려간

인근 병산서원의 문도 굳게 닫히고 매화도 이미 져 버렸다

 

충효당 뜰에 늦게 핀 어린 백매로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15. 짧은 만남, 긴 이별

 

 

 

- 장성 백양사 고불매 ( 2014.04.05.)

 

 

밤 10시에 고불매 앞에 섰다

 백암산 기슭의 어둠에 잠긴 백양사는

승방의 흐린 불빛만 간간히 새어나올뿐 

절집과 고불매는 어둠와 정적 속에 잠겨있다

 

"춘 백양, 추 내장"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만

백양사의 봄밤은 고불매가 있어서 더욱 더 향기롭다

 

내륙에서 가장 늦게까지 을 피우는

백양사의 고불매도 꽃은 거의 다 졌지만

이름 높은 그 향기만은

아직도 우화루 마당의 달빛사이로 간간히 흐르고 있어

늦은 방문객을 위로해 준다

 

 

 

날이 밝아 다시 찾아간 고불매는

꽃이 없어도 그 수려한 자태는 여전하다

 

 

"파계한 흑룡이 몸을 비틀어

 

절집의 담을 넘는듯 하다!"라던

 

작년에 함께 동행했던 선배의 절묘한 감탄사가 다시금 떠올라

 

가만히 미소 짓는다

 

 

 

 

 

 

 

 

 

 

 

 

 

 

 

 

 

 

 

 

 

 

 

 

 

 

 

- 광주 전남대 대명매 ( 2014.04.05.)

 

봄 기운이 완연한 캠퍼스는

생동감으로 넘치고 온갖 봄꽃들이 다투어 피었다

 

이미 봄꽃들이 만발하였으니

매화가 벌써 졌음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금새 실망으로 바뀐다

 

 

350년의 연륜이 배여있는

용트림하듯 휘어진 가지를 온갖 상념으로 한동안 바라보다

인근 고산서원의 노사매를 찾아가기 위해

장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 장성 고산서원 노사매 ( 2014.04.05.)

 

 

장성 고산서원의 노사매를 올해 처음 찾아갔지만

꽃은 지고 서원의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담장너머로 멀찌감치 모습만 확인하고

담양으로 발길을 돌린다

 

 

 

 

 

 

 

 

 

 

 

 

 

 

 

 

 

- 담양 문화유씨 종가 삼문매 ( 2014.04.05.)

 

 

 

담양군 창평면 해곡리

문화유씨 종가에 있는 매화이다.

 

송강 정철 선생의 처가이기도한  문화유씨 종가는

일명 '와송당의 정침(臥松堂의 正寢)'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매화를 '와송당매'로 부르기도 하고

세번 물어서 찾아 왔다고 해서

 '삼문매'로도 불린다

  

나도 올해가 초행인지라

세번이나 묻고 물어서 찾아가는 고생을 감수하고서야

첫대면을 할 수 있었지만

매화는 지고

철 없는 개나리만 만발하였다

 

 

 

 

 

 

 

 

 

 

 

 

 

 

 - 담양 미암종가 미암매 ( 2014.04.05.)

 

대덕면 장산리 미암종가와

미암박물관 근처에 있는 매화인데 우리나라의 홍매 중

가장 화려한 수세를 자랑하는 미암매도 지고

박물관은 내부 수리중이다

유난히 미암매를 아끼는 종부님은

지난 해처럼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올해는 꽃이 예쁘게 피었으나

일주일만에 모두 져 버려서 눈물이 날 뻔 했다고

동병상련의 탐매객에게 하소연 하시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멀리서 온 손님에게

다른 꽃이라도 구경시켜 주시겠다기에 따라갔더니

명자나무이다

명자 꽃도 이쁘긴 하지만

이미 졌더라도 매화에 감히 비기겠는가!

 

 

 

 

 

 

 

 

 

 

 

 

 

 

- 담양 지실마을 계당( 2014.04.05.)

 

 

담양군 남면  지실마을에

송강 정철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계당(溪堂)에

심은 매화가 계당매이다.

  

‘호남 5매’로 불리는

수령 300년의 홍매와 백매가 1그루씩 있는데

백매는 이미 졌지만 홍매는 아직도

늦은 방문객을 위해 잠시 기다려주었다.

 

근처 마을회관 옆의 와룡매도 잠시 들렀다

 

 

 

 

 

 

 

 

 

 

 

 

 

 

 

 

 

 

 

 

 

 

 

 

 

- 담양 독수정 독수쌍매 ( 2014.04.05.)

 

   

독수정 정자 윗쪽에

수령 400년의 독수쌍매가 있다.

 

백매는 이미 졌고

 400년의 이끼를 덮어 쓴 상처 투성이의 홍매는

마지막 열정을 토해내고 있다.

