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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갤러리 ■/자 연

함안 악양 둑방길 — 남강이 빚은 꽃의 제방 (202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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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 둑방길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과 법수면 사이, 남강이 한강처럼 유장하게 굽어 흐르는 자리에 이 길이 있다. 악양 둑방길. 전국에서 가장 길다는 제방 위로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이다. 함안 악양생태공원은 경남 함안의 남강변을 따라 조성된 넓은 생태 공간으로 약 26만 5천 제곱미터의 규모를 자랑하며, 이곳의 백미는 전국에서 가장 길다는 둑방길이다. 제방이 풍경이 되고, 물길이 시가 되는 땅. 함안이 그러한 고장이다.

둑방의 역사, 아라가야에서 이어온 물의 기억

함안은 물과 오랜 싸움을 벌여온 고장이다. 함안의 둑 역사는 아라가야 때부터 시작되지만 본격화한 것은 근대식 토목기술이 도입된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였으며, 현재 함안 관내 하천 둑의 길이는 함안군청에서 서울시청까지 거리인 364km에 육박하는 338km에 달해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길다. 그 오랜 뚝심이 쌓여 오늘의 둑방길이 되었다. 열심히 둑을 쌓은 결과 하천 부근의 늪이나 습지였던 곳이 농경지로 바뀌었으며, 현재 함안 전체 논 면적의 80%가 제방 공사의 산물이다. 제방이 없었더라면 이 들판도, 이 꽃길도 없었을 것이다.

지명도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 일대는 중국의 명승지 악양(岳陽)과 지형이 닮았다 하여 악양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중국의 악양(岳陽)은 당나라 시인 두보가 「등악양루(登岳陽樓)」를 지어 불멸의 이름을 새긴 동정호 가의 누각. 악양루라는 명칭은 중국 호수인 동정호(洞庭湖)의 누각 이름을 가져온 것으로, 악양루에 오르면 정자 아래로 남강과 함안천의 합수 지점이 보이고 넓은 들판과 법수면의 제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과 들이 어우러지는 경치가 옛 선인들에게도 그만큼 빼어났다는 뜻이다.

 

 

 

 

 

 

 

 

처녀뱃사공의 노래, 나루터의 기억

 

악양루 아래로 흐르던 남강에는 한때 나루터가 있었다. 1950년대 악양나루터에는 20대의 처녀 뱃사공이 있었다. 본래 처녀의 오빠가 뱃사공 일을 해왔는데 군 입대를 하는 바람에, 늙은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자신이 직접 뱃사공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앗아간 것들 중 하나가 오빠였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처녀의 노 젓는 팔이었다. 1953년 유랑 악단의 단장 윤부길이 함안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악양 나루를 지나다 그 애절한 사연을 듣게 되었고, 가슴에 담아두었던 그 이야기는 1959년 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의 '처녀뱃사공'으로 탄생하였다. 오빠를 기다리며 강을 건넜던 처녀의 사연은 이후 국민 애창곡이 되어 수십 년을 불려왔다. 다리가 놓이면서 악양 나루터는 없어졌지만 악양루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1857년(철종 8년)에 처음 만들어졌다가 1963년에 고쳐 지어졌다.

지금 생태공원 입구에는 처녀뱃사공 조형물이 서 있다. 강을 건너는 배 모양을 형상화한 그 조형물은 관광객들이 지나치는 포토존이 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전쟁의 상처와 가족의 그리움이다. 노래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면, 강바람 한 줄기가 그 옛날 치마폭을 스쳐 지나가던 바람과 이어질 것만 같다.

 

 

 

 

 

 

 

계절마다 다른 빛으로 물드는 꽃의 제방

악양 둑방길의 진면목은 계절 따라 바뀌는 꽃빛에 있다. 봄에는 양귀비와 금계국이, 여름에는 해바라기와 연꽃이,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핑크뮬리가 차례로 피어나며 방문객을 맞는다. 어느 계절에 찾아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법이 없는 곳이다.

5월 말이 되면 이 길의 황금기가 시작된다. 본격적인 금계국 개화가 시작되는 5월 말부터 6월까지 수십만 송이의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 노란 물결로 변신한다. 둑방 위로 올라서면 한쪽으로는 남강의 너른 수면이, 다른 한쪽으로는 노란 꽃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황금빛 꽃길은 걷는 이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그 속에 드문드문 피어나는 보랏빛 수레국화와 연못 위에 드리운 꽃 그림자는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인생샷이 보장되는 풍경이 된다.

