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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소나무 기행

소나무 기행 -75. 창원 진전면 여양리 소나무 — 사백 년 세월을 지켜온 마을의 수호목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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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진전면  여양리 소나무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둔덕 마을과 옥방 마을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 조용한 산촌 마을 어귀에는 사백 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온 한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이 대대로 오가며 그늘 아래 잠시 쉬어가던 정자목이자, 창원시가 1993 3 22일 보호수로 지정하여 지금껏 소중히 지켜온 여양리 소나무다. 지정번호 12-17-8-1로 관리되는 이 나무는 별칭으로꽃소나무또는멋있는 소나무로도 불리며, 400여 년이라는 시간의 더께를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살아 있는 지역의 산증인이다.

노거수 한 그루가 단순한 식물학적 개체를 넘어 한 지역의 역사서이자 정신적 표상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살피는 일은, 우리가 자연을 대해 온 태도와 그 안에 깃든 공동체적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1. 여양리 소나무의 형태와 생태

여양리 소나무는 높이 약 10미터, 가슴 높이 둘레 약 3미터에 이르는 노거수로, 수령은 대략 410년으로 추정된다. 이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격변을 지나 인조와 효종 무렵의 시대에 이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는 뜻이니, 한 그루의 나무가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우리 역사의 굵직한 마디들을 모두 지켜보아 온 셈이다.

줄기는 오랜 풍상을 겪으며 굵고 거친 껍질로 뒤덮여 있고, 가지는 여러 갈래로 뻗어 넓은 수관을 이루며 마을 어귀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이러한 수형은 단순히 오래 자랐다는 사실을 넘어, 바람과 가뭄, 병충해 등 숱한 시련을 이겨내며 스스로를 다듬어 온 결과라 할 수 있으며, 나무 자체가 하나의 생명 기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나무 특유의 구불구불한 줄기와 짙푸른 솔잎은 사계절 내내 변함없는 푸르름을 간직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세월의 무게와 생명의 끈질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2. 정자목과 마을 신앙, 당산나무 문화

여양리 소나무가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성격은 바로 정자목이라는 점이다. 정자목은 마을 어귀나 길목에 서서 오가는 이들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를 이르는 말로, 단순한 휴식 공간의 표지를 넘어 마을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전통 마을 입구에는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이 당산나무 혹은 당나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신격화되어 왔다. 무속적 세계관에서 이러한 신목은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체로 여겨졌으며, 단군 신화의 신단수에서부터 서낭당의 당나무, 솟대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뿌리는 한민족의 오랜 수목 신앙과 맞닿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당산제나 동제를 지내며 나무 아래에서 공동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고, 이러한 의례는 마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풀고 정을 나누는 화합의 자리이기도 했다. 당산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훼손하면 목신이 노하여 재앙이 내린다는 믿음이 뿌리 깊게 자리했던 것도, 그만큼 나무가 마을 공동체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3. 여양리의 역사와 소나무가 지켜온 시간

여양리는 본래 둔덕 마을과 옥방 마을이라는 두 자연 마을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곳으로, 오실골, 들담 마을, 골옥방 마을 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1989년 함안군 여항면에 속해 있던 평암, 금암, 고사, 여양 등 네 개 리가 의창군 진전면으로 편입되며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 마산시와 창원시의 통합을 거치며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이르렀다.

2013년 무렵 기준으로 여양리에는 칠십여 세대, 백사십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아담한 산촌으로, 진전면 특유의 구릉성 산지와 침식 분지 지형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작은 마을에서 사백 년이 넘도록 살아남은 소나무 한 그루는 그 자체로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의 이름도, 마을을 이룬 자연 부락의 경계도 시대에 따라 몇 차례나 바뀌어 왔지만, 소나무는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아 왔다.

 

진전면이라는 지명 자체도 근대 행정구역 개편의 산물이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진해부 서면에 속해 있던 진서면과 양전면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진서면의  자와 양전면의  자를 따서 진전면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이후 진전면은 창원군에 편입되었다가 1980년 창원시 승격과 함께 의창군으로, 1995년에는 시·군 통폐합에 따라 마산시로, 그리고 2010년 마산·창원·진해 통합 창원시 출범과 더불어 오늘날의 마산합포구로 소속을 옮겨 왔다.

 

진전면은 남쪽과 서쪽으로 별발들, 기대봉, 탑곡산, 호암산, 와우산 등 해발 500미터 안팎의 구릉성 산지가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서북산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며 그 사이에 침식 분지가 펼쳐지는 전형적인 산간 지형을 이루고 있다. 함안에서 발원한 고사천이 동산리를 거치며 진전천이 되어 남해로 흘러드는 물줄기 또한 이 일대의 지형을 특징짓는 요소다. 이러한 산과 물이 어우러진 지형 속에서 여양리 소나무는 행정구역의 명칭과 소속이 몇 차례나 바뀌는 격변의 세월 동안에도 자리를 지키며, 마을 사람들에게는 변치 않는 이정표이자 안식처가 되어 왔다.

 

한 그루의 나무가 사백 년을 산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 사이 여양리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나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며, 전쟁과 기근, 근대화의 물결과 개발의 손길이 이 작은 산촌 마을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신 타파라는 명분 아래 전국의 수많은 당산나무가 베어져 나갔고, 근대화 과정에서도 도로를 넓히거나 새마을회관을 지을 자리를 마련한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을 지켜온 나무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그러한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여양리 소나무가 온전히 살아남아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목으로 여기며 아끼고 지켜온 여양리 주민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5.  보호수 지정과 그 의미

우리나라의 보호수 제도는 산림보호법에 근거하여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거나 마을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노거수와 희귀목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하여 보호·관리하는 제도다. 소나무는 은행나무, 느티나무와 더불어 전국 보호수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수종으로, 각 지역마다 저마다의 사연과 전설을 품은 채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창원시 역시 관내 여러 읍면동에 걸쳐 수백 년 수령의 노거수들을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해 오고 있으며, 여양리 소나무는 그 가운데서도 정자목이라는 특성과 400년을 웃도는 오랜 수령으로 인해 특별히 눈길을 끄는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보호수 지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지역 공동체가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자연물을 공적으로 기념하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2013년 현재 여양리 소나무는 정자목으로서 창원시에 의해 보호수로 지정되어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있다. 보호수 지정은 단순히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법적으로 보존한다는 행정적 의미를 넘어, 그 나무가 품고 있는 마을의 역사와 공동체의 기억,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후대에 전승하겠다는 다짐이라 할 수 있다. 여양리 소나무는 오늘도 변함없이 마을 어귀에서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오가는 이들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어갈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사백여 년 전 이 자리에 뿌리내린 작은 씨앗 하나가 오늘날 마을을 굽어보는 거목으로 자라나기까지, 그 오랜 시간의 더께 속에는 여양리라는 작은 마을이 품어온 삶과 신앙, 이웃 간의 정,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앞으로도 이 소나무가 지역 사회의 관심과 보호 속에서 오래도록 푸르름을 간직하며, 다음 세대에게도 마을의 살아 있는 역사로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개발과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오늘날, 여양리 소나무처럼 수백 년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 온 노거수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한 지역의 정체성과 기억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도시화와 개발의 압력 속에서도 이러한 나무들을 발굴하고 기록하며 보호하는 작업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자산을 지켜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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