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347) 썸네일형 리스트형 경주 정혜사지13층석탑-1 (2005.01)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 경주 옥산서원-1 (2005.01.)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이언적의 학문은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되었다. 이곳은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고, 그 다음해에 임금에게 ‘옥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공부하는 장소인 구인.. 경주 김호장군 고택(2005.11) 조선 선조 25년(1592) 부산첨사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호가 살았던 집이다. 17세기전후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집터는 신라시대 절터였다는 설이 있는데, 주변에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석조물이 있고 마당의 우물돌은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김호의 후손 김헌용이 사망하여 지금은 큰.. 경주 안강 독락당-1 (2006.10)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 안동 학봉종택 - 1 (2005.11) 조선 중기 문신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의 종가이다. 김성일은 선조 1년(1568)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과 수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경상도 초유사로 관군과 의병을 화합시켜 의병의 전투력 향상에 큰 공을 세웠다. 퇴계의 제자로 뛰어난 성리학자이기도 한 그의 학.. 안동 하동고택(2005.08.)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집은 용궁현감을 지낸 유교목 선생이 세웠다. 조선 헌종 2년(1836)에 지었고 남촌과 북촌을 가르는 길가에 자리잡고 있는데, 하회마을 동쪽에 있다하여 '하동고택'이라고도 부른다. 사랑채, 안채, 행랑채들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랑채와 안채가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배치 형식을 보인다. 안채는 가운데 3칸을 대청으로 놓았는데 오른쪽 뒤편 반칸에 2층 광을 설치하였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2칸과 부엌 2칸을, 오른쪽에 건넌방과 마루, 중간방을 마련해 놓았다. 사랑채는 2칸 대청과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 앞쪽으로 마루를 놓았고 중문간채와 연이어 있다. 중문간채는 1칸 .. 안동 퇴계종택(2005.10) 조선 중기 문신이며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종가이다. 원래 있던 집은 없어지고 이 건물은 1926∼1929년 사이에 선생의 13대손 하정 공이 옛 가옥의 규모를 따라 새로 지었다. 앞면 6칸·옆면 5칸 규모의 ㅁ자형 집으로 총 34칸으로 이루어졌다. 높은 석축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난 기둥을 사.. 안동 충효당 (2005.08.)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집이다. 유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징비록』과『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 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