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수능엄사(首楞嚴寺)
1. 사찰의 위치와 개요
부산 수능엄사(釜山 首楞嚴寺)는 노적봉(露積峯)을 주봉(主峯)으로 조성된 사찰로,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35-1번지(낙동남로 754-16)에 자리하고 있다. 주소를 들으면 그저 공단과 물류창고가 즐비한 강서구의 한 귀퉁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수능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 사찰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섬이었던 이곳은 주말이면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위해 찾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아는 사람만 찾는 숨은 힐링 공간으로, 불교 신자뿐 아니라 바다 풍광을 즐기러 오는 일반 방문객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 녹도(綠島)와 노적봉 — 사찰을 품은 땅의 역사
수능엄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이 절이 자리 잡은 땅, 녹도(綠島)와 노적봉(露積峯)에 대해 알아야 한다.
녹도는 서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에 떠 있는 작은 갯바위 섬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녹두처럼 작다'는 뜻을 담고 있다. 녹도는 현재 녹산수문에 의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녹산수문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반 낙동강 제방을 축조할 때 대저수문과 함께 가설된 것으로, 1934년 4월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하구둑 수문이다. 수문은 바닷물의 역류를 막고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했으며, 이후 녹도는 육지와 이어지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1997년 건립된 녹산교가 나란히 놓여 왕복 8차로 도로가 되었다.
녹도 안으로 들어서면 좁고 굽은 길을 빠져나와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광활한 바다와 마주한다. 그리고 뒤돌아서면 작지만 강렬한 존재감의 바위산, 노적봉이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는 높이가 50m, 길이 184m, 폭 138m 정도 크기다. 임진왜란 때 주민들이 섬 전체를 볏가리로 둘러씌워 멀리서 보면 마치 군량미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한다. 수많은 조선 군사들이 주둔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그 모습에 속아 왜군이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노적봉, 노적가리 섬이라 부른다. 해강일점노적봉(海江一點露積峰)은 강서 8경 중 제1경이다.
임진왜란의 역사적 기억을 품은 이 작은 바위섬 아래, 수능엄사는 수백 년의 세월을 묵묵히 버텨왔다. 전쟁의 상흔이 서린 땅에 불심(佛心)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이 사찰이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 역사적 장소임을 보여준다.











3. 사찰의 이름이 담긴 뜻
수능엄사(首楞嚴寺)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수능엄은 범어 수랑가마(suramgama)를 음사한 말이라고 한다. '수능'은 '모든 것에 구경(究竟, 최종의 극치)'임을 뜻하고 '엄'은 '견고하다'는 뜻으로, '수능엄'은 부처님이 얻은 불덕(佛德)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 중 하나인 『수능엄경(首楞嚴經)』에서 비롯된 것으로, 불퇴전(不退轉)의 굳건한 삼매(三昧), 곧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불심을 상징한다. 서낙동강과 바다가 맞닿는 지점, 크고 작은 풍파가 끊이지 않는 물가에 자리한 이 절의 이름이 '굳건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세상의 온갖 물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의 도량이 되겠다는 발원이 절의 이름 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4. 창건의 역사와 한일합섬 김한수 회장의 인연
사찰 관계자에 따르면 조선시대 말에 창건(재단법인 사찰이라 함)되었고, 향림스님(香林)이 1970년대에 중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다.
수능엄사의 역사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수능엄사에는 1960년대에 국내 최초 1억 불 수출을 달성했던 한일합섬 창립자 김한수 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김한수의 어머니가 민물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조개잡이에 몰두하다 물에 빠졌는데, 눈을 떠 보니 현재의 수능엄사 자리에 떠밀려 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이 생명을 부지해 준 것이라 믿었던 어머니는 눈앞의 노적봉을 바라보며 저 높이만큼 재물을 쌓아 부자가 되면 절을 세워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빌었다 한다. 이후 김한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포목점에서 일하다가 1944년 5천 원을 가지고 귀국하여 경남모직과 한일합섬을 설립해 우리나라 최대의 섬유회사로 성장시켰다. 어머니의 축원대로 부자가 된 김한수 회장은 이 땅을 매입하여 조계종에 시주했다고 전한다.
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아들의 성공이 맞물려 이루어진 시주, 그리고 그 자리에 세워진 절집. 수능엄사는 단순한 종교적 공간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삶과 어머니의 신심(信心)이 응집된 장소이기도 하다. 가난 속에서도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모성의 서원이 오늘날 이 사찰의 터전을 마련해 준 셈이다.








5. 경내의 구조와 전각들
수능엄사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공간 구성이 단아하고 정갈하다.
대웅전 안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여 전형적인 삼존불(三尊佛)이다. 뒤에는 6보살과 나한님들, 사천왕 등과 함께 아미타불 후불탱화가 금빛찬란하다. 대웅전 뒷편에는 천태산에서 홀로 각성(覺聖) 했다는 '나반존자' 상을 모신 독성각(獨聖閣)이 있고, 몇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른 자리에 지방신을 모신 산신각(山神閣)이 노적봉 아래 자리잡고 있다.
가운데 청기와 팔작지붕 전각이 대웅전, 그 왼쪽 앞에 요사채, 오른쪽에 불교대학이 자리한다. 대웅전 왼쪽 뒤로 물러선 것은 독성각, 노적봉 절벽에 올라서 있는 것이 산신각이다.
앞마당으로 열린 바다와 더불어 푸른 잔디와 능소화, 수국 등 각종 꽃들이 피어나는 5월이 아름다운 절집으로 알려져 있다. 정원이 아기자기하다. 방문객들의 후기에도 7월의 능소화와 수국이 탐스럽게 피는 계절이 특히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절 앞으로 탁 트인 바다, 뒤로는 노적봉의 너럭바위가 사찰을 감싸 안는 지형 덕분에 도심에 있으면서도 고요하고 여유로우며, 앞에 바다가 있고 주변이 확 트여 가족 단위로 기도하기 좋고 힐링할 수 있는 최적의 곳이라는 주지 스님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다.