봄 초입에는 꽃양귀비가 먼저 고개를 내민다. 봄에는 흰 안개꽃 사이에 피어난 꽃양귀비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남강의 바람에 물결치는 장관을 연출하며, 꽃이 피어있는 구간의 길이는 2.7km 정도로 왕복 소요 시간은 넉넉히 2시간 안팎이다. 초여름에는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등장해 꽃양귀비가 떠난 자리를 메운다. 흰 꽃잎들이 강바람에 흔들릴 때면 이곳이 동화 속 어느 마을인 듯 착각이 든다.

가을이 되면 공원은 또 한 번 전혀 다른 모습을 펼쳐 보인다. 가을 햇살 속에 반짝이는 핑크뮬리는 강물에 분홍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우아하고 몽환스러우며, 광활한 악양 둔치에는 코스모스와 백일홍 등 꽃들이 넘실댄다. 생태공원 한편에 별도로 마련된 핑크뮬리원은 가을 절정기마다 분홍빛 인파로 넘쳐흐른다.

 

 

 

 

 

 

 

 

걷는 길의 풍경과 악양루의 절경

악양둑방길은 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왕복 약 2.5km의 평탄한 흙길·데크길로, 남강 수면과 꽃밭을 동시에 조망하며 걸을 수 있어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유모차와 휠체어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는 평탄한 둑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잔디광장과 쉼터가 나타나며,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벤치에 앉아 꽃물결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둑방길 곳곳에는 사람 손으로 만든 작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꽃길에는 나무 의자, 경비행기, 천사의 계단 등의 포토존도 만날 수 있고 돛단배, 돌탑도 볼 수 있으며, 돌탑은 밭을 갈면서 나온 돌을 모아 쌓은 것이고 다른 소품들은 버려진 것으로 새롭게 꾸민 것이다. 전망대 위에는 초승달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기다림의 종' 포토존에서는 남강을 배경으로 직접 종을 타종할 수 있다. 해가 지면 초승달 조형물에 조명이 들어와 달 위에 걸터앉은 듯한 야경 사진도 가능하다.

 

26만㎡나 되는 넓은 공원을 한나절에 다 걸을 수 없으며, 빼놓지 않고 보아야 할 곳은 생태연못과 핑크뮬리원, 초승달과 기다림의 종이 있는 데크전망대를 지나 팔각정과 숲속 나무 쉼터 등이다. 그중에서도 생태연못은 이 공원의 하늘 거울이다. 호수 속에 비치는 하늘과 구름, 빼곡히 들어선 나무숲이 한 폭의 수채화를 이룬다.

악양루로 오르는 데크 길도 놓쳐서는 안 될 구간이다.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절벽에 앉아 있는 악양루는 조선 철종 8년인 1857년에 처음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두물머리 풍경은 경남 어느 누정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강렬함이 있다. 두 물줄기가 만나 하나가 되는 합수 지점, 그 너머로 드넓게 열리는 남강의 수평선.

 

 

 

 

 

 

 

 

 

 

 

 

 

 

 

 

 

 

악양에서 하루를 머무는 법

이곳을 제대로 즐기려면 적어도 반나절은 내어놓아야 한다. 오전 이른 시간에 도착해 안개가 강 위로 피어오르는 풍경을 먼저 맞이하고, 둑방길을 천천히 왕복하면서 계절의 꽃빛을 가슴에 담은 뒤, 악양루에 올라 두물머리를 굽어보고, 해 질 무렵 전망대에서 노을이 남강을 물들이는 장면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이상적인 순서다. 악양생태공원은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되며,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무료다.

자연 여행에 역사를 더하고 싶다면 아라가야의 흔적이 남은 말이산고분군과 함안박물관을 함께 돌아보는 일정도 좋다. 아라가야의 땅이 제방을 쌓고, 그 제방 위에 꽃이 피고, 꽃 사이에 이야기가 자라났다. 악양 둑방길은 그 모든 시간이 한꺼번에 살아 숨 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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