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흥덕왕릉
경주 흥덕왕릉(慶州 興德王陵)은 통일신라 제42대 흥덕왕의 무덤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에 위치합니다. 1963년 사적 제30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면적은 약 6만2천㎡에 달합니다.encykorea.aks+4
왕릉의 역사적 배경
흥덕왕(재위 826~836)은 본명이 김수종(金秀宗), 또는 경휘(景徽)로 헌덕왕의 아우입니다. 왕위에 오른 뒤 장보고에게 청해진 대사 직을 맡기고 해상권을 확립했으며,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들여와 지리산 일대에서 재배하는 등, 대외적·문화적 업적도 남겼습니다. 왕비 장화부인과 애틋한 사랑으로도 유명한데, 왕이 승하한 뒤 부인 무덤에 합장된 것으로 기록돼 경주 유일의 합장릉으로 전해집니다.나무+4
외형과 구조적 특징
흥덕왕릉은 지름 20.8m, 높이 6m의 둥근 봉토분으로, 통일신라 후기 왕릉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봉분 바닥에는 둘레돌을 기초로 면석(넓은 판석)이 이어지고, 면석마다 탱석(기둥)을 끼워 고정한 후 갑석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각 탱석에는 방향에 따라 십이지신상이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무덤을 지키는 신화적 존재로서 통일신라 후기에 완성된 예술적 특징입니다.위키피디아+3
난간석이 봉분 주변에 방사형으로 깔려 있었지만, 현재는 난간기둥이 대부분 유실되었습니다. 봉분의 네 모서리에는 각각 돌사자상이 배치되고, 무덤 앞좌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1쌍씩 세워져 있습니다. 특히 무인석은 서역인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어 당시 문화적 교류의 흔적을 보여줍니다.encykorea.aks+2
무덤 앞 왼편에는 비석 받침 역할을 하는 거북 모양의 귀부(龜趺)가 남아 있으나, 비신(碑身)과 이수(螭首)는 소실되었습니다. 귀부와 기타 석조물의 양식은 성덕왕릉과 원성왕릉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 능을 기준으로 신라 왕릉 형식을 비교·연구하기도 합니다.나무+2
학술적 의의 및 확인 과정
흥덕왕릉은 신라 왕릉 가운데 무덤 주인이 확실히 밝혀진 드문 사례 중 하나입니다. 발굴조사에서 ‘흥덕(興德)’이란 명문이 새겨진 비석 파편(총 59조각)이 발견되어, 삼국유사에 전하는 무덤 위치와 일치함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신라 태조 ‘성한왕’이 언급된 금석문은 왕실 혈통과 왕위 계승 방식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역사+3
현재 가치와 문화적 의미
경주 흥덕왕릉은 통일신라 후기 왕릉 구조의 완성 형태, 십이지신상과 돌사자상, 각종 석조물의 예술성과 더불어 왕권의 상징성과 개인적 애정(합장릉)을 내포한 문화유산입니다. 신라 왕릉 가운데 비교적 큰 크기와 잘 갖춰진 구조, 외곽지역에 위치한 점 등에서 독특한 경관과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유산+3
연구 측면에서는 무열왕릉·성덕왕릉·원성왕릉과 함께 신라 왕릉의 기준점이 되며, 금석문·조각·매장제도의 변화양상 파악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져 신라 왕릉 전통과 당대 생활사·의례·조형예술 등 다방면에서 문화적 의의를 지닙니다.encykorea.ak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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