6. 소장 문화재 — 고려의 유산을 품은 작은 절
수능엄사가 특별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규모에 비해 놀라울 만큼 귀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능엄사에는 보물 2점, 부산시지정 문화재 2점 등 모두 4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보물 제1092호 —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은 줄여서 '장수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중생들이 부처의 힘을 빌리거나 수행(修行)을 통해 자기가 지은 모든 죄악(罪惡)을 없애고 무병장수(無病長壽)하는 법에 대한 가르침을 적은 경전(經傳)이다. 수능엄사 소장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은 고려시대의 판을 다시 새기고 찍어낸 것이지만 조선에서는 가장 오래된 장수경이며, 조선 전기의 불경 간행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보물 제2243호 —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
중국 남송시대 승려 혜정이 금강반야바라밀경 한역본을 쉽게 풀어쓴 것으로, 우리나라 대표 불경 중 하나다. 이 책은 1178년(고려 명종 8년) 이후 우리나라에 전해져 3차례 간행됐다. 최초 판각은 1352년(공민왕 1년)에 제작됐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유실돼 인출본이 발견되지 않았다. 두 번째 판각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수능엄사 소장본이고, 세 번째 판각은 1378년(고려 우왕 4년) 충주 청룡사에서 제작된 것으로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은 1373년(고려 공민왕 22년)에 판각된 목각본으로, 기존 보물로 지정된 세 번째 판본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됐다. 부산 강서구 녹산동 수능엄사가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인쇄 상태 및 보존 상태가 기존 지정된 본보다 양호하다.
이처럼 수능엄사가 보유한 문화재들은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불경 간행사의 귀한 흔적들이다. 역사의 풍파 속에서 유실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이 작은 절집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온 것은, 역대 스님들의 부단한 노력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지 스님은 스승님들께서 물려주신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잘 전하며, 부처님 법을 전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7. 수능엄사의 자연환경과 풍광
사찰 앞으로는 바다가, 뒤로는 노적봉(40.3m) 너럭바위가 사찰을 품듯이 속세와 구분하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먼저 초록빛 넓은 잔디마당이 시선을 붙잡는다. 한국의 전통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개방적인 공간 구성으로, 마치 잔디광장을 연상케 할 만큼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 너머로 서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이어지고, 멀리 신호대교가 수평선을 가로지른다. 뒤를 돌아보면 노적봉의 투박하고 웅장한 바위 절벽이 절을 감싸 안는다. 앞은 물, 뒤는 바위 — 이처럼 수능엄사는 음양이 어우러진 풍수적으로도 특별한 자리에 놓여 있다.
계절에 따라 사찰의 표정도 달라진다. 봄에는 수선화와 산당화, 여름에는 능소화와 수국이 경내를 화사하게 물들이고, 가을에는 단아한 정원과 반짝이는 바다가 함께 눈에 담긴다.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는 수능엄사는 최근 영화제작사에서 촬영 문의가 올 정도로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8. 현재의 수능엄사 — 수행과 치유의 공간으로
오늘날 수능엄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하는 수행 도량이자,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치유와 쉼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큰 사찰이 아니다 보니 관광지처럼 북적이지 않고, 오히려 그 아담함과 고요함이 최대의 매력이다.
수능엄(首楞嚴)이라는 단어에 '수능'이 포함되어 있어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즌에는 수험생들이 합격을 기원하러 찾아오기도 한다고 한다. 또 한일합섬 창립자의 일화에서 비롯된 이미지로 인해 부(富)를 기원하는 방문객들도 적지 않다. 이름 덕분에 세간의 소원을 두루 품은 절이 된 셈이다.
무엇보다 수능엄사는 부산이라는 대도시 안에 존재하면서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바다와 바위와 불심(佛心)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장소다. 화려하지 않고, 크지 않으며, 유명하지도 않지만 —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 이 작은 절집에는, 큰 사찰이 주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노적봉의 너럭바위가 천년의 세월을 버텨왔듯, 수능엄사 역시 세상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


'■ 전통건축 갤러리 ■ > 경 남 . 부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통건축-10384. 창원 삼밀사(三密寺) - 장복산 자락의 침묵과 돌의 사원 (2026.04.25.) (1) | 2026.04.30 |
|---|---|
| 전통건축-10381. 산청 남사마을(남사예담촌) - 담장 너머 살아 숨 쉬는 선비의 고장 (2026. 03.) (0) | 2026.04.09 |
| 전통건축-10380. 산청 남사예담촌 면우 곽종석생가 - '면우(俛宇)', 처마가 낮아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작은 집 (2026. 03.) (1) | 2026.04.07 |
| 전통건축-10377. 창원 진북 의림사 (2026. 03.) (1) | 2026.03.15 |
| 전통건축-10375. 밀양 교동 손씨 고가 (2026.03.08) (0) | 2026.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