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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야기 ■/전통건축 이야기

사찰.건축기행-01. 완주 화암사 - 시인이 짝사랑한 절집

 

 

 

 

            완주 화암사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불명산 화암사花巖寺.

옛날부터 익히 그 명성을 들어 온 터라

수차레 답사계획을 세웠으나 번번이 실천하지 못했던

마음속의 절집이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길을 몰라서 못갔고 

지금도  워낙 멀어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깊고 깊은 산중, 구름속의 절집이 화암사였다.

 

 

 

 

 

 

 

 

한너울 문화유산답사회의 새해 첫 답사지로

화암사가 결정되었다.

몇년만에 장롱속의 겨울 등산복을 꺼내 입고

눈 덮힌  불명산을 찾아 새벽부터 나섰다.

 

 

 

 

 

 

 

 

 

불명산 계곡 초입의

화암사 주차장에 있는 안내판에는

 화암사의 유래를 전하는 전설이 자세히 나와있다.

 

 

'옛날 어느 임금이 병들어 사경을 헤메는 연화공주를 구하기 위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에 왕은 꿈을 꾸었습니다.

얼굴에 연꽃처럼 환한 웃음을 머금은 부처님은

“너의 갸륵한 불심에 감동하여 공주의 병을 낫게 할 것을 알려주니 그리 알라.” 하고는

왕의 앞에 연꽃 한 송이를 던져준 뒤 사라졌습니다.

왕은 기뻐하다가 잠에서 깨어나 신하들에게 연꽃을 찾아 오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며칠 뒤 이곳에서 연꽃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겨울에 연꽃이 피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연못이 아닌 산중의 높은 바위에 피어 있다는 것은 더욱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산으로 올라간 신하들은 꽃을 꺾기 전 잠시 바위 뒤에 숨어서 연꽃을 지켜보았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산 밑의 연못 속에서 갑자기 용 한 마리가 솟아오르더니,

입으로 연꽃에 물을 뿌려준 뒤 다시 연못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신하들이 꺽어 온 연꽃을 먹은 공주는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부처님의 은덕에 감화한 왕은 불심이 더욱 깊어져 연꽃이 있던 자리에 절을 짓고

절의 이름은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뜻에서

화암사花巖寺라 하였다고 합니다'

 

 

 

 

 

 

 

 

 

 

 

 

 

산 밑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마땅한 도로나 등산로도 없는 길을

오로지 계곡의 물길과 다람쥐를 따라서

30분정도 쉬엄쉬엄 올라가면

얼어붙은 절벽에 걸린 147 철계단이 나온다.

 

 

 

 

 

 

 

 

그러나 '우화루 꽃잎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철계단은

이 엄동설한에도  꽃이 피고 낙엽이 흩날리고

그리고 화암사를 짝사랑한

 시인의 시도 만날 수 있는 사색의 길이다.

 

 

 

 

 

 

 

 

 

 

 

 

 

 

 

 

 

마지막 난관인 147 철계단을 돌아나오면

저 계곡위에 화암사의  얼굴이자 대문인 우화루가

마침내 살짝 고개를 내민다.

 

 

 

 

 

 

 

 

 

 

 

화암사는 대둔산의 지맥인 불명산의

시루봉 남쪽에 자리한 조계종 금산사의 말사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후 한 때 폐허가 되었다가

조선 초에 공조판서 성달생이 1425년부터 4년에 걸쳐 중창하여

사찰의 틀을 완성하였으나

1597년경 전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잿더미가 된 후

선조 38년(1605)에 극락전의 복원을 시작으로

숙종임금 때까지  연차적으로 복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암사에는 절 입구에

일주문이나 천왕문이 따로 없다.

가파른 진입로와

암반위에 조성된 협소한 부지 탓이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느껴지진 않는다.

 

우화루 옆의 작은 문이

화암사로 들어가는 정문이자 유일한 출입구이다.

우화루 밑으로 진입로를 만들지 않은 것은

절의 내부마당이 좁아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고려로 해석할 수있다.

 

 

 

 

 

 

 

 

 

 

화암사의 안마당은  800평 남짓한 공간에

 8채의 전각이 적당한 침묵과 긴장을 유지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안마당에는 우화루와 극락전이 남북으로,

불명당과 적묵당이 동서로 마주 바라보고 서 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건물을 '口' 자형으로 배치하고

극락전의 우측을 열어서 답답함을 피하도록 하였다.

 

 극락전 왼쪽에 승방인 철영제가 있고

적묵당 뒤편 바위 위에는 산신각

 우화루 옆으로 명부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늘에서 꽃잎이 비처럼 내리는 누각' 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우화루雨花樓는

 

앞면은  기둥을 내린 2층 구조이고

뒷면은 안마당의 높이에 맞추어

축대를 쌓고 하부를 막은 1층구조로서

화암사의 얼굴이자 강당에 해당하는 누각이다

 

 

 

 

 

 

 

 

 

 

 

 

 

 

화암사의 중심건물인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구조의 건물로서 

건축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하앙식 구조란 

공포위에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목구조 기법이다.

 

 

 

 

 

 

 

 

하앙식 구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근세까지도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와 함께 민족의 자긍심이 되고 있다.

그래서 2011년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화암사는

안동 봉정사의 영선암과 닮았다.

그기에도 아름다운 우화루가 있고

 

 작고 소박한 규모이지만

절제되고 압축된 공간에너지로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우리에게 가만히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잘 늙은 절집이다.

 

 

 

 

 

 

 

 

 

 

 

 

 

 

 

아쉬운 절집 대문을 나서서

얼어붙은 계곡을 내려오는 내내

'옛시인의 노래'를 생각해 보았다.

 

'화암사 내사랑!......'

 

무엇이 그토록 화암사와 서로 코드가 맞았을까?

무엇이 그토록 시인의 가슴에 연정을 불러 일으켰을까?

 

인간을 사랑하면 그 기쁨보다는 그 아픔이 더 크기에

차라리 잘 늙은 절집을 사랑하기로 한 것일까?

 

 

길은 미끄럽고

공허한 꿩 울음소리만

차가운 겨울 하늘에 맴돈다

 

나는

화암사에서 사랑을 보았는가?

찬 겨울바람만 보고 왔는가?

 

 

 

 

 

 

 

 

 

 

 

 

                                                                                                                   2013. 01. 16.

 

 

 

 

     화암사, 내사랑

 

                              - 안도현 -

 

 

 

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나오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였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