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에 있어서 큰 자취를 남긴 시인 영랑 김윤식(永郞 金允植, 1903-1950)이 태어난 곳으로 현재
본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변 밭을 포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불탑이 있었고 문화적으로는 재능과 지식을 갖춘 '영랑 김윤식의 생가'라는 역사문화적 가치와 함께 20세기 초반 건조물인
전통한옥과 근대 건조물의 이행기의 가옥으로서 문화변용의 한 형태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더불어, 영랑의 문학적 세계를 후손에게 길이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가치가 중요하다.
당초에는 전남강진 기념물 강진영랑생가(제89호)로 지정(1986. 2. 7)되었으나 신청(2007. 5. 3)을 받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52호로 지정(2007.10.12)되었다. (자료-문화재청)
영랑은 서울의 휘문고보를 거쳐 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발발하자 고향에 내려와 강진지역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대구교도소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후 영랑은 고향집에서 문학에 뜻이 있는 인사들과 함께 『靑丘(청구)』라는 동인지를 내며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일본 東京 靑山학원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용아 박용철(1904. 6. 21-1938. 5. 12) 등과 교류하면서 최초로 『시문학』
동인지를 만들면서부터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문학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일본강점기 치하에서 설움받은 내용을 시로 표현하고 그의 젊은 정열과 민족의 기상을 은연중 문학을 통해서 불살랐던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큰 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료-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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