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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야기 ■/[YouTube] 세계의 자연과 건축

[YouTube] [전북 완주] "1,000년도 넘게 잘 늙은 절"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과 함께 산중에 감춰둔 '화암사'┃불명산 국보 '극락전'┃국내 여행┃#고향민국 #방방곡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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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youtu.be/AMLaVDJfj0c?si=957Sc8JUBbNp_Lwm

 

 

 

 

 

 

완주 화암사(花巖寺) — 잘 늙은 절 한 채의 건축사

서론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佛明山) 자락, 시루봉 남쪽 깊은 골짜기에 화암사(花巖寺)가 있다. 내비게이션도 쉽게 길을 안내하지 못하는 이 절은 흙길과 돌길, 철계단과 돌계단을 차례로 밟고 올라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산문(山門)도, 일주문도 없이 숲에 둘러싸여 있다가 문득 나타나는 이 사찰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스스로를 감춘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작고 조용한 산사는 대한민국 건축사에서 결코 작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국보 제316호 화암사 극락전(極樂殿)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소박한 맞배집이지만,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하앙식(下昻式) 목조건축이라는 점에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남다르다. 시인 안도현이 화암사를 두고 '잘 늙은 절'이라 노래했던 것처럼, 이 절은 화려함 대신 세월이 쌓아 올린 깊이로 스스로를 증명해 왔다.

본론

화암사의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절에 남아 있는 화암사중창비(1425년, 성달생 찬)에 따르면 통일신라 시기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머물며 수행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후 조선 세종 연간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져 승당과 조성전 등 여러 전각이 갖추어졌고, 이때 지어진 3칸 불전이 오늘날의 극락전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유재란 당시 화재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고, 1605년(선조 38)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1981년 해체·보수 공사 중 발견된 상량 관련 기록들이 이러한 연혁을 뒷받침한다.

극락전의 진정한 가치는 그 건축 구조에 있다. '하앙(下昻)'이란 기둥과 지붕 사이에 비스듬히 끼워 넣은 긴 나무 부재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처마를 더 깊고 길게 뽑아낼 수 있게 하는 구조재다. 이는 백제 건축기술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백제의 옛 땅인 한반도에서는 그 실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술은 백제 장인들이 건너간 일본의 고대 사찰과 탑에서 더 뚜렷이 확인되어, 한때 일본 학계에서는 하앙식 구조가 백제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직접 일본으로 전래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화암사 극락전의 존재는 이러한 논쟁에 결정적인 답을 제시했다. 국내 유일의 실물 증거로서, 하앙식 구조가 분명 백제를 통해 이 땅에 뿌리내렸고 그것이 일본으로 전해졌음을 실증한 것이다.

 

극락전의 하앙 구조는 앞면과 뒷면의 표정이 다르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전면의 하앙에는 여의주를 문 용의 발 모양이 투각되어 화려한 장식성을 드러내는 반면, 후면의 하앙은 끝이 날카로운 삼각형으로 다듬어져 간결하고 소박하다. 이는 정유재란 당시 건물 전체가 전소되지 않고 일부만 소실되어, 옛 부재를 살려 중건한 결과로 해석된다. 오래된 구조와 새로운 장식이 한 건물 안에서 공존하는 셈이다. 건물 내부 천장의 닫집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이 조각되어 있고, 세월에 색이 바랬음에도 비늘 하나하나에 정교한 채색의 흔적이 남아 있어 조선 초기 장인의 솜씨를 짐작하게 한다.

 

극락전과 더불어 화암사를 이루는 우화루(雨花樓, 보물 제662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꽃비가 흩날리는 누각'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 건물은 절 초입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며 오랜 풍상을 그대로 간직한 목재의 결로 산사 특유의 정취를 완성한다. 동종(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40호) 또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대에 다시 주조된 것으로, 밤이면 스스로 울려 절을 지켰다는 전설이 함께 전한다. 이처럼 화암사는 하나의 국보급 전각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문화유산들이 서로 연대하며 하나의 완결된 가람 경관을 이루고 있다.

결론

화암사 극락전은 화려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건축이 아니다. 오히려 얼핏 보면 여느 한옥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수수한 외양 속에, 동아시아 건축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이어주는 결정적 증거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깊다. 백제에서 발원해 일본으로 건너간 기술이 정작 본토에서는 자취를 감췄다가, 깊은 산중의 작은 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진다는 사실은 문화유산의 보존이 얼마나 우연과 인연에 기대어 있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안도현 시인이 노래했듯 '잘 늙는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정직하게 끌어안으면서도 본래의 골격과 정신을 잃지 않는 일일 것이다. 화암사 극락전은 그런 의미에서 건축이 늙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우리 모두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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