 

지난 해에 독수쌍매를 화폭에 담고 있던 

광주의 유명한 화가 분과 제자들도 보이지지 않고

뒤늦은 꽃샘추위와 강한 바람은

춥고 마음마저 을씨년스럽다

설상가상으로 카메라 배터리마저 깜박거린다

 

 

 

2월 15일 거제도로 부터 시작된

2014년도, 올해의 행복하고 아쉬웠던 탐매여행은

원림의 고장, 매화의 고장, 담양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다

 

 

 

 

 

 

 

 

 

 

 

 

 

 

 

 

 

 

 

 

 

 

 

 

 

 

 

 

 

16. 매화가 져야 다른 꽃들이 핀다

 

 

 

올해는 매화가 너무 빨리 져 버려서 매우 섭섭하지만

그 또한 매화의 소명이고 자연의 법칙일 것이다

 

 

매화는 겨울꽃(冬梅)이면서 또한 봄꽃(春梅)이기도 하다.

겨울의 마지막에 피는 꽃이면서 봄의 맨 처음에 피는 꽃이다

 

매화가 고드름처럼 얼어버린 가지목을 지키며

북풍의 칼바람을 맞으며 불빛 하나없는 눈 덮힌 산야에서

온기없는 별빛을 받으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은

이토록 혹독한 추위를 걷어버릴 봄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 초연히 꽃잎을 떨구어야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매화와 자연의 법칙을 노래한 시로는

조선의 4대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신흠 선생의 시문이 

단연 으뜸이다

 

 

 

오동은 천 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네

(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이 남아 있고

(月到千虧餘本質)

 

버드나무는 백 번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오네

(柳莖百別又新枝)

 

 

 

 

 

 

 

 

 

 

 

 

 

 

 

 

 

 

 

 

 

 

 

 

 

 

18. 먼, 분홍

 

 

 

2014년 올해의 매화기행은

참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해였다

올해 초봄에 100년만의 이상고온을 일으킨 기상 이변은 

 봄에 여름날씨를 방불케하는  초고온현상을 일으켜 

자연생태계를 전례가 없는 큰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다

 

자연에는 원칙과 순리가 있다

매화와 동백이 눈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어 겨울의 끝을 짐작케하고

산수유, 벛꽃, 개나리 등이 순차적으로 시일을 두고 피어

봄의 시작을 알리고 겨울을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올해는 이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 버렸다

아래 위도 없고, 순서도 없고 그래서 정체성마저 모호한 것이

꼭 요즘의 혼란한 선거판을 닮았다

그리고 가슴 아픈 '세월호 참사'도

결국은 안전의 원칙보다 돈을 중시한

인간의 오만때문일 것이다

 

 

원칙과 정체성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좋은 일화가

조선시대의 선비사회에 있었다

남명 선생의 수제자였던 수우당 최영경 선생이

한강 정구 선생의 백매원을 방문했을 때, 마침 만발한 매화가 있었다.

때는 봄이 깊어 복숭아꽃이 만발한 시기였다.

수우당은 하인을 불러 도끼를 가져오게 하고

백매원에 핀 매화나무를 잘라버리려고 하였다.

"매화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백설이 가득한 깊은 골짜기에 피어난 절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화가 복숭아꽃과 더불어 봄을 다투니

너의 죄는 참벌하여야 마땅할 것이나 사람들의 만류로 참으니

너는 이후로 마땅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라며

늦게 피어난 매화를 꾸짖었다고 한다.

 

 

올해의 이상고온은 천재지변이기에

 매화의 잘못은 없겠지만 전국의 내노라 하는 매화들이

지역별 시차없이 불시에 모두 한꺼번에 피어버렸고

개화기간도 일주일 정도로 극히 짧아서

예년의 매화 개화일정과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그래서 탐매객들은 하늘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천재지변은

결국 '인간의 탐욕의 소산물'이니

당연히 우리 스스로가 책임지고 노력해야 할 숙제임은

 그 누구도 부인치 못할 것이다

 

 

 

 

 

 

 

 

 

 

 

 

 

 

 

 

 

 

 

 

 

지난해 매화기행의 완결편이었던

< '2013 - 매화 향기, 봄비 속으로 스미다 >의

끝 부분이 이랬었다

 

 

"...... 오늘로서 올해(2013년)의 탐매여행은 모두 끝이 났다

올해처럼 열정적으로 매화를 쫒아 다니며 행복했던 날이

앞으로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내년부터는 시간이 남으면 찾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잊고 지낼 것이다.

 

법정스님이 선물받은 란화분을 애지중지하다가

그것마저 남에게 줘 버렸던 그 마음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2013. 04. 25."

 

 

 

 

그러나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젠 매화를 잊고 살리라'던 작년의 결심이

얼마지나지 않아 겨울이 닥치자

다 부질없음을 그제야 새삼 절감하게 된다 

 

또한 올해초 '산청삼매'인 정당매의 고사 소식은

잠자던 연정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새로운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분홍은 멀고 아프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분홍을 미워하거나 없어지기를 원하진 않을 것이고

어쩌면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을 얻었다면

고통과 상처도 운명적으로 감수해야만

어쩌면 공평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2014. 05. 11.

 

양평 독락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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