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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내내
각황전 앞의 흑매를 감상하고
구층암을 거쳐 길상암의 매화를 찾아가지만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길상암의 야매도
지난 해에 선암사의 매화처럼
거의 꽃을 피우지 못하는
불상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사전 정보가 없어서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다가갔는데
아~, 다행이다!
푸른 대숲 사이로 늘씬한 키의
야생 백매가 꽃을 화사하게 피웠다
'비쩍 마른 명태'같은
- 함께 갔던 선배의 표현- 모습이지만
5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로
산청 단속사지의 '원리 야매'처럼
산속의 들매화이다
원래 4그루가 있었으나 3그루는 죽고
한그루만 남았다
길상암 툇마루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고매를 바라보고 있다가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길래 일어서려는데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진다
굵어진 빗방울에
하얀 매화가 가지에서떨어져 꽃비가 되어
너울너울 날린다!
댓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댓잎 사이로 간간히 흐르는
습기 묻은 매화향!
아~,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2014.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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